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문헌
2019-06-10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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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3차 정기 총회를 마치며 하느님 백성에게 보내는 메시지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3차 정기 총회를 마치며
하느님 백성에게 보내는 메시지
(2012년 10월 7-28일)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로마 1,7).

로마 주교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초대로 한자리에 모인 우리 전 세계 주교들은 “그리스도 신앙의 전수를 위한 새로운 복음화”를 성찰하였고, 이제 우리의 개별 교회들로 돌아가기에 앞서, 오늘날 교회가 다양한 상황에서 증언하는 길을 찾아 복음의 가르침을 끊임없이 선포하도록 이끌어 나가자고 여러분 모두에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자처럼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와 만나신 복음서의 구절(요한 4,5-42 참조)로 우리를 비추어 봅시다. 살다보면 누구나 마음속의 가장 깊은 갈망, 삶에 그 온전한 의미를 줄 수 있는 유일한 갈망을 채우리라는 희망을 품고서 빈 두레박을 들고 우물가에 서 있는 사마리아 여자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 주는 우물들은 많지만, 오염된 물을 마시지 않으려면 식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해를 미칠 수 있는 실의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가 찾아가는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합니다.

시카르의 우물가에서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교회도 오늘날의 사람들 곁에 앉아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 뵐 수 있도록 그들의 삶 속에 주님께서 현존하시게 해야 합니다. 오로지 주님의 성령만이 참되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물이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예수님만이 우리의 깊은 속마음을 헤아릴 줄 아시고 우리 자신에 관한 진실을 보여 주실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같은 고을 사람들에게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저분은 제가 한 일을 모두 알아맞혔습니다.” 이러한 선포의 말에는 신앙의 문을 열어 주는 물음이 함께 합니다.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니실까요?” 이는 예수님을 만나 새 생명을 얻은 사람은 누구나 다른 이들에게 진리와 희망을 선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회개한 죄인은 이제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이가 되어 온 고을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이끕니다. 사람들은 그녀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데에서 더 나아가 그 만남을 직접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이제 당신이 한 말 때문이 아니오. 우리가 직접 듣고 이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알게 되었소.”

2. 새로운 복음화

우리 시대의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이끌어 예수님과 만나게 하는 일은 세계 모든 지역, 곧 오래 전에 복음화된 지역들과 최근에 복음화된 지역들에 모두 절실히 필요합니다. 사실 모든 곳에서 우리는 신앙을 되살릴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신앙은, 인간 안에 그 뿌리를 내리고 사회 안에 현존하며, 그 내용을 명확히 하고 적절한 열매를 맺는 데 방해가 되는 문화적 상황 속에서 쇠퇴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이것은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문제가 아니라 바오로처럼 사도다운 용기를 가지고 복음 선포의 기나긴 여정으로 들어서는 문제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까지 말하였습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1코린, 9,16). 역사를 통틀어, 그리스도 시대의 초세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복음 선포로 세계 곳곳에 신자 공동체들이 세워졌습니다. 크든 작든 이 공동체들은 선교사들과 순교자들, 곧 예수님을 증언하는 세대들이 헌신하여 거둔 열매들이며,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변화된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 분야들은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을 새로운 방식으로 공동체적으로 실천하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말씀처럼 “그 열정과 방식, 그 표현에서 새로운”(라틴 아메리카 주교회의 제19차 총회에서 한 연설, 1983.3.9., 아이티 포르토프랭스, 3항) 복음화를 통하여 신앙을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이 복음화는 “원칙적으로 세례를 받았으나 교회로부터 멀어진 이들과 그리스도 신앙 실천과 무관하게 사는 이들을 향한” 것임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이 복음화는 그들이 “참된 기쁨과 평화로 삶을 채워 주시는 유일한 분이신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들이 개인, 가정, 사회 생활에 기쁨과 희망을 가져다주는 은총의 원천인 신앙을 재발견하도록 이끌어야”(제13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 총회 개막 미사 강론, 2012.10.7., 로마) 하는 것입니다.

3.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뵙는 인격적 만남

이 새로운 복음화가 지녀야 하는 형식들에 관하여 말씀드리기에 앞서, 우리는 굳은 확신으로, 우리와의 만남을 주도하시는 예수님이라는 분과 우리가 맺는 관계 안에서 신앙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을 말씀드려야 할 것입니다. 새로운 복음화의 과업은, 산만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갖기 쉬운 우리 시대 사람들에게, 그 누구보다도 바로 우리 자신에게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지닌 아름다움과 영원한 새로움을 다시 한 번 보여 주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 모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분 생명의 신비로 들어가자고 권유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생명을 내어 주시고,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어 그 생명이 아버지의 선물임을 거듭 확인하셨고,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당신의 생명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온 인류 가족에 대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의 신비가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릇된 자율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지 않으시고, 오히려 새로운 사랑의 계약으로 당신과 화해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당신과 만날 수 있도록 역사 안에 마련하신 자리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세례와, 당신의 성체와 성혈을, 무엇보다도 화해의 성사로 죄를 용서해 주시는 은총과 친교의 경험을 교회에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이 친교의 경험은 바로 성삼위 하느님의 신비를 비추어 주며, 모두를 향한 사랑을 불러일으키시는 성령의 힘을 드러내 줍니다.

