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인천교구 부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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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되살아나셨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기쁨을 여러분 모두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기쁨과 은총이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라는 사도들의 외침과 증언은 전 인류에게 큰 기쁨과 희망으로 다가왔습니다. 죄와 죽음에 얽매여 있던 인류가 예수님의 부활로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 생명의 길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부활은 믿는 이들에게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도다. 당신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시고, 죽은 이들에게 생명을 주셨도다.” (비잔틴 전례, 부활 대축일 마침기도)라는 기도문처럼 부활을 통해 우리는 죽음을 넘어선 신앙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처럼 새롭고 영원한 생명으로 우리를 초대한 것이기에, 오늘의 기쁨을 ‘이 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시편 118,24 참조)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부활 사건을 설명하는 성경 구절들을 마음을 열고 읽어봅시다. 주님이 돌아가신 뒤, 주간 첫날 새벽 몇몇 여인들이 무덤으로 찾아갑니다(루카 24,1 참조). 그들의 마음은 이미 슬픔과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랐지만, 인간의 눈으로 볼 때, 허무하게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주님을 보면서 더 깊은 슬픔에 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기력함에 빠졌습니다. 이처럼 절망에 빠져 힘없이 무덤으로 가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희망도 목표도 없이 방황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표현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발걸음이 주님의 무덤 앞에 이르렀을 때, 여인들은 놀라 당황합니다. 그리고 무덤이 비워져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습니다. 너무 놀라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마치 인간이 하느님의 신비를 마주 대할 때,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처럼(루카 9,33 참조)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것이 아닌 전혀 새로운 큰 사건을 만나게 되었기에, 그들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때 어떤 남자가 그들에게 말합니다.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되살아나셨다.”(루카 24,5-6) 그 말을 들은 후에야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 냅니다. 그리고는 부활의 기쁨에 가득 차서 사도들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전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그들의 절망과 슬픔은 기쁨과 희망으로 변화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 주님의 부활을 체험하는 이들은 그 크신 은총에 매료되고, 그 크신 사랑에 빠져듭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새롭게 듣고 느끼며, 새로운 삶으로 나아갑니다. 새로운 삶이란 주님의 말씀과 은총,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생명의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도 주님의 부활 신비를 체험하며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 6,4)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를 ‘과거의 우리’가 아닌 ‘새로운 우리’가 되도록 변화시키는 큰 은총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로마 6,8)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부활을 통해서 우리를 새로운 생명으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게 해 줍니다. 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큰 은총입니까? 또한 주님 부활의 신비에 다가설수록 주님 안에서 새롭게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사실 주님은 공생활 중에 말씀과 업적을 통해 많은 이들을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들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굶주리는 이들,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 절망에 빠진 이들, 삶에 방황하는 이들 모두에게 새로운 길을 알려주시며,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라고 말씀하십니다. 부활 신앙은 바로 주님께서 생명이심을 알려줍니다. 그러기에 주님 안에 새롭게 태어나는 우리도 그 생명을 살아가며 보호하고 전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부활을 체험한 이들이 다른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부활을 통한 새로운 생명의 길을 알려주었듯이, “이제 출발합시다. 가서, 모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합시다.” (복음의 기쁨 49항)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도 부활을 증언하면서 모든 이들에게 새로운 생명의 길을 전파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이 시대에 만연되어 있고, 때로는 당연시되고 있는 반 생명의 문화, 죽음의 문화에 대하여 ‘아니오’ 할 수 있는 신앙의 힘과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이번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선고를 내린 데에 깊은 유감을 표명합니다. 향후 국가법 개정이 이루어지면 어떤 상황이나 조건에 의해 ‘인간의 생명’을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일이 발생되지 않을까 우려 됩니다.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은 그 어떤 상황이나 조건에서도 생명 존중은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선(善)이라고 가르칩니다. 다시금 우리 모두가 사랑으로 잉태된 모든 생명이 죽을 위험에 처하지 않고, 보호받을 권리가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은 인간의 자기 결정권보다 위에 있으며, 인간의 논리나 판단보다 위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금 모든 이들에게 특별히 절망에 빠져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주님 부활의 은총이 충만하기를 기도하며, 부활 신앙을 살아가는 모든 형제 자매들에게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은총이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2019년 주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인천교구장 정신철 요한 세례자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