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문헌
1995-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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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교회 Ecclesia in Africa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노드 후속 권고


아프리카교회


1995. 9. 14.


2000년을 향한 아프리카교회와 그 복음화 사명에 관하여
주교, 신부, 부제, 남녀 수도자, 모든 평신도들에게 보내는 권고


 

서  문



1. 아프리카 교회(Ecclesia in Africa)는 아프리카 주교대의원회의 특별 총회가 열렸던 4주 동안 기쁨과 희망을 가지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경축하였습니다. 이 행사에 대한 기억은 전 교회 공동체의 가슴에 아직도 생생히 살아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초대 그리스도교 전통에 충실한 아프리카 대륙의 목자들은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와 전세계 주교단과 일치한 가운데 시노드를 개최하였습니다. 이 회의의 의도는 인간이 저지르는 사건들이 아프리카를 좌절과 절망으로 몰고 가려던 시기에 희망과 재생의 계기를 주려는 것이었습니다.

시노드 교부들은 유능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대표들의 도움을 받아 그리스도교 신앙 제삼천년기의 문턱에서 아프리카 복음화의 과제, 미래의 전망, 그리고 밝은 면과 어두운 면에 대한 상세하고 현실적인 연구에 착수하였습니다.

시노드 회원들은 그들의 성찰과 기도, 토론과 의견 교환들의 결과에 대하여 교회 전체의 관심을 촉구해 주기를 제게 요청하였습니다.1) 저는 기꺼이 그리고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하여 아프리카 가톨릭교회의 목자들과 신자들과 일치하여 아프리카 시노드를 경축하면서 주교단의 오랜 노고와 노력의 결과인 아프리카 주교대의원회의 후속 교황권고를 공포하는 바입니다.

시노드 기간 동안 전개되었던 일들을 말씀 드리기 전에, 저는 아프리카교회에 중요하고 결정적 의미를 갖는 이 회의가 열리기까지의 여러 단계들을 간단하게나마 되돌아보는 것이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공의회

2. 구원 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 세계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분명 제삼천년기를 향해 빠르게 접근하고 있는 금세기의 초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라는 중대한 사건에서 아프리카의 하느님의 교회는 진정한 은총의 순간을 체험하였습니다. 실제로 아프리카 대륙의 복음화를 다루기 위한 아프리카 주교들의 회의 형식에 대한 논의는 공의회 시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역사적인 사건은 참으로 주교단의 평등한 권리의 시험장이었으며, 전세계 주교단의 우호적이고 효율적인 일치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표현이었습니다. 공의회에서 주교들은 더 많이 나누고 전 교회를 더욱 효과적으로 돌보기 위해(2고린 11,28 참조) 적절한 수단을 찾아내고자 노력하였고,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그들은 국가와 지역 그리고 대륙 차원의 적절한 조직체를 구성할 계획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프리카와 마다가스카르 주교회의

3. 공의회에 참석한 아프리카와 마다가스카르 주교들이 그들의 공통 관점들을 공의회 교부들에게 제시하기 위하여, 그들의 발언 내용들의 조정 임무를 맡을 자체 사무처를 설립하기로 결정한 것은 그러한 분위기에서였습니다. 아프리카 주교들 간에 있었던 이러한 최초의 협력은 후에 캄팔라에서 창설된 아프리카와 마다가스카르 주교회의(SECAM)로 이어지면서 영구한 것이 되었습니다. 이는 1969년 7월과 8월에 있었던 교황의 최초 아프리카 방문인 바오로 6세의 우간다 방문 때 이루어졌습니다.

아프리카 주교대의원회의 특별 총회 소집

4. 1967년 이후 정기적으로 개최된 주교대의원회의 총회는 전세계 교회에 아프리카교회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귀중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제2차 정기 총회(1971)에 모인 아프리카의 시노드 교부들은 이를 전세계에 정의를 호소하는 좋은 기회로 삼았으며, 현대 세계의 복음화라는 주제로 열린 제3차 정기 총회(1974)에서는 아프리카 복음화와 관련된 문제들의 연구를 가능하게 해주었습니다. 시노드에 참석한 아프리카 대륙의 주교들이 “공동 책임을 통한 복음화 촉진”2)이란 제목의 중요한 메시지를 발표한 것은 바로 이때였습니다. 그후 1975년 성년 동안 아프리카 주교회의는 복음화의 주제를 검토하기 위하여 로마에서 자체 총회를 소집하였습니다.

