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주교회의 문헌
2003-07-25 00:00
153
[일본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주교위원회] 우리는 옳은 길을 가고 있는가? (2003년 평화 기간에 즈음하여)



일본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주교위원회
(2003년 7월 25일)

 

우리는 옳은 길을 가고 있는가?
(2003년 평화 기간에 즈음하여)

 

1981년 히로시마를 방문하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전쟁은 인간의 작품”이라고 단언하시며 세계 평화를 촉구하셨습니다. 이에 부응하여 일본 주교들은 8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흘 동안을 이른바 ‘평화 기간’으로 정하였습니다. 지난 22년 동안 일본 교회는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고 일해 왔습니다. 냉전이 끝나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평화에 대한 인류의 바람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9·11 테러 사건으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일본에서도 일본의 평화 헌법과 거리가 먼 운동이 가속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중대한 변화의 갈림길에 서 있는 우리는 일본 국민으로서 또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이 방향으로 나아가도 좋을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목숨까지 바치시며 가르쳐 주신 ‘평화와 사랑’의 길을 따르고 있습니까? 올해에도 ‘평화 기간’을 맞이하여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의지하여 다시 한 번 기도 중에 간청드립니다. “주님, 저희에게 참된 평화의 길을 보여 주소서.”


지금, 바로 지금 우리는 ‘우리 시대의 징표’를 식별하여야 한다

일본 정부는 돌연 정책을 바꾸고 있다

일본 정부는 평화에 등을 돌린 채 자위대를 해외에도 파견할 수 있는 상비군으로 전환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전후의 평화 헌법이 요구한 것과 지금까지 추구해 왔던 정책에 정반대되는 정책입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우리의 평화 헌법을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폐기할 것인지를 선택하도록 촉구받고 있습니다.
일본 사회주교위원회는 교황 성하의 방일에 즈음하여 ‘평화와 일본의 현대 가톨릭 교회’라는 제목의 메시지를 발표하고, 12면에서 “헌법 제9조는 우리 시대의 징표이다.”라고 선언하였습니다. 비상 대책법과 이라크 부흥 지원 특별법 등 헌법의 정신에서 벗어나는 법률들이 최근에 계속 제정되어 가는 상황에서, 우리는 헌법 제9조야말로 여전히 일본 평화 헌법의 핵심 원칙이며, ‘우리 시대의 징표’임을 재확인하고자 합니다.

우리 시대의 징표: ‘보상과 화해에 이르는 길’

우리 시대의 가장 명백한 징표는 ‘보상과 화해에 이르는 길’이다

중일 전쟁에서 태평양 전쟁에 이르는 15년에 걸친 일련의 전쟁을 되돌아볼 때, 일본은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의 무수한 전쟁 희생자들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후에 일본이 보상을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일본이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평화를 이룩하고자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지켜 나가는 것이야말로 전쟁 희생자들에 대한 진정한 보상입니다. 메시지 안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일본 헌법의 전문을 자세히 읽어 보면, 우리는 이 헌법이 전쟁에서 얻은 매우 귀중한 보화이며, 지난 세계 대전 중에 해외에서나 국내에서 생명을 잃은 무수한 희생자들에게 보상을 하는 유일한 길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일본 헌법이야말로 우리가 전쟁의 죄과에 대한 책임을 짐으로써, 희생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보상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11면).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들의 위령비에는 “우리는 죄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니, 모든 영혼은 평안히 잠드소서.”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원자 폭탄이라고 하는 끔찍하고 무차별적인 대량 살상 병기를 투하한 직접적인 책임은 미국에게 있지만 “우리는 죄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니`……`”라는 비문의 선언은 우리에게 적용되는 말이 아닐까요? 우리 역시 전쟁을 촉발하고 일으킨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희생을 통하여 인류에게 용서와 화해를 가져다주셨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일본이 전쟁을 포기하고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지속적으로 일하는 것이야말로 과거에 대해 보상하고, 동시에 일본이 상처를 입혔던 사람들과 상호 진정한 화해를 이루는 길임을 확신합니다.

또 다른 표징: ‘참된 평화에 이르는 길’

우리 시대의 두 번째 표징은 참된 평화에 이르는 길이다

정치학자 더글라스 루미스는 20세기에 국가의 ‘교전권’이라는 기치 아래 전쟁에서 싸우다 죽은 사람은 1억 5천만 명에 이르며, 희생자의 절반 이상이 자국민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국가가 무장을 하고 전쟁권을 허락한다 해서 안전할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헌법 제9조를 선택함으로써 일본이 자위권을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군사력을 갖지 않음으로써, 또한 무력 행사를 하지 않고 국제 분쟁을 해결하고자 노력하겠다는 서약을 함으로써, 일본은 자위권을 행사한 것입니다. 메시지에서 말하듯이(12면) “작은 나라라 하더라도 한 나라가 전쟁을 포기하고 군비를 버리는 것은 세계 평화와 세계 평화 건설에 이바지하는 것이고, 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큰 가치를 지니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의 대국들은 무력으로 평화를 이루고자 합니다. 그리고 일본도 어느 사이에 거기에 가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군사력이 정말로 국가 간에 평화를 이룰 수 있습니까? 아시아의 국가들은 현재의 일본의 군사화를 경계하며 불신감을 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불신감은 분쟁의 토양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칼을 도로 칼집에 꽂아라.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하는 법이다.”(마태 26,52)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깊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칼이 아니라 상호 신뢰를 키움으로써 평화를 이룩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도 복음서가 우리에게 재촉하는 길입니다.
한 외국의 민간 의료 단체가 이라크에 갔을 때, 이라크 국민들이 나서서 그들을 보호하였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기 직전, 일본은 그 공격에 찬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일본은 약속대로, 자위대복을 입고 무기를 지참한 대원들을 이라크에 파견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갈래 다른 길을 봅니다. 이 두 단체는 모두 ‘국제 평화에 이바지한다’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각 단체의 행동은 서로 다른 ‘길’을 상징합니다. 일본은 민간 의료 단체의 ‘길’을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2003년 ‘평화 기간’을 앞두고, 우리 모두 주님께서 우리에게 걸어야 할 길을 가르쳐 주시며, 평화의 사명을 수행하는 데에 필요한 확신과 용기를 주시도록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기도드립시다.

 

2003년 7월 25일

일본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주교위원회
위원장 오카다 타케오 대주교
타니 다이지 주교
노무라 준이치 주교
이케나가 준 대주교
마츠우라 고로우 주교
미야하라 료지 주교

 

<원문 Episcopal Commission for Social Issues, Are We Following the Right Path? On the Occasion of the Peace Poriod, 2003., 2003.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