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문헌
2019-06-10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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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4차 정기 총회 의안집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4차 정기 총회

의안집
(Instrumentum Laboris)

교회와 현대 세계에서 가정의 소명과 사명

2015

머리말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임시 총회가 마무리되었고, 이제 곧 정기 총회가 열린다. 정기 총회 준비 기간에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온 교회에 “참된 영적 식별로 임시 총회에서 제안된 의견들을 발전시켜서 가정들이 직면해야만 하는 많은 어려움과 도전 과제들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을 찾는”(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3차 임시 총회 폐막 메시지, 2014.10.18.) 임무를 맡기셨다.

2014년 10월에 개최된 제3차 임시 총회에서는 가정 사목과 복음화에 대하여 성찰하였고, 2015년 10월 4일에서 25일까지 개최되는 제14차 정기 총회에서는 교회와 현대 세계에서 가정의 소명과 사명이라는 주제를 다루게 될 것이다. 이 시노드의 긴 여정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세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곧 가정의 도전 과제를 경청하고, 가정 소명을 식별하며, 가정의 사명을 성찰하는 것이다.

지난 임시 총회의 결과물인 「시노드 보고서」(Relatio Synodi) 내용에 일련의 질문들을 추가하여 이 보고서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알아보고 그 내용의 심화를 요청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물인 「의제 개요」(Lineamenta)는 동방 가톨릭 자치 교회들의 시노드, 각국 주교회의, 교황청 부서, 세계남자수도회장상연합회에 발송되었다.

하느님의 온 백성은 성찰과 심화 과정에 함께하였다. 이는 매주 있는 교황 성하의 가르침 덕분이다. 교황 성하께서는 일반 알현과 다른 여러 기회에 가정에 관한 교리교육을 통하여 공동의 길로 이끌어주셨다. 시노드가 촉구한 가정에 대한 새로운 관심은 교회 세계 뿐 아니라 시민 사회에서 보여준 폭넓은 반응으로 확인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답변 자격이 있는 이들의 답변과 더불어 많은 신자들, 곧 개인, 가정, 단체들이 제출한 의견이 추가되었다. 개별 교회, 기관, 평신도 단체, 여러 교회 단체에 속한 많은 이들이 중요한 제안들을 해 주었다. 대학교, 교육 기관, 연구 기관, 그리고 몇몇 학자들은 심포지엄, 회의, 출판을 통하여 정기 총회 주제의 심화를 위한 제안을 하였다. 이러한 제안은 「의제 개요」의 ‘예비 질문’에 답하면서 새로운 측면들을 제시하였다.

이 「의안집」(Instrumentum Laboris)은 「시노드 보고서」의 최종 문안에 더하여 답변의견과 학술적 제안을 종합하여 정리한 것이다. 가독성을 위하여 「시노드 보고서」의 항 번호가 병기 되었다. 「시노드 보고서」의 항별 내용과 제목은 이탤릭체로 표기하였고, 그 항 번호는 괄호 안에 병기하였다.

이 문서는 삼부로 나뉘어 임시 총회와 정기 총회의 연속성을 설명하고 있다. 곧 제1부 “경청: 가정의 상황과 도전”은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임시 총회와 직접 관련되어 있다. 제2부 “가정 소명의 식별”과 제3부 “오늘날 가정의 사명”은 정기 총회의 주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는 새로운 복음화를 위하여 교회와 현대 세계에 사목적 힘을 불어 넣기 위한 것이다.

바티칸에서
2015년 6월 23일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
사무총장 로렌초 발디세리 추기경

 

 


       
 서문

1. (1) 시노드 교부들은 교황님 주위에 모여 각자 자신의 기쁨과 어려움과 희망을 지닌 세상의 모든 가정에 대하여 성찰하였다. 특히 시노드 교부들은 수많은 그리스도교 가정들이 그 소명과 사명에 매우 충실하게 응답하는 것에 대하여 주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고 느낀다. 가정들은 그 생활에 장애와 오해와 어려움이 있을 때에도 기쁨과 믿음으로 대응한다. 온 교회와 이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그러한 가정들에 존경과 감사와 격려를 보낸다. 가정에 관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준비 행사로, 2014년 10월 4일 토요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한 밤 기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모든 이의 삶에서 가정을 체험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하여 간결하게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기 모인 우리 위로 어둠이 내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식탁에 모여 앉아, 깊은 애정과 서로 나누는 선행과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성장시키는 만남을 가지고 싶은 시간입니다. 곧 이 세상에서 영원한 축제의 날을 미리 맛보게 하는 좋은 포도주와 같은 시간입니다. 그러나 깨어진 꿈과 좌절된 계획으로 씁쓸한 저녁에 고독을 마주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가장 괴로운 시간이기도 합니다. 체념과 포기 또는 원한의 막다른 골목으로 내어 몰리는 날들을 보내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기쁨의 포도주가 없기에 삶의 정취, 삶의 지혜가 사라진 가정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 오늘 저녁 우리는 이런저런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신하여 모든 이를 위한 기도를 드립니다.”

2. (2) 기쁨과 시련, 깊은 애정, 때로는 상처 입은 관계들을 담고 있는 가정은 참으로 오늘날 매우 필요한 ‘인간성을 기르는 학교’(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52항 참조)이다. ‘지구촌’의 다양한 상황에서 가정 제도의 위기의 표지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지만, 가정에 대한 갈망은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여전히 강력하게 남아 있다. 그러한 갈망으로 인간성의 전문가이며 자신의 사명에 충실한 교회는 끊임없이 확신에 찬 ‘가정에 관한 복음’을 선포하도록 재촉받는다. 이 가정에 관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느님 사랑의 계시를 통하여 교회에 맡겨진 것으로 교부들, 영성의 스승들, 교회의 교도권이 끊임없이 가르쳐 온 것이다. 가정은 교회에 매우 중요하고, 모든 신자가 자기 밖으로 나가도록 초대되는 때에 복음화의 필수적인 주체로 가정을 재발견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많은 가정들의 선교 증언을 떠올리게 된다.

3. (3) 로마의 주교는 2014년 10월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3차 임시 총회를 소집하시어, [시노드 교부들이] 결정적이며 소중한 가정의 역할에 관하여 숙고하고, 이를 2015년 10월에 개최될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 총회에서 더 깊이 논의하게 하셨다. 또한 정기 총회 개최 전 1년 동안에도 성찰을 계속하게 하셨다. “로마의 주교 주위에 하나로 모인(convenire in unum) 것이 이미 은총의 사건입니다. 여기에서 영적 사목적 식별의 길을 가는 주교들의 합의체 정신이 드러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체험을 이렇게 묘사하시면서, [시노드 교부들이] 하느님의 표징과 동시에 인간 역사에 귀를 기울일 의무가 있고, 이에 따르는 이중적이지만 단일한 충실성을 지켜야 하는 임무가 있음을 지적하셨다.

4. (4) 교황님의 말씀에 비추어, 우리는 숙고와 대화의 결과를 아래와 같이 3부로 정리하였다. [제1부] ‘경청’에서는 오늘날 가정의 현실을 그 빛과 그림자의 다양성 안에서 조망한다. [제2부] ‘그리스도를 바라보기’에서는 가정의 아름다움과 역할과 존엄에 관하여 교회의 신앙을 통하여 전달된 계시가 말해주는 것을 새로운 생기와 열정으로 새롭게 성찰한다. [제3부] ‘대처 방안’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혼인에 바탕을 둔 가정을 위한 교회와 사회의 노력을 쇄신하는 길을 식별하고자 [상황을] 주 예수님의 빛에 비추어 본다.

5. 우리 앞에 놓인 이 새로운 단계는 임시 총회의 귀중한 결과를 간직하면서, 가정의 도전 과제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교회와 현대 세계에서 가정의 소명과 사명에 비추어 성찰하는 것이다. 가정은 오늘날 도전 과제에 응답하라는 요청만 받는 것이 아니다. 가정은 무엇보다도 가정 교회로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아가는’ 자신의 선교적 정체성을 늘 새롭게 인식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는다. 고독과 슬픔이 흔한 세상에서 “가정에 관한 복음”은 분명 기쁜 소식이다.

제1부
경청: 가정의 상황과 도전

제1장
가정과 인간학적 문화적 상황

사회적 문화적 상황

6. (5) 우리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충실하여 오늘날 가정이 처한 복잡한 현실, 곧 그 빛과 그림자에 시선을 집중한다. 우리는 부모, 조부모, 형제자매, 가까운 친척과 먼 친척, 혼인으로 맺어진 두 가정의 유대에 대하여 생각한다. 인간학적 문화적 변화는 오늘날 삶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쳐서 분석적이고 차별화된 접근을 요구한다. 무엇보다도 긍정적인 측면들이 강조되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가 증진되었고, 적어도 일부 지역에서는 여성과 어린이의 권리가 더 많이 인정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지나친 개인주의의가 가져오는 위험이 증대되는 사실도 고려하여야 한다. 그러한 개인주의는 가정의 유대를 왜곡시켜 결국 가정의 구성원들을 고립된 개체로 여기게 한다. 어떤 경우에는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자기 욕망에 따라 자아가 형성된다는 생각도 존재한다. 더 나아가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겪는 신앙의 위기도 있다. 이는 흔히 혼인과 가정의 위기를 불러일으킨다.

인간학적 변화

7. 오늘날 사회에서는 다양한 성향들이 나타난다.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하느님 창조 계획의 선함을 깨달아 혼인과 가정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지지하고 권장한다. 성사혼과 사회혼은 감소하고 있으며, 별거와 이혼은 증가하고 있다.

모든 사람, 곧 남자와 여자와 어린이의 존엄성의 존중과, 다른 인종 집단과 소수자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서양만이 아니라 많은 사회에 널리 퍼져 여러 나라에서 강화되고 있다.

다양한 문화에서 젊은이들은 가정을 꾸리겠다는 것과 같은 결정적인 약속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점점 더 확산되고 있는 극단적 개인주의는 온전한 자아실현을 이끌지 못하는 욕구들을 충족시키는 데에만 초점을 맞춘다.

소비 사회의 발전은 성과 출산의 분리를 초래하였다. 이는 출산이 점차 감소하게 되는 원인도 된다. 어떤 경우에는 이러한 출산 감소가 가난과 아이를 돌볼 수 없는 상황과도 관련되어 있으며, 또 다른 경우에는 책임 회피 경향과 더불어 아이가 자유로운 삶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과도 관련되어 있다.

문화적 모순들   

8. 가정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 모순들이 적지 않다. 여전히 가정은 매우 깊은 친밀하고 만족스러운 애정의 안식처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재물과 쾌락을 중시하는 극단적인 개인주의 문화로 발생한 갈등은 가정생활에 때로는 걷잡을 수 없는 불관용과 폭력성을 야기한다. 여기에서 모성을 여성 착취의 수단이며 온전한 자아실현의 방해물로 여기는 일부 페미니즘도 언급해 볼 수 있다. 또한 출산을 개인적 욕망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여겨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아이를 낳으려고 하는 경향의 확산이 확인되고 있다. 끝으로 개인의 정체성과 정서적 친밀함이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와는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는 주장들도 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남녀 구분 없이 부부가 되어, 그 관계가, 생물학적인 생식으로 정의되는 부모의 역할과 본질적으로 연결된 혼인 관계와 동일한 지위에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혼란은 그러한 결합의 사회적 특성을 정의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혼란으로 생물학적 차이와 생식과 인간적 정체성의 특별한 관계는 개인적 선택으로 치부된다. 남녀 차이에 대한 생물학적인 이해뿐만 아니라 인간적 문화적 이해도 깊이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남녀의] 차이를 없애는 것은 …… 문제를 만들어 내는 것이지 해결하는 것이 아님”(프란치스코, 2015년 4월 15일, 수요 일반 알현)을 인식하여야 한다.

사회적 모순들

9. 전쟁, 자원의 고갈, 이주와 같이 충격이 큰 사건들은 가정생활의 정서적 영적 상황에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가정 안의 관계를 위협하고 있다. 종종 가정의 물질적 영적 자원은 고갈되기에 이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심각한 모순은 무책임한 정치적 경제적 결정과 사회 정책에 대한 이해 부족에 따른 부담으로 생겨나며, 이는 이른바 부유한 사회 안에서도 발생한다. 특히 양육비의 증가와 사실상 가정에 떠넘겨진 병자와 노인을 돌보는 일의 엄청난 증가는 현실적으로 큰 부담이 되어 가정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본질적으로 애매모호한 경기 침체의 영향과 부의 소수 편중 현상의 증가, 가정을 위한 계획에 배정된 자원의 용도 전환은 가정을 더욱 빈곤하게 만들고 문제를 야기한다. 알코올이나 마약 또는 도박 중독은 때로는 이러한 사회적 모순들과 가정생활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정의 약점과 강점    

10. 가정의 문화적 사회적 위기로, 기초 인간 공동체인 가정은 그 약점과 연약함으로 야기되는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를 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 더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가정은 그 자체로 인격 형성과 사회관계의 질과 가장 취약한 이들의 돌봄에 필요한 제도의 부족을 보완할 수 있는 커다란 역량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가정의 약점을 다룰 때에는 가정의 강점에 대한 올바른 이해도 반드시 필요하다.

제2장
가정과 사회적 경제적 상황

가정: 사회의 대체할 수 없는 자원
  
11. 가정은 여전히 사회생활의 근본적이며 필수적인 기둥이고, 앞으로도 언제나 그러할 것이다. 사실, 가정 안에는 다양한 차이가 서로 관계를 맺으며 공존하고 있다. 가족은 만남과 세대들 간의 상호 수용을 통하여 성장한다. 바로 이렇게 가정은 모든 인간 사회의 조화로운 발전을 위한 근본적 가치이며 대체할 수 없는 자원임을 나타낸다.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과 같다. “가정은 더욱 풍요로운 인간성을 기르는 한 학교이다. …… [가정은] 사회의 기초를 이룬다”(사목 헌장 52항). 가정의 부부, 자녀, 형제자매의 관계를 통하여 모든 가족은 조화와 상호 존중으로 조건 없는 강력한 유대를 맺는다. 이는 고립과 고독의 위험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가정을 위한 정책

12. 가정은 사사로운 것이 아니라 사회 건설의 주체이기에 가정을 지원하고 증진하는 적절한 가정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더 나아가 복지와 가정을 위한 무상 지원 조치의 관계를 고려하여야 한다는 제안이 있었다. 가정 정책과 복지 체제의 미비에 비해서 그러한 무상 지원 조치는 공동선을 위하여 자원을 재분배하고 활동을 재조정하며 사회적 불평등의 부정적 영향을 다시 바로잡도록 도움을 준다.

13. (6) 고독은 현대 문화의 가장 커다란 빈곤에 속한다. 고독은 인간의 삶에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고 관계가 약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또한, 결국 가정 파괴를 야기하는 사회적 경제적 현실 앞에서 느끼게 되는 전반적인 무력감도 있다. 더욱 심각해지는 빈곤과 고용 부족은 때로 악몽이 되고, 과중한 세금 부담은 젊은이들의 혼인 의욕을 꺾어 버린다. 흔히 가정들은 [정부] 기관들의 무관심과 태만으로 버림받았다고 느낀다. 사회 구조의 차원에서 그 부정적 영향은 자명하다. 인구 위기에서부터 교육 문제, 태중에 있는 생명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것부터 노인들의 존재를 짐으로 여기는 것, 때로는 폭력까지 낳는 정서적 불안이 그 결과들이다. 국가는 젊은이들의 미래를 보장하고 그들이 가정을 이루고자 하는 계획을 실현하도록 법적 조건을 마련하고 노력할 책임이 있다.

