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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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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10차 정기 총회 최종 문서
  • 발표일 : 2012.12.10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10차 정기 총회 최종 문서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설립 40주년: 아시아의 도전에 대응하는
새로운 복음화

(FABC at Forty Years: Responding to the Challenges of Asia
A New Evangelization)
베트남 쑤안록과 호치민 시, 2012.12.10-16.

서론

1. 창조하시며 새롭게 하시는 하느님의 영께서는 한 처음부터 오늘날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로운 방식으로 아시아 대륙 위에 머무시며 아시아 사람들과 문화 안에서 계속 활동하고 계신다. 수십억의 아시아인들은 마음 깊은 곳의 넘치는 기대와 활력과 힘으로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분야에서 자기 정체성과 자유로운 발전의 자리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아시아 대륙은 성령 안에서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는 희망과 기쁨을 체험하고 있다. 1)

2.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공식 설립 4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 아시아 주교들은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이 아름다운 나라 베트남에 함께 모였다. 1972년에 성좌는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의 정관을 승인하였다. 올해 우리의 모임은 커다란 기쁨과 경축과 감사로 넘쳤다. 또한 우리는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 새로운 복음화의 관점에서 우리의 신앙을 더욱 깊게 하기 위하여 선포하신 신앙의 해(2012년 10월 11일부터 2013년 11월 24일까지) 2) 를 거행하며 더욱 커다란 은총을 받았다. 더 나아가 올해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 개막 50주년과 『가톨릭 교회 교리서』 발행 20주년을 기념하게 된 것 또한 아시아의 상황에서 우리의 신앙을 실천하고 거행하고 선포하고 증언하라는 새롭게 울려 퍼지는 소명을 제기하는 섭리적 사건들이다.

3. 우리는 또한 하느님께서 아시아 교회에 베푸시는 은총에 깊이 감사드리고, 새롭게 해 주시는 성령께 귀를 기울이며, 우리가 당면한 사목적 상황을 식별하기 위하여 여기에 함께 모였다. 지역 교회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하느님의 은총을 통하여 더욱 깊은 신앙으로 확신과 용기를 가지고 아시아의 상황에 나타나고 있는 도전들에 대응하기 위하여 함께 모였다. 원대한 희망을 품은 우리는 아시아 교회의 미래를 하느님의 손에 맡겨드린다.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콜로 3,17).

가. 기억, 우리는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4.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면서, 그 동안 우리가 이룬 성취에 기뻐하며 주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또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성령께서 놀라운 방식으로 타오르게 해 주신 특별한 쇄신의 불꽃에 대해서도 감사드린다. 새롭게 하여 주시는 성령께서는 공의회를 통하여 교회 전체에 활기와 열정을 다시 불어 넣어 주시어 교회가 지혜와 용기와 희망으로 세상을 마주하도록 하여 주셨다. 성령께서는 아시아의 교회에 커다란 힘을 불어 넣어 주셨다. 공의회의 열정적인 전망은 오늘날에도 아시아 교회 쇄신의 촉매 역할을 지속하고 있다. 여기에는 하느님 백성, 하느님 나라, 통합적 복음화, 친교, 공동책임, 단체 정신, 참여, 대화, 전례 쇄신, 사제와 수도자 쇄신, 현대 사회 안의 참여가 있다. 사실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가 처음으로 열린 것은 1974년 복음화에 관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정기 총회

5.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정기 총회가 지난 아홉 차례에 걸쳐 아시아 지역 교회의 쇄신에 관한 주요 주제를 다룬 것에 대하여 주님께 감사드린다. 1974년 타이완에서 개최된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1차 정기 총회에서 아시아 주교들은 아시아 인구의 3% 밖에 안 되는 작은 양떼에 불과한 교회가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더욱 효과적이고 확실하게 선포하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노력하였다. 하느님의 영의 이끄심으로 주교들은 아시아에 만연한 세 가지 중요한 사회 현상을 확인하였다. 그것은 많은 아시아인들의 대량 빈곤, 아시아의 고대 문화의 풍부한 다양성, 종교와 철학의 전통이다. 아시아 주교들은 살아 있는 삼중 대화를 통한 복음화의 전망으로 응답하였다. 여기에는 아시아의 빈민과 나누는 대화(완전한 해방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선택), 그들의 문화와 나누는 대화(토착화), 그들의 종교와 철학의 전통과 나누는 대화(종교간 대화)가 있다. 주교들은 자기 백성의 문화 안에 구체화되고 굳건하게 뿌리를 내린 지역 교회가 선교 활동의 주체임을 강조하였다. 지역 교회는 그 백성들의 장단점을 그리스도의 치유와 구원의 은총에 비추어 받아들였다. 3)

6. 그 이후에 개최된 정기 총회들에서 주교들은 교회가 신빙성 있는 통합적 복음화에 필요한 내적 요건들을 검토하였고 교회 생활 자체이며 그 전체가 하느님의 영을 통하여 활력을 얻는 기도와 관상의 공동체인 교회의 본질을 탐구하였다.4) 주교들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일치한 신앙 공동체인 교회, 근본적으로 참여와 공동 책임을 특징으로 하는 공동체들의 친교인 교회를 연구하였다.5) 주교들은 교회 안에서 필수적인 평신도들의 복음화 역할, 특히 그들에게 고유한 넓은 세속 분야에서의 필수적인 역할을 식별하였다. 그리고 주교들은 교회의 건설과 아시아 사회의 변혁을 위하여 평신도들의 세례 은사의 활성화를 촉구하고 이를 위하여 노력을 기울였다. 6) 주교들은 제삼천년기에 접어들어 선교의 요구는 늘었으나 선교 의식은 줄어들고 있음을 자각하여 복음화에서 예수님께서 중심이 되심을 다시 한 번 확실히 강조하였다. 주교들은 주 예수님의 명령이며 신앙 선물의 필연적인 귀결인 선교의 정당성을 재확인하여 선교 정신에 강한 힘을 불어 넣고 대화가 아시아 선교의 방법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였다. 7) 그럼에도 주교들은 세상의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선포가 여전히 복음화의 핵심임을 강조하였다. 이는 아시아 교회가 양보할 수 없는 것으로 내세우는 신앙적 확신이다.

7. 하느님 나라와 한 분이신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데에 교회는 겸손한 종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주 예수님의 모범을 따르는 선교하는 공동체, 제자 공동체이다. 아시아 주교들은 아시아에서 그리스도 제자직은 생명에 대한 봉사, 곧 주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하느님과 맺는 영원한 친교의 충만한 생명에 대한 봉사이어야 한다고 확언한다. 그러한 친교는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고 또한 모든 피조물과 연대하는 가운데 세상에 반영되어야 한다. 8) 선교하는 교회는 새롭게 하시는 성령께 늘 열려 있어야 한다. 교회의 모든 구성원은 사랑과 봉사의 사명에서 온전한 영성을 갖추고 선교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정신과 마음을 끊임없이 새롭게 하여야 한다. 9)

8. 아시아의 복음화와 쇄신에서 중심은 가정이다. 아시아의 가정은 아시아 사회에 좋든 나쁘든 영향을 주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세포이다. 쇄신된 아시아 가정은 죽음을 불러오는 세력들 한 가운데에서도 온전한 생명 문화를 추구하며 늘 새로워지는 가정이다. 이러한 목적으로 지역 교회가 쇄신된 온전한 가정 사목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이 사목은 친교의 영성, 곧 부부의 친교를 바탕으로 하는 가정 영성을 발전시킨다. 가정의 친교는 아버지 하느님과 성자와 성령의 무한한 사랑의 친교에 뿌리내리고 있다. 이 친교는 부부의 사랑으로 태어난 자녀들에게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가고 종교와 문화의 차이에 상관없이 다른 이들과의 연대로 뻗어나간다. 10)

9. 그러한 사랑의 친교를 성찬례만큼 심오하게 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없다. 성부와 성령과 친교를 이루시며 구원을 위한 희생적 사랑으로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주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와 친교를 이루시는 성찬례의 핵심이 바로 친교이다. 예수님의 몸과 피가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봉헌되면서 친교가 근본적으로 모든 인류와 피조물에 이르게 된다. 성찬례에서 우리는 우리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용서와 화해를 간청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시아의 생명 문화를 위하여 기도하며, 평화와 자유, 진리와 정의, 사랑과 봉사의 운동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아시아 사회에 생명을 주시고 복을 내리신 일들을 기억한다. 온전한 구원을 위하여 베푸신 예수님의 사랑이라는 성찬례의 충만한 의미는 우리에게 사회 변혁을 위한 활동을 촉구하고 있다. 11) 개인적, 공동체적, 사회적 차원에서 성찬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하느님께 참으로 깊은 감사를 드릴 길이 없다.

라디오 베리타스 아시아

10. 아시아 주교들이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를 설립하기 이전에 라디오 베리타스 아시아(Radio Veritas Asia)를 개국한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지난 여러 해 동안 라디오 베리타스 아시아는 합당한 명성을 얻었다. 요한 바오로 2세 복자께서는 이를 “아시아 그리스도교의 목소리”라고 말하였다. 라디오 베리타스 아시아는 오지까지 방송을 하여 선교사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유일한 수단이 되고 있다.

아시아 교회의 전망

11. 우리는 담대한 아시아 교회의 전망에 대하여 주님께 감사드린다. 교회의 이러한 전망은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의 여러 해에 걸쳐 사목적 성찰, 식별, 기도, 사목 활동의 전반적인 목표가 되어 왔다. 12)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회를 바라본다.
- 아시아의 종교와 문화와 민중, 특히 가난한 이들과 삼중 대화를 나누는 진정한 아시아 교회. 13)
- 아시아의 민족들과 함께 하느님 나라로 나아가며, 아시아의 민족들을 섬기는 겸손한 종. 14)
- 아시아인들에게,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예수님 이야기를 전하는 복음의 믿음직한 전령, 통합적인 복음화의 사명을 띤 제자 공동체. 15)
- 자비로우시고 용서하시고 자기를 희생하시는 분, 스승이시며 섬기시는 분, 치유자이시고 예언자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분, 가난한 이들을 들어 높이시는 분, 사람이 되신 하느님, 아시아인의 얼굴을 지니신 예수님을 자신 안에 모시고 다니는 교회. 16)
- 삼위일체의 친교를 반영하는 공동체의 친교.
- 쇄신된 섬기는 지도자, 예언자적 수도자, 권한을 지닌 평신도가 참여하는 교회.
- 병든 이들과 곤궁한 이들이 아늑함을 느끼는 가난한 이들의 교회.
- 참다운 삶을 위한 투쟁에서 젊은이들이 연대 의식을 찾을 수 있는 청년 교회.
- 모든 피조물과 연대하는 교회.