우리는 버림받은 모든 이가 교회를 자기 집처럼 여기며 구체적인 친교를 경험하게 해 주는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 친교의 경험은 뜨거운 사랑의 힘으로 현대 인류의 무심한 시선을 사로잡을 것입니다. ― “그들이 서로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십시오!”(테르툴리아누스, 『호교론』, 39,7). 신앙의 아름다움은 거룩한 전례 행위 안에서, 무엇보다 주일의 성찬례에서 특별히 빛나야 합니다. 바로 전례 거행을 통하여 교회는 자신이 하느님의 작품임을 드러내고 복음의 의미를 말과 몸짓으로 눈앞에 보여 줍니다.

오늘날 교회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나누는 일, 곧 목마른 이들이 예수님을 만나 뵙도록 초대하는 많은 우물을 파고, 인생의 사막 속에 오아시스를 만드는 일은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들과 그 안에 있는 주님의 모든 제자는 이렇게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복음이 모든 이의 삶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증언을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4. 예수님을 만나고 성경에 귀 기울이는 기회들

이를 다 어떻게 하느냐고 의문을 품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이 종교 시장에 진열되는 상품인 양 새로운 전략을 고안해 낼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시어 그들을 부르셨던 그 방식을 재발견하여, 우리 시대의 상황에서 그렇게 다가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일에 열중하던 베드로와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을 어떻게 부르셨는지, 또한 어떻게 자캐오가 단순한 호기심에서 벗어나 스승과 훈훈한 식사를 나눌 수 있었는지를 떠올려 보기로 합시다. 또한 로마인 백인대장이 자기에게 소중한 사람인 노예의 병을 치료해 주십사 예수님께 어떻게 청하였는지, 또한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이 자신의 어려운 처지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어떻게 예수님께 간청하였는지, 또한 마르타와 마리아가 그들의 집에서 마음으로 베푼 친절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현존으로 어떻게 보답하셨는지를 떠올려 봅시다. 계속해서 복음서를 펼쳐 보면 초대 교회에서 사도들의 선교 경험들은 물론이고, 사람들의 삶이 그리스도의 현존에 열리게 된 다양한 방식과 상황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우리에게 이를 전해 주고 올바로 해석해 주는 교회의 전통으로 밝혀진 성경을 자주 읽는 것은 복음의 내용 자체를, 곧 구원 역사의 맥락에서 예수님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할 뿐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과 만나는 기회를 찾는 데 도움이 됩니다. 참으로 복음적인 접근은 가정, 직장, 우정, 여러 형태의 가난, 인생의 시련 등과 같은 인간 생활의 근본적인 차원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5. 우리 자신을 복음화하고 회개를 향해 나아가기

그러나 새로운 복음화가 개인적으로 우리와 무관하다고 결코 생각하지 마십시오. 최근에 주교들 사이에서, 세상을 복음화하기에 앞서 교회가 다른 무엇보다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일깨우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져 왔습니다. 복음화하라는 초대가 회개의 요청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가장 먼저 그리스도의 권능에 우리 자신을 맡겨 드리고 회개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오로지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가련한 삶을 새롭게 해 주실 수 있으십니다. 겸허한 마음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 특히 성직자들의 부족함과 나약함이 선교의 신빙성에 짐이 되고 있음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그 누구보다 우리 주교들은 주님의 부르심에, 그리고 모든 민족들에게 당신의 복음을 선포하라고 맡기신 사명에 맞갖은 능력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역사의 많은 상처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우리의 개인적 죄도 서슴없이 인정합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주님께서 하시는 대로 우리를 내어 맡길 때, 주님의 성령께서 교회를 새롭게 하시고 그 모습이 빛나도록 해 주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성인들의 생애가 그 증거입니다. 성인들을 기억하고 그들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새로운 복음화의 탁월한 방법입니다.

이러한 쇄신이 우리에게 달린 것이라면, 의심스러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회개는 복음화와 마찬가지로, 부족한 우리 인간들을 통하여 먼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성령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바로 여기에서 우리의 힘을 찾고, 교회나 역사 안에서 악이 결코 승리하지 못하리라는 확신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27).

