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회

사도생활단

한국 외방 선교회 최 강 신부

‘사도생활단’(Society of Apostolic Life)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아서 일반인들에게는 물론 가톨릭 신자들에게도 여전히 생소하게 들릴 수 있다. 교회 안에서 ‘사도생활단’이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83년 새 법전이 반포된 이후부터이다. 그전까지는 여러 가지 다른 이름, 즉 1917년 법전에서 사용했던 ‘수도서원 없이 공동생활을 하는 남성, 혹은 여성들의 단체’(Societies of Men or Women Living in Community Without Vows)나, 1983년 법전 준비 단계에서 1977년 시안에 제안되었던 ‘사도생활연합회’(Institutes of Associated Apostolic Life), 또는 단순히 ‘외방선교회’(Missionary Societies)로 더 널리 알려졌었다.

사도생활단의 기원

몇몇 교회사가敎會史家들은 사도생활단의 기원을 4세기 무렵, 이탈리아 베르첼리의 주교였던 에우세비오(315-371)가 일단의 재속사제들을 모아 정해진 규칙을 따르면서 공동생활을 시작했던 시점이나, 1186년 벨기에의 사제였던 랑베르(Lambert Beghe가 설립한 베긴회(Congregationes Beguinarum)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하지만 보다 공통된 의견은 16세기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생겨난 사제들의 공동체에서 그 기원을 찾으려는 쪽이다. 이들은 성 필립보 네리에 의해 1564년에 시작되고 1575년에 그레고리오 8세 교황에 의해 설립 인가된 ‘오라토리오회’(Congregatio Oratorii)와 성 빈센트 드 폴에 의해서 설립된 여성들의 단체인 ‘애덕의 자매회’(Congregatio Sororum a Caritate)를 보다 직접적인 사도생활단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특히 성 빈센트 드 폴은 가난한 자들과 함께 살면서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자신이 설립한 단체들의 사도적 목적에 항상 으뜸으로 두었는데 이는 오늘날 법전이 규정하는 ‘사도적 목적의 추구’라는 사도생활단의 목적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 단체들은 당대의 시대의 징표를 뚜렷하게 직시하면서 교회와 사회의 요청에 응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자신들의 사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럼으로써 그 당시 사회와는 고립된 수도생활의 형태로는 이룩하기 힘들었을 보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빈민 사목과 이주민 사목 등의 사도적 목적들을 추구하고 또 많은 결실을 이루었다.

사도생활단의 발전

성 필립보 네리에 의해 시작된 재속사제들의 공동생활 단체 이후 남성들의 사도생활단은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구분되어 발전하게 된다. 한 가지 흐름은 성 필립보 네리를 중심으로 시작된 ‘사제들의 양성과 성화’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들이었다. 여기에는 ‘성 필립보 네리의 오라토리오회’(Confederatio Oratorii S. Philippi Nerii), ‘성 빈센트 드 폴의 라자리스트회’(Congregatio Missionis), ‘성 술피스의 사제회’(Societas Presbyterorum a S. Sulpitio) 등이 있다. 또 다른 흐름은 1660년 설립된 ‘파리외방선교회’(Missions Étrangères de Paris)를 필두로 하여 전적으로 ‘외방선교’만을 단의 ‘사도적 목적’으로 받아들이는 ‘외방선교 사도생활단’들이다.

외방 선교 사도생활단의 출현과 그 배경

1660년 파리 외방 선교회가 생겨나기 이전까지 교회의 선교사명은 철저하게 수도회와 그 회원들에 의해서 이뤄지고 있었다. 15~16 세기, 소위 일컫는 ‘지리상의 발견’ 이후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왕들은 자신들이 발을 디딘 새로운 선교지에서 정치적으로나 상업적으로는 물론, 새로운 교회를 세우면서 이들로부터 재정적인 도움을 받아왔던 교황청과의 계약에 의해서 ‘빠드로아도Padroado’(보호권)라고 불리는 특전을 부여받음으로써, 주교 임명권을 비롯하여 선교사를 파견하고 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등의 종교적 문제에 대해서도 거의 전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러한 교회와 세속 권력과의 불행한 동거는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결국 그레고리오 15세는 1622년 1월 6일, 포교성성(The Sacred Congregation for the Propagation of the Faith)을 설립하고 선교에 관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사상 유례없는 권한을 부여하면서 전 세계 선교에 있어서의 주도권과 책임을 다시 교황의 직무 하에 두고자 하였다.