아시아적 방법: 사목적 식별, 기초 교회/인간 공동체 건설, 신학적 성찰

12. 우리는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의 방법론과 사목적 식별(사목적 나선/순환)에 대하여 주님께 감사드린다. 사목적 순환은 한 인간 집단의 삶의 상황 안으로 침잠하고 상승하는 것에서 시작되어 상황 분석과 상황 속의 신앙에 대한 성찰로 진행되고 사목적 결정과 그 결정의 실천을 위한 계획을 낳는다. 그리고 모든 것은 효과적인 실천을 이끈다.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사무국은 고전적인 관찰-판단-행동의 방법론을 다듬어, 일부 주교연수회에서 활용하였다. 17) 침잠과 상승의 요소가 빠지기는 하였지만, 이 방법은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정기 총회에서 주교들이 교회 사명의 진보를 이룰 수 있는 사목적 결정에 이르도록 하기 위하여 상황 현실 분석과 성찰에 지속적으로 활용되어 왔다.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성장하는 아시아의 기초 교회 공동체나 소공동체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이 공동체들은 성경을 지향하며 교육적이고 참여적이며 말씀 중심의 신앙 공동체 건설을 위하여 고안된 것이다. 여러 접근법 중의 하나인 아시아적 통합 사목적 접근법 18) 이 아시아에서 사용된다. 남아프리카의 룸코 방식을 아시아의 상황에 적용시킨 이 방법은 아시아 이외 지역에 있는 일부 교회의 관심도 불러일으켰다. 응용된 유사한 방법이 지역 교회에서 기초 인간 공동체 수립에도 사용된다. 여기에서는 그리스도인과 다른 종교 신자들이 함께 살아간다.
우리는 선교와 사목 직무에 도움이 되는 신학적 성찰의 경험론적 상황적 방법론에 대하여 주님께 감사드린다. 이 방법은 우선 교회의 교도권이 권위적으로 해석한 하느님 말씀의 소중한 유산인 성전과 성경을 바탕으로 한다. 19) 그러나 이 방법은 그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 그리고 성령의 활동이 식별되는 경우에만 아시아의 현실에서 자원으로 받아들인다. 20) 이는 “해방적 통합, 상호 관계, 전체성”의 방법이다. 그리고 “상징적 접근과 표현을 강조하고 ‘성문 밖’에 있는 소외된 이들을 더 배려하는 특징을 지닌다.” 21)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위원회 활동의 쇄신

13. 아시아 교회 쇄신을 위하여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가 지향하는 바를 실천하는 데에 앞장서고 있는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위원회들에 대하여 주님께 감사드린다. 이들은 주교 연수를 통하여 주교회의,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아시아의 사목적 주제를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사목적 접근과 방향을 구체화 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들은 또한 사목적 전망, 기초 사목 계획 수립, 복음화, 사회 커뮤니케이션, 통합적 인간 발전, 토착민과 이민 사목, 평신도 권리 증진, 종교간 대화, 사제와 수도자 쇄신, 신학교 교육, [학교] 교육과 신앙 교육, 가정 교육, 여성 교육, 청년 교육에 도움을 준다. 이러한 연수의 여러 결과는 신학위원회의 신학적 성찰에 반영된다. 22)

교회 지도자,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신학자의 공로

14. 우리는 아시아 교회의 많은 훌륭한 지도자들의 소중한 공로에 대하여 주님께 감사드린다. 그들은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를 기획하고 설계하고 설립하였다. 23) 이들과 더불어 다른 많은 사람들이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가 오늘날의 모습을 보이는 데 기여하였다. 아시아의 고위 성직자, 신학자, 전문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는 이 중요한 사목 활동에 협력하였다. 그들은 선교하는 교회 안에서 친교를 쌓는 데에 자신의 재능과 시간을 쏟아 부었다.

주교회의와 지역 교회의 대화

15. 끝으로 우리는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회원들, 곧 중앙아시아에서 동남아시아까지, 그리고 카자흐스탄에서 동티모르에 이르는 지역의 주교회의들과 지역 교회들, 그리고 그 주교와 성직자와 수도자와 평신도들에 대하여 주님께 감사드린다. 이들은 1972년 자그마하게 시작한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의 성장에 여러 해에 걸쳐 크게 기여했다.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의 과정은 참으로 지역 교회들 간의 대화로 이어져 왔다. 여기에서 주교들은 친교와 연대와 사랑이 넘치는 단체정신으로 예수님과 하늘나라의 복음 선포에 협력하였다. 지역 교회의 친교는 토마스 사도에 기원을 둔 동방 예법 자치 교회들의 활기찬 현존으로 놀라울 정도로 풍요로워졌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아시아 교회에 맡겨진 복음화 사명을 위하여 일하는 모든 구성원을 통하여, 그리고 그들 한 사람 한 사람 안에서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에 강복하셨다.

부족한 점들에 대한 고백

16. 그러나 주님의 많은 강복에 감사드리지만 우리는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결정과 활동이 우리의 말과 뜻에 늘 일치하지는 않았음을 알고 있다. “교회의 새로운 존재 방식”을 향한 가치와 정신 자세의 쇄신, 복음화 일꾼의 쇄신, 교회 구조의 쇄신에 부족함과 단절이 있었다.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의 전망과 그 핵심 이념, 그 프로그램과 계획은 우리가 바라던 만큼 일반 신자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거대한 흐름 자체가 교회의 대응이 적절하지 못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결국 그러한 대응으로 교회 안에 거대한 흐름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진보를 이루었지만 여전히 교회의 새로운 존재 방식, 곧 새로운 교회상을 구현하는 긴 여정 속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 겸손하게 고백한다.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
“새로운 복음화에는 개인과 공동체의 회개가 필요하다.” 24) 새로운 복음화는 우리를 성화로 초대하고 “적극적으로 자선을 실천하는 신앙생활에서 드러나는 그리스도 따르기”로 초대한다. “이는 가장 좋은 복음 선포이다.” 25) 성덕은 신뢰를 낳는다. 교회의 여러 기념일을 경축하는 올해에 우리는 새로운 복음화의 사명에 더욱 굳은 결심으로 새롭게 투신한다.

나. 시대의 징표를 보며, 우리는 지혜를 간구한다.

17. 우리가 주님께 감사드릴 때 성령께서는 1974년에 우리의 형제 주교들이 그러하였듯이 우리도 다시 한 번 시대의 징표를 식별하라고 권유하신다.

아시아의 거대한 흐름과 교회의 현실

시대의 징표들 중에서 아시아 교회의 복음화 사명에 영향을 미치게 될 긍정적이고도 부정적인 거대한 흐름이 있다. 이는 새로운 면모와 형태, 새로운 양상과 강조점을 지닌 사목적 도전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도전들을 예수님께서 동시대인들에게 지니셨던 사목적 관심과 연민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세계화

18. 아시아 생활의 모든 면에 영향을 주는 거대한 흐름은 세계화이다. 26) 세계화는 지속적이고 냉혹하며 복합적이고 양면적인 과정으로 정치, 경제, 통신, 교육, 환경, 기술, 종교, 문화, 가정, 가치 분야에 해악과 동시에 축복이 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주도하는 경제적 과정인 세계화는 경제 성장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자유 시장과 자유 무역을 강조하고 있다. 세계화는 “무한 경쟁”을 야기하였다. 수많은 비판자들은 가난한 나라들을 그 빈곤 자체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없게 만드는 해로운 것이라고 여긴다. 27) 그 결과 빈부의 격차는 계속 심화되고 있다.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사용하는 문화적 현상인 세계화는 소중하게 보존되어 온 문화적 가치를 위협하는 비교적 새로운 문화를 은밀하게 끊임없이 퍼뜨리고 있다.

문화

19. 한 때 문명의 주요한 촉매 역할을 했던 아시아의 유구한 문화는 이제 세속적, 물질적, 쾌락주의적, 소비주의적, 상대주의적인 세계화되고 획일화된 문화라는 무시무시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서양에서 비롯된 탈근대의 정신이 주도한 이 문화는 신성한 것을 진리와 거의 무관한 것으로 여기고, 우주의 신비를 창조주 하느님의 도움 없이 밝힐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종교적 윤리적 규범을 무시하고, 모든 형태의 생명에 대한 하느님의 권위를 찬탈한다. 불행히도 아시아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이러한 문화의 다양한 요소들을 받아들였다. 가장 눈에 뜨이는 소비주의는 아시아 전역에 걸친 대형 쇼핑몰의 확산과 성장을 통하여 강화되고 있다. 20세기의 탈근대 정신은 인간의 가치와 관계에 좋든 나쁘든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그 정신은 소중한 가정과 복음의 가치를 뒤엎고 있다. 그러한 가치에는 임신[受精] 순간부터 인간 생명이 지닌 신성함과 존엄, 하나의 성사로서 남자와 여자 사이에 평생 유지되는 유일한 관계인 혼인, 성경의 가정관이 있다. 탈근대 정신은 아시아에 널리 퍼져 있는 신성과 초월에 관한 생각과 충돌한다.
다른 한 편으로 새로 등장하고 있는 세계적인 문화에는 분명히 축복으로 넘치는 면도 있다. 이 문화는 인간 자유, 인권, 평등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제 세계인들이 과학과 기술 지식을 더 광범위하게 나누고 있다.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정보를 확산시키고 대화와 인간 교육의 새로운 길을 열어 주고 있다. 세계 가정들의 상호 의존과 상호 연계와 연대에 대한 새로운 희망이 갈등과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 가운데에서도 다시 피어나고 있다.
경제적 문화적 세계화의 해악과 축복이 어떻게 새로운 복음화를 통하여 은총의 기회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아시아 교회에 대한 가장 중요한 도전이다. 목표는 “소외 없는 세계화, 연대하는 세계화” 28) 이다.

빈곤

20. 지역적인 경제적 불균형이 아시아 경제 지형의 특징이다. 우리는 한국, 일본, 홍콩, 타이완과 같은 일부 아시아 국가들의 높은 발전 수준을 목격하고 있다. 또한 태국과 말레이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발전 중에 있음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매우 뒤떨어져 있고 만연한 빈곤으로 얼룩져 있다. 세계화로 악화된 빈곤은 부패와 경제적 정치적 불균형과 불의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의 주요 생산물을 차지하고 생계수단이기도 한 농업의 저개발은 이러한 경제적 불안을 조장하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빈곤 또한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등장하고 있다. 곧 무지한 이들의 빈곤으로 이들은 과학과 기술 지식의 급격한 발전으로 뒤쳐져있다. 이 모든 것을 볼 때 우리는 교회에서 복음적 청빈의 문화를 증진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사회의 일부 부유층이 가난한 이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노력에 연대하는 모습에서, 그리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화와 사회 변혁의 사명에 더욱 열심히 참여하는 모습에서 하느님 영의 창조적인 활동도 인식하게 된다. 아시아의 가난한 이들의 모든 공동체에서 사람들은 다른 이들과 연대하여 스스로 해방되도록 하느님께서 주신 힘을 더욱더 자각하게 되었다. 가난한 이들의 행복에 관한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그들의 힘은 가난한 이들의 교회가 되려고 노력하는 교회의 자의식 안에 더욱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이와 동시에 아시아의 경제는 지속 가능한 발전의 추구로 변화되고 있다.