새로운 복음화의 과업은 그러한 차분한 확신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영감과 힘을 주시리라고 확신합니다. 성령께서는 가장 어려운 때에도 우리가 해야 할 말과 행동을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으로 두려움을, 희망으로 절망을, 사랑으로 무관심을 극복해야 합니다.

6. 오늘날 세상에서 복음화의 새로운 기회를 마련하기

이러한 밝은 용기는 또한 오늘의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도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상황들에 우리는 겁을 내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모순과 도전들로 가득하지만 변함없이 하느님의 피조물이고, 악으로 상처를 받지만 여전히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또 다시 열매를 거두기 위하여 새로이 말씀의 씨를 뿌릴 수 있는 밭입니다.

주님께서 죽음을 물리치시고 성령께서 역사 속에 힘차게 활동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의 생각과 마음에는 비관주의가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는 겸손하지만 의연하게 이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이러한 의연함은 궁극적으로 진리가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언하라는 그분의 초대를 이 세상에 알리고자 합니다. 우리 교회는 살아 있으며, 신앙의 용기와 많은 자녀들의 증언으로 역사의 도전들에 맞서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권세와 권력들”, “악령들”(에페 6,12)에 맞서 싸움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도전들이 가져다주는 문제들을 무시하지 않지만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무엇보다 세계화 현상에 대하여 그러합니다. 세계화는 우리에게 복음을 세상에 널리 전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주민들을 형제자매로 맞아들이며 겪는 어려움이 크지만, 이주는 예나 지금이나 신앙을 널리 전하고 다양한 형태로 공동체를 세우는 기회입니다. 세속화 그리고 정치와 국가 권력이 야기한 위기는 교회가 사회를 배척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교회의 현존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합니다. 언제나 새로운 수많은 형태의 가난은 사랑의 봉사에 새로운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습니다. 복음 선포로 교회가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고 예수님께서 그러하신 것처럼 그들의 고통을 교회 자신의 것으로 삼게 되는 것입니다. 극단적인 형태의 무신론과 불가지론들 속에서도, 모순적인 형태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공허가 아니라 동경을, 적절한 해답을 바라는 기대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지배적인 문화가 신앙과 교회에 제시하는 이러한 질문들 앞에서, 우리는 주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다지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복음이 빛을 전해 주고 모든 인간의 나약함을 치유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우리가 아닌 바로 하느님께서 복음화의 과업을 이끌고 계십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도 이 점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셨습니다. “첫 번째 말씀, 참된 주도권, 참된 활동은 하느님에게서 오며, 이러한 하느님의 주도권에 우리가 참여할 때에, 이러한 하느님의 주도권을 간청할 때에 비로소 우리 또한, 하느님을 통하여 하느님 안에서 복음 선포자가 될 수 있습니다”(제13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 총회, 제1차 전체 회의 묵상 자료, 2012.10.8., 로마).

7. 복음화, 가정과 봉헌 생활

첫 번째 복음화 이래,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신앙을 전수하는 자연스러운 자리는 가정입니다. 가정에서 여성들은 가부장의 위신과 책임을 줄어들게 하지 않으면서도 신앙 전수에서 매우 특별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모든 가정이 자녀 교육에 쏟는 관심 속에서, 자녀들은 어린 시절부터 신앙의 징표와 첫째가는 진리들을 받아들이며 기도하고 사랑의 열매를 증언하는 법을 배웁니다. 주교대의원회의의 모든 주교들은 지리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매우 다양한 상황 속에서 살면서도, 신앙 전수에서 가정의 이 근본적인 역할을 거듭 확언하였습니다. 가정들에게 복음을 선포할 특별한 책임을 인식시키고 가정의 교육 임무에 대한 뒷받침을 하지 않고는, 새로운 복음화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둘이 아니라 생명에 열린 “한 몸”(마태 19,6)이 되는 혼인으로 이루어지는 가정이 도처에서 위기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르지 않습니다. 가정은 여러 가지로 불리한 생활 양식에 둘러싸여 있고, 사회의 기본 세포임에도 사회 정책들에서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들도 언제나 가정을 그 상황에 맞게 존중하거나 가정의 임무를 뒷받침해 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현실 때문에 우리는 가정과, 가정이 사회와 교회 안에서 지닌 사명을 특별히 배려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많은 그리스도인 부부와 가정에 감사를 표명하고자 합니다. 이들은 삶의 증거를 통하여 더욱더 사랑과 평화가 가득한 사회를 낳는 친교와 봉사의 경험을 세상에 보여 주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전해 주신 그 영원한 사랑과 일치의 모습을 반영하지 못한 채, 함께 살고 있는 많은 가정들을 생각합니다. 혼인 성사의 유대 없이 동거하고 있는 부부들이 있습니다. 혼인의 실패 뒤에 이룬 비합법적인 가정들도 더욱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정들은 안타깝게도 자녀들의 신앙 교육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기 마련입니다. 이 모든 가정들에게 우리는, 그 누구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제외되지 않으며, 교회 또한 그들을 사랑한다고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교회는 모든 이를 위한 환대의 집이고, 성사적 사죄와 성체성사를 받을 수 없을지라도 그들은 교회의 지체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 가톨릭 공동체들이 그러한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따뜻하게 맞아들이고 그들 가운데에 회개와 화해의 여정을 밟고 있는 이들을 지지하기를 바랍니다.

