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국외
2005-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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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성서 연합회] 아시아 - 오세아니아 성서대회 성명서: 살아 있는 희망이며 영원한 평화인 하느님 말씀



아시아 - 오세아니아 성서 대회 성명서
(필리핀 타가이타이, 2005.2.14-18.)


살아 있는 희망이며 영원한 평화인 하느님 말씀

 

아시아-오세아니아 성서 대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 「하느님의 말씀」(Dei Verbum) 반포 40주년을 맞아 마련되었으며, 가톨릭 성서 연합회(CBF) 아시아-오세아니아 지부와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FABC) 일치위원회의 후원으로 개최되었다. 신부와 수녀, 남녀 평신도 등 182명의 성서 사목 봉사자들,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에서 온 16명의 주교와 가톨릭 성서 연합회 사무총장이 대회에 참석하였다. 대회의 주제는 가톨릭 성서 연합회 제6차 정기 총회(2002년, 레바논)의 주제인 ‘만민을 위한 축복인 하느님 말씀’과 관련하여 선정되었다.


살아 있는 희망이며 영원한 평화인 하느님 말씀
(애가 3,21-25; 로마 15,4-13)

1. 이것은 아시아-오세아니아 성서 대회 동안 우리 마음과 우리 가운데 울려 퍼진 확신이며 초대다. 즐거운 친교의 분위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경험과 노력, 희망을 나누고, 우리 앞에 놓인 책임을 함께 이야기하였으며, 아시아-오세아니아 교회 생활에서 말씀이 지니는 큰 힘과 말씀의 전파, 말씀의 힘에 대한 관심과 열정의 증대와 확산을 증언하였다. 지난 40년을 돌아보면 하느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벅차오른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다른 열매들과 함께 ‘계시 헌장’이 우리에게 새로운 전망과 신선한 자극과 용기를 주어 하느님 말씀이 교회인 우리 삶의 중심에, 곧 우리의 영성과 예배와 직무와 사명 안에 자리 잡을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에서 우리의 관심은 평화를 가져다주는 말씀의 힘과, 두 대륙의 평화를 위협하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성서 사목직의 방향에 집중되었다.


평화에 대한 위협

2. 우리는 먼저 역사의 현 단계에서 평화와 일치를 위협하고 허물며 무너뜨리는 실재들에 관심을 돌렸다. 곧, 폭력, 부당한 빈곤 구조, 문화와 공동체와 종교 사이의 갈등, 종교 근본주의, 세계화, 소비 주의, 부패, 자연 자원의 착취에 관심을 돌렸다. 우리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아시아 교회」(Ecclesia in Asia)에서 하신 말씀을 상기해 본다. “20세기 말, 세계는 투쟁과 전쟁을 발생시키는 세력들에게 여전히 위협받고 있으며, 아시아도 분명히 예외는 아닙니다. 이러한 세력들 가운데에는 온갖 종류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그리고 종교적 비관용과 소외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새로운 폭력들이 개인과 모든 민족을 덮치고 있으며, 죽음의 문화가 긴장 해결을 명분으로 한 폭력에 부당하게 의지하며 유지되고 있습니다”(38항).


빛과 그림자

3. 우리는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의 평화를 무너뜨리고 불화를 낳는 복잡한 현실과 상황을 뼈저리게 통감해 왔다. 공통의 통일된 세계관과 종교에 대한 일반적인 관용의 태도에도 아랑곳없이, 강력한 분열 세력이 평화와 일치를 파괴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종교적 문화적 구조 자체가 평화에 대한 전망과 열망, 노래와 기도, 꿈과 노력으로 짜여 있음을 알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우리 민족들의 성향을 감지하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시아 민족들은 종교적 관용과 평화적 공존의 정신으로 유명합니다. 견디기 어려운 긴장과 폭력 투쟁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시아는 종교와 문화의 다원성 속에서 민족들 사이에 서로를 풍요롭게 하는 놀랄 만한 적응력과 자연스러운 개방성을 자주 보여 주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6항). 평화와 일치는 우리의 큰 관심사이다. 하느님 말씀의 봉사자로서 우리는 불화가 끝이 아니라고 믿는다. 하느님 말씀은 우리의 살아 있는 희망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빛인 하느님 말씀

4. 우리는 성경에서 ‘샬롬’ 곧 평화를 말할 때에 ‘안녕’, ‘행복’, ‘완전함’, ‘관계’의 특징을 지니는 삶과 관련짓는다는 것을 안다. 평화는 자연, 자기 자신, 다른 사람들 그리고 하느님과 이루는 일치를 포함한다. 평화는 친교의 삶으로 실천되는 조화와 일치이며, 하느님과 인간의 친교이다. 평화는 무엇보다도 영적인 선이며, 따라서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주시는 선물이다(민수 6,26; 시편 34,27; 36,37; 121,6).


