2019년 군종교구 부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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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에 갇히셨던 우리 임금님, 군사가 엄중하게 지키었건만,
장엄한 광채 속에 개선하시어, 죽음의 승리자로 부활하셨네

I

친애하는 군종교구 교구민 여러분, 이 부활찬미가가 말해주듯이, 전 세계의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우리 신앙의 중심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기쁨과 감격 속에 경축하고 있습니다. 사흘 전 자신들이 그토록 사랑하고 공경했던 스승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처참하게 사형당하시던 모습을 목격한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몇몇 여인들은 안식일 다음 날 새벽 예수님이 묻히신 무덤을 용감하게 찾아갔습니다. 땅에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발라드림으로써 사랑과 공경심의 마지막 표현을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신이 있어야 할 무덤은 비어 있었고, “예수는 되살아나셨다.”는 천사의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놀라운 일이라서, 이 여인들은 기쁨보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그 누구보다 당신이 지극히 사랑하셨던 제자들을 찾아가시어 발현하셨습니다. 꺼져가는 등불처럼 당신께 대한 신앙이 꺼져가고, 공동체의 삶도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 처했던 제자들에게 발현하시어 당신이 부활하셨음을 알리심으로써, 그들의 신앙에 다시 불을 붙이시고 무너져가는 제자들의 공동체도 다시 일으키시어, 세상에 나아가 변함없이 그리고 열성적으로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열망이 얼마나 컸던지 제자들 가운데 오시어 가운데에 서신 채, 당신이 평소에 늘 사용하신 인사말 “평화가 너희와 함께”를 큰 소리로 연속하여 언급하시고, 처음 발현 때 함께 있지 않았던 제자 토마스의 의심을 해소시키기 위해 두 번째로 나타나셨을 때에는 당신의 현존과 말씀만으로도 충분할 터인데,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요한 20,27)라고 좀 어색한 요청까지 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요구에 의심 많은 토마스는 외치듯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주님의 부활 대축일을 경축하는 우리 각자가 마음속에서 크게 외쳐야 할 신앙고백이 바로 사도 토마스가 고백한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입니다. 사실 사도 토마스의 이 고백은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과 영성의 요약이라고 생각합니다. 토마스 사도의 이 고백은 “주님, 당신은 저의 주인이시고 저의 중심이시며 저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함께 오늘만이 아니고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 주님의 부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지니면서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신 예수님”이라고 고백하도록 합시다.

주님께서 토마스의 이 고백을 들으신 후 토마스에게 하신 다음 말씀은, 주님을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한 지금의 우리가 주님께 대한 믿음을 갖는 데에 참으로 큰 도움이 됩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주님의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우리처럼 주님 승천 후에 사는 사람들만이 아니고 당시에 살던 이들 가운데서도 주님을 눈으로 보지 못한 이들이 많이 있었을 터인데, 이들이 당신을 보지 않고도 믿을 때 그것은 큰 축복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II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은 무엇보다 그분이 참으로 하느님이시고 참으로 사람이시고 참으로 구원자이심을 증명해준 사건이며, 이는 동시에 우리 역시 죄를 통회하고 그분을 믿어 옛날의 육적인 내가 죽고 영적인 나로 새로 태어나야 한다는 심오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우리 주님께서 언젠가 사람들의 이목이 두려워 밤에 당신을 찾아온 의회 의원 니코데모에게 하신 다음 말씀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요한 3,5-7)

이 때문에, 우리 교회는 예로부터 부활 대축일을 맞을 때 주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곧 “위로부터 태어나는” 의미를 지닌 세례성사 예식을 베풀어오고 있습니다. 사도 성 바오로께서는 주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이 세례가 지닌 심오한 의미를 이렇게 요약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 6,4) 그러므로 부활 대축일을 맞으면서, 이미 세례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내가 과연 새로운 탄생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지를 깊이 성찰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새로운 탄생, 새로운 삶은 우리에게 무엇보다 하느님의 사랑, 특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깨달으면서 그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게 해줍니다. 내가 누구로부터 사랑을 받으면 당연히 그에게 사랑으로 응답하게 되듯이, 하느님의 사랑에 나는 사랑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사막의 성 안토니오 아빠스는 말했습니다.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선호되어서는 안 된다.” 이 말씀은 훗날 성 베네딕토의 회칙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느님의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하려는 자세가 회개 생활의 가장 뚜렷한 표현이 된다는 점입니다. 내가 누구를 사랑하면 나도 모르게 그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듯, 내가 하느님을 사랑하면 할수록 그분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또한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게 될 때 자연히 세상의 모든 사람과 모든 피조물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사도 성 요한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이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세상이 그분을 통해 살게 해주시며, 하느님의 사랑이 외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주신 데에서 드러났다고 말씀하시면서(참조: 1요한 4,9-10),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1요한 4,11)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 사도 성 요한께서는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1요한 4,20)라고 하시면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1요한 4,21)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형제적 사랑 실천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 나에게 상처나 해를 크게 끼쳐 미워지고 복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의 상태일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루카 6,27-28)

우리는 우리에게 해를 끼치고 아픔을 주는 이들이나 증오의 정도가 심해져 원수처럼 여겨지는 이들을 미워하고 저주하며 복수까지 하고 싶은 충동을 받습니다. 하지만, “원수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해 주라”는 주님의 말씀을 거듭거듭 되새기면서, 원수같이 여겨지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사랑하지는 못한다 해도 그에게 해를 주거나 복수하려 하지 말고, 그가 어려움에 처할 때는 도와주는 마음을 갖도록 합시다. 복수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지 못한다면, 복수하고 싶은 이에 대한 심판을 주님께 맡기도록 합시다. 우리는 악을 선(善)으로써 극복해야 합니다. 원수 사랑의 노력이 상대방의 거부나 나 자신의 역부족으로 벽에 부딪힌다 해도 거듭거듭 시도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내 편에서 위선이 아닌 진정성으로, 오만이 아닌 겸손에서, 일시적으로가 아닌 지속적으로 이 노력을 하도록 합시다. 물론 나의 한계성을 인정하면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청하면서입니다. 우리의 이 노력에 대해 하느님께서 한없는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이 노력 때문에 내 모습이 비참하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나를 버리고 비우는 순수한 상태인 것입니다. 사랑 실천에서 가장 힘든 원수 사랑을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실천하도록 합시다. 특히 구약 성조 요셉이 신앙을 통해 발견한 하느님 사랑의 섭리 신비를 깨달으면서 원수 사랑의 길로 나아가도록 합시다.


III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함께 죽음을 이기고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면서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바치도록 합시다. 주님의 부활이 가져온 또 하나의 부활인 나의 새 생명, 새로운 삶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더욱더 깊게 하도록 합시다.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2019년 주님 부활 대축일
천주교 군종교구장 유 수 일 F.하비에르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