가정생활은, 복음이 일상생활 속에서 사랑의 전망으로 삶의 기본 조건들을 바꿀 수 있는 힘을 보여 주는 첫 자리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증언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현세의 삶이 지니고 있는 충만함, 곧 인간사를 뛰어넘고 하느님과 영원한 친교를 이루는 충만함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자에게 당신 자신을 소개하실 때 그냥 생명을 주는 이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요한 4,14)을 주는 이로 소개하셨습니다. 믿음으로 현존하게 되는 이 하느님 은총은 그저 이 세상의 더 나은 조건들만을 약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생명의 궁극적인 의미가 이 세상 너머에 있음을, 우리가 고대하는 마지막 날 하느님과 이루는 그 완전한 친교에 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인간 삶의 의미가 갖는 이 초자연적 지평을 교회와 세상 속에서 보여 주는 특별한 증인들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봉헌 생활로 부르시는 이들입니다. 봉헌 생활은 가난과 정결과 순명을 실천하면서 주님께 온전히 봉헌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봉헌 생활은 모든 현세 재화를 절대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 다가올 세상의 표징이 됩니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 총회는 주님의 부르심에 충실하며 언제나 그랬듯이 오늘날에도 교회 사명에 기여해 온 이 형제자매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또한 봉헌 생활자들이 이 변화의 시기에 힘든 상황에 놓이더라도 늘 희망을 간직하도록 권고합니다. 우리는 봉헌 생활자들이 그들이 속한 회의 고유한 은사에 따라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복음화를 촉진하는 증인이 되기를 당부합니다.

8. 교회 공동체와 복음화 일꾼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복음화 활동에서 제외되지 않습니다. 복음화는 그 자체로 교회 공동체의 임무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수단들, 곧 말씀, 성사들, 형제적 친교, 사랑의 봉사, 선교 등을 접하게 됩니다.

이러한 전망에서 볼 때, 본당의 역할은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에서 교회의 현존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는 요한 23세 교황님께서 즐겨 불렀듯이, ‘동네 우물’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이가 그 물을 마시고 거기에서 복음의 활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상황의 변화로 본당이 소공동체들을 구성해야 하거나 더 폭넓은 사목적 맥락에서 협력의 유대를 맺게 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역할은 저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당들이 새로운 복음화가 요구하는 선교의 새로운 형태들을 하느님 백성의 전통적인 사목과 함께 수행하기를 권고하고자 합니다. 이 새로운 형태들은 대중 신심의 다양한 주요 표현들 안에도 깃들어야 할 것입니다.

본당에서 아버지요 목자인 사제들의 직무는 언제나 중요합니다. 이번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 총회의 주교들은 모든 사제들에게 그들의 힘든 노고에 감사하며 형제적 친밀감을 표명합니다. 우리는 사제들에게, 교구 사제단과의 유대를 튼튼히 하고 그들의 영성 생활에 깊이를 더하며 변화에 대처할 수 있도록 평생 교육을 받을 것을 권유합니다.

사제들과 함께 부제들도 지지를 받아야 합니다. 그들은 교리 교육, 전례 생활, 자선 활동 등 복음 선포 분야에서 교리 교사나 그 밖의 봉사자나 지도자로서 사목 활동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또한 신자들도 여러 형태로 참여하고 공동 책임을 맡도록 촉진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공동체 안에서 여러 모로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있는 평신도들에게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모든 평신도들에게 새로운 복음화의 전망으로 교회 안에 현존하면서 봉사해 줄 것을 당부합니다. 또한 평신도들이 그들 자신의 인성 교육과 그리스도인다운 양성에, 그리고 신앙에 대한 이해를 깊이하며 오늘날 문화 현상들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데에 관심을 가지도록 권유합니다.

평신도와 관련하여, 교회 운동들과 새로운 공동체들과 더불어 오랜 전통의 단체든 신생 단체든 여러 형태의 단체들에게 특별히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이 평신도 단체들은 모두 성령께서 교회에 베풀어 주신 은총의 풍요로움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 있는 이러한 삶과 헌신의 형태들에 감사하며, 이들이 고유의 은사에 충실하고 특히 개별 교회의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진정한 교회의 친교를 이루도록 권고합니다.