이를 위하여 포교성성은 ‘빠드로아도’ 체제에 관련된 수도회에 소속된 수도회원들이 아닌 재속 사제들을 새로운 선교지에 파견하고 그들의 사업을 직접적으로 관장하고자 했다. 이와 같은 포교성성의 새로운 시도에 많은 열정적인 프랑스의 교구 사제들이 참여했다. 이렇게 외방선교를 지원하는 재속 사제들을 지속적으로 양성할 수 있는 신학교의 건립이 ‘파리외방선교회’라는 새로운 외방선교 단체의 출발이 되었다. 이러한 회원들의 재속성은 계속 이어져서 오늘날까지 사도생활단의 성직자 회원들의 재속성은 하나의 특성으로 지켜지고 있다. 파리외방선교회 이후, 이와 같은 성격의 외방선교를 전담하는 단체들이 주로 국가 교회별로 세워졌는데 이러한 단체들로는 메리놀 외방전교회, 골롬반 외방선교회,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그리고 한국 외방 선교회 등이 있다.

사도생활단의 본성과 특성

사도생활단의 본성과 목적, 삶의 방식, 그리고 특성 등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교회법 제 731조 1항에 따르면, 사도생활단은 ‘수도서원 없이’라는 기본 전제 아래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구성 요소로 특징지어 진다.

ㄱ) 목적 : 각 단의 고유한 사도적 목적을 추구하고,
ㄴ) 삶의 방식 : 고유한 방식에 따른 형제적 공동생활을 하면서,
ㄷ) 특성 : 회헌의 준수를 통해 애덕의 완성을 향하여 나아간다.

사도생활단 중에는 회원들이 ‘수도서원(religious vow)’ 이외에 회헌에 규정된 특정의 방식, 즉 서약(promise)이나 맹세(oath) 등을 통해 청빈, 정결, 순명이라는 세 가지 복음적 권고와의 유대를 가지는 단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유대들은 수도회에서 발하는 ‘수도서원’과는 달리 교회의 공적 서원이 아니며, 회원들이 이를 통해 정식으로 교회 안에서 ‘수도자’의 신분을 얻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사도생활단 회원들이 재속성을 유지함에 따라 사도생활단의 회원들은 각기 회헌이 정하는 바에 따라서 자신이 속한 회에 확정적으로 합체(incorporatio definitiva)되면서 입적(incardinatio)은 자신의 출신 교구에 할 수도 있게 된다.

사도생활단의 분류 및 현황

사도생활단은 수도회와 마찬가지로 설립 주체에 따라 ‘성좌 설립 사도생활단’과 ‘교구 설립 사도생활단’으로 나뉘고, 성별에 따라서는 남자, 혹은 여자 사도생활단으로, 그리고 설립자의 설립 정신이나 목적, 계획 또는 합법적인 전통에 의하여 성품의 집행을 맡는 ‘성직자 사도생활단’과 그렇지 아니하는 ‘평신도 사도생활단’으로 분류된다.

2007년 교황청 연감에 따르면 현재 교황청 설립 남자 사도생활단은 모두 33개 단체가 있고 이들 중 15개가 외방선교 사도생활단이다. 교황청 설립 여자 사도생활단은 모두 12개가 있다. 이 밖에 전 세계에 수많은 교구 설립 남자, 혹은 여자 사도생활단이 있다.

현재 한국에는 ‘파리외방선교회’, ‘메리놀 외방 전교회’, ‘골롬반 외방 선교회’, ‘과달루페 외방 선교회’, ‘필리핀 외방 선교회’, 그리고 ‘팔로티회’로 더 잘 알려진 ‘천주교 사도회’를 비롯한 6개의 외국에서 들어온 사도생활단과 ‘한국 외방 선교회’와 ‘성 황석두 루카 선교 형제회’와 같이 한국에서 시작된 2개의 사도생활단이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