이민과 난민

21. 더 나은 직업과 안정, 더 나은 미래를 찾아 나서는 이주 노동자와 난민의 현상은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의 지속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29) 많은 아시아 이주 노동자와 난민들은 흔히 가장 비인간적인 상황에서 일을 한다. 그들은 착취당하고 학대받으며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 많은 이주 노동자들의 곤경이 “새로운 노예 제도”로 여겨지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최근에 새로운 모습들이 드러나고 있다. 국내 보안, 테러리즘에 대한 전쟁, 이민에 따른 서양 사회의 인종과 문화와 인구 변화는 이주를 제한하는 조치를 불러왔다. 현재 진행 중인 세계 경제 위기로 문자 그대로 수백만 명의 아시아 이주 노동자들이 일자리로 복귀된다는 보장이 없이 귀국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아시아 이민의 현상에서 성령의 활동을 식별한다. 이민들은 그들의 직장에서 아시아의 밀접한 가족 관계의 정서를 증언하고 있다. 발전된 세속 사회의 한가운데에서 아시아 이민들은 그들의 깊은 영적 감각을 보여 준다. 가톨릭 이민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증언하고 모범을 통하여 다른 이들을 이끌어 그들의 세속적인 정신에 의문을 제기하도록 할 뿐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리스도인의 기도와 신심으로 돌아오도록 한다.

토착민들

22. 지난 15년 동안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는 지역 교회들이 토착민들을 주요 사목 대상으로 여기도록 촉구해 왔다. 사회적 집단으로 토착민들은 아시아의 가난한 이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계층에 머물러 있다. 세계에는 약 3억 명의 토착민이 있어 전체 인구의 4.4%만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 빈민 중 10%가 토착민들이다. 그리고 토착민 집단의 80%가 아시아 지역에서 살고 있다. 중국과 인도에 전 세계 토착민의 3분의 2가 살고 있다. 30) 일반적으로 토착민 집단은 삼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것은 경제적 생존, 문화적 생존, 그들의 땅과 환경에 대한 위협이다. 빈곤하고 소외당하면서도 토착민들은 자연과의 친교를 특징으로 하는 풍요한 고유 문화를 하느님께 받았다. 가난한 이들을 먼저 고려하고 가난한 이들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교회는 토착민들과 그들의 소외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보여야 한다.

인구

23. 세계 인구는 2011년 중반에 70억 명을 돌파한 것으로 여겨진다. 세계 인구의 60%가 아시아에서 살고 있다. 인도와 중국은 세계 인구의 37%를 차지하고 있다. 31) 인구 증가와 관련하여 아시아 정부의 정책은 국제기구와 세속 선진국들의 입장을 추종하는 것으로 보인다. 곧 빈곤이 ‘인구 과잉’과 직접 연관된다고 보는 것이다. 인구 성장이 식량 공급을 추월한다는 신 맬서스 이론(neo-Malthusian theory)을 근거로 한 “출산 보건”의 개념과 더불어 가톨릭 가르침에 어긋나는 피임 수단을 옹호하는 조치를 통하여 인구 조절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한 수단들로 인구를 제한하는 것은 단순히 인구통계적, 경제적 문제만이 아니라 윤리적 문제임을 우리는 계속해서 주장해 나갈 것이다. 32) 세속주의, 물질주의, 상대주의적 사고가 임신[受精]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인간 생명에 대한 권한을 빼앗아 버린 세상에서 아시아 교회가 어떻게 생명의 복음을 좀 더 호소력 있게 선포할지는 영구 과제이다.

종교 자유

24. 이미 세속주의에 사로잡힌 우리의 신앙과 가톨릭 정체성은 종교 자유를 거부하는 종교적 불용과 극단주의라는 폭력적인 반발에 당면해 있다. 33)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가 증가하고 있다. 테러범들의 폭탄 공격,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학대와 폭력, 교회 방화, 차별, 그리스도인들을 강제로 주류 종교로 개종시키기, 반그리스도교 법률, 폭력과 불안 조성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극단주의적 종교 집단들의 상호 작용으로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 자행되는 폭력 행위가 아시아의 국가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종교 극단주의와 폭력의 증대는 종교간 대화에 대한 교회의 시각에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34)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아시아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기 위한 종교간 대화가 필요하다는 의식이 점증하고 있음도 인식하고 있다. 우리는 공동의 사회 진보를 목적으로 서로 협력하기 위하여 삶의 대화를 넘어서려는 긍정적인 경향을 식별한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논쟁과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고 평화와 조화를 촉진하는 으뜸가는 방법이 대화라고 믿는다. 분명히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가 40년간 실천해 온 종교간 대화의 경험은 온 교회를 위한 우리의 중요한 기여에 속한다.
또한 종교 자유를 위협하는 정치 이데올로기를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 국가들은 공식적인 종교가 없다고 선언하며 종교 단체에 정치적 권력을 휘두르려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온전한 종교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지나친 억압을 당하고 있으며 때로는 폭력적인 탄압을 받고 있다. 일부 경우에는 교회 지도부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정치 이데올로기에 따른 종교 자유의 결여는 수백만 명의 신자들이 그들 자신의 신앙 공동체와 분리된 채 말 못할 고통을 겪게 한다. 유감스럽게도 그러한 고통이 가까운 미래에는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생명에 대한 위협

25. 생명에 대한 위협의 증가는 가장 혼란스럽고 무서운 일이다. 종족 갈등, 종족의 권리에 대한 폭력적 억압,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살해하는 일,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한 살인, 군비 증강과 핵 위협, 만연한 부패에 따른 의료와 사회 복지의 결핍, 이 모든 일이 생명에 대한 다른 위협들과 더불어, 때로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채로 일어나고 있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생명에 대한 위협이, 지속적인 무기 거래, 군비 생산과 증강, 지역 분쟁, 지정학적 긴장으로 야기될 것이다. 각국 정부, 시민 사회, 다른 종교, 선한 믿음을 지닌 모든 사람들과 협력하여 우리는 평화를 향한 창조적인 길을 찾아야 한다.

가장 비극적인 것은 아무런 힘이 없는 이들, 곧 태아와 사회의 ‘짐’으로 간주되는 말기 환자들의 생명에 대한 수많은 위협이다. 산전 검사는 태아의 성별과 기형 여부를 알아보기 위하여 실시된다. 그저 태아가 여아이거나 장애의 가능성이 있거나, 단순히 원하지 않는 아이라고 해서 매년 수백만 명의 태아에 대한 낙태나 살해가 자행되고 있다. 많은 아시아 국가들에서 ‘출산 보건’을 명분으로 피임약, 많은 경우 태아 살해제의 사용이 정부의 공식 정책이 되고 있다. 유전 공학은 인간 배아의 생명을 위협하며, 그 배아를 하느님께 인간 생명과 존엄을 부여받은 존재가 아니라 단순한 실험 대상으로 간주한다.35) 위에서 언급된 모든 것은 죽음을 거래하는 세력으로, 우리는 신앙을 바탕으로 강력하게 단죄한다. 이와 동시에 일부 국가의 자살과 안락사의 증가는 삶에 대한 허무감, 삶의 의미와 모든 동기의 상실을 보여 준다. 이 모든 것은 도덕규범을 무시하는 세속주의와 공리주의가 조장한다.

사회 커뮤니케이션

26. 엄청난 잠재력으로 급속하게 발전하는 거대한 흐름에는 사회 커뮤니케이션이 있다. 36)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이제 특히 젊은이들을 위한 가치 교육에서 으뜸 교육자인 것처럼 보인다. 사회 커뮤니케이션이 눈, 귀, 마음, 기억, 상상력을 지배하기에 가치와 태도의 형성에 미치는 그 힘은 측정할 수 없을 정도이다. 우리는 세속주의, 물질주의, 소비주의, 상대주의의 가치에 강력하게 반대한다. 그러나 멀리 보면, 부정적인 것이 복음화의 엄청난 기회가 된다. 사회 커뮤니케이션은 기쁜 소식을 전하는 놀랍고도 신 나는 새로운 광장이다. 시회 관계망은 관계를 도모하고 형성한다. 자유로운 정신, 새로운 관심과 태도와 가치를 지닌 전자 세대(e-generation)가 등장하였다. 이 새로운 복음화 사명을 위한 이 거대한 흐름의 잠재력은 측정할 수 없다. 37)

생태

27. 아시아 여러 지역의 자연 재해, 특히 2011년 3월 11일 일본에서 발생한 엄청난 재해는 파괴적인 지진, 쓰나미, 핵발전소의 고장으로 야기되어 생태 문제를 세계 무대로 이끌어 냈다. 창조 보존에 관련된 오래된 문제인 급속하고 무차별적이며 무책임한 삼림파괴는 홍수, 가뭄, 토양 침식, 생명 유지 체계의 손실을 야기한다. 오늘날 생태 문제는 더 긴급하고 파괴적인 문제인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와 관련된다. 전 세계가 재난에 가까운 기후 변화의 징후들을 겪고 있다. 우리의 세계는 특히 선진국의 화석 연료 사용에 따른 이산화 탄소의 무절제한 대기 방출로 온난화되고 있다. 이는 해수의 온도와 수면을 높이고, 빙하를 붕괴시키고 극지방의 얼음을 녹이는 온실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그 결과로 엄청난 폭우, 홍수, 극단적인 기후 변화, 심지어 동식물의 멸종이 야기되고 있다.
지금도 홍수와 해수면 상승을 피해 안전한 지역을 찾아 나서는 수많은 생태 난민들이 발생하고 있다. 기후 변화는 농업 생산과 생계의 원천을 심각하게 파괴하고 있다.
아시아에 살고 있는 우리는 생태 문제와 그 윤리적 영향에 대한 우려와 근심을 점점 더 많이 하고 있다. 38) 지역 교회들은 시민 사회와 협력하여 창조 보존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대기 오염, 무책임한 채굴과 남벌, 파괴적인 어업, 살충제의 무차별적 사용, 전자 쓰레기의 무단 폐기에 대한 지역 차원의 우려는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와 같은 거시적인 문제로 확대되고 세대간 정의의 문제까지 제기되고 있다. 생태 문제에 관한 이러한 의식과 관심과 활동은 풀뿌리의 차원까지 확산되고 있다. 39)

평신도

28. 우리가 평신도들의 신앙 지식 부족과 많은 이들의 수동성과 냉담에 대하여 계속 진지한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평신도의 ‘권한 강화’ 운동 또는 세례성사와 견진성사 때 성령께서 주신 평신도 은사의 활성화를 통하여 용기를 얻는다. 이러한 권한 강화는 아시아의 모든 지역 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친교, 공동 책임, 참여에 관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싹튼 생각은 기초 교회 공동체, 교회 운동 단체, 기타 신앙 공동체의 차원에 이르기까지 아시아에서 그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이는 평신도들이 교회 사명, 정책 결정, 사회 변혁을 위한 활동에 참여하도록 해 준다. 40) 기초 교회 공동체 운동은 본당 공동체 구성원이 본당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흩어져 사는 아시아에서 매우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평신도를 대상으로 하는 집중적인 신앙 교육은 필수적이며 신앙의 해가 촉구하는 새로운 교리 교육을 필요로 할 것이다.