복음의 증언은 소수의 특권이 아닙니다. 세상 한가운데서 자신들의 삶으로 복음의 징표가 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기뻐합니다. 또한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와 완전한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 형제자매들 안에서도 그러한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 또한 주님의 세례를 받고 이를 선포합니다. 이 정기 총회 기간에, 우리가 여러 교회들과 교회 공동체들에서 온 많은 권위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가슴 벅찬 경험이었습니다. 그들 역시 세상이 새로운 복음화를 필요로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교의 필요성에 대한 이러한 일치에 대하여 우리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9. 젊은이들이 그리스도를 만나도록

젊은이들은 우리에게 특별히 소중합니다. 젊은이들은 오늘날 인류와 교회의 주요 일원이자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주교들은 젊은이들에 대하여 결코 비관적이지 않습니다. 물론 염려는 합니다만 비관적이지는 않습니다. 우리 시대의 매우 혹독한 시류에 젊은이들이 직접적인 타격을 입고 있기에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비관적이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역사를 근본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젊은이들 안에 진정성, 진리, 자유, 아량에 대한 깊은 열망이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이러한 열망에 대한 적절한 답은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우리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일에서 젊은이들을 지지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우리 공동체들이 기탄없이 젊은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과 대화하며, 그들의 어려운 처지에 대하여 담대하게 응답해 주도록 격려합니다. 우리 공동체들은 젊은이들이 지닌 열정의 힘을 억누르지 말고 오히려 활용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젊은이들을 위하여 일부 세속 권력들의 오류와 이기적인 시도들에 맞서 싸우기를 바랍니다. 어떤 세속 권력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젊은이들의 힘을 소모시키거나 그들의 열정을 없애 버리고 젊은이들에게서 과거의 모든 행복한 추억들과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계획들을 빼앗아 버리기 때문입니다.

젊은이의 세계는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어렵지만 특별히 희망적인 자리입니다. 이는 많은 경험으로 알 수 있습니다. 세계 청년 대회처럼 눈에 보이는 경험들을 비롯하여, 영성, 봉사, 사명의 다양한 체험들과 같은 드러나지 않지만 힘찬 경험들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젊은이 세계의 복음화에 가장 먼저 젊은이들이 능동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10. 문화와 인간의 경험과 종교들과 대화하는 복음

새로운 복음화의 핵심은 그리스도이시고 또 인간에 대한 관심이며,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참다운 만남을 가질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전망은 세상만큼 넓고 인간의 모든 경험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이는, 옛 교부들이 말한 “말씀의 씨앗”을 각각의 문화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문화들과 나누는 대화를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증진하라는 의미입니다. 특히, 새로운 복음화는 신앙과 이성의 새로운 관계를 필요합니다. 신앙은 초월로 열린 건전한 생각의 열매들을 받아들일 능력이 있고 이성이 떨어질 수 있는 한계와 모순을 치유할 힘을 지니고 있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신앙은 삶과 역사 속에 악이 존재하면서 야기되는 매우 골치 아픈 문제들 앞에서 눈감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앙은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서 희망의 빛을 받습니다.

신앙과 이성의 만남은 교육과 문화의 분야에서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사명감을 북돋우기도 합니다. 학교나 대학교 등 교육 기관과 연구 기관은 여기에서 특별한 역할을 합니다. 인간 지성을 계발하고 교육하는 모든 곳에서, 교회는 그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쁘게 전인 교육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톨릭 학교와 대학교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 안에서 모든 참다운 문화 교육 과정이 지니고 있는 초월에 대한 개방성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를 만나는 여정으로 성취될 것입니다. 이따금 힘든 조건에 있어도 이 일에 종사하는 모든 이에게 감사드립니다.

복음화는 우리가 사회 커뮤니케이션 세계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일 것을 요청합니다. 이 세계, 특히 새로운 미디어는 많은 이들의 삶과 많은 질문과 기대가 모이는 곳입니다. 흔히 양심 교육이 이루어지고 사람들이 시간을 보내고 자기 삶을 영위하는 곳입니다. 이것은 인간 마음에 가닿을 수 있는 새로운 기회입니다.

