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전주교구 부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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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래아로 가라.”(마태 28,10)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죽음의 세력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 내리시기를 빕니다.

먼저, 주님의 부활 소식을 처음 전해주는 복음의 장면을 살펴봅시다. 부활 복음은 몇몇 여자가 무덤을 향해 길을 떠나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그들은 죽으신 예수님께서 차가운 시신으로 무덤에 묻혀 계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확신으로 무덤으로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무덤 입구를 단단히 막아놓았던 돌이 굴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천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마태 28,5-6) 여자들은 돌아가신 예수님의 시신을 볼 줄 알았는데, 천사를 만나 전혀 뜻밖의 소식을 전해들은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입니다.

부활 소식은 여자들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놓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천사의 소식을 들은 여인들은 이제 방향을 바꾸어,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실제로 만났습니다. 그들의 삶의 방향이 무덤에서 생명으로, 죽음에서 부활로 바뀐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여자들만이 아니라 제자들의 삶도 바꾸어놓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여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내 형제[제자]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 이 말씀에 우리는 깊이 주 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상당히 중요해서 마태오가 천사의 입을 통해서도 미리 알려주기 때문입니다(마태 28,7 참조).

그런데 왜 하필이면 ‘갈릴래아’로 가라고 분부하셨을까요? 갈릴래아는 어떤 곳인가요? 갈릴래아는 예수님께서 활동하셨던 주요 무대입니다. 그곳에서 제자들은 스승이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여겨보시며 마음에 들어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나를 따라오너라.”(마르 1,17) 하고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이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랑스런 눈빛을 생생하게 느끼며 감동에 벅차 곧바로 그분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리고 동료들에게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요한 1,41) 하고 힘차게 증언했습니다. 갈릴래아는 제자들이 스승 예수님과 처음 인격적인 관계를 맺은 곳, 그분의 크신 사랑에 감개무량하며 부르심에 응답한 곳입니다.

하지만 어느새 시간이 흘러 그 첫 만남은 오래된 과거의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 만남은 생기를 잃고 퇴색해졌습니다. 아니 어쩌다가 한 번씩 가물가물 기억될 뿐이었습니다.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묵시 2,4) 입니다. 따라서 “갈릴래아로 가라.”는 주님의 말씀은 첫 만남으로 돌아가라는 뜻입니다. 주님과 처음 인격적인 관계를 맺은 사랑과 순종의 자리 곧 신앙의 요람으로 돌아가라는 뜻입니다.

과연 제자들은 ‘첫 마음’을 상징하는 갈릴래아로 돌아갔고, 거기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라는 주님의 분부에 따라,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느님의 심오한 사랑은 오늘날까지 계속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부활은 제자들의 삶을 온통 바꾸고, 또 제자들을 통해서 우리 인간 역사의 방향을 사랑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 모두에게도 첫 마음의 갈릴래아로 돌아가라고 권유하고 있습니다. 세례성사 때 주님의 크신 은총으로 모든 죄를 씻고 새로 태어남을 기뻐하던 그 첫 마음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혼인성사 때 일생동안 신의를 지키며 배우자를 존경하고 사랑하겠다고 다짐한 그 첫 마 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품성사 때 주님의 부르심에 감사하며 주님께 대한 오롯한 마음과 함께 오로지 교회와 하느님의 백성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약속한 그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첫 만남이 이뤄졌던 당시 우리는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희망이 컸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상황이 녹록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힘겹게 하는 일들이 있었고,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문제들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희망이 우세했던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참조),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르 10,27)는 확고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는 믿음으로 두려움을 물리쳤고 희망했던 것입니다. “불가능이 없으신”(루카 1,37 참조) 주님을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절망에 사로잡혀 자신의 삶에 대해 체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자신감을 잃고서 ‘나는 안 돼!’ 혹은 ‘우리는 안 돼!’ 하고 자포자기합니다. 이처럼 패배주의에 빠져있는 우리에게(복음의 기쁨 85항 참조) 부활은 그런 절망과 체념으로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나지 않았으며, 정말 희망할 수 있다고, 아니 희망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오직 사랑만이 이기리라는 희망을 품고 첫 마음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의 분부대로 첫 마음의 갈릴래아로 돌아가야 합니다. 거기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을 쇄신할 수 있고, 교회와 사회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돈과 권력과 명예 등의 우상들에 희망을 걸지 말아야 합니다. 실로 우리는 거기에 오랫동안 희망을 두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온갖 부귀영화를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속아서는 안 됩니다. 그런 약속은 주님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을 만나 뵙기 위해 첫 마음으로 돌아갑시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우리의 발걸음을 성모님께서 지켜주시기를 빕니다. 아멘.

2019년 부활절에 전주교구장 김선태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