여성

29. 지난 10여 년 동안 아시아 교회는 여성을 주요 사목 과제로 삼아 왔다.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여성에 대한 차별, 그리고 가정 폭력, 매춘 관광, 인신매매와 같은 여성과 여아에 대한 학대이다. 여성의 인권을 남용하고 억압하며, 때로는 여성을 이류 시민으로 여기는 전통적 문화적 관습이 가장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여성과 이주 노동자 착취, 그리고 단순히 여아이거나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백만 명의 태아를 대상으로 자행되는 낙태를 강력하게 규탄한다. 동시에 우리는 아시아에서 남성과 여성의 존엄과 권리가 상호적이며 평등하다는 의식이 고양되고 있으며 성차에 대한 인식과 주의, 그리고 여성의 “권한 증진” 의식도 고양되고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젊은 여성들이 자유와 평화 운동, 창조 보존을 위한 노력에 앞장서고 있다. 그들은 교회의 교리 교육, 전례, 가정생활과 청소년, 보건, 사회 운동 사목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흐름은 아시아 교회가 여성에 대한 좀 더 깊은 식별, 공감, 지혜를 발휘할 것을 요청한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남녀가 객관적으로 평등한 것만이 아니라 온전한 사회 변혁과 복음화 사명을 더욱 효과적이고 믿음직하게 수행하는 일상생활에서 평등한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

젊은이

30. 아시아 주교들이 마닐라에 모여 바오로 6세 교황의 메시지에 영감을 받아 교회가 ‘가난한 이들의 교회’, ‘젊은이들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지 40여 년이 지났다. 41) 지역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아시아는 오늘날까지 가난한 이들과 젊은이들의 대륙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아시아의 젊은이들이 불안해 보이고, 방향을 상실하고, 무사태평한 삶의 하위 문화에 물들고, 약물에 중독되고, 반항하고, 무의미하고 바쁘기만 한 일들로 실의에 빠져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초월에 대한 감각을 상실한 세속주의에 깊은 영향을 받은 젊은이들은 미래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많은 젊은이들이 쉽게 포기하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 젊은이들은 자유, 정의, 평화, 인권, 지구 돌보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교회 안에서 젊은이들은 복음화의 주체인 자신의 역할을 가장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그들은 교리 교사, 강사, 또래 조언자, 사회 운동가, 생명 수호 활동가, 보건 활동가로 봉사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대륙에서 그들의 도전은 아시아 교회를 위한 희망으로 넘친다. 42)


오순절 운동

31. 최근의 통계는 교회 신자수의 감소를 보여주고 있다. 그와 동시에 이른바 “거듭나고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숫자가 크게 늘고 있다. 우리는 양은 질보다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러나 상당수의 신자들이 유사 종교나 다른 종교 집단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분명히 심각한 문제이다. 흔히 제기되는 질문이 “이유가 무엇인가?”이다. 왜 그토록 많은 신자들이 다른 유사 종교로 넘어가는가? 왜 유사 종교가 그들에게 매력적인가? 이러한 질문들을 통하여 우리는 어떻게 복음화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신자들의 신앙을 양성할 수 있는지, 우리 교회의 소속감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에 관하여 성찰을 하도록 해야 한다. 오순절 운동의 도전에 맞서 하느님의 섭리로 가톨릭 쇄신 공동체가 급격하게 성장하고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는 본당이나 교구에 널리 퍼져 있는 성령 쇄신 운동 단체, 계약 공동체, 아시아 교회 운동, 특히 기초 교회 공동체 또는 소공동체가 있다. 기초 교회 공동체와 소공동체와 다른 많은 쇄신 공동체는 아시아에서 시작되었다. 이 공동체들은 하느님 말씀과 성찬례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을 증언해 주고 있다. 이들은 신앙 교육, 기쁜 예배, 우정, 소속감을 마련해 주며, 주님에 대한 신앙을 기뻐하고 증언하는 평신도들의 열정과 헌신을 보여 준다.

성소

32. 부유한 지역에서는 성소가 감소하고 있을지 몰라도 아프리카와 마찬가지로 아시아 교회는 사제직과 수도 생활 성소의 봄을 누리고 있다. 수십 년 전부터 지금까지 아시아 대륙에서 우리가 ‘소수의 지위’에 머물러 있지만 이제 ‘파견하는 교회’가 되었다. 교구와 수도회는 자국인과 외국인 모두 평신도, 수도자, 사제를 그들 기관에서 다른 아시아 국가와 세계의 다른 모든 대륙에 선교사로 파견하고 있다. 아시아 영성 감각의 깊이와 풍요가 성소 문화의 굳건한 기초가 되고 분명히 많은 젊은이들을 사제 생활, 수도 생활, 선교 생활로 부르시는 하느님께 응답하도록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중간 결론

33. 이 거대한 흐름은 하느님의 영을 통하여 근본적인 쇄신으로 나아가는 아시아 세계의 빛과 그림자가 된다. 이 흐름은 엄청난 가능성과 희망을 주고 있다. 분명 이 거대한 흐름들 가운데 긍정적인 흐름은 은총의 계기가 되는데, 부정적인 것 또한 은총의 기회가 된다. 이러한 물결은 모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과제를 상기시켜 준다. 그 과제는 바로 아시아 세계를 치유하는 것이다. 곧 단절된 관계, 그리고 남녀, 종족, 문화, 종교 집단 간의 조화와 평화의 부족을 극복하는 과제이다. 또한 아시아의 인류와 피조물과 하느님과의 조화와 평화의 결핍도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언제나 활동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영께서는 우리가 아시아 세계를 새롭게 하여 정의와 성실과 화해와 평화와 조화와 사랑으로 이끄는 데 협력하도록 부르신다. 성령의 부르심은 새로운 복음화를 실천하라는 권유이다.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종교적, 환경적 상황에 나타나는 이 거대한 흐름에 관하여 우리 아시아 주교들은 우리 신앙에 비추어 지침이 되는 성찰을 한다. 우리의 신앙이 어떻게 그 거대한 흐름의 근본 원인을 전반적으로 설명하는가? 교회가 이러한 거대한 흐름에 대응하는 데에 우리 신앙이 어떤 방향을 제시하는가?

다. 사목적 상황을 신앙 안에서 성찰하면서, 우리는 지침을 간구한다

태초에 하느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에게서 나온 모든 것은 좋았다. 여기에는 사랑, 선, 조화, 평화, 하느님의 창조 질서가 있었다. 43)

창조 이야기

하느님 말씀과 창조의 영 - 사랑, 선, 조화

34. 창조에 관한 멋진 두 이야기와 죄에 관한 비극적인 이야기가 창세기 1-3장에 나온다. 이 이야기들은 하느님께서 전적으로 거저 주시는 사랑을 보여 주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심오한 근본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 하늘과 땅은 하느님 말씀을 근거로 하여 그 말씀으로 창조되었다. 태초에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영께서 활동하셨다(“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창세 1,1-3]). 44)
- 하느님께서 하시는 창조의 말씀은 하늘과 땅의 모든 것, 빛과 어두움, 땅, 바다, 하늘, 모든 식물, 밤과 낮, 바다와 육지의 모든 생명체가 존재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이 “좋다”고 선언하셨다(창세 1,3-25 참조).
- 이 질서 있는 창조의 정점에 인간이 있다. 하느님께서는 창조의 말씀을 하셔서 당신의 모습으로 남자와 여자를 함께 만드셨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친교의 기쁨이 있었다.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이렇게 해서 남자와 여자는 “한 몸이 된다”(창세 1,26-27; 2,21-25 참조).
- 하느님께서는 남자와 여자에게 복을 내리시며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을 책임 있게 돌보고 사용하도록 하셨다. 피조물을 다스리는 것은 피조물을 책임지고 돌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과 그 나머지 피조물 간의 연대에 관한 최초의 명령이다. 이는 피조물의 보편적 목적이라는 사회적 도덕적 원칙의 뿌리가 된다(창세 1,28-30; 2,18-20 참조).
-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선과 사랑을 피조물과 인간에게 나누어 주시면서 모든 피조물이 “참으로 좋다.”라고 무조건 선언하시고 “창조의 보전”을 천명하셨다(창세 1,31 참조).
- 창조 이야기는 분명히 하느님께서 순전히 거저 주시는 사랑의 이야기이다.

죄에 따른 분열

35. 이러한 태초의 창조의 선함, 모든 피조물들이 맺은 관계의 선함, 하느님과 인류가 맺은 관계의 선함은 인간의 교만과 지나친 이기주의 때문에 창조주 하느님을 거스른 죄로 무너졌다. 45) 창조주와 인류의 관계가 단절된 것이다. 인류는 서로를 비난하기 시작하였고 서로를 돌보고 땅을 경작하는 데에 따르는 어려움과 고통이 생겨났다(창세 3장 참조). 그러나 타락 이후에도 하늘과 땅의 웅장함, 아름다움, 질서, 조화, 그리고 자연의 힘의 위력은 계속 인간에게 경외감을 주었고 겸손과 존경심을 불러일으켰다. “주 저희의 주님. 온 땅에 당신 이름, 이 얼마나 존엄하십니까!”(시편 8,2.10) 하느님께서는 참으로 놀라우신 분이시다! 창세기 3장에서 인류는 죄를 지었음에도 원복음을 받는다. 주님께서는 뱀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창세 3,15).

근본 원칙

모든 피조물의 친교와 연대

36. 따라서 창조 때에 하느님께서는 이미 인류와 하느님, 남자와 여자, 가정, 가정과 공동체, 그리고 인류와 나머지 피조물 사이의 친교와 연대의 근본 관계를 세워 주셨다. 46)

친교의 원천이며 기반이신 하느님

37. 이 관계의 중심에 계시면서 버팀목이 되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이 근본 관계는 사실 종교, 도덕, 사회 원리를 포괄하며 아시아 사목 상황의 중요 차원에 관련되는 것이다. 신성함과 종교적인 것에 대한 아시아인의 깊은 감각은 창조주 하느님의 폭넓은 거룩한 지평, 모든 존재하는 것의 원천에 관한 근본 인식이 된다. 이 아시아적 종교 감각은 분명히 물질주의, 세속 문화, 탈종교 문화의 은밀하면서도 강력한 공격에 맞서는 뛰어난 완충 역할을 한다. 47)


인간의 중심성과 보편적 친교

38. 바로 하느님의 모습(imago Dei)을 한 인간은 창조의 중심이며 침해할 수 없는 존엄과 가치를 지닌다. 48) 인간의 중심성과 인간 가정의 근원적인 연대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과 인권이 유린되고 무시되며 억압되는 상황에 정면으로 맞선다. 이 근본 원칙은 또한 카스트 제도, 많은 이민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대우, 소수와 다수 간의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갈등, 종교를 빙자한 과격하고 폭력적인 극단주의, 인간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와 독재 정권과 같은 죽음을 거래하는 세력에 맞서는 것이다.