오늘날 신앙과 이성이 만나는 특별한 분야는 과학 지식과 나누는 대화입니다. 과학 지식은 정신적 원리들을 드러내 주기에 그 자체로 신앙과 전혀 무관하지 않습니다. 과학 지식은 하느님께서 사람들 안에 심어 주신 정신적 원리를 드러내 줍니다. 이 정신적 원리는 사람들에게 이성 구조들이 창조의 기틀임을 깨달을 수 있게 해 줍니다. 과학과 기술이 인간과 세상의 개념을 황폐한 물질주의 속에 가두어 버린다고 가정하지 않을 때, 과학과 기술은 한층 인간다운 삶을 만드는 데 소중한 협력을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어려운 지식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고대부터 인간 재능의 또 다른 표현인 다양한 형태의 예술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감사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예술 작품 안에 영성을 표현하는 특별히 의미 있는 길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예술 작품은 아름다움에 이끌리는 인간의 본성을 구현하려는 노력을 담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창작품을 통하여 하느님과 그분 피조물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예술가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아름다움의 길은 새로운 복음화의 특별히 효과적인 길입니다.

예술 작품 외에도, 우리는 인간의 모든 활동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우리가 노동을 통하여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협력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경제계와 노동계에, 복음에 비추어 드러나는 몇 가지 중요한 문제들을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이는, 흔히 노동을 견디기 힘든 짐으로 만들어 버리고 젊은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는 조건들로부터 노동을 해방시키는 문제입니다. 또한 인간을 경제 발전의 중심에 놓고, 이러한 발전이야말로 인류가 정의와 일치를 증진하는 계기라는 것을 깨닫는 문제입니다. 인류는 노동을 통하여 세상을 바꿉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 우리는 미래 세대를 향한 책임 의식으로 창조물을 온전히 수호하도록 부름 받고 있습니다.

복음은 질병에 따른 고통의 의미도 밝혀 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환우와 장애우들 곁에 교회가 있다는 것을 병자들이 느낄 수 있게 도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전문적이고 인간적으로 병자들을 돌보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여야 합니다.

복음의 빛이 인류가 걷는 발자취를 비출 수 있도록, 이 빛을 빛나게 할 수 있고 빛나게 하여야 하는 또 하나의 분야가 정치입니다. 정치는 공동선을 위한 이타적이고 진심어린 사랑의 투신을 필요합니다. 임신[受精]부터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혼인으로 이룩되는 가정을 소중히 여기며, 교육과 학문의 자유를 수호하여야 합니다. 또한 불의와 불평등, 차별, 폭력, 인종주의, 기아, 전쟁의 원인들을 제거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정치 활동에서 사랑의 계명을 분명히 보여 주어야 합니다.
끝으로, 교회는 자연스럽게 다른 종교인들을 대화 상대로 여깁니다. 복음화는 그리스도의 진리를 확신하며 그 누구와도 등지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평화와 기쁨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서 참되고 좋은 모든 것을 인간의 종교심이 깨닫고 이것을 다양한 종교들로 표현한 것에 기뻐합니다.

여러 종교인들 사이의 대화는 평화에 이바지하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근본주의를 거부하고, 종교인들에게 자행되는 모든 폭력을 심각한 인권 침해로 단죄합니다. 전 세계 교회들은 기도와 형제애로 이 고통받는 형제자매들과 하나가 됩니다. 또한 민족들의 운명을 책임지고 있는 이들에게, 모든 이가 자유로이 신앙을 선택하고 고백하고 증언하는 권리를 수호하도록 요청합니다.

11.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대한 기억과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활용

새로운 복음화가 열어 놓은 길에서 우리는 또한 광야에 있는 것처럼, 곧 위험에 둘러싸여 방향을 잃어버린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께서는 신앙의 해 개막 미사 강론에서 최근 수십 년 사이에 확산된 “영성의 사막화”를 언급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교황 성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우리를 격려하셨습니다. “바로 이 광야, 이 공허에 대한 체험에서부터, 우리는 믿는다는 것의 기쁨을, 그것이 우리 인간에게 주는 절대적인 중요성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광야에서 우리는 삶의 근본 가치를 재발견합니다”(베네딕토 16세, 신앙의 해 개막 미사 강론, 2012.10.11.). 광야에서 우리는 사마리아 여자처럼 물을 찾고 물을 길을 수 있는 우물을 찾습니다. 그곳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이들은 행복합니다!

우리는 교황 성하께서 새로운 복음화의 길로 나아가는 귀중한 관문인 신앙의 해를 선물하신 것에 대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우리는 교황 성하께서 신앙의 해를 50년 전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막에 대한 행복한 기억과 관련시키신 것에 대해서도 감사를 드립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근본 가르침은 우리 시대에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발행 20주년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확고한 신앙의 준거로 제시됩니다. 이 두 가지 중요한 기념일은 우리가 공의회의 가르침을 더욱 잘 따르고 그것을 실천하려는 굳은 결심을 재확인해 줍니다.

12. 신비를 관상하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기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모든 신자들에게 신앙생활의 두 가지 표현 방식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새로운 복음화에서 이를 증언하는 것이 특히 중요해 보입니다.