경제적 도전

14. 가정생활의 구체적인 측면은 경제적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오늘날 가정이 여러 위협 요소들로 고통을 받기 쉽다는 지적이 많았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에는 저임금, 실업, 경제 불안, 양질의 일자리 부족과 고용 불안, 인신매매와 노예살이와 관련된 것들이 있다.

경제적 불균형은 가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곧 가정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집을 마련하지 못하며, 자녀를 낳지 못하고, 가족의 학업과 독립에 어려움이 따르고, 차분한 미래 설계가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려면 사회 전체의 측면에서 구조적인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신다. “정의의 증진은 경제 성장을 전제로 하면서도 그 이상을 요구합니다. 이는 더 나은 소득 분배, 일자리 창출, 단순한 복지 정신을 넘어서 가난한 이들의 온전한 진보를 분명히 지향하는 결정, 계획, 구조, 과정을 요구합니다”(「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 204항). 세대 간 연대의 쇄신은 미래 세대보다는 현 세대의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다. 여기에서 특히 가정의 요구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빈곤과 사회적 배척

15. 종종 대다수를 차지하는, 가난한 상황에 놓인 사회 집단들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들은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의 측면에서도 빈곤하여 인간 존엄에 맞갖게 살아가기 위한 가정생활 계획의 실현을 방해받고 있다. 엄청난 어려움에도 많은 가난한 가정들은 일상생활에서 존엄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여야 한다. 그들은 그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시는 하느님을 믿고 있다. 

현재의 경제 체제가 다양한 사회적 배척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배척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여러 범주로 나뉜다. 그러나 ‘배척받는 이들’은 사회의 시각으로는 흔히 ‘무시당하는 이들’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지배적 문화와 대중매체 그리고 주요 제도들은 흔히 이러한 조직적인 ‘무시’를 지속시키거나 심지어 더욱 악화시킨다. 이러한 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이렇게 질문하신다. “좋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수많은 가정들이 집을 빼앗기며, 농부들이 시골에서 쫓겨나고, 또한 전쟁이 발발하고, 자연이 착취당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에 우리는 왜 익숙해졌습니까?” 그리고 교황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신다. “이러한 체제 안에서 인간, 곧 인격적인 존재인 사람이 중심에서 밀려나 다른 것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입니다. 돈을 우상숭배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관심이 세계화되었기 때문입니다!”(프란치스코, 대중 운동 세계 모임 참가자들에게 한 연설, 2014.10.28.)

사회적 배척은 가정을 약화시키며 가족의 존엄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특별히 우려되는 것은 어린이들이 처한 상황이다. 사회적 배척으로 이러한 어린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마치 벌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안타깝게도 평생 궁핍과 고통으로 시달리게 된다. 이러한 어린이들은 문자 그대로 ‘사회적 고아’라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생태적 도전

16. 생태계의 관점에서 보면 많은 사람들의 물 부족, 환경 파괴, 기아와 영양실조, 돌보지 않고 파괴된 땅, ‘쓰고 버리는’ 문화에서 문제들이 발생한다. 앞에서 언급한 상황들은 가정생활과 그 안정에 때로는 심각한 영향까지도 미친다.

이러한 이유로,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권유로, 교회는 생태적 문화를 통하여 세계체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깊이 성찰하기를 바라며 다른 이들과 협력한다. 이러한 문화는 관점과 공공 정책과 교육 프로그램, 그리고 생활양식과 영성을 발전시킬 수 있다. 모든 것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통합 생태론’의 다양한 측면들을 깊이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환경 분야만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발전과 창조의 보전을 위한 인간적, 사회적, 경제적 분야가 포함된다.

제3장
가정과 개입

노인

17. 가정 안의 노인들의 어려운 상황을 지적하는 의견이 많았다. 선진 사회에서 노인은 증가하고 있지만 출산은 감소하고 있다. 노인의 기여가 늘 제대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노인은 증가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조직은 노인들을 제대로 존중하고 그들이 약하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고려하면서 노인들을 위한 자리를 제대로 마련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젊을 때에는 노인을 마치 멀리 하여야 하는 질병처럼 무시하도록 오도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나이가 들게 되면, 특히 가난하거나 아프고 혼자라면, 우리는 효율성을 중시하여 결국 노인을 무시하는 사회의 단점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노인들은 우리가 경시할 수 없는 자산입니다”(2015년 3월 4일 수요 일반 알현).

18. 가정 안의 조부모의 상황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조부모는 세대 간의 연결고리이고, 자녀가 자신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전통과 관습을 제대로 전해준다. 더욱이 조부모는 종종 젊은 부부에게 사려 깊은 방식으로 보상을 바라지 않고 중요한 경제적 지원을 한다. 또한 손주들을 돌보아주면서 신앙도 전수해 준다. 많은 사람들, 특히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조부모 덕분에 그리스도교 생활에 입문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 이는 신앙이 가정 안에서 세대 간에 이어져오면서 어떻게 전수되고 지켜지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새로운 가정들을 위한 대체할 수 없는 유산이 된다. 그러므로 노인들은 젊은이들과 가정과 사회로부터 진심어린 감사와 존중과 환대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  

사별하여 혼자 사는 문제

19. 혼인과 가정생활을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로 선택하며 사는 이들에게 사별하여 혼자 사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렇지만 신앙에 비추어 보면 이러한 삶은 많은 귀중한 기회들을 마련해준다. 예를 들어, 어떤 이들은 이러한 가슴 아픈 처지를 견디어내면서, 자기 자녀들과 손주들에게 더 많은 힘을 쏟아 부으며 전념하고 자녀 양육이라는 사랑이 넘치는 경험 안에서 새로운 교육적 사명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고인이 된 배우자가 남겨 놓은 빈자리를 다른 가족들이 남겨진 배우자를 소중히 여기는 사랑으로 채우게 된다. 이리하여 남겨진 배우자는 자신의 혼인생활을 소중하게 기억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사별하고 나서 자신이 돌보아주거나 서로 사랑하고 가까이 할 수 있는 친척이 없는 이들에게는, 특히 이들이 가난한 경우에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특별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인생의 마지막 단계와 가정에서의 애도

20. 노인들은 자신이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 있음을 자각한다. 그들의 상황은 가정생활의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친다. 흔히 고령화에 따르는 질병을 마주하고, 무엇보다도 죽음이 얼마 안 남았음을 느끼며, 배우자, 가족, 친구와 같이 사랑하는 이들의 상실로 경험하게 되는 죽음을 마주하는 것은 인생의 이 단계에서 중요한 측면이다. 이는 개인과 가족 전체가 내적 균형을 다시 이룰 것을 요청한다.

최소한 선진국에서 사람들이 죽음에 대한 생각을 최대한 지워버리려고 하기에 오늘날 인생의 마지막 단계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이 시기에는 역량과 자율성과 애정이 사라지거나 점차 감소된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으나, 인생의 말기는 온 생애의 충만과 완성으로 여겨질 수 있다. 또한 특별한 정신적 유산을 미래 세대에 물려주는 가운데 풍요에 대한 새로운 의미가 발견될 수 있다. 가족의 친밀함과 더불어 영성과 초월이 본질적인 자원이 된다. 그래서 노년도 존엄과 희망으로 가득 채워질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가정들에는 특별한 배려가 필요하다. 어린이와 젊은이가 사망하는 경우, 이는 가정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장애인 문제

21. 장애인이 있는 가정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장애는 갑작스럽게 삶을 파고들어 예상치 못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여 가정의 안정과 바람과 기대를 송두리째 뒤엎는다. 이는 억제와 통제가 필요한 복잡한 감정들을 야기하며, 새로운 일거리와 절박함과 요구와 더불어 다양한 역할과 책임도 필요로 한다. 가정의 모습과 그 생활의 전체적인 흐름이 심각한 영향을 받는다. 그렇지만 가정은 자기가 속한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함께 연약함의 신비를 받아들이고 소중하게 여기는 길고 어려운 여정에서 다양한 능력과 잠재력, 새로운 몸짓과 언어, 나아가 이해하고 일치를 이루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22. 이러한 과정은 그 자체로 유난히 복잡한 것으로 여전히 심각한 낙인과 편견이 존재하는 사회 안에서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한 낙인과 편견은 장애인과의 유익한 만남, 연대, 공동체의 동반을 방해한다. 사실 취약함에 대한 깊은 공감에서 시작되는 이러한 만남은 모든 개인과 공동체에 정의와 사랑과 모든 인간 생명 가치 수호의 증진을 위한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특별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정과 개인이 진심으로 환대하여 주는 공동체 안에서 외로움이나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특히 가정의 힘과 자원이 부족할 경우, 부담을 덜게 되고 지원받게 되기를 바란다.

23. 이와 관련하여 이른바 ‘남겨진 장애인’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가난하고 외로운 가정의 경우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매우 발전한 사회에서 기대 수명의 연장으로 장애인들이 그들의 부모보다 더 오래 살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는 최근의 현상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하는 것이다. 가정이 신앙으로 장애인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그 가정은 장애가 있는 이들이 자신의 장애를 한계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받은 특별하고 소중한 가치로 여기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모든 개인과 가정생활의 질은 그 욕구, 동등한 존엄과 기회, 보호와 배려, 사귐과 애정, 영성과 아름다움과 의미 충만의 권리와 함께 삶의 모든 단계에서, 곧 임신[受精]에서부터 성장과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보장받고 수호되며 존중될 수 있을 것이다. 

이주 문제 
 
24.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 여러 곳에 있는 모든 이에게 영향을 주는 이주 현상이 가정에 미치는 영향은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이민을 돌보기 위해서는 이주 가정뿐만 아니라 고국에 남겨진 가족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수 사목이 필요하다. 이러한 사목은 이민들의 문화와 그들 출신국의 종교 교육과 인성 교육을 존중하며 이루어져야 한다. 오늘날 이주 현상은 다른 민족과 지역에서 ‘필요 없는 존재’로 여겨지는 개인과 가정에 깊은 상처를 입힌다. 사실 이들은 정당한 방식으로 더 나은 미래를 찾고, 고국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어서 ‘새로운 삶’을 찾으려는 것뿐이다.

25. 통상적인 이주의 원인인 전쟁, 박해, 가난, 불평등과 같은 다양한 상황들은 때로 생명 자체를 위협하는 험난한 여정에 더하여 이민과 그 가정에 비극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주 과정에서 이민 가정들은 어쩔 수 없이 버려지고 헤어지는 경험을 수없이 하게 된다. 많은 경우 삶을 개척하기 위하여 길을 떠난 이들과, 떠난 이가 돌아와 다시 한 가정을 이루기를 기다리는 이들 모두 비극적인 이별을 하게 된다. 떠난 이들은 자신의 나라와 문화와 언어, 그리고 친척과 공동체와의 관계, 자신들의 과거와 자신들의 삶 속에서 이어져온 전통마저 상실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26. 새로운 나라와 문화와의 만남은, 참된 환대와 수용이 모든 이의 권리와 평화롭고 연대하는 공존에 대한 존중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훨씬 더 어려워진다. 방향 상실, 이제는 잃어버린 과거에 대한 향수, 더 나아가 새로운 관계를 맺고, 과거와 현재, 문화와 지역성, 언어와 다른 사고방식들을 결합하여 삶을 계획하면서 겪게 되는, 참된 통합에서의 어려움들은 극복할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 또한 이러한 경험들은 이민 가정의 2세대와 3세대에 새로운 고통을 야기하며 근본주의 현상과 수용국 문화에 대한 격렬한 거부 현상을 촉발한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소중한 자원은 가정들 간의 만남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통합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은 흔히 아이를 양육하면서 경험을 나누는 어머니들이다.

27. 가정과 개인은 이주를 통하여 특히 비극적인 경험을 하고,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여기에는 불법 이주, 국제 인신매매 조직을 통한 이주, 아동 단독 이주와 더불어 제대로 정착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 난민촌 장기 거주로 정착과 미래 설계 시작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다른 특별한 문제들

28. (7) 특별한 도전이 되는 문화적, 종교적 상황도 있다. 어떤 사회들에서는 아직도 일부다처제의 관습이 있으며, 어떤 전통들에서는 ‘단계적 혼인’의 관습이 남아 있다. 또 다른 곳에서는 정략결혼이 계속 이루어진다. 가톨릭 교회가 소수에 속한 국가들에서는 많은 혼종혼과 종교 간 혼인으로 법적 관계, 세례, 자녀 교육, 서로 다른 신앙에 대한 상호 존중과 관련된 어려움들이 수반된다. 이러한 혼인들에서는 상대주의나 무차별주의의 위험이 있을 수도 있지만, 같은 지역에서 살아가는 공동체들의 조화로운 공존을 통하여 교회 일치 정신과 종교 간 대화를 촉진할 가능성도 있다. 서양만이 아니라 많은 지역에서 혼전 동거나 법적 유대를 맺을 의도가 없는 동거가 확산되고 있다. 또한 혼인과 가정을 위협하는 사회법도 흔하다. 세상의 많은 지역에서는 세속화로 사람들이 하느님을 언급하는 일이 크게 줄어들어 더 이상 신앙이 사회적으로 공유되지 않는다.  

가정과 어린이

29. (8) 특히 일부 국가들에서는 혼외 자녀들이 많고, 그 가운데 많은 아이들은 외부모와 살거나 재혼 가정 안에서 자란다. 이혼하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단지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이혼을 선택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자녀들은 흔히 부모의 쟁탈의 대상이 되어 가정 분열의 현실적인 희생자가 된다. 단순한 경제적 이유 이외에도 다른 여러 이유로 자주 가정을 멀리하는 아버지들은 자녀와 가정에 대한 책임을 더 확실하게 져야한다. 여성의 존엄은 더 한층 수호되고 촉진되어야 한다. 여러 상황에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고, 어머니가 되는 은사도 흔히 소중히 여겨지기보다는 불이익이 된다. 유감스럽게도 가정 안에서도 여성들이 희생되는 폭력 현상이 증가하고 있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떤 문화들에서 널리 퍼져 있는 잔인한 여성 할례 관습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소아 성추행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추문이며 사악한 현실에 속한다. 전쟁이나 테러, 또는 조직범죄로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 안에 있는 가정들의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특히 대도시와 그 교외 지역에는 이른바 거리의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이주도 또 다른 시대의 징표가 되어, 그것이 가정생활에 미치는 모든 영향을 이해하고 대처해야 한다.

여성의 역할

30. 많은 지역에서 여권 신장이 이루어져 가정과 사회의 성장에서 여성의 중요한 역할이 뚜렷해지고 있다. 그러나 세계 여성의 지위는 주로 문화권에 따라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확실히 문제가 되는 이러한 상황은 단지 경제 위기의 종식이나 현대 문화의 도래로 해결될 수 없다. 최근 발전을 이룬 여러 국가들에서 여성이 처한 어려운 상황이 이것을 증명해 준다.