39. 에덴 동산의 남자와 여자의 사랑, 일치, 상호 보완, 연대, 그리고 그들의 내적 친교 49)라는 하느님의 선물은 오늘날의 단절된 가족관계, 혼인 서약의 무시,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남자와 여자의 혼인에 대한 경시에 도전을 제기한다. 이 근본 원칙들은 성차별, 여성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학대와 착취, 그리고 여자를 남자보다 낮게 여기는 사회 관습과 관행의 죄악을 비판한다.

창조된 재화의 보편 목적

40. 태초에 인간과 다른 모든 피조물 사이에 존재한 원초적인 친교와 연대는 우리 시대에 긴급하게 필요한 도덕적 사회적 원칙이다. 그러한 친교와 연대는 하느님께서 “좋다”고 선언하신 것으로 하느님께서 땅을 가꾸고 돌보라고 하신 명령에도 그 뜻이 담겨 있다. “하느님께서는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이 사용하도록 창조하셨다. 따라서 창조된 재화는 사랑을 동반하는 정의에 따라 공정하게 모든 사람에게 풍부히 돌아가야 한다.” 50) 이는 창조된 재화의 보편 목적에 관한 사회적 도덕적 원칙으로 모든 피조물의 친교와 연대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는 하느님께서 창조 때에 모든 인류가 사용하도록 정하신 자연 자원의 활용을 통제하는 소수의 권력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원칙은 우리의 자연 자원, 삼림, 바다, 동식물의 지속적인 파괴를 비판한다. 이 파괴로 현재와 미래 세대의 공동선이 단기적인 경제적 이득을 위하여 희생된다. 가장 비극적인 것은 많은 경우에 그러한 파괴가 이제 복구할 수 없고 되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다.

창조 보전을 위한 책임 있는 관리

41. 창조 때의 약속에서 하느님께서는 인류에게 내리신 피조물들을 복종시키고 다스리라고 하신 명령은 바로 모든 것을 위하여 땅을 가꾸고 돌보라는 말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창세 2,15 참조).51) 인류는 하느님 창조의 관리인으로서 인류의 선익을 위하여 피조물을 사용해야 할 책임이 있다. 관리의 원칙과 “선” 또는 그 아름다움과 질서의 조화를 포함한 창조 보전, 그리고 창조된 재화의 보편 목적이 무자비하게 침해당할 때 우리는 창조계와 다가올 세대에게 심각한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다. 그것이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에 대한 윤리적 함의이다. 솔로몬 임금의 말이 매우 적절하다. 그는 하느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을 통치하는 것은 “거룩하고 의롭게” 관리하는 것이라고 바르게 이해했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께 지혜를 주십사고 간구하였다(지혜 9,1-3 참조).

42. 끝으로 지적할 것은 창세기 이래로 우주의 기원과 발전에 대한 이해는 변해 왔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 우리는 “하늘”을 별, 행성, 은하들로 이루어진 우리의 사야를 넘어서는 광대한 우주로 이해한다. 우리의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신앙은 분명히 이 모든 것과 아직 발견하지 못한 모든 세계를 포함한다. 전 우주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작품인 것이다.

예수님을 이야기하기 -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사랑

43. 우리의 신앙 성찰은 성경의 핵심을 향하여 계속 된다. 창조된 세계와 인간의 원초적 선, 그리고 죄로 그 선이 깨어진 것이 주 예수님께서 이룩하신 구원 사건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예수님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를 통하여 이 질문에 가장 좋은 대답을 할 수 있다.

하느님 나라의 선포

44. 창조 때에 드러난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사랑은 예수 사건에서 가장 극적으로 나타난다. 하느님의 사랑이신 예수님,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시아에서 하는 이야기이다.
마르코 복음 1장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가로지르는 혜성처럼 매우 갑자기 등장하신다. 한창 젊은 예수님께서는 힘이 넘치시고 여러 곳을 두루 다니시며 예언자의 모습을 하셨다. 갈릴래아 출신의 가난한 사람이었던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꿈꾸어 오던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이 말씀은 곧 약속이고 성취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정의와 진리, 하느님의 평화와 사랑을 약속하셨다. 곧 분열된 세상이 오랫동안 갈망해 온 우주 조화의 회복을 약속하신 것이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도래는 단순히 다윗 왕조의 영광스러운 회복을 의미하였지만, 예수님의 메시지는 그 당시 사람들이 이해를 훨씬 더 초월하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약속을 당신의 행위와 모범, 비유와 기적을 통하여 성취하기 시작하셨다.

인간 존엄, 연대, 친교, 가난한 이들에 대한 최우선의 사랑

45. 잘 알려지지 않은 아시아 고을의 가난한 아시아 부모에게서 태어나신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의 편에 서셨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가득 차시어 성령을 따르셨다(루카 3,22; 4,1.14.18-21 참조).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이 행복하다고 선언하셨다(루카 6,20 참조).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가치 서열을 뒤집으시고 사회가 배척하고 죄인이라고 여긴 이들의 인간 존엄을 회복시켜 주셨다. 역사의 밑바닥에 있는 이들, 마음과 정신으로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놀라운 행복 선언(루카 6,22; 마태 5,3-12 참조)은 하느님 나라의 진정한 헌장이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용서하시고(마르 2,5; 마태 7,48.50 참조), 병든 이들을 당신의 손길과 말씀으로 치유하시고(마르 1,40-41; 2,10-11; 3,1-5; 5,25-34 참조), 죽은 이들을 일으키시고(마르 5,35-42; 6,53-56; 7,22-26 참조), 더러운 영들을 쫒아내신다(마르 1,21-27; 5,1-13; 9,14-28 참조). 하느님 나라의 힘이 우리의 공간과 시간 속으로 들어와 죄를 용서하고 인간을 온전하게 치유하고 생명을 되살린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이 당신을 따르도록 부르셔서 그들의 인간 존엄을 확인해 주시고 특히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가장 먼저 사랑하신다는 것을 확인하여 주신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정하게 “아빠, 아버지”로 부르시는 하느님과 친교를 맺도록 당신 제자들을 이끌어 주신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모든 이에게도 이 친교를 전해 주시면서 그들이 기도할 때 하느님을 “아버지”(루카 11,1-4)라고 부르도록 당부하셨다. 우리는 아버지에 대한 신앙과 온전한 신뢰로 기도를 드려야 한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만나실 때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강조하시고 믿음에 보답하신다(마태 8,13; 17,19 참조).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마태 17,20-21).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 7,50). 이러한 말씀과 행동으로 예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 가난한 이와 부유한 이, 병든 이와 건강한 이, 버림받은 이와 권력을 지닌 자가 믿음을 가지고 사랑하도록 이끄신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는 예루살렘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셨다(루카 19,41 참조).

하느님의 보편적 사랑, 창조의 조화, 인간의 중심성

46. 예수님께서는 가장 심오한 진리를 간단한 이야기나 비유로 가르치신다. 예수님께서 들에 핀 아름다운 나리꽃과 즐겁게 하늘을 나는 새들을 위한 하느님의 섭리를 설명하실 때 청중은 그분의 말씀에 열중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돌보시는 하느님의 자비가 핵심이며 초월적인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루카 12,22-29; 마태 6,25-34 참조).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루카 8,4-15; 마르 4,2-9; 마태 13,1-23 참조), 저절로 자라는 씨앗(마르 4,26-29 참조), 작은 씨앗이 가장 큰 풀로 자라나 하늘의 새들이 깃들이게 되는, 겨자씨(루카 13,18-19; 마태 13,31-32; 마르 4,30-32 참조), 밭에 숨겨진 보물(마태 13,44 참조), 값진 진주(마태 13,45)에 관한 비유를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우주의 질서, 날씨가 좋거나 나쁠 것이라는 하늘의 징조(마태 16,2-3 참조), 다가올 비와 더위(루카 12,54 참조),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똑같이 내리는 비와 떠오르는 해(마태 5,45 참조)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바다의 폭풍을 잠재우시고(마태 8,23-27; 마르 4,35-41; 루카 8,22-25 참조) 물 위를 걸으시며(마르 6,47-52; 마태 14,22-33; 요한 6,16-21 참조) 피조물을 다스리시는 당신의 힘을 보여 주셨다.

이러한 이야기와 네 복음서에 나오는 다른 많은 이야기들에서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수많은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의 본질, 작은 것에서 시작하여 자라나는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보편적인 사랑의 섭리, 피조물의 아름다움과 조화, 인간 중심성, 원수에 대한 사랑, 가난한 이와 어려운 이들에 대한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을 배웠다.

예수님께는 하느님 나라가 가장 중요하였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우선 과제였다. “너희는 하느님의 나라를 찾아라. 그러면 이것들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루카 12,31). 끝으로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와 그 가지의 비유를 들어 우리가 당신과 이루는 친교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와 이루는 친교에 관하여 말씀하신다(요한 15,1-6 참조).

정의, 성실함, 관습을 넘어선 봉사

47.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탁월한 권위를 보여 준다(마태 7,29 참조).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사람을 치유하시어, 스스로가 의롭다고 여기는 이들을 분개하게 만드신다(루카 6,6-11; 마태 12,9-14; 마르 3,1-6; 요한 5,16 참조). 그 시대의 관습을 깨시며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과 자유롭게 대화하신다(요한 4,7이하.27 참조). 그리고 사회에서 무시당하는 과부들과 고아들과 이방인들을 축복하신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는 집에서 상인들과 환전상들을 쫓아내신다(마르 11,15-18; 요한 2,13-22; 마태 21,12-13; 루카 19,45-46 참조).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하느님과 재물을 모두 섬길 수 없다고 가르치신다(마태 6,24; 루카 16,13 참조). 예수님께서는 나병 환자에게 다가가셔서 그들을 만지시며 치유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의 태도가 위선적이라고 담대하게 꾸짖으신다(마태 23장 참조).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인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라는 거룩한 가치들을 무시한다고 말씀하신다(마태 23,23 참조).
예수님의 가르침은 단순히 말이나 공허한 행위가 아니다. 예수님의 삶 자체가 당신의 가르침을 증언한다. 매우 특별하고도 고결한 인격을 지닌 스승으로서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신빙성과 영향력을 지니신 분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스승님이나 주님이라고 불렀지만, 예수님께서는 섬기는 분이시고(요한 13,3-16 참조)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셨다(사도 10,38 참조).
당신의 말씀과 활동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듣는 이들이 신앙의 근본으로 돌아가도록 이끄신다. 그것은 바로 사랑, 연민, 정의, 진실성, 육체보다 소중한 정신, 통치와 규정과 전통보다 먼저 사람을 앞세우는 인간 우위, 외적인 것보다 소중한 내면의 마음이다. 예수님의 청렴, 정의, 헌신적인 봉사는 우리 아시아 사회에서 공공의 선을 무시하는 정신, 권위주의, 만성적인 부패에 대한 해결책이다.