평화와 정의

5. 우리는 성경이 평화와 정의를 결합시키고 평화를 정의의 결과로 제시하고 있음이 우리 아시아-오세아니아 민족들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평화와 정의는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분리될 수 없는 두 요소이다. 이사야서는 시적 언어로 평화를 이렇게 노래한다. “정의의 결과는 평화가 되고 정의의 성과는 영원히 평온과 신뢰가 되리라”(이사 32,17). 이와 마찬가지로 시편에서도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정의와 평화를 비유적 표현으로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추리라”(시편 85,11).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며 평화를 찾고 또 추구하여라”(시편 34,15; 1베드 3,11도 참조). 그러므로 성경의 평화관은 단순한 개인의 평온이나 긴장이 없는 상태가 ─ 물론 이것도 중요 하지만 ─ 아니다. 평화는 무엇보다도 하느님과 또 사람들 사이에 맺는 지속적이고 공정한 계약의 관계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따라서 평화는 인격적, 사회적 차원과 하느님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적 차원을 지닌다.


예수님, 우리의 평화

6. 평화에 대한 하느님 계획을 선포하는 거룩한 노래는 예수님의 탄생에도 함께 하였다. “땅에서는 그분[하느님]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 평화는 예수님을 통하여 주시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이시며 우리의 희망이신 예수님께 의존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시기 때문이다. 그분 안에서 민족들 사이에,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놓인 모든 장벽과 담이 허물어지고 친교가 회복되었다(에페 2,14-15).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과 당신의 직무를 통하여, 이 세상 안에 있는 하느님 나라의 관점에서 평화를 이루고자 하셨다. 그 나라는 자유와 깊은 관심, 친교, 평화와 정의를 낳는, 무조건적인 하느님의 사랑이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나라이다.


은총이며 임무인 평화

7.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담긴 예언자적 시각에서 평화에 대한 희망에 부푼다. “나의 백성은 평화로운 거처에, 안전한 거주지와 걱정 없는 안식처에 살게 되리라”(이사 32,18). 유배지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말에서도 우리는 현 상황에서 평화에 대한 희망을 찾는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몸소 마련한 계획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것은 평화를 위한 계획이지 재앙을 위한 계획이 아니므로, 나는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고자 한다”(예레 29,11). 우리는 참평화가 하느님의 선물인 동시에 우리에게 맡겨진 책임임을 믿는다. 죄와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께서는 평화라는 선물을 제자들에게 주시어 모든 사람에게 전달하게 하셨다(요한 20,19-23; 사도 7,26; 9,31 참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갈라진 세상에 화해와 평화, 용서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명을 내리셨다(루카 24,47 참조).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신 평화의 선물에는 평화 건설의 사명이 함께 따른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21). 우리는 우리의 모든 희망을 그분께, 그분 말씀의 힘에 걸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분의 말씀에 기댈 때에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노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또 우리 두 대륙의 평화가 위협받는 어려운 상황에서 무력감에 빠지지 않으면서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릴”(루카 5,4-5) 용기를 낼 수 있다.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의 평화 ‘자원’

8. 우리는 평화 실현을 지향하는 성서 사목직 앞에 놓인 과제들을 생각해 보았다. 평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은 성경 속 평화의 풍부한 유산과 표상, 증언들을 바탕으로 하여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결정적으로 당신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의 참된 표현인 성경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는 평화를 위한 우리의 공동 노력에서 또 다른 중요한 ‘자원’을 인식하고 있다. 그것은 곧 살아 있는 종교들과 유구한 문화들이다. ‘계시 헌장’의 폭넓은 관점에 비추어, 우리는 이러한 실재들 안에서 당신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의 보편적 현존과 활동을 인식하기 때문이다(계시 헌장, 1-6항 참조). 그것들은 “말씀의 씨앗”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변화의 운동 속에 감추어진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여성 운동, 소수 민족 운동, 환경 운동, 가난한 이들의 투쟁과 경험, 사회 운동, 그리고 노동자 운동, 인권 운동과 같은 민중 운동이 그것이다. 특히, 우리는 평화를 체험하고 증진하며 건설하기 위한 지혜와 통찰력, 적응의 풍부한 보화를 담고 있는 아시아의 경전들에서 성령의 활동을 인식한다. 그렇다고 “교회에 맡겨진 계시의 보화”(계시 헌장, 26항)인 성경 말씀의 중심성과 우위성이 조금도 감소되어서는 안 된다.