서양에서는 여권 신장으로 가정생활에 대한 부부의 상호성과 더불어 공동 책임에 관한 부부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개발도상국에서 여성 착취와 여성에 대한 육체적 폭력, 심지어 임신 기간에도 여성에게 부과되는 고된 노동은 종종 낙태와 강제 불임, ‘대리모’나 배아 세포 거래와 같이 출산에 관련된 관행들로 발생되는 매우 부정적인 영향들을 통하여 더욱 악화된다. 선진국에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이를 가지려는 욕구가 더 행복하고 강한 가족 관계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많은 경우 남녀 불평등을 실질적으로 악화시킨다. 다양한 문화 안의 편견으로 여성의 불임은 사회적 차별을 야기하는 요인이 된다.

교회 안에서 여성의 지위를 더욱 존중하면 사회 안에서 여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다시 말해 여성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하고, 일부 기구의 관리에 형식적이 아닌 실질적 참여를 하며, 사제 양성에 관여하는 것이다.

제4장
가정, 애정, 생활    

애정 생활의 중요성

31. (9) 이와 같은 사회적 틀 앞에서 세상의 여러 지역에서, 각자가 자기 자신을 잘 돌보고 내적 성찰을 하며, 자신의 감정과 느낌에 더 잘 맞추어 살아가고 수준 높은 애정 관계를 찾으려는 욕구가 더 많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올바른 욕구는 가정과 같은, 헌신과 상호성을 바탕으로 한 창조적이고 책임지고 연대하는 관계에 대한 갈망을 이끈다. 개인주의와 이기적인 삶의 위험은 매우 크다. 교회가 당면한 도전은, 부부들이 대화와 덕과 하느님 자비에 대한 믿음을 증진하여 정서적으로 성숙해지고 애정을 키우도록 돕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혼인에서 요구되는 온전한 헌신은 이기적인 개인주의의 유혹에 대한 강력한 대책이 된다.

애정 형성

32. 가정은 젊은 세대의 애정 형성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음을 인식하여야 한다. 현대 사회의 변화 속도는 전인적 인간의 성숙에 필요한 애정의 형성을 이끄는 데에 어려움을 초래한다. 또한 여기에는 성경과 가톨릭 교리를 잘 알 뿐만 아니라 교육학, 심리학, 의학에 관한 적절한 지식도 적절히 갖춘 사목 일꾼들을 필요로 한다. 가정 심리에 대한 지식은 애정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개념을 효과적으로 전수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다. 이러한 교육적 노력은 이미 그리스도교 입문 교리 교육에서 시작된다.

깨지기 쉬운 애정과 미성숙

33. (10) 현대 세계에는 가장 복잡한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측면을 탐색하고자 하는 무절제한 애정을 강요하는 문화적 경향들이 없지 않다. 사실 깨지기 쉬운 애정이라는 문제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시급한 과제이다. 자기중심적이고 불안정하며 변덕스러운 애정은 언제나 개인의 성숙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인터넷의 오용으로 촉진된 포르노의 확산과 육체의 상품화는 우려를 자아낸다. 매춘을 강요받는 사람들의 처지도 개탄스럽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부들은 흔히 불안을 느끼고 주저하며, 성장하는 방법을 찾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많은 이들이 정서적이고 성적인 삶에서 초보 단계에 머물러있다. 부부의 위기는 가정을 불안정하게 만들며, 별거와 이혼으로 개인과 사회적 유대를 약화시켜 어른과 아이, 사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출산을 기피하는 정서와 널리 퍼진 피임 정책에 따른 인구 감소 또한 세대 교체가 더 이상 보장되지 않는 상황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경제적인 빈곤과 미래에 대한 희망의 상실을 가져올 위험이 있다. 생명 공학의 발전 또한 출산율에 큰 영향을 미쳤다. 

생명윤리에 관한 문제
 
34. 이른바 생명 공학의 혁명으로 인간의 출산에서 생식 활동을 조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나, 출산이 남성과 여성의 성적 관계와 별개의 것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인간 생명과 부모 됨은 무엇보다도 개인적 바람이나, 이성간의 합법적인 혼인으로 맺어지지 않은 부부의 바람으로라도 선택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인간의 성에 관련된 이러한 최근의 현상은 매우 새로운 것으로 등장하여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는 인간관계와 사회, 그리고 법 제도에 깊은 영향을 미치며, 다양한 상황들과 이미 시행되고 있는 관행들을 통제하려고 한다.

사목을 위한 도전

35. (11) 이러한 맥락에서 교회는 진리와 희망의 말을 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인간은 하느님에게서 오며, 따라서 인간 존재의 의미에 관한 중요한 질문을 제기할 수 있는 성찰은 인류의 가장 깊은 열망 안에서 풍요로운 토양을 발견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혼인과 그리스도인 가정의 위대한 가치는 개인주의와 쾌락주의에 물든 시대에도 인간의 삶을 특징짓는 추구에 부응한다. 사람들을 그들의 구체적 삶과 함께 받아들여야 하고, 그들의 추구를 지지할 줄 알아야 하며, 하느님에 대한 그들의 갈망과 온전히 교회에 속해 있음을 느끼고자 하는 그들의 원의를 격려해 주어야 한다. 이는 실패를 겪었거나 서로 전혀 다른 상황에 있는 이들에게도 해당된다. 그리스교의 메시지는 언제나 그 안에 현실과 더불어 자비와 진리의 역동성을 담고 있으며,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일치를 이룬다.

36. 혼인과 가정생활 교육 프로그램에서 사목 일꾼들은 여러 가지 구체적인 상황들을 고려하여야 한다. 사목 일꾼들은, 한편으로는 젊은이들이게 혼인 관련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촉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혼인을 하지 않고 아직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증진시켜야 한다.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부부들 또한 자신이 처한 상황 안에서도 온 공동체를 위하여 하느님의 계획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교회의 특별한 사목적 배려를 받아야 한다.

‘교회에서 멀어진 이들’을 제외되거나 거부당하는 이들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로 교회 사목 활동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이는 이해 받을 자격이 있으며, 교회 생활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이 언제나 의도적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여 한다. 이러한 상황들은 흔히 큰 고통을 주며, 주로 제3자 때문에 발생하게 된다.

제2부
가정 소명의 식별

제1장
가정과 하느님의 교육 방법

예수님을 향한 눈길과 구원의 역사에 나타난 하느님의 교육 방법

37. (12) “현대의 도전들이라는 토양 위에서 우리의 발걸음을 확인하기 위한 결정적 조건은 눈길을 예수 그리스도께 고정시키는 것, 우리의 눈길이 머물러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의 얼굴을 흠숭하는 것입니다. …… 우리가 그리스도인 체험의 원천으로 돌아올 때마다, 새로운 길들과 생각하지 못한 가능성들이 열립니다”(프란치스코, 2014년 10월 4일 연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만나시는 사람들을 사랑과 자애의 눈길로 바라보셨으며,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필요한 것들을 일러 주시며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가정 안의 하느님 말씀

38. 예수님 바라보기는 무엇보다도 그분 말씀을 경청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체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성경 읽기는 하느님 계획에서 부부와 가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하느님께서 어떻게 가정생활 안으로 들어오시고 가정생활을 더욱 아름답고 활기차게 만들어 주시는지를 인식하도록 하여 준다.

그러나 여러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가톨릭 가정들은 여전히 성경을 제대로 읽지 않고  있다. 가정 사목에서는, 성경에 바탕을 둔 가정이라면 마땅히 체험하게 되는 그리스도와 만나는 것의 중요성이 늘 강조된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가정이 하느님의 말씀과 살아있는 관계를 맺도록 권유하여 예수 그리스도와의 참된 인격적 만남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경을 접하는 방법에는 영적 독서(lectio divina)가 있다. 이는 기도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읽는 것으로 일상생활을 위한 영감의 원천이 된다.

하느님의 교육 방법

39. (13) 창조 질서는 그리스도를 지향하므로,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계약의 은총을 주시는 다양한 여러 단계들을 서로 분리하지 않으면서 그들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창조 질서는 하느님의 교육 방법에 따라 연속적인 단계들을 거쳐 속량의 질서 안에서 전개되는데, 바로 이 하느님의 교육 방법 때문에 그리스도교의 혼인성사의 새로움은 시초의 자연적인 혼인과의 연속성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피조물과 그리스도인의 생활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 활동을 이해하게 된다. 만물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으므로(콜로 1,16 참조), 피조물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감추어진 말씀의 씨앗을 기꺼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깊은 변화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교회의 선교 활동에 관한 교령 「만민에게」[Ad Gentes Divinitus], 11항).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신자들은 세례를 통하여 자신의 가정인 가정 교회를 통하여 교회의 일부가 되므로,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에게 충만한 생명을 주는 사랑을 향하여 끊임없이 돌아섬으로써 ‘하느님께서 주신 은혜의 점진적인 통합을 통해 나타나는 역동적 과정’(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권고 「가정 공동체」[Familiaris Consortio], 9항 참조)을 시작하게 된다.

자연혼과 성사의 충만함

40. 자연 실재는 은총에 비추어 이해해야 함을 명심하여 구원 질서가 창조 질서를 분명히 밝혀주고 완성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자연혼은 그 성사적 완성에 비추어 온전히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에만 인간관계의 진리에 대한 깊은 이해에 이르게 된다. “사람이 되신 말씀의 신비 안에서만 참으로 인간의 신비가 밝혀진다. …… 새 아담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신비와 그 사랑의 신비를 알려 주는 바로 그 계시 안에서 인간을 바로 인간에게 완전히 드러내 보여 주시고 인간에게 그 지고의 소명을 밝혀 주신다”(사목 헌장 22항). 이를 명심하고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면서 혼인의 풍요로움과 다양한 본질적 특징들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

예수님과 가정

41. (14) 예수님께서는 인간 부부에 관한 본디의 계획을 언급하시면서,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마태 19,8)라고 말씀하시면서도, 남자와 여자의 결합이 풀 수 없는 것임을 확인하신다. 혼인의 불가 해소성(“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 19,6])은 사람들에게 부과된 ‘멍에’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혼인으로 결합된 사람들에게 주어진 ‘은사’로 이해하여야 한다. 그러한 말씀으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낮추시어 이 세상에 내려오심으로써 언제나 인간의 여정에 함께하시고, 완고한 인간의 마음을 당신의 은총으로 치유하시고 변화시키시며, 십자가의 길을 통하여 그 시작을 향하게 하시는 것을 보여 주신다. 복음서들은 교회의 전형이신 예수님의 모범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예수님께서는 한 가정 안에 태어나셨고,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당신의 첫 표징을 보여주셨으며, 혼인의 의미를 하느님의 본디 계획을 되찾는 계시의 충만함으로 선포하셨다(마태 19,3 참조). 또한 당신께서 가르치신 바를 실천하시어 자비의 참된 의미를 보여 주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요한 4,1-30 참조)과 간음한 여인(요한 8,1-11 참조)을 만나셨을 때 분명히 드러난다. 그들과의 만남에서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시며 용서의 조건인 참회와 회개로 이끄신다(“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은사와 임무인 불가 해소성

42. 그리스도교 혼인을 온전히 살아가고 있는 부부들의 증언은 혼인의 불가 해소적 결합의 가치를 강조하며, 부부 신의의 새로운 길을 늘 가고자 하는 갈망을 불러일으킨다. 불가 해소성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지속하려는 깊은 갈망에 대한 개인적인 응답을 보여준다. ‘영원한’ 사랑은 선택과 헌신으로, 부부 상호 간에, 부부와 하느님 사이에, 부부와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맡겨주신 모든 이 사이에 존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공동체 안에서 혼인기념일을 지내는 것이다. 이는 영원히 함께 사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하며 아름다운 것임을 명심하기 위한 것이다.

가정에 관한 복음은 삶의 이상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이상은 우리 시대의 감수성과, 혼인 서약을 영원히 유지하는 데에 따르는 실제적인 어려움을 고려하여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교회는, 교회가 가정을 결코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모든 가정이 알도록 희망을 주고 부담이 되지 않는 메시지를 선포하여야 한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역사는 혼인과 인간 가정의 역사와 불가 해소적 유대”(2015년 5월 6일 수요 일반 알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으로 살아가기

43. 많은 이들은 혼인 생활에 내재되어 있는 덕성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전개시키는 은총의 도덕성을 증진할 것을 권유한다. 여기에는 상호 존중과 신뢰, 상호 수용과 감사, 인내와 용서가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가정생활로 들어가는 문 위에는 “‘실례합니다.’,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라는 말이 쓰여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실, 이러한 말들은 가정 안에서 잘 사는 길, 곧 평화롭게 사는 길을 열어줍니다. 간단한 말이지만 이 말을 실천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말들에는 큰 힘이 있습니다. 많은 문제들로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가정생활이 온전히 유지되도록 해 주는 힘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들이 없다면, 작은 구멍이 점점 커져서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2015년 5월 13일 수요 일반 알현). 다시 말해서 혼인성사는 은총으로 점진적인 성숙에 이르러야 하는 삶의 단계와  사랑의 시련에 힘을 보태준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의 가정

44. (15)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남기신 영원한 생명의 말씀은 혼인과 가정에 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예수님의 이 가르침은 우리에게 혼인과 가정에 관한 하느님의 계획을 기본적인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게 해 준다. 먼저 창조주 하느님께서 가정의 견고한 기초로 아담과 하와의 첫 혼인을 제정하실 때 최초의 가정이 세워졌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창세 1,27 참조) 그들이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도록 복을 내리셨다(창세 1,28 참조). 그래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창세 2,24). 이 결합은 죄로 손상되었고, 하느님의 백성 안에서 혼인의 역사적 형태가 되었다. 곧 모세가 이혼 증서를 써 주는 여지를 인정하였던 것이다(신명 24,1 이하 참조). 이러한 관행은 예수님 시대에 흔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셔서 당신의 속량으로 타락한 세상을 [하느님과] 화해시키심으로써, 모세로 시작한 시대가 끝나게 되었다.

부부 결합과 풍요로움

45. 성경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어떻게 하느님께서 태초부터 당신과 닮은 모습을 부부에게 새겨주셨는지 보여주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는 의견이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남자 혼자서 하느님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여자 혼자서 하느님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는 부부로서 하느님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남녀의 차이는 상호 대립과 종속을 위한 것이 아니라, 늘 하느님과 닮은 모습으로 친교와 출산을 위한 것입니다”(2015년 4월 15일 수요 일발 알현). 어떤 이들은 혼인 안에 담겨 있는 단일성과 출산이라는 상호 보완적 본질이 하느님 창조 계획 안에 새겨져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올바른 정신에서 깊이 생각하고 자유로운 동의로 이루어진 결합은 출산 준비로 이어진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출산은 책임 있는 부모가 되고 자녀를 충실하게 돌보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삼위일체의 모습을 한 가정

46. (16) 당신 안에서 모든 것을 화해시키신 예수님께서는 혼인과 가정을 그 본디의 형태로 되돌리셨다(마르 10,1-12 참조). 가정과 혼인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속되었고(에페 5,21-32 참조), 모든 참된 사랑이 흘러나오는 신비인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모상으로 회복되었다. 창조로 시작되었고 구원 역사 안에서 계시된 혼인 계약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 안에서 그 의미가 온전하게 계시된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통하여 혼인과 가정에 하느님의 사랑을 증언하고 친교의 삶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은총을 주신다. 가정에 관한 복음은, 인간이 하느님과 비슷하게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이후(창세 1,26-27 참조) 세상 끝 날에 어린양의 혼인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계약의 신비가 완성되기까지 세상의 역사를 관통하고 있다(묵시 19,9; 요한 바오로 2세, 「인간적 사랑에 관한 교리교육」[Catechesis on Human Love] 참조).