파스카 신비, 구원, 새로운 창조

48. 천지창조 때 하느님께서 온전히 거저 베풀어주신 사랑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서 그 절정에 이른다. 수난과 죽음이라는 자기 비움으로, 예수님께서는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당신 자신을 완전히 비우시어 우리를 위한 당신 사랑의 깊이를 보여 주셨다. 세상이 결코 본 적이 없던 그러한 사랑이다! 이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이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니코데모에게 이 놀라운 사랑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예수님의 희생적 사랑의 자세는 요한 복음에 더욱 자세히 나타난다.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으로, 당신께서 어떻게 죽임을 당하실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요한 12,32-33). 창조 때의 활동과 마찬가지로 구원의 신비에서도 아버지의 주도권은 인류가 하느님과 결합되는 이유가 된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요한 6,44).
그러나 구원은 하느님과 관계를 회복한 인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또한 피조물 전체와 관련된다. 피조물은 여정 중에 있으며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로마 8,19-22 참조)에 참여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람이 되신 말씀의 파스카 신비는 인류의 원죄에 따른 피조물의 무질서를 포함한 모든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킨다.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예수 그리스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콜로 1,19-20). 분명히 하느님의 계획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분 안에서 한데 모으는”(에페 1,10; 콜로 1,20 참조) 것이다.

49. 바오로는 주님을 믿는 이들과 그분 안에서 “모든 것이 새것이 된, 새로운 피조물”(2코린 5,17 참조)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이 비유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 들짐승들이 …… 나를 공경하리라”(이사 43,19-21). 이 비유는 종말을 예견한다. “나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 더 이상 없었습니다. …… 그리고 어좌에 앉아 계신 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1-5).
예수님의 파스카 신비를 통하여 개인, 민족, 문화, 인종 집단, 인류, 모든 피조물과 하느님 사이의 단절된 관계가 모두 예수님 안에서 회복되어 온 세상이 “새로운 피조물”로 변모되었습니다. 우주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주의 조화가 이루어져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것이다”(1코린 15,28; 참조: 에페 4,6).

50. 그러나 인간의 자유가 그리스도의 구원 은총과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교만, 이기심, 탐욕이 끊임없이 피조물을 파괴하고, 인간을 무시하며, 인권을 유린하거나 억압하고, 다른 사람을 차별하고, 전쟁을 일으키며, 폭력을 조장하고, 인간관계의 조화를 깨뜨리고, 가난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억압한다. 그러나 이러한 죄의 혼돈 가운데에서 그 혼돈을 딛고 일어서신 분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 우리의 생명과 빛, 우주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속적인 구원의 희망을 주신다.
이는 가난한 아시아인, 치유자, 스승, 고난 받는 종, 구세주, 조화와 연대와 친교, 우리의 평화와 화해를 재건하시는 분, 구원자이시며 주님이신 예수님에 관한 엄청난 이야기이다.
이 희년에 주님의 성령께서는 아시아 교회가 주님의 사명에 더욱 매진할 것을 요청하신다. 곧, 그분의 이야기를 전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직한 증인이 되며, 그분 구원 활동의 표징과 성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라. 사목적 도전에 대한 대응, 우리는 자비와 용기를 간구한다.

51. 이 지속적인 사명을 위하여 우리는 주님이시며 세상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선포하는 것이 복음화의 핵심이라는 우리의 확신을 재확인한다. 우리는 우리의 복음화 방식이 대화를 통한 것이라는, 1974년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최초의 통찰이 지닌 지속적인 타당성을 재확인한다. 이는 삼중 대화로서, 아시아 민중, 특별히 가난한 이들과 나누는 대화, 아시아 민족의 부요하고 오래된 문화와 나누는 대화, 아시아의 다양한 종교적 철학적 전통과 나누는 대화이다. 52) 우리의 중요한 사목적 과업은 지역 교회를 복음화의 주역으로 만드는 일이다.

교회 대응의 근본 요구

우리의 신앙과 그 선포에 영향을 미치는, 아시아와 교회 안의 거대한 흐름에 확실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고자, 쇄신의 정신으로 우리는 선교하는 교회이며 주님의 제자라는 우리의 근본 정체성으로 돌아간다. 이 정체성에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이고 필수적인 차원이 포함된다.

교회의 예언자적 역할

52.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예언자적 정체성을 부여하셨다. 이는 구약의 예언자들과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모든 민족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예언자의 정체성에는 마음가짐과 세계관이 필요하다. 마음가짐이란 그리스도의 뜻에 온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바오로 성인은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 2,5)라고 우리에게 권유한다. 세계관이란 제자직과 사도직을, 세계 안으로 들어가 활동하면서 이 세상이 아닌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지키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요한 17,11.14.16.18 참조). 바오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 12,2).
교회는 하느님 말씀을 받아 선포하며 오늘날 범람하는 세속주의와 물질주의 정신에 맞서는 표징으로서 봉사하는 예언자이다. 53)

새로운 복음화

53. 아시아 대부분의 지역에서, 몽골과 같이 가톨릭 교회가 세워진지 20년밖에 안 된 지역에서 가장 긴급한 것은 “첫 선포” 54)이다. 몽골의 지역 교회는 가톨릭 신자 가정이 겨우 몇 백에 지나지 않지만 예비신자 신앙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기초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것을 사목적 전망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괄목할 만하다. 그러나 삶의 문화, 사회, 경제, 사회 커뮤니케이션, 과학 기술, 시민, 정치 분야에 대한 세속주의와 물질주의 정신의 세계적인 영향을 생각해 볼 때, 55) 신앙의 쇄신이 반드시 필요하다. 새로운 복음화는 명령이다. 예수님을 선포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복음화란 있을 수 없다는 이치를 되새기며, 새로운 복음화에서는 “새로운 열정과 방법과 표현” 56)으로 예수님을 새롭게 선포하여야 한다. 우리는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가 그 창립 때부터 아시아 교회에 대한 전망으로 “교회가 되는 새로운 길”을 밝히며 새로운 복음화를 촉진해 왔음을 분명히 기억한다. 새로운 복음화는, 탈근대적 정신으로 신성성, 신적 기원, 종교적 도덕적 차원, 신적 운명을 결여한 모든 피조물을 다 끌어안아야 한다. 새로운 복음화는 하느님께서 다양한 방식으로 머무시는 하느님 창조의 종교적 도덕적 특성을 내세워야 한다. 성전 바깥뜰에서 장사꾼들과 환전상들을 쫓아내신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아시아 교회는 아버지의 집에 대하여 끊임없는 열정을 지녀야 한다(요한 2,17 참조). 아버지의 집은 창조주, 구원자, 거룩하게 하시는 분에 대한 예배가 끊임없이 지속되는 곳이며, 하느님께서 손수 만드신 모든 것에 대하여 진심으로 “마땅하고 옳은” 감사를 드리는 곳이다.

하느님 말씀, 우리 사목 대응의 신비적 전례적 차원

54. 우리의 사목적 대응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 곧 하느님 말씀을 듣고 말씀을 선포하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57)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님과의 깊은 인격적 만남이 새로운 복음화의 근본이다. “이는 새로운 복음화의 ‘관상적 차원’이다. 새로운 복음화는 기도에서 지속적인 힘을 얻고 전례에서, 특히 교회 생활의 원천이며 정점인 성찬례에서 시작된다.” 58) 탈근대의 세계에 들어섰지만, 아시아인들은 여전히 강한 “신비적” 차원, 절대자 하느님에 대한 생생한 감각을 보존하고, 초월성에 대한 살아있는 체험을 하며, 그에 따라 지속적인 기도를 하고 있다. 사제도 없고 성사도 받지 못지만, 신자들의 기도가 특히 묵주기도가 신앙을 살려 주던 그러한 모임에서 우리는 참으로 얼마나 커다란 영감을 받았는가!
바오로 6세 교황님과 마찬가지로 59) 베네딕토 16세 교황님도 기도를 강조하신다.
“발전은 하느님을 향해 양팔을 들고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 참된 발전을 이루어 주는 진리로 가득찬 사랑, 곧 진리 안의 사랑(caritas in veritate)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그리스도인들을 필요로 합니다. 따라서 가장 힘들고 복잡한 시기에도,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인식하면서 다른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사랑에 의지하여야 합니다.” 60)
역대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정기 총회들에서는 복음을 전하는 거룩한 사람들, 하느님을 깊이 체험한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61) 확실히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자신의 그리스도교 생활을 묵묵히 증언하는 일이 예수님을 주님이시며 구원자로 선포하는 유일한 길이라면, 62) 그러한 하느님 경험이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친교의 영성

55. 친교의 영성은 우리 시대의 영성이다. 친교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제자직의 영성이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아빠’(Abba)이신 성부와 이루시는 친교가 인류와 세상에 대한 사랑의 사명을 의미한다. 이는 삼위일체의 사랑의 친교에 뿌리를 내린 것으로 이웃과의 친교, 피조물과의 친교, 가정의 친교, 친교인 교회 안으로 흘러들어 간다. 이는 우리 아시아 세계의 분열과 부조화에 대하여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대응하는 영성이다. 그러한 영성으로 우리는 하느님을 체험하는 인간이 되어 아시아에 예수님 이야기를 믿음직하고 효과적으로 전하게 된다. 63) 친교의 영성을 사목적이고 현실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지역 교회 자체와 지역 교회들 간에, 교회의 다양한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복음화 사명에서 나타나는 연대와 협력이 될 것이다.

성령과 새로운 복음화

56. 예수님께서 성령에 충만하여 성령의 이끄심으로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시러 팔레스티나 지역을 종횡무진 두루 다니신 것처럼 예수님의 제자들도 성령에 충만하여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약속하셨다.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요한 16,12-14).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요한 14,26).

이 약속은 오순절에 이루어졌다. 제자들이 성모 마리아와 함께 모여 기도하는 중에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내려오시어 그들의 두려움과 소심함을 용기와 담대함과 열정으로 바꾸어 놓으셨다. 제자들은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세상을 복음화하기 위하여 나아가서 부활하신 주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선포하였다. 성령께서는 새로운 복음화의 성령이시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신앙을 일깨워 주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위한” 것이다. 성령께서는 새로운 복음화를 믿음직하고 효과적인 것으로 만들어 주신다. 우리는 성령을 통해 기도하고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룬다. 우리는 성령과 함께 새로운 열정과 열의와 새로운 창의력으로 복음화를 실천한다.
궁극적으로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당신의 집, 곧 교회와 우주를 지으신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는 아시아인의 삶에서 종교, 문화, 사회, 과학, 기술, 시민, 정치, 경제, 사회 커뮤니케이션, 환경 분야에서 협력을 한다.

결론: 복되신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

57. 이 회의의 결의에 더하여 우리의 성찰을 마무리하며, 우리는 복되신 성모님의 도우심을 간청한다.