성령의 현존: 경청과 협력으로 부르심

9. 아시아의 종교들과 그 경전들, 전통과 관습들에는 세계 평화에 대한 추구가 드러난다. 우리는 이러한 열린 마음으로 불교, 힌두교, 시크교, 이슬람교 대표들에게 귀 기울였다. 이러한 나눔을 통해 우리는, 모든 사람이 당신의 평화를 체험하고 서로 화목하게 살아가기를 바라시며 모든 것을 돌보시는 하느님께서 우리 주변에 뿌리신 거룩한 지혜의 씨앗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알게 되었다. 우리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다른 종교에서 성령의 역할에 관해서 하신 말씀을 떠올린다. “성령의 현존과 활동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와 역사와 문화와 종교에도 도달한다. 참으로 성령은 인류의 역사적 순례 중의 모든 고상한 사상과 기획의 원천이다”(「교회의 선교 사명」, 28항). 이것은 사실상 성령께 귀 기울이라는 초대다. 이러한 실재들 안에 담긴 말씀의 씨앗과 성경의 하느님 말씀이 상호 작용하여 우리 두 대륙에서 평화를 위한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힘으로 부상하여야 한다. 우리 성서 사목 봉사자들이 이를 주도함으로써, 분열 세력과 갈등 상황들이 세상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 성령의 일치 권능의 영향 아래 놓일 수 있게 하여야 한다.


대화를 통한 말씀의 이해

10. 대화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 아시아인들에게 주어진 의무다. 또한 우리는 아시아의 성경 해석학이 이제 막 그 여정과 순례를 시작하였음을 안다. 성경 해석학은 경전들 안에서 하느님 말씀을 풍부히 체험할 수 있게 하며, 아시아 종교들 사이에 더욱 깊은 상호 이해와 대화의 길을 열어 줄 수 있다. 평화를 위한 아시아의 종교 자원은 분명 희망의 징표다. 평화의 실현은 공동의 의무며, 모든 신앙인이 협력해야 할 사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하느님 말씀이 아시아 종교와 문화들, 사회 실재들의 풍부한 자원들과 만나서 대화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그것들을 통해서 다른 신앙을 가진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우리 두 대륙의 보잘것없는 이들, 가난한 이들, 버림받은 이들, 배척받는 이들과 소외된 이들에게도 귀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목소리는 흔히 힘 있는 자들에게 짓눌려 들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성경 말씀을 아시아에서 적절하고 조화롭게 선포하려면,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학문적 차원에서든 일반적 차원에서든 성경 본문과 메시지를 아시아의 상황과 현실에 연결시켜야 한다.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는 이를 ‘신학적 자원’이라고 표현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인식과 관점을 풍부하게 하고 자극할 수 있는 아시아의 성경 해석학이 필요하다. 그러한 접근은 평화와 일치를 위한 종교 간 친교와 협력에도 기여할 수 있다. 아시아 사회들은 그렇게 협력하지 않고는 지속적인 평화에 이를 수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성서 사목직 종사자들이 배타적인 시각을 버리고, 서로에게서 진리의 요소들과 가치들을 기꺼이 인정하면서 상호 보완적인 사고방식을 기를 필요가 있다. 호전적인 근본주의가 아시아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이때, 교회는 말씀을 이해하고 나누는 일에서 모든 배타주의의 싹을 용감하게 잘라 버려야 할 것이다.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한 관계의 특성이 우리의 말씀 직무 안에 특히 두드러져야 한다.