제2장
가정과 교회 생활  

교회 문헌에 나타난 가정

47. (17) “수 세기 동안 교회는 혼인과 가정에 관한 항구한 가르침을 견지하여 왔다. 이 가르침을 가장 뛰어나게 표현한 것 중의 하나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에 나와 있다. ‘사목 헌장’은 혼인과 가정의 존엄의 증진을 한 장 전체에 걸쳐 다루고 있다(사목 헌장 47-52항 참조). 혼인을 생명과 사랑의 공동체로 정의하고(사목 헌장 48항 참조), 사랑을 가정의 중심에 두며, 아울러 현대 문화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환원주의와 대조되는 이 사랑의 진리를 보여 준다. ‘부부의 참된 사랑’(사목 헌장 49항)은 서로 자신을 내어 주는 선물을 의미하고,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성적 측면과 정서적 측면을 하나로 통합한다(사목 헌장 48-49항 참조). 더 나아가 48항에서는 부부가 그리스도 안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강조한다. 주 그리스도께서는 ‘혼인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인 부부를 만나러 오시어’(사목 헌장 48항) 그들과 함께 머무르신다.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사랑을 받아들이시어 이를 정화시키고 완전하게 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성령을 통하여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힘을 주시고, 그들의 삶 전체에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스며들게 하신다. 이렇게 하여 부부는 거룩해지고 고유한 은총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만들며 가정 교회를 이룬다(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11항 참조). 그리하여 교회는 자신의 신비를 온전하게 이해하고자, 고유한 방식으로 그 신비를 드러내는 그리스도인 가정을 바라본다”(「의안집」, 4항).

가정의 선교적 차원

48. 가정 교회인 가정의 선교적 차원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과 그 이후의 교도권에 비추어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정 교회는 세례성사를 바탕으로 하여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직무를 수행하며 실현되는 것이다. 가정은 본성상 선교적이기에 다른 이들에게 신앙을 전수하면서 가정의 신앙이 커져간다. 가정에 맡겨진 선교적 역할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그리스도인 가정은 신앙을 숨기지 말고 그들의 삶으로 복음을 증언하는 소명을 다시 찾는 것이 매우 시급하다. 가정의 친교를 실천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일종의 선교적 선포이다. 이러한 점에서 가정이 사목 활동의 주체가 되도록 촉진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다양한 증언을 통하여 실현된다. 여기에는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 인간 다양성의 인정, 창조 보전, 그리고 먼저 내 주변에서부터 시작하는, 공동선의 증진을 위한 노력이 있다.

교회의 길인 가정

49. (18)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교황 교도권은 혼인과 가정에 관한 교리를 더욱 심화시켰다. 특히 바오로 6세 교황님은 회칙 「인간 생명」(Humanae Vitae)에서 부부 사랑과 생명의 출산이 긴밀한 관계에 있음을 밝혀 주셨다. 성인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가정에 관하여 특별한 관심을 보이셨고, 이는 인간 사랑에 관한 가르침인 「가정 교서」(Gratissimam Sane)와 특히 교황 권고 「가정 공동체」(Familiaris Consortio)에 잘 나타나 있다. 이 두 문헌에서 성인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가정을 ‘교회의 길’이라 부르시고, 남자와 여자의 사랑에 대한 소명을 간략하게 설명하시며 가정 사목과 사회 안에 있는 가정의 존재에 대한 기본 지침을 제시하셨다. 교황님은 특별히 ‘부부 사랑’(「가정 공동체」, 13항 참조)을 다루시면서, 부부가 서로의 사랑을 통하여 그리스도 영의 은사를 받고 성덕의 소명을 삶으로 실천하는 방법을 알려 주셨다”(「의안집」, 5항).

하느님께서 주신 사랑의 척도

50. (19)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에서 남녀 간 사랑의 진리라는 주제에 대하여 다시 언급하셨다. 이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사랑에 비추어서만 온전히 이해되는 사랑이다(2항 참조). 교황님은 다음과 같이 강조하셨다. ‘배타적이고 결정적인 사랑에 토대를 둔 혼인은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의 관계를 나타내는 표상이 되고, 반대로 그 관계가 혼인의 표상도 됩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방식은 인간 사랑의 척도가 됩니다’(11항). 또한 교황님은 회칙 「진리 안의 사랑」(Caritas in Veritate)에서 인간이 공동선을 경험하게 되는 자리인 사회 안에서 생명의 원칙이 되는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신다(44항 참조)”(「의안집」, 6항).

기도하는 가정

51. 교황님들의 가르침은 가정생활의 영적 측면을 심화하라는 초대이다. 이는 가정 기도를 재발견하고 자선 활동을 촉발하는 하느님 말씀을 함께 경청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가정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이 그리스도 공동체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주일을 재발견 하는 것이다. 또한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문제에 대한 답으로 구체적인 가정 영성의 성장을 위한 적절한 사목 지도가 필요하다는 제안이 있었다. 가정 영성은 강한 신앙 체험, 특히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인”(교회 헌장 11항) 성찬례에 참여하면서 깊어진다.

가정과 신앙

52. (20)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회칙 「신앙의 빛」(Lumen Fidei)에서 가정과 신앙의 관계를 다루시며 다음과 같이 쓰셨다.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 사랑에 사로잡혀 그 사랑의 인도를 받게 되면 실존의 지평이 넓어지고 실망시키지 않는 확고한 희망을 얻습니다. 신앙은 소심한 이들을 위한 피난처가 아니라 우리 삶을 향상시켜 주는 것입니다. 신앙은 위대한 부르심, 곧 사랑을 향한 부르심을 인식하게 하고, 그 사랑이 믿을 만하고 투신해 볼 만한 것임을 보증합니다. 사랑은 우리의 모든 약함보다 더 굳건하신 하느님의 충실성에 그 바탕을 두기 때문입니다’(53항)”(「의안집」, 7항). 

교리교육과 가정

53. 가정에 대한 교리교육 프로그램이 쇄신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러한 점에서 부모가 사제, 부제, 봉헌 생활자들과 협력하여 특히 자기 자녀에 대한 교리교육의 능동적 주체가 되도록 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협력은 혼인 성소를, 충분한 시간을 두고 준비하여야 하는 중요한 것으로 여기도록 해 준다. 여기에서 건전한 그리스도인 가정들과, 믿을만한 사목자의 협력이 삶의 중요한 결정을 앞둔 젊은이들을 위한 공동체의 증언을 신뢰할만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봉사 단체가 되고자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가정들이 태어나 만나고 관계를 맺어 신앙을 나누고 성장과 상호 교류의 길을 함께 가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혼인의 불가 해소성과 함께 사는 기쁨

54. (21) 성사혼의 근본 요소인 상호 증여는, 교회 안에서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와 맺는 근본적 계약인 세례 은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약혼한 이들은 그리스도의 은총 안에서 서로를 받아들이면서 온전한 자기 증여와 충실함, 그리고 생명에 대한 개방성을 약속한다. 이들은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은사인 이러한 요소들을 혼인의 근본 요소로 인정하며, 그분의 이름과 교회 앞에서 서로의 약속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이들은 신앙 안에서 혼인의 선익을 성사의 은총의 도움으로 더 잘 지킬 수 있는 약속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부부에게 신의와 상보성, 생명에 대한 개방성을 실천하도록 도와주시며, 부부의 사랑을 축성하시고 그 불가 해소성을 확증하신다. 그래서 교회는 가정 전체의 중심인 부부를 바라보고, 또한 부부는 예수님을 바라본다.

55. 인간적 기쁨은 인간의 온전한 자아실현의 표현이다. 부부 결합의 기쁨과 새 가정형성의 기쁨의 일치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가정이 인격적인 무상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리로 나타나야 한다. 이러한 관계는 사회 집단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무상의 상호 증여, 생명의 탄생, 유아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가족을 돌보는 일은 가정이 그 아름다움 안에서 고귀해지도록 해 주는 여러 측면 가운데 일부이다. 혼인은 한 인간의 삶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려움 속에서조차 그 삶을 더욱 풍요롭고 온전하게 만들어주는 필생의 선택이라는 성숙한 생각을 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삶의 이러한 선택을 통해서 가정은 하나의 사회를 건설한다. 이 사회는 단순히 한 지역의 거주민이나 한 국가의 국민의 총합이 아니라, 백성, 곧 하느님 백성의 참다운 경험이 된다.

제3장
가정과 그 온전함의 길

혼인의 창조 신비

56. (22) 이러한 관점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모든 피조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향하여 창조되었다(콜로 1,16 참조)는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자연혼을 인정하고 다른 종교들 안에 있는 것(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 「우리 시대」[Nostra Aetate], 2항 참조)과 비록 한계가 있지만 다른 문화 안에 있는 유효한 요소들(요한 바오로 2세,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Redemptoris Missio], 55항 참조)을 인정한다고 말하고자 하였다. 여러 문화들 안에 존재하는 말씀의 씨앗(선교 교령 11항 참조)은 많은 비그리스도교 문화들과 사람들의 혼인과 가정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적용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혼인 이외의 일부 다른 형태의 혼인에도 유효한 요소들이 있다. 다만 이러한 형태의 혼인도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안정되고 참된 관계가 바탕이 되어야 하므로 그 어떤 경우에도 이러한 관계가 추구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교회는 민족들과 문화들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지혜를 생각하여 그러한 가정도 인간 사회에 필요한 풍요로운 기본 세포로 인정한다.
 
57. 교회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혼인의 창조 신비의 고귀함을 잘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는 혼인 결합의 경험을 감싸고 있는 근원적인 창조 은총을 소중하게 여기고자 하는 것이다. 이 혼인 결합은 온 마음으로 근원적인 소명을 따르고자 하며 그 소명의 올바른 실천을 추구한다. 이러한 계획을 받아들이려는 진지함과 이에 필요한 용기는, 무엇보다도 오늘날 특별히 소중하게 여겨질 수 있다. 오늘날에는 가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유대에 관련된 이러한 영감의 가치가 의심되거나 실제로 비판당하거나 배척당하고 있다.
 
그러므로 동거하고 있거나 사회혼을 한 이들의 성사혼에 대한 결심이 아직은 초기 상태로 그저 생각에만 머물러 있거나 조금씩 무르익어 가고 있는 경우에는, 교회가 이러한 발전을 권장하고 지지하는 일에서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 또한 사람들이 이미 맺은 혼인 서약을 교회가 존중하고 하느님의 창조 의지에 맞갖은 요소들을 그 안에서 찾아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선교 지역뿐 아니라 그리스도교 전통이 오래된 나라에서도 종교간 혼인을 한 가정이 점차 증가하기에 이에 맞는 사목 개발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가정의 진리와 아름다움, 그리고 상처 입고 깨지기 쉬운 가정에 대한 자비

58. (23) 교회는 복음의 가르침에 충실한 가정들을 내적 기쁨과 깊은 위로의 마음으로 바라보며 그들의 증언에 감사하고 그 증언을 독려한다. 사실 그러한 가정들 덕분에 불가 해소적이고 영원한 신의를 지키는 혼인의 아름다움을 믿을 수 있게 된다. ‘가정 교회’(교회 헌장 11항 참조)로 불리는 가정 안에서 거룩한 삼위일체의 신비를 반영하는 사람들 사이의 친교인 교회의 첫 경험이 무르익게 된다. “인내와 노동의 기쁨, 형제애, 거듭되는 너그러운 용서, 그리고 특히 기도와 삶의 봉헌을 통하여 하느님을 경배하는 것을 배우는 곳이 가정”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Catechismus Catholicae], 1657항). 나자렛의 성가정은, 이에 놀라운 모범이 된다. 성가정이라는 학교에서 “우리는 복음의 가르침을 따르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 영적 규율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바오로 6세, 나자렛에서 한 연설, 1964.1.5.). 가정에 관한 복음은 또한 아직 성숙하지 못한 씨앗들을 길러 주며, 시들어 버려 모른 척 할 수 없는 나무들을 가꾸어 주어야 한다.
 
교회와 가정의 긴밀한 유대

59. 교회의 성사로 맺어진 새로운 가정의 은총과 책임은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서 사회적 유대, 출산, 약자 보호, 공동생활의 차원에서 남녀 유대의 보편적 가치를 지지하고 증진시키겠다는 마음 자세를 보여준다. 이러한 마음 자세는 지지와 인정과 존중을 받아 마땅한 책임을 필요로 한다.

모든 가정은 그리스도교 성사의 힘으로 넓은 의미에서 교회에 선익이 되고, 교회 또한 새롭게 태어난 가정이 교회를 선익으로 여기기를 바란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회가 교회의 선익(bonum Ecclesiae)의 이러한 상호성을 더욱 올바르게 인정하는 겸손한 태도를 보여준다면, 오늘날 교회는 확실히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교회가 가정에 선익이 되고, 가정은 교회에 선익이 되는 것이다. 주님의 성사적 선물을 보존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부부의 책임인 동시에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책임이기도 하다. 각자는 이 책임을 알맞은 방식으로 져야한다. 혼인 유대 보호에서 점차 커지고 때로는 심각해지는 어려움에 맞서 식별이 필요하다. 이는 부부가 서로에게 게을리 하거나 소홀히 한 것을 이해하고 판단하거나 바로잡고자 공동체의 도움을 받아 서로가 잘잘못을 올바로 살펴보는 것이다.

60. (24) 믿음직한 교사이며 사려 깊은 어머니인 교회는, 세례 받은 이들에게는 성사혼의 유대만이 있기에 그 어떠한 단절도 하느님의 뜻에 어긋난다고 여기지만, 신앙의 길에서 애쓰는 많은 그 자녀들의 나약함도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복음적 이상의 가치를 줄이지 않으면서, 날마다 이루어지는 사람들의 성장이 가능한 단계마다 자비와 인내로 동행해야 합니다. ……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커다란 한계 속에서 내딛는 작은 발걸음을, 큰 어려움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겉보기에만 올바른 생활보다 더 기뻐하실 것이다. 구원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위안과 격려가 모든 사람에게 가닿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저마다의 잘못과 실패를 넘어 모든 사람 안에서 신비롭게 움직입니다”(「복음의 기쁨」, 44항).    

