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회

한국 교회와 남자 선교·수도회

1 머리말

200여 년의 한국 천주교회사가 엮어지기까지 선교회들과 수도회들이 이룩한 업적은 상당하다. 1831년 파리 외방 전교회의 진출을 시작으로 선교회들이 진출하였고, 수도회로는 1888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가 처음으로 진출하였다. 남자 선교·수도회의 경우 1909년 성 베네딕도 수도회의 진출을 시작으로 수도회들이 진출하였고, 1953년 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의 설립을 시작으로 한국 내에서 많은 수도회들이 설립되었으며, 1975년 한국 외방 선교회가 설립되었다. 선교회나 수도회나 그리스도의 복음전파라는 기본 목표에는 다름이 없다. 그러나 그 방법에 있어서는 성당 등을 통한 직접 선교, 교육·의료·사회복지 활동을 통한 간접 선교, 그리고 관상 생활을 통한 선교라는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

수도자는 성직자와 평신도 양쪽에서 하느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그래서 남자 수도회의 경우에는 성직 수사(수사 신부)의 길과 평수사의 길이 있지만, 모두 ‘수도자’라고 하는 하나의 공통된 신분에 속한다. 수도자는 그리스도를 더욱 충실히 따르기 위하여 교회와 공동체 안에서 정결, 청빈, 순명의 복음적 권고의 삶을 공적으로 서약함으로써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사람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중 <수도생활의 쇄신·적응에 관한 교령>에 의하면 수도회는 크게 관상 수도회, 활동 수도회, 절충 수도회로 구분된다. 절충 수도회는 수도생활 자체가 원천이며 수도 생활 그 자체로부터 경우에 따라 관상을 강조하거나 혹은 활동을 강조하거나 하는 수도회가 된다.

200여 년의 한국 천주교회사에 많은 선교회와 수도회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의 활동 영역이 다양해졌고 풍부해졌다는 의미이다. 한국 교회는 200여 년의 역사 속에서 양적으로 큰 발전을 이루었으며, 수도회들도 크게 성장하였다

본고는 한국 사회 및 한국 천주교회 안에서 남자 선교·수도회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가를 고찰하는 데 그 목적을 둔다. 그동안 선교·수도회별로 각기 역사를 정리하고자 노력한 결과물들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각 수도회의 역사에 주력하다 보니 한국사 내지 한국 교회와의 연관성, 다른 선교·수도회들과의 관계 속에서의 파악이라는 측면에서는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으며, 특히 세계 교회와 한국 교회의 관계, 수도회 총본부와 한국지부(관구)와의 관계 설명에는 미흡한 점이 있다고 여겨진다. 또한 비판적인 시각에서의 고찰에는 거의 접근하지 못한 한계점이 있다. 그러나 수도회가 지향하는, 그리고 한국 교회 안에서 수도회가 차지하는 위치를 고려할 때 그 성장에 긍정적인 시각만이 투영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본고는 개별 수도회사 추적이 아니라 한국 교회 내지 한국사와의 관련성 속에서 남자 선교·수도회의 위치와 역할을 규명하고자 한다. 시기적으로는 한국에 최초로 파견된 파리 외방 전교회가 진출한 1831년부터 1999년까지로 하며, 공간적 범위로는 남자 선교·수도회가 설립되고 진출한 한국과 외방 선교 지역까지를 포함한다.

이상과 같은 목적을 지닌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은 면에서 그 효용성이 기대된다. 첫째, 그동안 한국 천주교회사 서술에서 소략하게 언급되었던 남자 선교·수도회의 위치와 역할을 부각시킬 수 있다. 이는 한국 천주교회사의 구성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남자 선교·수도회들이 각자의 개별 역사서를 편찬하는 데 한국 교회 내지 타 선교·수도회들과 관련하여 정리하고 서술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셋째, 여자 수도회사를 집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넷째, 여자 수도회사와 남자 선교·수도회사를 통합하는 한국 수도회사를 편찬 하는 데 기초가 될 것이다.

그러나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는 한계가 있다. 첫째, 각 선교·수도회들의 자료를 충분히 입수·활용하지 못하여 섬세한 조망에는 아쉬움을 남긴다. 둘째, 자료 수집의 한계 때문이기는 하지만 몇 개의 선교·수도회를 제외하고는 충분한 자료 검증과 비판이 이루어지지 않은, 수도회들의 원고를 활용하였다는 점이다. 셋째, 선교·수도회들 고유의 설립 이념과 영성을 비교·분석하고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 안에서 그것들이 얼마나 적용되었는지 하는 점에 접근하지 못하였다. 이 부분은 신학적인 지식과 그 지식에 근거한 고찰이 요구되므로 본고에서는 논외로 하였다. 이러한 점들이 보완될 때 본 논문은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후고를 기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