복되신 어머니 마리아님,
어머니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시고 “예”라고 응답하시어,
아시아에서 하느님의 독생 성자이신 예수님을 낳아 주셨습니다.
말씀의 여인시여, 저희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예”라고 응답하도록 도와주소서.
하느님의 말씀은 당신 아드님을 우리의 주님과 구원자로 선포하도록 저희를 부르십니다.

성령의 그느르심을 받은 어머니께서는 하느님 말씀을 깊이 새겨 간직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저희에게 식별하는 마음을 주시어
저희가 아시아에서 직면하고 있는 어려운 과제들 가운데에서
성령의 현존과 활동을 알아보게 하소서.

어머니께서는 주님의 으뜸 제자이셨습니다.
모든 제자들의 어머니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저희가 예수님을 좀 더 가까이 따르고
세속화된 세상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각과 가치를 본받게 하소서.

하느님과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어머니께서는 용감하게 십자가를 따르셨습니다.
믿음의 여인이시여, 저희가 믿음을 알고 다지고 실천하도록 도와주시어
저희도 아시아인들의 고통과 슬픔 속에서 저희 십자가를 지고
아시아인들에게 부활의 빛을 전하게 하여 주소서.

성령 강림 때에 어머니께서는 사도들 가운데에서 기도하셨나이다.
저희가 성령으로 가득 차
성찬례와 기도를 통하여 성덕 안에서 당신 아드님과 일치를 이루고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라 5,6)을 통하여
새로운 열정과 열의로 예수님 이야기를 하도록 도와주소서.

아시아의 어머니시며 복음화의 별이시여,
저희는 저희 자신과 새로운 복음화 사명을 어머니께 맡겨 드리오니
주님 앞에서 이제와 영원히 저희를 기억하여 주소서, 아멘.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10차 정기 총회의 사목적 제안

우리의 정기 총회에서는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제안들, 아시아에서 우리의 신앙을 알고 실천하고 전하는 데 대한 수많은 제안들이 있었다. 우리는 아시아의 커다란 흐름과 교회의 현실에 알맞은 몇 가지 제안을 선별하여 아시아의 모든 교회에 권유한다.

가장 먼저 할 일

1. 모든 지역 교회는 모든 차원에서 새로운 복음화의 긴박성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고 계발하는 구체적인 활동 계획을 세운다. 교회의 모든 분야에서 그러한 교육을 위한 실천적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평신도들이 소공동체를 그러한 노력의 장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신앙 교육

2. 교구와 본당에 걸쳐 우리의 모든 기관들, 특히 교육 기관들이 모든 사람, 특히 젊은이들의 신앙 교육과 가치 교육을 위하여 특별한 노력을 기울인다. 이를 통하여 그들이 세속화 과정에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해 온 아시아적 가치가 젊은 세대 안에서 함양되어야 한다.

거대한 흐름과 교회 현실

가난

3. 지역 교회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아가며 나누는 대화를 아시아 사목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복음의 청빈 문화를 증진하며, 모든 사목 일꾼들, 특히 주교와 사제와 수도자들이 가난한 이들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하여 가난한 이들을 먼저 사랑하신 주 예수님의 믿음직한 증인이 되어야 한다.

생명에 대한 위협

4. 각국의 주교회의와 지역 교회가 점증하는 ‘죽음의 문화’, 곧 낙태를 비롯하여 출산 보건과 관련하여 용납할 수 없는 다른 여러 활동에 맞서 ‘생명의 문화’를 촉진한다. 또한 책임 있는 부모 정신과 자연 가족계획 방법도 교육한다. 이러한 관심은 아시아에서 생명 수호 관련 운동과 단체에 대한 지원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우리도 “죽음의 문화”가 수많은 아시아인들의 삶에 침투되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인들은 또한 굶주림, 영양실조, 실업, 범죄 활동, 환경 착취, 폭력, 전쟁, 테러, 이와 유사한 다른 이유들로 위협을 받고 있다.

대화와 평화

5.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 반포 50주년에 비추어 각국 주교회의, 지역 교회,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위원회들은 평화의 문화 건설을 위한 노력을 강화한다. 이들은 숭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특히 다른 문화, 종교, 세속 운동 단체들과 좀 더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대화, 화해, 용서와 같은 그리스도교 고유의 접근법을 활용한다.

6. 베트남에서 개최된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10차 정기 총회에 비추어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는 베트남 교회와 정부가 상호 대화를 지속할 것을 촉구한다. 또한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회원국의 모든 교회와 각국 정부 간의 지속적인 대화도 촉구한다. 성좌와 중국 간에도 이와 유사한 대화가 이루어져, 앞으로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정기 총회가 저 거대한 나라에서 이른 시일 안에 열리기를 바란다.

생태

7. 아시아 교회 전체가 환경에 대한 새로운 책임 의식을 신자들에게 교육하여, 환경에 대한 책임이 영성과 그리스도교적 실천과 직무에 속하도록 한다.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의 위원회가 생태와 기후 변화와 관련된 시급한 문제에서 서로 협력하고 또한 다른 관련 단체와도 협력하고 관계망을 수립한다. 이러한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에 관한 최근 교황님들과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의 가르침을 그리스도인 교육에 포함시켜야 한다.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의 ‘기후 변화 선언’을 널리 알리는 것이 이 목적을 향한 구체적인 조치가 될 것이다.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 신학위원회가 현대 아시아 현실의 긴급한 관심사들을 고려하여 창조 신학을 발전시킨다.

이민과 유민

8. 파견국과 수용국 공동체가 이민과 유민, 그리고 그들 가족을 위한 사목의 네트워크를 수립해야 한다.

9. 이주 노동자를 위한 체계적인 신앙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그들이 복음의 효과적인 증인이 되고 일터에서 스스로 복음화 일꾼이 되도록 해야 한다.

토착민

10. 각국 주교회의와 지역 교회는 토착민들의 온전한 발전과 그들의 문화에 담긴 가치의 보존을 위하여 효과적인 영적 사목적 지원을 한다. 토착민들이 자신을 복음에 여는 것이 시대의 한 표징이 되었으므로, 거기에 맞추어 그들의 복음화에 더욱 커다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현대 세계에 참여하기

11. 우리는 아시아에서 예언자적으로 비판적이며 때로는 식별을 하면서 탈근대적인 새로운 추세와 세속화와 세계화의 세력들에 대응한다. 그러나 우리는 온갖 비관적 공격적인 자세나 단죄를 지양한다. 이는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그러한 세력들과 건설적인 대화를 나누는 데 방해가 된다. 인간 생활에서 하느님과 종교가 중심이 되도록 하고, 거룩함에 대한 감각을 보존한다.

일반 권고

12. 주교회의, 특히 지역 교회는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의 문서를 자국 언어로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아시아 교회의 쇄신에 관한 아시아 주교들의 생각이 우리 백성들에게 전해지도록 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문서들은 사목 일꾼들의 기초 교육과 평생 교육 프로그램 자료가 되어야 한다.

다짐

이 신앙의 해와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설립 4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는 교회의 새로운 복음화 사명에, 곧 예수님을 주님이요 구원자로 선포하고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새로운 열정과 방법과 표현으로’ 삼중 대화를 통하여 아시아인들에게 전하는 데에 우리 자신과 자원을 바치겠다고 굳게 다짐한다.

1)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 권고 「아시아 교회」(Ecclesia in Asia, 1999.11.6.)의 내용 중에서, 창조 때 활동하시는 성령에 관해서는 15항, 아시아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에 관해서는 18항을 참조. 성령의 활동을 아시아의 시각으로 살펴본 매우 뛰어난 문헌으로는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신학위원회가 발표한 『아시아 땅에 피어난 신학의 싹,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신학위원회 문헌집(1987-2007)』, 비말 티리마나 편, 글라렛 선교 수도회 출판부, 2007(이하 『아시아 대지에 피어난 신학의 싹』), 167-198면, 제5장 “오늘날 아시아에서 활동하시는 성령”(The Spirit at Work in Asia Today)이 있다.

2) 베네딕토 16세, 자의 교서 「믿음의 문」(Porta Fidei), 2011.10.11.,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2(제1판 1쇄) 참조.

3)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1차 정기 총회 최종 성명서, 「오늘의 아시아의 복음화」, 타이완, 1974, 『사목』 1977년 7월호(제52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19면 이하, 『아시아의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문서(1970-1991)』, 제1권, 가우덴시오 로살레스, 아레발로 편집, 1992(이하 『아시아의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제1권), 11-25면 참조.

4)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2차 정기 총회 최종 문서, 「기도 - 아시아 교회의 삶」, 콜카타, 1978, 『아시아의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제1권, 27-48면 참조.

5)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3차 정기 총회 최종 문서 「아시아의 신앙 공동체」(A Community of Faith in Asia), 1982, 『아시아의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제1권, 49-65면 참조.

6)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4차 정기 총회 최종 문서 「교회와 아시아 세계 안의 평신도의 소명과 사명」(The Vocation and Mission of the Laity in the Church and in the World of Asia), 도쿄, 1986, 『아시아의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제1권, 177-198면 참조.

7)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5차 정기 총회 최종 성명서 「제삼천년기를 향한 여정」(Journeying towards the Third Millennium), 반둥, 1990, 『회보』 62호(1990),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6면 이하,  『아시아의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제1권, 273-289면 참조.

8)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6차 정기 총회 최종 문서, 「생명에 대한 봉사, 현대 아시아의 그리스도 제자직분」(Christian Discipleship in Asia Today: Service to Life), 마닐라, 1995, 『회보』 87호(1995), 34면 이하, 『아시아의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문서(1992-1996)』, 제2권, 프란츠 요셉 아일러 편집, (이하  『아시아의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제2권), 1-12면 참조.

9)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7차 정기 총회 최종 문서, 「아시아 교회의 쇄신, 사랑과 봉사의 사명」, 삼프란, 2000,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15호(2000),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51면 이하, 『아시아의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문서(1997-2001)』, 제3권, 프란츠 요셉 아일러 편집, 2002,(이하  『아시아의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제3권), 1-16면 참조.

10)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8차 정기 총회 최종 문서, 「완전한 생명 문화를 지향하는 아시아 가정」, 대전, 2004,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30호(200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25면 이하, 『아시아의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문서(2002-2006)』, 프란츠 요셉 아일러 편집, 2007(이하 『아시아의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제4권), 1-51면 참조.

11)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9차 정기 총회 최종 문서, 「성체성사로 사는 아시아」, 마닐라, 2008,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42호(2010),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67면 이하 참조.

12) 지역 교회에 반영된, 이러한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의 전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아시아 대지에 피어난 신학의 싹』, 제2장 “아시아 상황의 신학적 성찰”, 19-68면에 나온다.

13)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신학위원회의 종교간 대화에 관한 훌륭한 아시아적 연구에는 “종교간 대화 논문: 사목 신학적 성찰 논고”, 1987, 『아시아 대지에 피어난 신학의 싹』, 제1장, 1-18면 참조.

14)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5차 정기 총회 최종 성명서, 6항, 반둥, 1990, 『아시아의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제1권,  283-284면; 아시아주교회의 국제 신학 회의, 태국, 1994, 『아시아의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제2권, “아시아 교회의 모습”, 224-226면 참조.