선물과 임무인 가정

61. 신자들이 혼인성사의 중요성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이들을 대하는 태도는 다른 이들을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인간적 우정으로 표현된다. 그들의 근본적 요구에 응답하고, 동시에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증언해 주어야 한다. 그리스도인 혼인의 선익과 가치의 증언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인간이 약하고 죄인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게다가 사람들은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가정이 의무가 아니라 선물이라는 것을, 또한 오늘날에 혼인성사의 결심은 처음부터 자명한 것이 아니라 성숙의 과정이며 도달해야 할 목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온전함에 이르는 도움

62. (25) 사회혼을 한 이들, 이혼하고 재혼한 이들, 또는 동거만 계속하는 이들에 대한 사목적 접근에 관하여, 교회는 이들의 삶 속에 은총이라는 하느님의 교육법을 보여주고 그들이 하느님 계획을 완수하도록 도울 책임이 있다. 교회는 모든 사람을 비추시는 그리스도(요한 1,9; 사목 헌장 22항 참조)의 눈길로, 불완전한 교회 생활을 하는 이들을 사랑으로 바라보며, 이들이 선행을 하고, 사랑으로 서로 돌보며, 자신이 생활하고 일하는 공동체에 봉사하도록 용기를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이 그들의 삶 안에서도 작용하고 있음을 인식한다.

63.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그리스도교 혼인 생활을 하는 가정들이 어려움에 처한 부부들에게 다가가도록 하여 그들을 환대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교회가 별거의 위험에 놓인 부부들과 함께하면, 그들은 혼인 생활의 아름다움과 힘을 재발견할 수 있게 된다. 관계를 고통스럽게 끝낸 이들의 경우, 교회는 그러한 부부들이 어려움에 놓인 때에 함께하여 파괴적인 갈등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고 무엇보다도 그들의 자녀들의 고통을 최소화도록 해야 할 의무를 느낀다.

동거하는 이들이나 사회혼을 한 이들을 점진적으로 받아들이는 프로그램을 교구가 마련하기를 바라는 의견들도 있었다. 그러면 사회혼을 한 이들이 식별의 시간을 가지고 나서 마침내 올바른 정신으로 그리스도교 혼인을 맺으려는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다.

64. (26) 교회는 많은 젊은이들이 혼인 서약을 불신하는 것을 근심스럽게 바라보며, 많은 신자들이 이미 맺은 관계를 쉽사리 끊고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다. 교회에 속한 이러한 신자들에게는 그들이 각자 처한 상황을 적절히 고려하여 너그럽고 용기를 주는 사목적 배려가 필요하다. 세례 받은 젊은이들이 그리스도의 은총과 교회 생활에 온전히 참여할 기회가 주는 도움으로 힘을 얻어, 혼인성사가 그들 사랑의 계획에 마련해 주는 풍요로움 앞에서 주저하지 않는 용기를 내도록 격려해 주어야 한다.

젊은이들과 혼인에 대한 두려움

65. 오늘날 젊은이들은 많은 혼인 실패 사례들을 목격하면서 혼인 계획을 앞두고서 실패할까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 포기와 좌절의 깊은 이유들을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많은 경우, 그 이유는 사실상 목적에 대한 생각과 관련되어 있다. 이 목적에 대하여 많이 생각하고 꿈꾸면서 자신의 능력에 대한 냉정한 평가나 자신의 감정이 지속될 수 없을 것이라는 어쩔 수 없는 의심으로 그 목적이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 것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자신이 여전히 바라고 있는 신의와 안정된 사랑에 대한 갈망에 앞서, 흔히 그것을 유지할 수 없으리라는 두려움과 더 나아가 공포 때문에 혼인을 포기하게 된다. 그러한 어려움은 그 자체로 극복될 수 있는 것임에도 신의와 안정된 사랑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의 증명에 이용된다. 게다가 때로는 혼인과 관련된 사회적 상황과 경제적 문제가 혼인 결심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66. (27) 그러한 의미에서 오늘날 새로운 차원의 가정 사목은 남녀의 사회혼, 관습혼, 또한 [혼인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기는 하지만 동거라는 현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한 결합이 공적인 유대를 통하여 매우 안정되고, 깊은 애정과 자녀에 대한 책임과 시련을 극복하는 힘을 보여 주면 혼인성사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동거는 앞으로 혼인할 생각이 없고 제도적인 관계를 맺으려는 뜻도 없이 이루어진다.   

67. (28) 예수님의 자비로운 시선을 따르는 교회는, 방향을 잃은 이들에게 길을 밝혀주는 횃불이나 폭풍우 속에 놓인 이들에게 빛을 비춰주는 등대의 불빛이 되어, 교회 안에 있는, 사랑에 상처 받고 길 잃은 가장 약한 자녀들을 관심을 가지고 배려하며 동행하여 그들의 신뢰와 희망을 되찾아 주어야 한다.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는 것이 가장 큰 자비임을 인식하며 우리는 동정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자비로운 사랑은 사람들을 이끌고 단결시킬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되게 해주고, 높여주며, 회개로 초대한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간음한 여인을 단죄하지 않으시고 그 여인에게 다시는 죄짓지 말 것을 요구하시는 주님의 태도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요한 8,1-11 참조).

계시된 진리인 자비

68. 교회는 오늘날 가정의 구체적인 상황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가장 고통 받는 가정을 비롯하여 모든 가정이 자비를 필요로 한다. 사실, 자비는 하느님의 주권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 자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사랑인 당신의 본질과 계약에 늘 성실하시다(1요한 4,8 참조). 자비는 하느님의 성실과 본질의 계시인 동시에 그리스도인 정체성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자비는 진리와 분리되지 않는다. 자비는 계시된 진리 그 자체이며, 신앙의 근본 진리인 주님의 강생과 죽음과 부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진리 없는 자비는 아무것도 아니다. 자비는 “예수 그리스도 계시의 핵심”(프란치스코, 칙서 「자비의 얼굴」[Misericordiae Vultus], 25항)이다.


제3부
오늘날 가정의 소명

제1장
 가정과 복음화

가정에 관한 복음을 오늘날의 다양한 상황 안에서 선포하기

69. (29)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베드로와 함께 베드로 아래’(cum Petro et sub Petro) 일치하여 지역 교회들이 다루어야 할 시급한 사목적 문제들을 논의하였다. 새로운 복음화에는 가정에 관한 복음의 선포가 절실히 요구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자비하신 ‘자기 비움’(kenosis)에 충실하여 어머니의 자애로움과 스승의 명석함으로(에페 4,15 참조) 가정에 관한 복음을 선포하도록 부름 받는다. 진리가 인간의 나약한 모습으로 강생한 목적은 그 나약함의 단죄가 아니라 구원이다(요한 3,16-17 참조).

가정 안의 자애 - 하느님의 자애

70. 자애는 기꺼이 주면서 다른 사람에게 사랑 받는다고 느끼는 기쁨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의미한다. 자애는 특히 다른 이의 약점이 공개적으로 드러날 때에, 그 약점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는 가운데 탁월하게 표현된다. 어떤 사람을 존중하며 세심하게 대하는 것은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희망을 불러일으켜서 그가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를 되찾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족 관계 안의 자애는 일상의 내적 갈등과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극복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성덕이다. 이와 관련하여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다음과 같은 성찰을 권유하셨다. “우리 주변에 있는 이들의 어려운 상황과 문제들을 자애롭게 함께 나눌 용기가 우리에게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는 효율적일 수는 있지만 복음의 따스함이 결여된 비인간적인 해결책을 선호합니까? 오늘날 세상은 얼마나 자애를 바라는지요! 하느님의 인내, 하느님의 친밀, 하느님의 자애”(성탄 자정 미사 강론, 2014.12.24.).

71. (30) 하느님의 모든 백성은 저마다 자신의 직무와 은사에 따라 복음화를 실천해야 할 책임이 있다. 부부와 가정, 가정 교회의 기쁜 증언이 없다면 복음 선포가 제대로 이루어져도 오해받거나, 우리 사회의 특징인 말의 홍수에 침몰될 위험이 있다(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교서 「새 천년기」[Novo Millenio Ineunte], 50항 참조). 시노드 교부들은 가톨릭 가정들이 혼인성사의 은총에 힘입어 가정 사목의 엄연한 주체들이 되도록 부름 받았음을 거듭 강조한다.

사목 주체인 가정

72. 교회는 가정 안에 교회에 대한 소속감, 곧 단 한명도 잊히지 않는 ‘우리’라는 느낌을 불어넣어주어야 한다. 모든 이는 자신의 소질을 개발하고 자신의 삶의 계획을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실현하도록 격려되어야 한다. 교회라는 상황 안에 놓인 모든 가정은 다른 가정과의 친교의 기쁨을 재발견하여 사회의 공동선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가정은 사회 관계망과 매체 사용을 통하여 가정을 위한 정치, 경제, 문화를 촉진하게 된다.

복음 가치의 살아있는 증언이 되는 가정들의 소공동체 수립의 기회가 필요하다. 일부 가정들을 준비시키고 훈련시키고 그들에게 권한을 부여하여 다른 가정들을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이끌도록 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만민 선교를 기꺼이 수행하고자 하는 가정을 인정하고 격려하여야 한다. 끝으로 청년 사목을 가정 사목과 연결시키는 것의 중요성도 강조될 필요가 있다.

혼인 전례

73. 약혼한 이들은 혼인 준비를 위하여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약혼한 이들이 속한 공동체에서 거행하는 것이 바람직한 혼인 예식은 그 예식의 합당한 영적 교회적 특성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혼인 예식에 참여하여 성령을 청원하며, 새 가정을 공동체에 받아들여 그 가정이 가정 교회로서 커다란 교회 가정의 일원이 되었음을 느끼도록 하여야 한다.

흔히, 예식 집전자에게는 교회 생활에 거의 참여하지 않거나, 다른 그리스도교 교파나 다른 종교에 속하는 회중 앞에서 말할 기회가 생기게 된다. 그래서 이 예식은 가정에 관한 복음을 선포할 소중한 기회가 되는 것이다. 이 예식에 참여한 가정들에도 하느님께서 주신 신앙과 사랑을 재발견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또한 혼인 예식은 많은 이들을 화해성사의 거행에 초대하는 바람직한 기회가 된다.

하느님의 작품인 가정

74. (31) 은총의 수위성을 강조하고 그에 따라 성령께서 성사를 통하여 주시는 힘을 강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가정에 관한 복음이 “마음과 삶을 가득 채워 주는” 기쁨이라는 것을 체험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죄와 슬픔, 내적 공허와 외로움에서 벗어나게”(「복음의 기쁨」, 1항) 되기 때문이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비추어 볼 때(마태 13,3 참조), 우리의 임무는 씨를 뿌리는 데에 협력하는 것이고, 나머지 일은 하느님께서 마무리하신다. 또한 가정에 관한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가 반대 받는 표적이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75. 가정이 신앙을 증언하고 부부가 자신의 혼인을 소명으로 여길 때에 은총의 수위성이 온전하게 드러난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의견들이 제시되었다. 그리스도인 부부의 신앙 증언을 지원하고 격려한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세례의 은총을 성숙시킬 수 있는 충실한 기회를 마련해준다. 강론과 교리교육에서 상징적이고 경험이 담겨있으며 설득력 있는 표현을 사용한다. 여기에 더해 사목자들을 위한 적절한 회합과 교육 과정도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사목자들은 청중에게 제대로 다가가, 그 청중이 지속적인 회개를 하면서, 성사로 결합된 부부들 한가운데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시기를 청하고 그 현존을 인식하는 법을 배우도록 할 수 있다.

선교적 회개와 쇄신된 언어

76. (32) 그래서 교회 전체의 선교적 회개가 필요하다. 단순히 이론적이고 인간의 현실 문제와 동떨어진 선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신앙의 위기가 혼인과 가정의 위기를 낳아서 결국 부모가 자녀에게 전해주는 신앙이 자주 단절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가정과 혼인을 약화시키는 문화적 관점들은 굳센 신앙 앞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77. (33) 회개가 그 참된 의미를 지니려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선포는 가정에 대한 복음이 인간의 가장 깊은 갈망, 곧 인간 존엄에 대한 응답이며, 상호성, 친교, 출산을 통한 온전한 성취에 대한 응답이라는 것을 체험하게 하여야 한다. 선포는 단순히 어떤 규범을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세속화된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요구에 응답하는 가치들을 제시하는 것이다.

78.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언어로 선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분명하고 환대하며 열려있는 대화를 하여야 한다. 이는 훈계하고 판단하거나 통제하며 교회의 도덕적 가르침을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들이 처한 삶의 상황을 세심히 살피는 것이어야 한다.

많은 이들이 다양한 주제에 관한 교회 교도권을 더 이상 이해하지 않기에, 모든 이, 특히 젊은이들이 가정 안의 사랑의 아름다움을 받아들이고, 헌신, 부부 사랑, 임신과 출산과 같은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도록 돕는 언어가 긴급히 필요하다.

문화적 전달

79. 신앙을 좀 더 잘 전달하기 위하여 조화로운 방식으로 예수님의 복음과 현대인에게 모두 다 충실할 수 있는 문화적 전달이 필요해 보인다. 바오로 6세 복자께서 가르치신 대로 “특히 교회의 목자인 우리에게는 복음화의 내용에 전적으로 충실하면서 현대인에게 가장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복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대담하고 지혜롭게 다시 강구하여야 할 책임이 있다”(교황 권고 「현대의 복음 선교」[Evangelii Nuntiandi], 40항).

오늘날에 특히 가정에 관한 신앙의 진리를 기쁘고 낙관적으로 선포하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또한 오늘날의 생활양식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적절히 다룰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집단을 활용하여야 한다.

가정의 영적 삶의 원천인 하느님 말씀

80. (34) 하느님 말씀은 가정의 삶과 영성의 원천이다. 모든 가정 사목은 기도하며 읽는 교회의 성경 독서를 통하여 그 내적 틀을 갖추고 가정 교회의 구성원들을 길러야 한다. 하느님의 말씀은 개인적 삶에 기쁜 소식이 될 뿐만 아니라 부부와 가정들이 직면하는 여러 도전들에 대한 판단 기준과 식별을 위한 빛이 된다.

81. 다양한 상황에 대한 식별을 요청하는 하느님 말씀에 비추어 사목은 대화에 열려 있고 편견이 없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고려하여야 한다. 특히 교회의 가르침에 온전히 일치하지는 않은 혼인을 하고 그러한 가정에서 살거나 살 가능성이 있는 가톨릭 신자들에 관련하여 그러하다.

다양성의 교향곡

82. (35) 또한 많은 시노드 교부들은 어려움들에 대하여 침묵하지 않고, 다양한 종교들의 경험이 주는 풍요로움에 더욱 긍정적으로 다가갈 것을 강조하였다. 그러한 다양한 종교적 현실과 민족들의 특징을 이루는 많은 문화적 다양성 안에서 먼저 긍정적인 가능성들을 인정하고 나서 이에 비추어 그 한계와 단점들을 평가하여야 한다.

83. 종교적 문화적 다원주의가 현존한다는 사실에서 시노드가 ‘다양성의 교향곡’이라는 시각을 수호하고 증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혼인 사목과 가정 사목 전체에서, 다양한 종교적 문화적 경험을 통해 만나는 것으로 일종의 “복음의 준비”(praeparatio evangelica)가 되는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혼인의 참다운 선익에 대한 의식과 책임의 길을 선택한 이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가정의 증진과 수호를 위한 효과적인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다.

제2장
 가정과 교육

혼인 준비

84. (36) 그리스도교의 혼인은 신앙 여정을 적절히 준비하고 성숙한 식별로 받아들이는 소명인 것으로 문화 전통이나 사회적 법적 요구 사항으로 여겨지면 안 된다. 그러므로 개인과 부부를 이끄는 방법을 찾아서 신앙 내용의 전달이 교회 공동체 전체가 마련해주는 삶의 체험과 연결되게 하여야 한다.