5. 이어서 1977년에서 1983년 사이에 일부 주교들, 신부들, 수도자들, 신학자들, 평신도들이 대륙의 미래에 대한 중대한 선택 앞에서 아프리카의 복음화에 대한 평가를 할 아프리카공의회 또는 아프리카 시노드를 열자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저는, 아프리카 주교단이 “아프리카 대륙 전체와 관련된 종교문제를 연구하기” 위하여 “어떤 형태로든 함께 일한다.”는 의견을 기꺼이 환영하고 이를 장려하였습니다.3) 그리하여 아프리카 주교회의는 이러한 성격의 대륙 회의를 계획하고 그 실현 방법을 연구하였습니다. 그 결과 아프리카와 마다가스카르 주교회의들과 각 주교들의 자문회의가 조직되었고 그것을 토대로 저는 아프리카 시노드를 소집할 수 있었습니다. 1989년 1월 6일, 주의 공현 대축일, 곧 교회가 맡은 바 사명의 보편성과 그에 따라 그리스도의 빛을 만백성에게 전할 의무를 갱신하는 전례 기념일에, 저는 앞에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전 아프리카 영토와 인근 제도 내에 유기적이고 사목적 연대의식을 장려하려고” 아프리카 주교들, 신부들, 신학자들, 평신도 대표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 표명하였던 청원을 받아들여, “교회를 위한 중대한 의안”을 발표하였습니다.4) 

은총의 사건

6. 아프리카 시노드는 주님께서 아프리카의 당신 백성을 방문해주신 역사적인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실제로 오늘날 아프리카 대륙은 시대의 징표, 받아들일 만한 때, 구원의 날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시대’, 곧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으라(루가 5,4 참조)고 사도들에게 촉구하시는 그리스도의 때가 아프리카에 도래한 듯합니다. 그리스도교 초기에 세례를 통하여 신앙을 전수 받은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케의 내시가 기쁨에 넘쳐 그리스도의 증거자의 길을 걸었던(사도 8,27-39 참조) 것처럼, 신앙을 전해 받고 기쁨과 감사로 넘치는 오늘날의 아프리카교회도 대륙의 모든 백성들을 주님께 데려와 주님께서 명하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주고자(마태 28,20 참조) 맡은 바 복음화사명을 추진해야 합니다.

1994년 4월 10일, 저는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추기경 35명, 총대주교 1명, 대주교 39명, 주교 146명, 신부 90명과 함께 개막식 장엄 성찬예식을 거행하였는데, 이때 하느님의 가족5)이며 신자들의 공동체인 교회 전체가 사도 베드로의 무덤에 모였습니다. 아프리카교회도 다양한 의식을 통해 하느님의 모든 백성과 함께 거기 참여하였으며, 북과 다양한 아프리카 악기 소리에 맞추어 생명에 대한 믿음과 환희를 표현했습니다. 그때 저는 아프리카를 들어 “그리스도의 새로운 고향”6), 영원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 받는 땅7)이라고 한 교황 바오로 6세의 말이 가슴 깊이 와 닿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날이 주님께서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자, 춤들을 추자.”(시편 117,24)고 한 시편 저자의 말을 빌려 그 은총의 순간을 치하하였습니다.

교황권고의 수취인들

7. 아프리카 시노드와 일치하여 저는 이 시노드 후속 교황권고를, 우선 사목자들과 가톨릭 평신도들에게 드리며, 다음으로는 갈라진 그리스도교 교단의 형제자매들, 탁월한 일신교인들, 특히 아프리카 전통 종교의 신봉자들,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아프리카의 정신적 물질적 발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선의의 사람들과 이 위대한 대륙의 운명을 좌우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드리고자 합니다.