첫째 표현은 관상의 은총과 경험에서 나옵니다. 세상이 신뢰할 만한 증언은 오로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신비를 흠숭하는 눈길, 곧 유일한 구원의 말씀을 마치 태중에 모시듯이 받아들이는 깊은 침묵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오로지 이 기도하는 침묵만이 구원의 말씀을 세상에 넘치는 수많은 소음 속에 묻히지 않게 해 줍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수도원이나 은수처에서 자신의 삶을 기도와 관상에 봉헌하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관상의 순간들은 사람들의 일상생활과도 함께 엮어져야 합니다. 이는 하느님을 기억하게 해 주는 영혼의 자리이며 육체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내적 지성소이며 돌로 지어진 성전으로서, 마치 십자로처럼, 우리가 경험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도록 해 줍니다. 이는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찾는지 잘 모르는 이들도 포함하여 모든 이가 받아들여진다고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새로운 복음화의 진정성의 또 다른 표징은 가난한 이들의 얼굴에 나타납니다. 우리가 삶에서 상처 받은 이들과 함께하는 것은 사회적 실천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영적인 행동입니다. 가난한 이들의 얼굴에 비치는 모습이 바로 그리스도의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우리는 가난한 이들이 우리 공동체에서 차지하는 가장 좋은 자리를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그 자리는 누구도 배척하지 않지만, 예수님께서 어떻게 그들이 바로 당신이라고 자처하셨는지를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에서 가난한 이들의 현존은 신비로운 힘을 드러냅니다. 이는 그 어떤 강연보다도 사람의 변화를 더 잘 이끌어 냅니다. 또한 충실성을 가르쳐 주고, 삶의 나약함을 이해하도록 해 주며, 기도를 요청합니다. 한마디로, 가난한 사람들의 현존은 우리를 그리스도께 이끌어 줍니다.

자비의 행위는 한편으로 가난한 이와 부유한 이 모두에게 해당되는 호소와 더불어 정의를 위한 노력을 동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회 교리는 새로운 복음화로 나아가는 길에, 또 그리스도인들이 사회 생활과 정치 생활에서 인간 공동체에 봉사하도록 교육하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13. 세계 모든 지역의 교회들에게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 모인 주교들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바라봅니다. 주교들은 넓게 바라보고자 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는 요청은 하나이지만 다양성을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 모인 주교들은 동방 가톨릭 교회의 그리스도인 여러분에게 특별한 관심과 형제적 사랑과 감사와 더불어 특별한 고려를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사랑과 충성으로 보존해 온 경험인 첫 번째 복음화 물결의 상속자로 동유럽 지역에 현존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복음은 새로운 복음화 안에서 전례 생활, 교리 교육, 매일 가정 기도, 가정들의 연대, 평신도들의 공동체 생활 참여와 사회와 나누는 대화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다시 다가가고 있습니다. 많은 지역에서 여러분의 교회는 시련과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자신이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고 있음을 증언합니다. 일부 신자들은 추방당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출신 공동체와 생생한 일치를 간직하며 그들을 받아들인 나라에서 사목 활동과 복음화 활동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충성에 끊임없이 강복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여러분의 미래가 평화와 종교 자유 안에서 평온한 신앙 고백과 신앙생활로 드러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흔히 어려운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여러분의 복음 증거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예전에 받아들인 복음화를 되살려 교회를 하느님의 가정으로 세우고, 그 가정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특히 소공동체의 사제와 교리 교사의 노력을 지원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복음이 새로운 문화와 오래된 문화를 만나도록 촉진할 필요성을 인정합니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정부와 정계에 큰 기대를 걸며 강력히 호소합니다. 모든 선의의 사람과 협력하여 기본 인권이 증진되고 아프리카 대륙에 여전히 만연한 폭력과 분쟁이 종식되기를 바랍니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주교들은 북아메리카의 그리스도인 여러분이 새로운 복음화의 요청에 화답하기를 바랍니다. 주교들은 여러분의 신생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어떻게 신앙과 사랑과 선교의 넉넉한 열매를 거두었는지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날 여러분의 나라에서 복음으로부터 멀어진 현대 문화의 많은 표현들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회개가 필요합니다. 회개가 여러분의 문화에서 여러분을 끌어내지는 못하지만, 그러한 문화 가운데에서도 여러분에게 신앙의 빛과 생명의 힘을 주려는 노력은 바로 회개에서 생겨납니다. 여러분이 새로운 이민과 난민을 여러분의 관대한 땅으로 받아들이면서, 신앙에 대하여 기꺼이 문을 열어 주기 바랍니다. 아메리카 주교대의원회의에서 보여 준 노력에 충실하여, 라틴 아메리카와 함께 여러분 대륙의 지속적인 복음화에 헌신하기 바랍니다.