85. 그리스도인 혼인 소명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이 성사 준비, 특히 혼전 교리교육이 반드시 확충되어야 한다. 이는 일반 사목의 주요 부분이지만 흔히 그 내용이 부실하다. 분명하고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제시된 교회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하여 부부가 자기 신앙을 책임 있게 가꾸는 것이 중요하다.

약혼한 이들의 사목 또한 인간의 존엄과 자유와 인권 존중에 관한 복음 메시지를 적절하고 설득력 있게 소개하려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전체 노력에 포함되어야 한다.

86. 현재 진행되고 있는 문화적 변화 안에서 종종 가정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시각에 어긋나는 틀이 강요되지는 않아도 제시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사랑에 대한 갈망을 성적 언어로 적절하게 표현하도록 돕는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훈련 과정이 마련되어야 한다. 흔히 성이 참다운 사랑의 계획과 분리되는 현대의 문화적 사회적 상황에서, 가정은 비록 여전히 가장 뛰어난 교육 환경을 마련해주지만 성교육을 위한 유일한 자리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가정을 돕는 사목에서 개인과 부부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적절한 바른 사목이 필요하다. 여기에서는 특히 사춘기와 청년기에 있는 이들에게 주의를 기울여 그들이 사랑 안에 담긴 성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미래 사제의 양성

87. (37) 여전히 사목 활동의 특징이 되고 있는 개인주의적 관점을 극복하여, 가정에 대한 복음에 비추어 사목 활동이 근본적으로 쇄신되어야 할 필요성이 거듭 제기되었다. 그래서 시노드 교부들은 가정의 참여 제고를 통한 사제, 부제, 교리교사, 여러 사목 일꾼들의 양성 쇄신을 거듭 강조하였다.

88. 사제 성소는 각자의 가정에서 생겨나 그 가정의 신앙 증언으로 자라게 된다. 사제 양성에 가정, 특히 여성이 참여해야 한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신학생이 교육 과정에서 일정 기간 자기 가족과 함께 살며 가정 사목의 경험을 쌓고 가정의 현재 상황을 올바로 인식하는 데에 도움을 받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더 나아가 일부 신학생들은 매우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랐다는 것이 고려되어야 한다. 신학교 안에서 평신도와 가족이 함께하면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하여 사제 후보자들은 서로 다른 소명들이 함께하는 가치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직무 사제 양성에서 정서적 심리적 성숙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또한 관련 교육에 직접 참여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사제와 사목 일꾼의 양성

89. 사제와 사목 일꾼의 평생 교육에서 정서적 심리적 차원의 성숙에 필요한 적절한 수단을 계속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는 그들이 가정 사목을 수행하는 데에 필수적인 것이다. 교구 가정 사목부가 좀 더 효과적인 사목 활동을 하도록 다른 사목 부서들과의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가정과 공공 기관

90. (38) 또한 복음화가 시장 논리의 지나친 강조와 같은, 진정한 가정생활을 방해하여 차별과 빈곤과 소외와 폭력을 낳는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조건들을 숨김없이 고발해야 할 필요성도 강조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 조직들과 대화를 나누고 협력하며, 문화, 사회, 정치 분야에서 활동하는 그리스도인 평신도들을 격려하고 후원하여야 한다.

91. 가정은 “사회의 첫째가는 핵심 세포”(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사도직 활동」[Apostolicam Actuositatem], 11항)이기에 사회생활의 모든 측면을 지원해야 하는 가정의 소명을 재발견하여야 한다. 가정이 협력을 통하여 더욱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도록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기관들과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회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

여러 가지 맥락에서 공공 기관과의 협력이 늘 쉬운 것은 아니다. 사실 많은 기관들이 지닌 가정에 대한 관점은 그리스도교의 시각이나 그 본래의 의미와 일치하지 않는다. 신자들은 종종 그들의 사고방식에 깊은 영향을 주고 이를 바꾸도록 만드는 다양한 인간학적 틀과 접촉하게 된다.

가정 단체와 가톨릭 운동 단체들은 서로 협력하여 사회적 정치적 기구들이 가정의 현실적인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며 그들에게 가정의 안정을 위협하는 관행들을 고발하여야 한다.

가정을 위한 사회적 정치적 노력

92. 그리스도인들은 정책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교회의 사회 교리를 제도권의 논의에 끌어 들여 사회생활과 정치 생활에 관여하여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젊은이들과 사회적 고립이나 배척의 위험에 놓인 가정을 돕는 적절한 프로그램의 개발을 촉진할 수 있다.

여러 국내외적인 상황에서 교회의 「가정 권리 헌장」(Carta dei diritti della famiglia, 1983)을 상기시키고 이것이 국제연합의 「세계 인권 선언」과 맺고 있는 관계를 강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빈곤과 고리 대금의 위험

93. 실업, 고용 불안, 지나치게 많은 자녀, 사회 지원과 보건의 결여, 또는 대출 차단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많은 가정들이 고리 대금의 희생자가 되어 버린다. 이와 관련하여 그러한 가정을 돕는 경제 지원 제도를 수립할 것을 제안한다.

약혼한 이들을 혼인 준비의 길로 인도하기

94. (39) 오늘날 가정이 당면한 도전들과 복잡한 사회 현실은,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모두 힘을 모아 약혼한 이들의 혼인 준비에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을 요구한다. 덕의 중요성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 가운데에서 정결은 인간들 사이의 사랑이 참되게 자라는 데에 매우 소중한 조건이다. 이와 관련하여 시노드 교부들은 공동체 전체의 더욱 적극적인 참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가정의 증언을 도모할 것에 뜻을 같이 하였다. 그리고 세례를 포함한 여러 성사들과 혼인의 연관성을 강조하고, 그리스도교 입문 여정에서 혼인 준비의 근거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교회 생활 참여의 진정한 체험이 되고 가정생활의 다양한 측면들을 깊이 다루는 특별 교육이 혼인 직전 준비를 위하여 필요하다는 것도 강조되었다.

95. 혼인 준비 프로그램의 주제를 확대하여 이 프로그램이 신앙과 사랑의 교육의 길이 되게 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개인과 부부가 자기 소명을 식별할 수 있는 길의 역할을 하여야 한다. 여기에는 청년, 가정, 교리, 운동, 협회와 같은 다양한 분야의 사목 활동의 협력을 통하여 그 효과를 증진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그 길이 좀 더 교회적인 것이 되도록 해준다.

삶의 모든 단계를 포괄하는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폭넓은 차원에서 가정 사목 프로그램의 쇄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여기에는 증언의 체험과 가치도 포함된다. 또한 혼인 준비 과정에는 혼인 전과 초기에 있는 약혼한 이들을 도울 수 있는 기혼자들이 함께 하여 부부의 봉사성을 강조할 수 있다.

신혼 초기의 부부들과 함께하기

96. (40) 신혼 초기는 부부들이 혼인의 도전과 의미를 더 깊이 깨닫는 중요하고 조심스러운 때이다. 그러므로 혼인성사 거행 이후에도 계속하여 그들과 사목적으로 함께해야 할 필요가 있다(「가정 공동체」, 제3부 참조). 이러한 사목에 성숙한 부부들이 함께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본당은 교회의 협회와 운동 단체, 새로운 공동체들이 할 수 있는 협력을 통하여 성숙한 부부들이 젊은 부부들을 도울 수 있는 자리로 여겨진다. 부부들이 자녀를 커다란 선물로 받아들이는 근본적인 자세를 지니게 장려하여야 한다. 가정 영성과 기도, 주일 미사 참석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하고, 부부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영성 생활의 성장을 도모하고 삶의 구체적인 문제들에 관하여 연대성을 강화하도록 독려하여야 한다. 가정을 통한 복음화의 촉진에 전례와 신심 활동, 특히 혼인 기념일에 거행되는 가정을 위한 성찬례가 매우 중요하다고 언급되었다.

97. 혼인 초기에 부부가 자기들끼리만 있으면서 사회적인 고립을 가져오는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이러한 이유로 신혼부부들이 공동체를 가까이 느끼도록 해주어야 한다. 혼인 생활 경험을 함께 나누면 젊은 가정이 혼인의 아름다움과 어려움을 잘 인식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가정이 성숙하기 위해서는 부부들의 관계망이 강화되어야 하고 참다운 결속이 이루어져야 한다. 교회의 운동이나 단체가 주로 이러한 성장과 교육의 계기를 마련해 주기에, 무엇보다도 교구 차원에서 젊은 부부들을 지속적으로 이끌어주는 데에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제3장

가정과 교회의 동반

사회혼 부부나 동거하는 이들의 사목

98. (41)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그리스도인의 혼인을 계속 선포하고 촉진하지만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는 많은 사람들의 상황에 대한 사목적 식별도 권유한다. 혼인에 관한 복음을 온전하게 더욱 잘 받아들이도록 이끌 수 있는 요소들을 그들의 삶 안에서 찾아내기 위하여 그들과 사목적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목자들은 인격적이고 영적인 성장과 복음화를 증진시킬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아내어야 한다. 현대 사목의 새로운 감수성은 사회혼과 [혼인과는] 분명히 다르지만 동거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긍정적 요소들을 파악하는 데에 있다. 우리는 교회의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하면서도 그 메시지에 아직 적합하지 않거나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은 상황들에 존재하는 건설적인 요소들을 지적한다.

99. 혼인성사는, 서로를 받아들이고 생명을 환대하도록 부름 받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참되고 불가 해소적인 결합이기에 인류 가족에게 커다란 축복이 된다. 교회는 모든 상황에서 이러한 은총을 모든 사람에게 선포할 의무와 사명이 있다. 교회는 또한 사회혼이나 동거의 상태로 살아가는 이들이 감추어진 말씀의 씨앗을 점진적으로 발견하는 데에 함께하여 그들이 성사적 결합의 온전함에 이르도록 하여야 한다.

100. (42) 많은 나라들에서 “시험 삼아(ad experimentum) 결합하는 남녀가 점차 증가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들의 결합은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의안집, 81)는 것도 지적되었다. 어떤 나라들에서는 특히 이러한 결합이 집안끼리 합의하여 흔히 여러 단계에 걸쳐 진행되는 전통적인 혼인에서 나타난다. 또 다른 나라들에서는 이미 오래 동거한 다음에 교회의 혼인성사를 요청하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제도와 확고한 혼인 서약을 전반적으로 거부하는 사고방식 때문에 단순히 동거를 선택하지만, 삶의 안정(일자리와 고정 수입)을 이룰 때까지 동거를 지속하려고도 한다. 끝으로, 또 다른 나라들에서는 사실혼이 매우 흔하게 이루어진다. 사람들이 가정과 혼인의 가치를 거부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특히 사회적 조건들 때문에 혼인을 사치로 여기어 물질적 빈곤 때문에 사실혼의 상태로 살게 되기 때문이다.

101. (43) 우리는 이 모든 상황에 건설적으로 대처하여야 한다. 곧 그러한 상황들을 복음에 비추어 충만한 혼인과 가정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로 변화시키려고 노력하여야 하는 것이다. 인내심을 갖고 분별 있게 이러한 상황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함께 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정 복음화의 주체인 참된 그리스도인 가정들의 매력적인 증언이 중요하다.

102. 사회혼이나, 어떤 경우 동거의 선택은 편견이 있거나 성사적 결합을 거부해서가 아니라 문화적이거나 우연한 상황에 따른 것이다. 많은 경우에 동거를 결심하는 것은 안정되고 충만의 관점에 열리고자 하는 관계의 표징이다. 이러한 의지는 지속적이고 신뢰할 수 있으며 생명에 대하여 열린 유대로 변화될 수 있는 것으로, 성사혼의 가능성에 열려 있는 성숙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조건으로 여겨질 수 있다. 성사혼은 도달할 수 있는 선이며 은사로 선포되어야 하는 것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이상이 아니라 혼인생활과 가정생활을 부요하고 강하게 해주는 것이다.

103. 이러한 사목적 요구에 대응하기 위하여 교회 공동체는 특히 지역 차원에서 알맞은 환대 방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 차원의 사목적 관계의 역동성을 통하여 건전한 교육법이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 이러한 교육법은 은총과 존중에서 힘을 얻어 하느님 계획의 충만에 정신과 마음을 점차 열도록 해 준다. 이러한 차원에서 복음의 진리를 삶으로 증언하는 그리스도인 가정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상처 입은 가정 치유하기(별거한 이들, 이혼한 이들, 이혼하고 재혼한 이들, 외부모 가정)

104. (44) 부부 관계에 문제가 있을 때, 교회는 그 부부들을 도우며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과 자비의 사목은 사람들이 다시 일어서서 그들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경험에 비추어 보면, 위기에 처한 혼인 가운데 많은 경우는 적절한 도움과 은총의 화해시키는 힘을 통하여 바람직한 방식으로 극복된다. 가정생활에서 용서할 줄 알고 용서받았다고 느끼는 것은 근본적인 체험이다. 부부가 서로 용서하면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는 사랑을 체험하게 된다(1코린 13,8 참조). 그러나 때로는 하느님의 용서를 받은 이도 새사람이 되도록 해주는 참된 용서의 힘을 지니기 힘들다.

가정 안의 용서

105. 가족 관계의 상황 안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화해는 매일 필요하다. 현재 불화를 일으키는 이유에는 자신이 자란 가정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오해, 고착화된 서로 다른 습관에서 나오는 갈등, 자녀 교육에 관한 의견 차이,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근심, 실업에 따른 갈등이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상대방을 이해하고 서로 용서하려는 의지를 지속적으로 지녀야 한다. 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필요로 하는 기술은 은총의 도움만이 아니라 외부의 도움을 청하는 마음 자세도 필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리스도 공동체는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어야 한다.

배우자의 외도와 같은 가장 고통스러운 경우에는 참되고 적절한 회복이 필요하기에 이에 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깨어진 유대는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혼인 준비 때부터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상처 입은 사람과 가정들을 돌보는 데에는 성령 활동의 중요성과 더불어 경험이 풍부한 사목자가 함께하는 영적 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한다. 사실 교회가 “양심의 빛”이라고 부르는 분이신 성령께서는 인간 “마음의 가장 내밀한 곳”까지 뚫고 들어가 그곳을 채워주신다. 인간은 성령 안에서의 그런 회개를 통해, 자신을 열고 용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생명을 주시는 주님」[Dominum et Vivificantem], 45항 참조).

“자비의 커다란 물결”

106. (45)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서는 과감한 사목적 선택의 필요성이 뚜렷해졌다. 시노드 교부들은 가정에 관한 복음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면서, 별거와 이혼이 언제나 부부 당사자들과 자녀들에게 큰 고통을 주는 상처를 남긴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가정이 약하다는 실제 현실을 반영한 새로운 사목 계획의 수립이 시급하다고 보았다. 시노드 교부들은 별거와 이혼이 자의에 따른 선택이 아니라 흔히 고통스럽게 ‘당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요인들에 따라 그 상황이 구분된다. [그래서] 여기에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제안하신 것처럼 다양한 시각이 필요한 것이다(「가정 공동체」, 84항 참조).