15) 1998년 4월 18일부터 5월 14일까지 개최된 주교대의원회의 아시아 특별 회의 후속 행사로 아시아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는 태국의 치앙마이에서 2006년 10월 8일부터 27일까지 “아시아에서 예수님 이야기를 하기: 신앙과 삶의 거행”을 주제로 제1차 아시아 선교 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때의 내용을 모아서 복음화위원회가 동일한 제목의 문헌으로 출판하였다. 이 문헌은 인도 고아에서 마리오 사투리노 디아스가 편집 출판하였다. 이 문헌의 504면 이하 참조.

16)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국제 신학 회의, 태국, 1994, 최종 문서 “아시아에서 교회로 존재하기: 성령과 함께 더 충만한 삶을 향하여 나아가는 여정”, 『아시아의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제2권, “아시아에서의 예수님 모습”, 22-224면 참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권고 「아시아 교회」(Ecclesia in Asia), 1999.11.6.,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5(제1판 5쇄), 20항 참조.

17) 제7차 사회 활동 주교 연수회, 후아힌, 태국, 1986, 『아시아의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제1권, 231-232명 참조.

18)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1차 정기 총회 보고서 “아시아적 통합 사목적 접근법, 아시아 교회에 주는 메시지”, 태국, 1996, 『아시아의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제2권, 137-139면 참조. 또한 통합 사목 자문에 관한 보고서 “아시아 교회의 새로운 존재 방식에 대한 아시아적 통합 사목 접근법”(말레이시아, 1993), 『아시아의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제2권, 107-111면 참조.

19)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 「하느님 말씀」(Dei Verbum), 10항.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개정판, 제3판 5쇄 참조.

20) 『아시아 대지에 피어난 신학의 싹』, 제6장, “방법론: 아시아 그리스도교 신학, 오늘날 아시아에서의 신학 실천”, 280면 참조.

21) 히브 13,12; 『아시아 대지에 피어난 신학의 싹』, 343면 참조.

22)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위원회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복음화위원회, 사회홍보위원회, 평신도가정위원회, 사회위원회, 성직자위원회, 교육위원회, 교회일치와종교간대화위원회, 신학위원회, 봉헌생활위원회. 아시아주교회연합회 위원회가 아시아 교회의 전체적 전망에 기여한 바를 자세히 연구하기 위해서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10차 정기 총회(마닐라, 2008)의 보고서를 참조할 것.

23) 1970년 마닐라에서 아시아 주교들이 바오로 6세 교황을 알현한 역사적인 만남 이후 아시아의 지역 연합회 수립이 구상되었다. 마닐라의 예수회 관구 건물에서 개최된 회의에는 발레리안 그라시아스 추기경(봄베이), 김수환 추기경(서울), 제스틴 다르모주워노 추기경(세마랑), 스타니스라우스 로쿠앙 주교(타이완), 프랜시스 수 주교(홍콩), 마리아노 가비올라 주교(필리핀), 호라시오 들 라 코스타 신부(예수회 관구)가 참석하였다. 탁월한 아시아 신학자 카탈리노 아레발로 신부(예수회)는 마음을 담은 글로 1974년 타이완에서 개최된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정기총회에서 아시아 주교들이 나눈 성찰들을 종합하였다. 우리는 또한 2005년까지 사무차장을 역임하며 탁월한 능력과 아량으로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발전에 크게 기여한 에드워드 말론 신부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24) 새로운 복음화와 그리스도교 신앙의 전달에 관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 총회 최종 건의안 목록, 로마, 2012, 건의안 22항 “회개”.

25) 건의안 23항 “성화와 새로운 복음화의 일꾼”

26) 복음화에 관한 교회의 간략한 설명은 『간추린 교회의 사회 교리』를 참조할 것.

27) 요한 바오로 2세, 세계 평화의 날 담화, 1998.1.1., 「아시아 교회」, 39항에 인용 참조. 또한 1998년 쿠바 하바나에서 한 요한 바오로 2세의 강론, 2003년 교황청 사회 과학원에서 한 연설 참조. 베네딕토 16세의 교황 권고 「사랑의 성사」(Sacramentum Caritatis), 90항,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2008, 제1판 1쇄 참조.

28) 세계화의 일부 긍정적인 가능성에 관해서는 베네딕토 16세의 회칙 「진리 안의 사랑」(Caritas in Veritate), 42항 참조.

29) “이민과 난민 사목: 교회의 새로운 존재 방식”, OHD 사회 활동을 통한 종교간 만남 V(FEISA), 『아시아의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제4권, 89-133면 참조. 이주사목평의회의 「이민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Erga Migrantes Caritas Christi, 2004.5.3.)은 이민 사목의 교리적, 법률적, 사목적 지침을 제공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읽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이 문서에 고 후미오 하마오 의장 추기경이 서명하였다는 것은 섭리적인 일이다. 하마오 추기경은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인간발전위원회의 훌륭한 의장이셨다.

30) 세계은행 연구, 파트리노스 발표, 『토착민과 빈곤과 발전』(Indigenous Peoples, Poverty and Development), 2010 참조.

31) 국제연합 경제사회문제국, 『세계 인구 전망』(World Population Prospects), 2010년 개정판 자료,  참조.

32) 「아시아 교회」, 7항 참조.

33) 「진리 안의 사랑」, 29항 참조.

34) 이러한 종교 극단주의와 폭력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관한 매우 유용한 배경 정보는 아시아주교회의 종교위원회의 “아시아 상황의 종교 자유”, 2004, 『아시아 대지에 피어난 신학의 싹』, 제7장, 345-376면 참조.

35) 「진리 안의 사랑」, 28항 참조. “아시아 상황의 생명 존중”에 관한 사목 신학적 성찰을 위해서는 『아시아 대지에 피어난 신학의 싹』, 8장, 377-418면 참조.

36)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사회홍보위원회 주최 1999년 주교 모임의 “최종 성찰”(Final Considerations)이 참고할만하다. 이 문서는 네이스빗(Hohn Naisbitt)의 「아시아의 거대한 흐름」(Megatrend in Asia)의 의미에 관하여 성찰한 것이다. 교회의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관해서는 『아시아의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제3권, 165-170면 참조.

37)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도전에 대한 교회의 응답은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 사회홍보위원회의 주교 연수 2000, 2001에서 제시되었다. 『아시아의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제3권, 171-177면 참조. 특히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주교 연수(BISCOM II), “현대 커뮤니케이션 기술: 아시아 교회에 대한 도전?”, 방콕, 1999, 『아시아의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제3권, 193-196면 참조.

38)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미세레오 심포지엄 최종 성명 “아시아 기후 변화의 도전에 대한 교회의 대응: 새로운 창조를 향하여”, 방콕, 2011.10.20.

39) 기후 변화에 대한 모범적인 교회의 반응에 관해서는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와 미제레오, 로마 남남 대화 선언 “기후 변화: 정의에 대한 요청”(Climate Change: A Call to Justice), 2010.10.1.-2.;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미제레오 세미나, 최종 문헌 “아시아 기후 변화의 도전에 대한 교회의 대응: 새로운 창조를 향하여”(Church Response to the Challenge of Climate Change in Asia: Towards a New Creation), 방콕, 2012.10.19.-20. 참조.

40)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평신도위원회가 1984년 처음 주최한 평신도 사도직 주교 연수회(BILA)는 평신도 역량 강화에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41) 아시아 주교 모임, 마닐라, 1970 최종 성명 참조.

42) 정기적인 아시아 청년 대회 모임은 아시아 교회의 기쁨의 원천이다. 이 모임은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평신도위원회의 청년부에서 주최한다. 예를 들어 제4차 아시아 청년대회 최종 문헌 “젊은이, 아시아 가정의 희망”(홍콩, 2006.7.30.-8.5.), 『아시아의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4권, 167-171면 참조.

43) 이 신앙 성찰 전체에 관한 유익한 자료는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신학위원회(이전의 신학자문위원회)의 “조화에 관한 아시아 그리스도교의 전망”(Asian Christian Perspectives on Harmony), 『아시아 대지에 피어난 신학의 싹』, 제4장, 111-166면, 특히 139-146면 참조.

44) 많은 성경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강한 바람”에서 성령을 인식하였다. 「아시아 교회」, 15항 참조.

45) 『간추린 사회 교리』 115-116항 참조.

46) 『가톨릭 교회 교리서』, 340-344.360-361항,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2011, 제2판 6쇄 참조.

47) 『가톨릭 교회 교리서』, 301-302항 참조.

48) 『가톨릭 교회 교리서』, 356-357; 『간추린 사회 교리』, 111-114.132-133항,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개정판 제2판1쇄, 2006 참조.

49) 『가톨릭 교회 교리서』, 369-372항 참조.

50)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69항, 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12, 개정판 제3판 5쇄; 참조: 『가톨릭 교회 교리서』, 299.2402-2403; 『간추린 사회 교리』, 171-172항 참조.

51)  『가톨릭 교회 교리서』, 373항; 『간추린 사회 교리』, 460.467.470항 참조.

52) 미얀마 주교들은 “사중 대화”를 제안하였다. 여기에는 급진적 세속주의나 정치 이데올로기에서 나온 무신론과 나누는 대화가 추가된다.

53) 건의안 8항 “세속화된 세상 속에서의 증언” 참조.

54) 건의안 9항 “새로운 복음화와 첫 선포” 참조.

55) 그리스도교 신앙의 전수를 위한 새로운 복음화에 관한 주교대의원회의 제13차 정기 총회, 「의제 개요」, 51-67항,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44호(2011), 한국천주교주교회의, 119면 이하 참조.

56) 요한 바오로 2세, 라틴아메리카주교회의연합회 제19차 정기 총회 강론, 1983.3.9.

57) 건의안 11항, “새로운 복음화와 기도 안에서 읽는 성경” 참조.

58) 건의안 36항, “새로운 복음화의 영적 차원” 참조.

59) 바오로 6세, 「민족들의 발전」(Populorum Progressio), 20.75항, 한국천주교주교회의, 1987, 참조.

60) 베네딕토 16세, 「진리 안의 사랑」(Caritas in Veritate), 79항, 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09, 제1판 1쇄.

61)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5차 정기 총회, 최종 성명서, 『아시아의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1권, 288-289면 참조.

62) 「아시아 교회」, 23항 참조.

63) 친교의 영성에 관해서는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5차 정기 총회, 최종 성명서, 『아시아의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1권, 288-289면;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4차 정기 총회, 최종 성명서, 『아시아의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2권, 6-8면;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8차 정기 총회, 메시지, 『아시아의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3권, 39-40면 참조; 또한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신학위원회의 문서 “조화에 관한 아시아 그리스도교의 관점”, 1996, 『아시아 대지에 피어난 신학의 싹』, 제4장, 151-164면 참조; 「아시아 교회」, 24항도 참조.

<원문: FABC at Fourty Years: Responding to the Challenges of Asia  a New Evangeliz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