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전주교구 부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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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하지 마라.”(마태 28,5)

사랑하는 교구민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되살아나셨습니다!
어둠의 온갖 세력을 물리치시고 승리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 내리시기를 빕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활 소식이 우리에게는 그리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전 세계가 비상사태이기 때문입니다.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공포와 불안으로 말미암아 정상적인 일상생활은 오래전에 무너졌고,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등 모든 영역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 교우들도 미사 없이 사순절을 보내는 크나큰 아픔을 겪었고, 주님 부활 대축일마저 미사 없이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신앙의 가장 큰 축제인 부활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요? 이를 우리는 부활을 가장 먼저 체험한 사람들에게서 묵상할 수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우리처럼 그분의 부활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성금요일의 충격을 받아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모든 것이 끝장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자 가운데 몇몇 여자들은 예수님께 끝까지 충실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 마지막 예를 갖추기 위해 무덤으로 갔다가 빈 무덤을 발견했습니다. 무덤은 열려 있었고 예수님의 시신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깜짝 놀라며 누군가가 예수님을 꺼내 갔다고 생각했습니다. 충직했던 그들도 빈 무덤으로 인해 공포와 불안에 시달렸습니다.
이렇게 겁에 질려있던 여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메시지를 들려줍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러니 서둘러 그분의 제자들에게 가서 이렇게 일러라. ‘그분께서는… 이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마태 28,5-7) 이 메시지를 통해 여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서서히 깨달았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중요한 이 메시지를 묵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요약됩니다.
먼저 천사는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말합니다. 빈 무덤의 겉모습만을 생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누군가가 예수님을 꺼내 간 것도 그래서 그분을 영영 뵙지 못할 것도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분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무덤이 비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빈 무덤의 본질적인 의미를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천사의 권고대로 여자들은 사건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 본질적인 의미를 생각함으로써 공포와 불안을 서서히 극복하고 마침내 주님의 부활을 확신하게 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메시지는 바이러스로 공포와 불안에 사로잡힌 우리에게도 우선적으로 해당됩니다. 이 사태의 겉모습만을 바라보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막연한 두려움에 억눌려 결국 슬기롭게 극복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 사태의 근본적인 메시지를 물어야 합니다. 늘 부분적으로 이해하는 우리에게는 마침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주관하시는 하느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주님께 간절히 탄원하며 그 본질적인 메시지를 물을 수 있고 또 반드시 물어야 합니다. 그렇게 묻다 보면, 어느새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그 어두운 감염병 속에서도 행동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악에서도 선을 이끌어내시는 하느님의 권능을 믿게 됩니다.
두 번째로 천사는 여자들에게 사명을 줍니다. 제자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일러주라는 사명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갈릴래아로 가기 전에 주님이 ‘먼저’ 그곳에 가시어 그들을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에, 이 사명은 주님의 앞선 행동을 늘 명심하라는 분부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이 앞선 행동을 사도 요한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1요한 4,10 참조) 실제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다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요한 13,15)
주님은 늘 먼저 행동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찾기 이전에 먼저 우리를 찾으시고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믿기 이전에 먼저 우리를 믿어주십니다. 주님의 이러한 앞선 행동을 생각하면, 그분에게로 향한 우리의 발걸음은 당연히 빨라집니다. 우리를 기다리시는 그분을 되도록 빨리 뵙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더 이상 머뭇거리거나 기다리지 않고 이웃에게도 주님처럼 ‘먼저’ 달려가고 싶습니다. 이러한 앞선 행동을 통하여 부활의 기쁨은 더욱 커집니다.
코로나19사태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우리에게도 사랑의 앞선 행동이 특히 요구됩니다. 하느님의 구원계획으로 바라볼 때 “세상에 존재하는 고통은 사랑을 발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웃사랑의 업적을 낳기 위한 것입니다.”(구원에 이르는 고통 30항) 실제로 코로나19사태는 우리 인간의 공동체 삶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용어가 표현하듯이 함께 머물고 함께 행동하기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코로나19로 인해 위협받고 있는 그 친교와 공동체의 삶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위대한지를 새롭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함께하는 삶이 아니라면 참된 삶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결국, 이번 사태는 우리에게 사랑의 삶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은 먼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주님을 본받아 우리도 사랑받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먼저 사랑으로 이웃에게 다가갑시다. 감염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환자와 그 가족, 실직자, 노숙인, 이주민 등 어려운 이들을 우선적으로 돌봅시다. 그리고 서로를 더욱 존중하고 배려하고 돌봅시다. 이런 사랑의 업적만이 친교의 삶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바이러스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독선적인 개인주의와 이기적인 생각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서로에 대한 불신과 배척과 혐오가 아니라 신뢰와 연대와 사랑만이 예수님의 부활을 세상에 증거 할 수 있습니다.
이 기회에 저는 교우들과 수도자들 그리고 신부님들께 특별한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얼마 전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자는 긴급모금 운동을 벌였을 때, 많은 교우들과 수도자들, 본당들과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해주셨고, 신부님들은 한 달 생활비를 기쁜 마음으로 봉헌해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즐겨 받으실 예물을 봉헌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이런 사랑의 힘으로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는 부활의 증인이 되도록 계속 노력합시다.

2020년 부활절에
전주교구장 김선태 사도요한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