107. 상처 입은 가정들을 보살피고 그 가정들이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경험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근본 원칙에는 모든 이가 동의하였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태도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한편으로 혼인하지 않고 동거하는 이들의 경우에는 그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도록 격려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앞을 바라보며 분노와 실망과 고통과 고독의 감옥에서 떨치고 나와 길을 다시 나설 수 있도록 초대하면서 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확실히 이러한 동반의 기술에는 사려 깊고 관대한 식별과 더불어 구체적으로 개별 상황의 차이를 인식하는 능력도 요구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108. 혼인 실패의 경험은 모든 이에게 늘 좌절을 안겨주는 일이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책임을 깨닫고 신뢰와 희망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 누구나 서로에게 관대하여야 한다. 어떤 경우든 실패한 혼인에 관련된 모든 이(부부와 자녀)가 바른 대접을 받도록 하여야 한다.

교회는 별거하거나 이혼한 부부들에게, 무엇보다도 더 이상 고통을 겪어서는 안 되는 자녀들의 선익을 위하여, 존중과 관대한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도록 권유할 의무가 있다. 혼인 유대를 깬 사람들에 대해서 교회도 이와 같은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느님의 지극히 심오한 신비인 삼위일체의 핵심에서 자비의 커다란 물결이 일어나 끊이지 않고 넘쳐흐른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마시더라도 결코 마르지 않을 샘이다.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언제든 다가갈 수 있다. 하느님 자비는 결코 끝이 없다”(「자비의 얼굴」, 25항).

동반의 기술

109. (46) 무엇보다도 교회는 존경과 사랑으로 모든 가정에 귀를 기울이며,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함께 하신 그리스도처럼 그들과 함께하여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은 이러한 상황에 매우 잘 들어맞는다. “교회는 사제와 수도자와 평신도 들을 모두 이러한 ‘동행의 예술’로 이끌어야 합니다. 이 예술은 우리가 다른 이의 거룩한 땅에서 우리의 신을 벗으라고 가르칩니다(탈출 3,5 참조). 이 동행은 힘차고 꾸준한 발걸음으로 이루어지고 존중과 연민으로 가득 찬 시선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이러한 시선이 치유하고 해방시키며 그리스도인 생활의 성숙을 독려합니다”(「복음의 기쁨」, 169항).
  
110.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함께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시노드 교부들이 언급한 것에 대하여 긍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교회가 가까이에서 가정과 함께한다는 것은 슬기롭고 개별 상황을 고려하는 태도를 지니는 것을 말한다. 이는 때로는 함께 있으면서 조용히 그들에게 귀 기울이고, 때로는 앞장서서 나아갈 길을 가리켜주며, 또한 때로는 뒤에 서서 그들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교회는 이렇게 정성을 다하여 가정과 함께하면서 그들의 기쁨과 희망, 고통과 두려움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111. 공동체 차원이 매우 강조되고 실천되는 운동과 교회 단체가 가정 사목의 이 분야에 가장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또한 사제들이 이러한 위로와 돌봄의 직무 수행을 잘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제와 수도자들이 가정을, 특히 상처 입은 가정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는 전문 기관을 설립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이렇게 하여 그 사제와 수도자들이, 그러한 가정들을 제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늘 되어 있는 것은 아닌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서 그들과 동행하는 데에 헌신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별거하거나 이혼하였으나 혼인 유대에 충실한 이들

112. (47) 별거한 이들, 이혼한 이들, 버림받은 이들과 사목적으로 함께하는 데에는 특별한 식별이 반드시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부당하게 별거나 이혼을 당한 이들, 버림받은 이들, 또는 배우자의 학대로 함께 살 수 없게 된 이들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존중하여야 한다. 불의를 용서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은총은 그 길을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교구에 세워질 특정한 상담 센터를 통한 화해와 중재를 위한 사목 활동이 필요하다. 더불어, 별거나 이혼이라는 상황의 무고한 희생자인 자녀들이 겪게 되는 결과에 올바르게 건설적으로 대처하여야 한다는 것도 강조되었다. 자녀들은 쟁취의 ‘대상물’이 될 수 없으며, 이들이 가정 분열의 상처를 극복하고 가장 평탄하게 성장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떤 경우이든 교회는 이혼의 상황에서 자주 발생하게 되는 불의를 언제나 지적하여야 한다. 외부모 가정과 함께하는 데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되, 특히 가사와 자녀 교육을 홀로 책임져야 하는 여성들을 도와야 한다.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는 하느님

113. 혼인에 실패한 이들을 관대하게 대하는 태도에는 파경을 이끈 다양한 객관적  주관적 요인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혼이라는 비극은 오랜 기간의 갈등의 결과이고, 자녀가 있을 경우에 더 큰 고통이 야기된다는 의견이 많았다. 여기에 지속적이고 심각한 학대로 시달렸던 삶을 더 이상 함께하지 않겠다는 결단을 내렸거나 버려진 배우자에게는 고독이라는 시련이 더해진다. 이러한 상황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특별한 보살핌과 관심이 필요하다. 이 가운데에 특히 고용 불안, 자녀 양육의 부담, 주거 불안정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발생하는 외부모 가정의 경우에 더욱 그러하다.

새로운 관계를 맺지 않고 혼인 유대에 충실히 머물러 있는 이는 교회의 모든 이해와 지원을 받아야 한다. 교회는 그들에게, 누구도 저버리지 않으시고 언제나 힘과 희망을 다시 주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얼굴을 보여주어야 한다.

혼인 무효 선언 소송의 간소화와 무효 선언 소송에서의 신앙의 중요성

114. (48) 많은 시노드 교부들은 혼인 무효 선언 소송이 더 편리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가능하다면 무료로 진행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제안된 의견 가운데에는 두 번에 걸친 혼인 무효 확정 판결 요건 폐지, 교구장 주교 책임의 행정적 결정 기회의 마련, 혼인 무효가 명백한 경우의 약식 절차 진행이 있다. 그러나 일부 시노드 교부들은 이러한 제안들이 신뢰할 만한 판결을 보장하지 못할 수 있다고 보아 반대하였다. 이 모든 경우에서 혼인 유대의 유효성이 타당한지를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강조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제안들에 따르면, 혼인성사의 유효성과 관련하여 혼인할 이들이 지닌 신앙의 역할을 중요하게 여기는 기회가 마련되어야 한다. 다만 여기에서 세례 받은 이들 사이의 모든 혼인은 유효한 성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115. 혼인 무효 선언 소송이 더 편리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가능하다면 무료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비용 문제와 관련하여 교구에 상설 무료 혼인 상담소를 설치하여야 한다는 제안이 있었다. 두 번의 확정 판결의 요건에 관하여, 이를 폐지하되 이때 성사보호관이나 당사자들 가운데 한 편에서 상소할 수 있는 기회는 남겨두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한편 교구장 주교가 자기 관할 구역 안에서 행정적 결정을 내릴 기회를 마련하는 것에 관해서는 의견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문제가 되는 측면을 지적하는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교회법적으로 혼인 무효가 명백한 경우에 약식 절차를 진행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찬성 의견이 많았다.

부부 동의의 유효성과 관련하여 혼인할 이들이 지닌 신앙의 중요성에 대부분 동의하였고, 이를 심화하기 위한 다양한 제안들이 있었다.

전담자의 양성과 법원의 확충

116. (49) 많은 이들이 요청한 혼인 소송 절차 간소화와 관련하여, 먼저 이를 전담하는 성직자와 평신도를 양성하는 것 외에도 교구장 주교의 책임이 강조되어야 한다. 교구장 주교는 자신의 교구에서, 혼인 유효성 관련 당사자들에게 무상으로 조언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상담자들을 임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임무는 유자격자가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혼인의 존엄」, 제113조 1항 참조).

117. 교구마다 가정 사목과 관련하여, 특히 별거하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부들을 위한 정보, 상담, 쟁의 조정을 무료로 지원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렇게 향상된 지원으로 사람들은 혼인의 참다운 유효성의 판결에서, 교회 역사 안의 가장 신뢰할 만한 식별의 길인 법적 절차를 진행하는 데에 도움을 받게 된다. 이와 함께 교회 법원의 확충과 지방 분권화의 강화와 더불어 자격을 갖춘 유능한 인력이 지원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공통된 사목 지침

118. (50) 흔히 혼인의 신의를 증언하며, 이혼하고 나서 재혼하지 않은 이들은 성찬례 때에 그들의 삶의 형태를 지탱해 주는 양식을 찾도록 격려 받아야 된다. 지역 공동체와 목자들은 이들을 돌보며 함께하여야 한다. 특히 그들에게 자녀가 있거나 궁핍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119.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주의를 공통된 사목 지침을 촉진할 필요성과 결부시켜 보아야 한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공통된 사목 지침이 없으면 더 큰 혼란과 분열이 조장되고, 혼인 생활의 파탄을 겪으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쓰라린 고통을 준다. 예를 들어서 별거한 상태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지 않은 일부 신자들이 별거 자체를 죄로 여겨 영성체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또한 이혼하고 사회적으로 재혼하였으나, 어떤 이유에서든 금욕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이 자신의 상황이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는 성사들에 참여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밖에도 불법적인 결합으로 사는 사람들이 내적 법정에서 금욕을 선택하여 추문을 일으키지 않고 성사들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예들은 교회가, 특별한 상황에 있는 그 자녀들이 차별을 느끼지 않도록 확실한 지침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확인해 준다.

이혼하고 사회적으로 재혼한 이들의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으로의 통합

120. (51) 이혼하고 재혼한 이들의 상황에 대해서도 주의 깊은 식별이 필요하고 깊이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들과] 함께하여야 한다. 그들이 차별을 느끼도록 하는 말과 행동을 지양하고 공동체 생활에 참여하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다. 그들을 돌본다고 해서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신앙과 혼인의 불가 해소성에 대한 증언이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사랑이 드러나게 된다.

121. 이혼하고 사회적으로 재혼한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처한 다양한 상황을 고려하여 그들이 그리스도인 공동체 생활에 더 잘 통합되도록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가정 공동체」 84항의 권고 내용을 보존하면서 전례와 사목, 교육과 자선 분야에서 지금까지의 관행적인 배척을 재검토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러한 신자들이 교회 밖에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러한 배척이 적절한지에 대하여 성찰해 보자는 의견이 있었다. 더욱이 이들을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으로 더 잘 통합하기 위해서는, 자녀 양육에서 부모의 역할이 대체될 수 없는 것이므로 이들 자녀의 최선의 이익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혼하고 사회적으로 재혼한 이들을 사목적으로 통합하기 위해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과 새로운 결합을 맺은 부부들의 신앙생활에 대한 사목자의 적절한 식별이 선행되어야 하며, 여기에는 이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관한 그리스도 공동체의 공감대 형성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점진성의 원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며 양심의 성숙을 존중하여야 한다(「가정 공동체」, 34항 참조).

참회의 길

122. (52) 이혼하고 재혼한 이들이 고해성사와 성찬례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도 검토되었다. 여러 시노드 교부들은 성찬례와 교회의 친교에 참여하는 것이 혼인의 불가 해소성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과 필연적 관계를 맺고 있기에 기존의 원칙을 고수하였다. 다른 시노드 교부들은, 성찬 식탁에 그들을 일괄적으로 초대하지는 않더라도 특정한 경우에는 엄밀한 조건 아래에서 받아들이자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무엇보다도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경우와 부당한 고통을 당해야 하는 자녀들에 대한 윤리적 의무를 고려할 때 그러하다고 보았다. [그러한 이들이] 성사를 받으려면 먼저 교구장 주교의 책임 아래 참회의 여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이 문제는 죄의 객관적 상황과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는 상황을 구분해 보면서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떤 행동에 대한 인책성과 책임은” 여러 가지 “정신적 사회적인 요인들 때문에 줄어들거나 없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735항).

123. 위에서 언급한 문제를 다루기 위하여 이혼하고 사회적으로 재혼하여 돌이킬 수 없는 새로운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주교의 권한으로 화해나 참회의 길을 가도록 하자는 데에 동의하는 의견이 있었다. 「가정 공동체」 84항을 참조하여 혼인의 실패와 그에  따른 상처를 인식하는 과정이 제안되었다. 여기에는 참회, 혼인 무효 가능성의 검토,  영적 친교를 위한 노력, 금욕 생활의 결심이 있다.

담당 사제가 이끄는 참회의 길이 실패 이후의 상황 파악과 새 출발의 과정이라고 이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 과정을 통하여 당사자들은 자신의 상황에 대하여 솔직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제는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맺거나 풀어줄 수 있는 권한을 상황에 알맞게 사용하기 위하여 자신의 판단력을 성숙시킬 수 있게 된다.

또한 당사자 양편의 죄와 윤리적 과실의 객관적 상황을 철저히 검토하기 위하여 신앙교리성의 ‘이혼한 뒤 재혼한 신자들의 영성체에 관하여 가톨릭 교회의 주교들에게 보낸 서한’(1994.9.14.)과 ‘교황청 교회법해석평의회의 선언’(2000.6.24.)을 참조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교회 공동체에 영적으로 참여하기
  
124. (53) 일부 시노드 교부들은 이혼하고 나서 재혼하거나 동거하는 이들이 영적 친교를 풍요롭게 해 줄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다른 시노드 교부들은, 그런데도 그들이 그러한 성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래서 이혼하고 나서 재혼하거나 동거하는 경우의 특성과 이 경우가 혼인 신학과 맺는 관계를 밝히기 위하여 이 주제를 더 깊이 연구해야 한다는 요청이 있었다.

125. 세례로 시작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교회의 길은 이혼하고 나서 사회적으로 재혼한 이들에게도 지속적인 회개를 통하여 단계적으로 열려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그들을 은총으로 교회 공동체 안에 머물도록 해 주시는 주 예수님께 그들의 삶을 일치시키도록 여러 가지 방식으로 초대된다. 「가정 공동체」 84항이 권고하는 대로 그들이 교회생활에 참여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여기에는 하느님 말씀을 듣고 미사성제에 참여하며 기도에 항구하고 사랑의 사업과 정의를 위한 공동체의 노력에 기여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에 따라 자녀들을 키우며 참회의 정신과 실천을 연마하는 것이 있다. 이 모든 일은 교회의 기도와 환대하는 증언으로 지지되어야 한다. 이러한 참여의 열매는 전체 공동체와 함께하는 신자들의 친교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하나가 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회개와 은총의 상태를 전제로 하는 영적 친교는 성사적 친교와 결부되어 있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혼종혼과 종교간 혼인

126. (54) 시노드 교부들은 혼종혼과 관련된 문제를 되풀이하여 언급하였다. 정교회들의 혼인법이 다양하여 어느 모로 문제가 있으며, 이는 교회 일치의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종교 간 혼인에는 종교간 대화가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다.