우리 앞에 놓인 과제

11. 평화의 과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 다른 종교들과 그 종교들의 거룩한 전통과 경전들에 대해서 어떤 편견이 있다면 그러한 편견을 버릴 수 있도록, 신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재교육 프로그램 마련하기. 이는 평화를 위한 공동 노력에 필요한 상호 이해와 존중의 태도를 길러 줄 것이다.
─ 소공동체 운동을 강화하여 종교 간 대화와 평화 증진에 참여할 수 있게 하기.
─ 평화 교육을 성경 교육 프로그램에 통합하기.
─ 대화를 통하여 성경의 하느님 말씀과 다른 종교 경전들을 이해시킬 봉사자들을 양성하고, 이들 경전들에서 평화를 증진하는 요소를 찾기.
─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의 문화와 종교들이 지닌 보화를 고려하면서, 지적이고 합리적인 접근에서, 상황에 따라 대화를 통하여 전체적으로, 다른 문화에 대하여 이해하는 접근으로 나아가기.
─ 평화 건설을 위하여, 말씀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 체험과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성서극을 장려하기.
─ 평신도 계속 교육을 강화하고 그들이 성서 사목직과 평화 건설에 더 열심히 참여할 수 있게 하기.
─ 평화와 정의 문제들과 관련하여 하느님 말씀을 상황에 맞추어 읽음으로써 성서 사도직을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수단으로 삼도록 신자들을 교육하기.
─ 다양성 안의 일치를 증진하기 위하여 말씀 읽기를 장려하기.
─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의 종교와 문화들에 더욱 큰 관심을 가지도록 하기 위하여 여러 종교들의 특징과 경전들에 대한 편람 발행하기.
─ 아시아의 성경 해석학에 관한 더 많은 설명과 자료를 제공하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성경을 읽는 법을 심화하고자 노력하기.
─ 아시아(-오세아니아)의 성경 주해와 해석학에 따른 접근을 토대로, 아시아(-오세아니아)의 성경 주석서를 마련하기.
─ 우리 상황에 맞게 성서 사목직 봉사자들을 양성하고 우리 민족들에게 맞는 연구와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아시아(-오세아니아) 성경 연구소를 세우기.


결 론

12. 우리가 선포하도록 부름 받은 말씀은 인간과 자연 사이(창세 9,8-17), 인간들 사이, 그리고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 사이의 화해와 평화의 말씀이다. 그 말씀은 곧 평화이신 예수님이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 세상에 오시어, 평화를 선포하셨습니다”(에페 2,14.17). 그리스도교 성경에서 발견되는 보편적 일치의 표상들이 우리의 선포와 증언을 통하여 아시아에 울려 퍼져야 한다. 아시아-오세아니아 민족들이 경험하고 지적하는 하느님의 모습은 우주와 세상의 일치의 근원이신 분의 모습이다. 그러한 배경에서, 우리는 만물과 만민의 화해자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 주어야 한다. 그 모습은 모든 아시아인의 마음에 깊이 다가올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아시아의 실재들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께 마음을 열고 귀 기울여야 한다. 만민의 하느님께서는 모든 아시아 민족들 사이에 평화와 일치를 위한 말씀의 씨앗을 심어 놓으셨다. 그리스도교의 성경 말씀과 아시아의 문화적 종교적 전통들 사이로 들려오는 성령의 목소리가 대화를 통해 상호 작용함으로써 우리의 말씀 체험과 우리의 성경 주해와 해석학을 분명히 풍부하게 해 줄 것이다. 이는 또한 보편 교회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타가이타이에서 가진 우리의 체험은 하나의 은총이며, 평화의 부재로 고통 받으면서도 계속 평화와 정의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과 연대 안에서 성경을 읽으라는 부르심이다. 이 부르심은 아시아의 풍부한 문화적 종교적 자원을 통하여, 신비롭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속삭이시는 성령께 주의를 기울이면서 그리스도교의 성경을 상황에 맞추어 읽도록 요구한다. 「아시아 교회」는 우리에게 용기와 창의력을 가지라고 권고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얼굴이 아시아에서 제시될 수 있는 새롭고 놀라운 방법에 열려 있어야 합니다”(20항). ‘놀라운 방법’은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와 능력을 필요로 한다. 성경의 현실화에 따르는 위험에 대한 교황청 성서위원회의 지적은 말씀 직무를 통한 평화 사업에도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성경 메시지를 우리 시대 사람들의 귀와 마음에 전해 줄 필수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 오류의 위험이 중요한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다”(‘교회 안의 성서 해석’, IV, 가, 3). 우리는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안에서 살아 계시며 활동하시는 말씀, “살아 있는 희망이며 영원한 평화인 하느님 말씀”을 확신하면서 그러한 과업에 투신한다.