주교대의원회의는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의 교회에도 마찬가지로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여러분의 나라들에서 수 세기에 걸쳐 발전하여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마음 안에 자리 잡은 대중 신심, 사랑의 봉사, 여러 문화와 나누는 대화는 매우 놀랍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현재의 많은 도전, 무엇보다도 가난과 폭력에 직면한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의 교회는 지속적인 선교 상태로 살아가도록 격려합니다. 그래서 희망과 기쁨으로 복음을 선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하는 참다운 제자 공동체를 이루고, 그 자녀들의 노력으로 복음이 어떻게 정의와 형제애가 넘치는 새로운 사회의 원천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종교 다원주의 또한 여러분의 교회를 시험하며 새로운 복음 선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시아의 그리스도인 여러분에게도 격려와 권고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세계 인구의 거의 3분의 2가 살고 있는 대륙에서 소수로 살아가는 여러분의 현존은 성령의 힘에 맡겨진 풍요로운 씨앗입니다. 이 씨앗은 다양한 문화들, 오래된 종교들,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를 통하여 자라납니다. 아시아의 교회는 흔히 사회로부터 배척당하고 많은 곳에서 박해를 받기도 하지만 굳건한 믿음으로 정의와 생명과 화합을 선포하는 그리스도 복음의 소중한 현존입니다. 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은 세계 여러 나라의 그리스도인들과 형제적 친밀감을 느낍니다. 그들은 여러분 대륙의 성지에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고, 살아가시고, 돌아가시고,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잊지 못합니다.

주교들은 유럽 대륙의 교회들에게 감사와 희망의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날 유럽 대륙은 한편으로는 강력한, 때로는 공격적이기까지 한 세속화에 물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십 년 동안 하느님과 인류에게 적대적이었던 이데올로기를 지닌 정권이 남긴 상처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과거를 돌아보면서 현재도 바라봅니다. 그동안 복음은 유럽에서 때로는 거룩함으로 넘치는 독특한 신앙의 표현과 경험을 이끌어 내어 세계 전체의 복음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풍부한 신학적 사상, 다양한 은사의 표현, 가난한 이들을 위한 다양한 사랑의 봉사, 심오한 관상 체험, 인도적 문화의 창조가 있습니다. 인도적 문화는 인간의 존엄을 밝히고 공동선을 이루는 데 이바지하였습니다. 여러분이 현재의 어려움에 좌절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유럽의 그리스도인 여러분, 그러한 어려움을 극복해야 할 도전으로, 더 기쁘고 활기차게 그리스도와 생명의 복음을 선포하는 기회로 여기기 바랍니다.

끝으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주교들은 오세아니아 사람들에게 인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은 남십자성의 가호 아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교들은 예수님의 복음에 대한 여러분의 증언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하며 여러분이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자처럼 새로운 생명에 대한 깊은 갈증을 느끼고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안다면”(요한 4,10)이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복음을 선포하고 오늘의 세상이 복음을 알도록 해야 할 의무를 더욱 강하게 느끼기 바랍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일상생활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기도와 묵상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는 은총을 받도록 격려합니다. “이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알게 되었소”(요한 4,42).

14. 광야를 비추는 마리아의 별

전 세계 주교들이 친교를 나누고 베드로의 후계자의 직무에 협력하는 이 경험을 마무리하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명령이 실제로 우리의 귓가에 맴돕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9.20). 선교는 지리적인 한 지역에만 한정되지 않고, 바로 현대인들의 감추어진 마음 깊은 곳에 들어가 예수님을 만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공동체 안에 현존하시는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현존은 우리의 마음을 기쁨으로 채워 줍니다. 이 회의 기간에 우리에게 주신 은총에 감사드리면서 우리는 주님께 찬양 노래를 바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네. …… 전능하신 분이 나에게 큰일을 하셨음이네”(루카 1,46.49 참조). 우리는 마리아의 노래를 우리 자신의 말로 삼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랜 세월 동안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당신 교회에 참으로 큰일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분명히 주님께서는 우리의 부족함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나날들에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새로운 복음화의 길에서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우리의 길을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의 여정은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광야를 가로지르는 길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필요한 것만 가지고 그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의 은사, 그리스도의 동반, 그분 말씀의 진리, 우리를 길러 주는 성찬의 빵, 교회 일치의 친교, 사랑의 힘입니다. 우물물이 사막에 꽃을 피웁니다. 사막에서는 별이 밤에 더 빛나듯이, 새로운 복음화의 별이신 마리아의 빛이 우리가 나아가는 길의 하늘에서 찬란히 빛나고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께 확신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맡겨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