127. 혼종혼과 종교간 혼인에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 여러 가지 중요한 측면들이 있다. 이는 법적 차원이라기보다는 사목적 차원의 문제다. 예를 들어 자녀의 종교 교육, 다른 그리스도교 교파에서 세례 받은 이와의 혼종혼의 경우 그 배우자의 전례 생활 참여, 다른 종교를 믿는 배우자나 하느님을 찾고 있는 비신자인 배우자와의 영적 체험 공유와 같은 문제들이 있다. 그러므로 바람직한 행동 규정을 마련하여 배우자 서로가 신앙의 길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신앙의 차이를 건설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그러한 혼인을 한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혼인 이전 시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128. 혼종혼을 ‘심각한 문제’의 경우로 여겨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 경우에 가톨릭 교회와 완전한 친교를 이루지 않았으나 가톨릭 교회의 성찬례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는 공동체에서 세례 받은 이들은 그들의 목자가 없는 경우에 이 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요한 바오로 2세,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Ecclesia de Eucharistia], 45-46항;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 「교회 일치 운동의 원칙과 규범의 적용에 관한 지침서」[Directory for the Application of Principles and Norms on Ecumenism], 1993.3.25., 122-128항 참조).

정교회 전통의 고유성

129. 정교회의 혼인 관행에 대하여 언급하려면 우리와는 다른 그 교회 고유의 혼인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고려하여한다. 정교회에서 재혼을 축복하는 경우는 ‘교회법의 상황에 따른 적용’(oikonomia)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는 실패한 혼인에 대한 사목적 관용으로 이해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적인 일부일처제라는 이상이나 혼인의 단일성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이 축복은 본디 성령의 은총을 간구하는 참회 예식으로, 이를 통하여 성령께서 인간의 나약함을 치유해 주시고 참회자를 교회 공동체 안으로 이끌어 주시도록 하는 것이다.

동성애 성향을 지닌 이들에 대한 사목적 관심

130. (55) 일부 가정들은 동성애 성향을 지닌 이를 가족으로 둔 경험이 있다. 이에 관련하여, 시노드 교부들은 “동성애자들의 결합을 어떤 식으로든 혼인과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과 유사하거나 조금이라도 비슷하다고 여길 수 있는 근거는 전혀 없다.”라는 교회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사목적 관심이 적절한 것인가에 대하여 자문하였다. “그렇지만, 동성애 성향을 가진 남자와 여자들을 우리는 ‘존중하고 동정하며 친절하게 대하여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에게 어떤 부당한 차별의 기미라도 보여서는 안 된다’”(교황청 신앙교리성, 「동성애자 결합의 합법화 제안에 관한 고찰」, [Considerations regarding Proposals to Give Legal Recognition to Unions between Homosexual Persons], 4항).

131. 성적 성향과 상관없이 인간은 누구나 그의 존엄을 존중받고,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친절하고 사려 깊은 환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의견이 있었다. 동성애 성향이 있는 사람과 그 가족을 특별히 배려하는 동행의 사목 계획을 교구에서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32. (56) 이러한 문제로 교회의 목자들이 압력을 받거나 국제기구들이 동성애자들의 ‘혼인’을 제도화하는 법률의 제정을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경제 원조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은 전혀 용납될 수 없다.

제4장
가정, 출산, 양육

생명의 전달과 출산 감소의 문제

133. (57) 출산을 개인 또는 부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계획으로 격하시키는 사고방식이 확산되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때로는 경제적 요인들이 결정적 영향을 미쳐 출산율을 크게 감소시키고, 이는 사회 조직을 약화시키며 세대 간의 관계를 위협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불확실하게 만든다. 생명에 대한 개방성은 부부애의 본질적 조건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회는 장애가 있는 자녀들을 받아들이고 교육하며 사랑으로 감싸는 가정들을 지지한다.

134. 점점 더 확산되고 있는 죽음의 문화에 맞서 생명의 문화를 촉진하는 교회 교도권의 문서를 계속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인간의 가임과 불임을 연구하는 연구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견도 있었다. 이 연구소에서는 가톨릭 생명윤리학자와 생의학 기술 분야의 과학자 사이의 대화가 촉진된다. 가정 사목에서는 생의학 분야의 가톨릭 전문가들이 혼인 준비와 기혼 부부의 지도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135. 정치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출산 장려와 생명 수호를 위한 법을 제정할 때에 바르고 책임 있는 선택을 하여야 한다는 강력한 요청도 있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교회의 목소리가 사회적 정치적 차원에서 들리는 가운데, 임신[受精]에서부터 자연사에 이르는 인간 생명의 존중을 증진시키고자 국제기구와 정책 결정권자들과 의견 조율을 하기 위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장애아 가정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필요하다.

책임 있는 부모 되기

136. (58) 또한 여기에서는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며 인간 사랑의 온전한 실천에 필요한 생명에 대한 무조건적 개방성의 아름다움과 진리에 대한 설명에서 시작하여야 한다. 이를 기초로 하여 책임 있는 출산을 위한 자연적인 방법에 관한 적절한 가르침을 마련할 수 있고 부부가 책임 있는 출산과 더불어 모든 차원에서 조화롭고 의식 있는 친교를 이루도록 해준다. 출산 조절법에 대한 윤리적 평가에서 인간 존엄성의 존중을 강조한 복자 바오로 6세 교황님의 회칙 「인간 생명」(Humanae Vitae)의 메시지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고아와 버려진 아이들의 입양은 가정 사도직의 한 형태로(평신도 교령 11항 참조) 교도권이 여러 차례 요청하고 권유한 것이다(「가정 공동체」, 41항; 「생명의 복음」, 93항 참조). 불임이 아닌 경우에도 입양과 위탁 부모가 되는 것은 부부의 삶에서 특별한 출산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은 가정의 사랑을 훌륭하게 드러내는 표지가 되고, 자신의 신앙을 증언하는 기회가 되며, 자녀로서의 존엄성을 빼앗긴 어린이들에게 그 존엄성을 되찾아 주는 기회가 된다.

137. 풍부한 지혜를 담고 있는 회칙 「인간 생명」은 그것이 다루고 있는 문제에 관하여 결코 떼어 놓을 수 없는 중요한 두 가지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도록 길러진 인간의 마음에 울려 퍼지는 하느님의 목소리인 양심의 역할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출산을 그에 관한 하느님의 계획에 거슬러 마음대로 결정해도 된다고 여기는 것을 금지하는 객관적 도덕률이 있다. 인간의 주관적인 점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쉽게 이기적인 결정을 내리게 될 위험이 있다. 그와 반대되는 점을 너무 강조하면 도덕률이 견딜 수 없는 부담이며 인간의 요구와 능력에 맞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훌륭한 영적 지도자의 도움으로 이 두 가지의 조화를 이루는 혼인한 이들은 가장 인간적이면서 하느님의 뜻에도 맞갖은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입양과 위탁 부모 되기

138. 버려진 많은 아이들이 가정 안에서 살도록 하기 위하여 입양과 위탁 부모 되기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여기에서 자녀 양육은 출산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남자와 여자가 함께 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또한 양육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맺는 부부 사랑을 전제로 한다. 이 사랑은 자녀를 온전하게 키우는 데에 필수불가결한 바탕이 된다.

마치 아이가 자신의 욕망의 확장이나 되는 듯이 때로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자신을 위하여’ 아이를 갖는 세태에 맞서, 올바른 입양과 위탁 부모 되기는 부모가 되는 일과 자녀가 되는 일의 중요한 측면을 드러낸다. 이는 혼인 가정에서든 입양 가정에서든 위탁 가정에서든 아이는 ‘독립된 존재’이고 환대와 사랑과 보호를 받아야 하며, 단순히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인식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면 입양과 위탁 부모 되기는 바람직한 것이 된다.

여기에서 출발하여 혼인과 가정의 신학은 입양과 위탁 부모 되기를 중요하게 여기고 더 깊이 다루어야 한다.

알 수 없는 신비인 인간 생명

139. (59) 부부의 유대에서도 상대방을 더 깊이 받아들이고 자신을 더 온전히 내어주는 애정을 성숙에 이르는 길로 실천하도록 도와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부부 생활에 힘을 보태주는 교육 과정을 마련해주고, 자신의 삶의 증언을 통하여 그 부부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평신도들의 중요성도 강조되어야 한다. 진실한 깊은 사랑의 모범은 우리를 초월하는 신비의 체험에 큰 도움이 된다. 이 사랑은 다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지니고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성숙해지며 출산에 실제로 열려 있다.

140.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초월적인 신비이다. 따라서 생명은 그 시작에 있든 끝에 있든 결코 ‘버려져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서 인간 생명의 시작과 끝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인간을 사용하다가 그냥 버리는 소모품처럼 여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버리는’ 문화를 만들어 왔고 이는 지금도 확산되고 있다”(「복음의 기쁨」, 53항). 이러한 점에서 가정이 사회 전체의 도움을 받아 수행하여야 하는 일에는 태아를 환대하고 삶의 마지막 단계에 있는 이들을 돌보는 것이 있다.

141. 낙태의 비극과 관련하여, 교회는 무엇보다도 인간 생명의 신성하고 침해 받을 수 없는 특성을 단언하고, 생명을 위하여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교회는 그 기관들을 통하여 임산부 상담을 하고, 어린 미혼모들을 지원하며, 버림받은 어린이들을 도와주고, 유산으로 고통을 겪은 이들과 함께한다. 교회는 의료 기관 종사자들에게 양심적으로 거부하여야 하는 도덕적 의무를 상기시켜 주어야 한다.

또한 교회는 자연사의 권리를 단언하고 과도한 의료행위나 안락사를 지양하여야 할 필요성을 강력하게 느끼며, 노인을 돌보고 장애인들을 보호하며, 말기 환자를 도와주고 임종하는 이들을 위로한다.

교육 문제와 복음화에서 가정의 역할

142. (60) 교육은 분명히 오늘날 가정들이 직면하고 있는 근본적 문제에 속하며 현대의 문화적 현실과 대중매체의 강력한 영향 때문에 더 어렵고 복잡한 것이 되었다. 일상생활에서 성장의 자리이며 삶의 모습을 갖추어주는 덕들을 구체적이며 실존적으로 전달하는 자리가 되는 가정의 요구와 기대를 적절하게 고려하여야 한다. 이는 부모들이 자신의 신념에 따라 자녀들의 교육 방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143. 아이를 기르는 데에 으뜸가는 학교는 가정임을 강조하는 데에 모두 동의하였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가정의 이러한 대체할 수 없는 교육적 역할을 지원하고 보조한다. 부모 교육과 가정들 사이의 경험 교류를 도모하기 위한 만남의 자리와 시간을 마련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는 요청이 많았다. 부모가 자녀들의 첫째가는 교육자이며 신앙을 증언하는 이들로서 자녀들의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 준비 과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144. 다양한 문화에서 어른은 가정 안의 대체할 수 없는 교육적 역할을 한다. 그러나 여러 가지 상황에서 가정을 파고드는 매체들과 다른 이들에게 교육적 역할을 떠넘기려는 경향으로 부모의 역할이 점점 약화되고 있는 것이 목격되고 있다. 이에 교회는 가정들이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 교육과 인성 교육에 주의를 기울이고 책임을 지도록 격려하고 지원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145. (61) 교회는 그리스도교 입문에서 시작하여 환대하는 공동체로 나아가며 가정을 지원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오늘날 교육과 관련된 일상적 상황 뿐 아니라 복잡한 상황에 놓인 부모들을 도와줄 것을 요청받는다. 교회는 어린이와 젊은이들과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함께하여, 그들이 복음의 빛에 비추어 살 수 있도록 삶의 포괄적인 의미로 이끌며, 결단과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자애와 자비와 모성애로 인성과 생명에 대한 갈망을 채울 수 있으시기에 가정들과 그리스도인 백성이 그분께 간청을 드린다. 사목과 성모 신심은 가정에 관한 복음을 선포하기 위한 적절한 출발점이다.

146. 그리스도인 가정은 혼인 예식 때 받은 의무를 바탕으로 자녀에게 자기의 신앙을 물려주어야 한다. 이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도움을 받아 가정생활의 모든 단계에서 실천되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자녀들의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 준비 과정은 부모에게도 자신의 신앙을 재발견할 매우 소중한 기회가 된다. 또한 이를 통하여 부모는 자신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소명의 근본으로 돌아가 하느님 안에서 혼인성사를 통하여 축복받은 그들 사랑의 원천을 인식하게 된다.

신앙과 종교적 전통과 관행의 전수에서 조부모들의 역할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조부모들은 지혜로운 충고, 기도와 모범으로 집안에서 대체할 수 없는 사도가 된다. 주일 전례 참여, 하느님 말씀 경청, 성사 생활, 사랑의 실천은 부모가 자녀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명확하고 믿을 만한 증언을 하는 것이다.

결론

147. 이 의안집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사목적 독창성으로 소집하신 두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총회들 사이의 여정의 결실이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과 복자 바오로 6세 교황의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설립 50주년을 맞이하여 1년 사이에 동일한 주제에 관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총회를 두 차례 소집하셨다. 전체 교회는 2014년 가을에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3차 임시 총회가 개최로 “가정 사목과 복음화”에 대하여 성찰하였고, 2015년 10월에 열리게 될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4차 정기 총회에서는 “교회와 현대 세계에서 가정의 소명과 사명”에 대하여 성찰하도록 부름 받았다. 또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4차 정기 총회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선포하신 자비의 희년과 연계하여 개최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비의 희년은 2015년 12월 8일에 시작된다.

이번에도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에 들어온 방대한 양의 답변과 의견들은 하느님 백성의 모든 지체의 특별한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를 보여준다. 이 문서는 모든 대륙에서 온 풍부한 자료들을 다 담고 있지는 못하지만, 가정이라는 중요한 주제에 대한 전체 교회의 인식과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우리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4차 정기 총회를 “우리에게 가정의 소명과 사명을 다시 발견하라고 재촉하시는”(프란치스코, 2014년 12월 17일 수요 일반 알현) 나자렛의 성가정의 예수님과 마리아님 그리고 요셉께 맡겨 드린다.

성가정에 드리는 기도

예수, 마리아, 요셉이시여,
당신들 안에서 우리는
참사랑의 빛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당신들을 향합니다.

나자렛의 성가정이여,
우리 가정도
친교와 기도의 자리,
복음의 참된 학교,
작은 가정 교회가 되게 하여 주소서.

나자렛의 성가정이여,
다시는 가정들이
폭력과 거부와 분열을 겪지 않게 하여 주소서.
상처받거나 걸려 넘어진 모든 이가
어서 빨리 위안과 치유를 찾게 하여 주소서.

나자렛의 성가정이여,
다가오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서
가정의 거룩함과 불가침성,
하느님 계획 안에 그 아름다움이 있음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소서.

예수, 마리아, 요셉이시여,
우리의 기도를 자비로이 들어주소서.

아멘.

<원문: SYNOD OF BISHOPS XIV ORDINARY GENERAL ASSEMBLY, THE VOCATION AND MISSION OF THE FAMILY IN THE CHURCH AND THE CONTEMPORARY WORLD INSTRUMENTUM LABORIS, VATICAN CITY, 2015, 독일어와 이탈리아어 판도 참조>

영어: http://www.vatican.va/roman_curia/synod/documents/rc_synod_doc_20150623_instrumentum-xiv-assembly_en.html
독일어: http://www.vatican.va/roman_curia/synod/documents/rc_synod_doc_20150623_instrumentum-xiv-assembly_ge.html
이탈리아어: http://www.vatican.va/roman_curia/synod/documents/rc_synod_doc_20150623_instrumentum-xiv-assembly_it.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