 

부 록


평화와 일치에 대한 여러 종교들의 관점

주: 아래에서 우리는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의 다양한 종교와 세계관, 전통에서 발견되는 평화관을 이루는 요소들을 간략하게 설명한다. 이는 대회 참석자들과 또 우리와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나 관련자들의 성찰을 고무하기 위한 것이다. 몇 가지 두드러지는 요소와 특징들을 나열해 놓은 이 간략한 설명은 결코 이들 요소들이나 종교, 세계관, 전통에 대한 신학적 진술이 아니다.

1. 힌두교의 관점: 우리는 평화와 일치가 삶과 세상의 모든 측면이 조화롭게 통합된 덕(dharma)으로 시각화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인간과 세상, 인간과 신 사이의 질서 정연하고 조화로운 개인적 사회적 관계를 바탕으로 한 평화다. 그러한 목적은 진리만을 추구함으로써 실현되어야 한다. 따라서 삶의 모든 측면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평화에 대한 힌두교의 위대한 이상은 ‘온 세상이 한 가족’(산스크리트어로 vasudhaiva kutumbakam)이라는 관점으로 표현된다.

2. 불교: 또 다른 보완적인 관점이 다음과 같이 드러난다. 자기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이기적인 자아를 부인하면, 모든 실재와 평화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자신에게 집착하면, 다른 사람들과 나머지 실재들을 편견으로 보게 된다. 현실은 상호 의존적이다. 모든 것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다른 실재들과 동떨어져서 순전히 자기 자신만 생각할 수는 없다. 온전한 비움과 삶의 상호 의존적 측면을 경험하면, 집착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게 되며 연민을 가지게 된다. 이는 내적 평화에 이르게 하고 외적 평화를 가져온다. 이것은 자기를 부정하고 상호 의존을 경험함으로써 얻는 평화다. 여러 종교들이 인간 정신에 안식처를 제공한다. 생각과 의향, 말과 공동체의 조화는 한마디로, 평화를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진리를 말하고, 선을 행하며, 연민의 마음을 지니면, 평화는 당신의 것이 될 것이다.

3. 이슬람교는 인간의 친교와 나눔을 강조한다. 이슬람교에서는 공동체가 매우 중요하며, 이는 하느님의 뜻에 복종하는 데에 있다. 하느님의 뜻에 복종하는 데에서 오는 일치는 이슬람교에서 매우 중요하다. 조화는 그러한 복종에서 오는 것이다. 기쁨과 용서의 정신이 있다. “인류여! 우리는 당신들이 서로를 알 수 있도록 (서로 경멸하지 않도록) 인간을 국가와 민족들로 창조하였다”(Quran). 그러므로 이슬람교에서는 우정과 형제애의 실천이 중요하다.

4. 시크교에서는 친교 또는 형제애를 매우 강조한다. 경전(Granth)을 중심으로 하는 이 종교는 다른 여러 방식으로, 특히 온갖 배경의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식사와 상호 관심을 통하여 이러한 친교를 유지하고 증진한다.

5. 유교는 자연과 이루는 친교, 자신에 대한 초연함, 계몽을 추구한다. 인간의 참된 존재는 마음에 뿌리를 둔 지혜와 인간애, 정의로 이루어진다. 온 세계를 한 가족으로 보는 관점 또한 유교관의 중요한 특징이다.

6. 도교는 모든 피조물이 하나임을 강조한다. 여러 차원의 일치가 있다. 곧 개인의 일치, 우주의 일치, 그리고 모든 존재 사이의 일치가 그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평화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유를 체험하고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본질적이다.

7.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의 부족 전통들은 평화를 친교의 측면에서, 그리고 공동체의 유대와 자연, 특히 땅과 숲, 물, 모든 우주적 실재와 이루는 깊은 유대의 측면에서 본다. 이 전통들을 일깨우는 것은 만물의 일치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이다.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의 모든 전통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반향하고 울려 퍼지는 하나의 주제는 평화와 일치다.

 

<원문 Statement of the Asia-Oceania Biblical Congress(2005. 2.14-18, Tagaytay, Philippines) “God’s Word: Living Hope and Lasting Peace”: http://www.c-b-f.org/start.php?CONTID=06_03_01_00&LANG=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