저의 생각은 자연히 아프리카인들과 아프리카 대륙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향합니다. 저는 특별히 가톨릭교회의 자녀들, 곧 주교들, 신부들, 부제들, 신학생들, 수도회와 사도 단체의 모든 회원들, 교리교사들 그리고 형제자매들의 봉사를 인생의 지표로 삼고 사는 모든 이들을 생각합니다. 저는 그들이 믿음을 잃지 않도록 기도하면서(루가 22,32 참조) 모든 좌절과 유혹을 극복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희망 안에서 꿋꿋이 인내하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교황권고의 개요

8. 아프리카 시노드는 “2000년대를 향한 아프리카교회와 그 복음화사명: ‘너희는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라는 주제를 철저하게 검토하였습니다. 이에 이 권고는 이 주제의 핵심을 면밀히 따르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시노드의 목적, 준비, 개최에 대한 문제들을 검토하면서 시노드가 개최되었던 역사적 순간 곧 그 참된 은총의 시간(kairos)에서 시작할 것입니다. 이 권고는 아프리카교회가 걸어온 선교의 길의 여러 단계를 상기하고 아프리카교회의 현상황에 대한 고찰과 아울러 현시점에서 고려해야 할 복음화 사명의 다양한 면들, 곧 복음화, 토착화, 대화, 정의와 평화, 사회 홍보 수단들에 대해 검토할 것입니다. 2000년을 눈앞에 두고 아프리카교회가 당면한 시급한 과제와 도전에 대한 고찰은 아프리카에서 그리스도의 증거자들이 해야 할 임무를 총괄적으로 제시해 줄 것이며, 이는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효과적으로 기여할 것입니다. 끝으로, 선교하는 교회 곧 스스로 선교사가 되는 선교교회로서 아프리카교회의 사명에 대해 설명할 것입니다.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되어라”(사도 1,8).



제 1 장  역사적 은총의 순간



9. “아프리카 시노드는 성령 안에서 성자를 통하여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려야 하는 은총의 섭리적 사건입니다.”8) 제1차 전체회의 동안 교부들은 바로 이 말씀을 중심으로 시노드의 주제 토론에 들어갔습니다. 지난 기회에 저는 다음과 같이 인정함으로써 이와 비슷한 소신을 표명한 적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시노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구원을 보여주시는 카이로스(kairos), 곧 은총의 순간으로서, 아프리카를 위해 대단히 중대한 교회적 사건입니다. 교회 전체는 이 은총의 때를 충만히 살고, 복음을 받아들이고 전파하도록 초대되었습니다. 시노드 준비에 기울인 모든 노력은 시노드 개최는 물론 순례의 길을 걷는 아프리카 지역교회들에게도 유익한 것이 될 것입니다. 아프리카교회의 신앙과 증거는 계속하여 강화되고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9)

신앙 고백

10. 이 은총의 순간은 우선 엄숙한 신앙 고백에서 나타났습니다. 아프리카 시노드의 개막을 위해 베드로의 무덤에 모인 시노드 교부들은 그들의 신앙, 곧 “너희도 떠나가겠느냐?”는 주님의 물음에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우리는 주님께서 하느님이 보내신 거룩한 분이심을 믿고 또 압니다.” 하고 대답하였던(요한 6,67-69 참조) 베드로의 신앙을 선포하였습니다. 아프리카 주교들은 ─ 가톨릭 교회는 사도 베드로의 무덤에 모인 주교들 안에서 자신의 특별한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 한 분이신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자비하심은 무엇보다 구원자이신 성자의 강생에서 명백히 드러났으며, 성자는 성령과 일치하여 성부와 한 몸을 이루시고, 이 삼위일체 안에서 영예와 영광을 넘치도록 받으신다는 그들의 변함없는 신앙을 재확인하였습니다. 교부들이 천명하였듯이, 이것이 우리의 신앙이자 교회의 신앙이며, 아프리카 곳곳에서 하느님의 집을 향해 순례하는 모든 지역교회들의 신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이 신앙은 아프리카 시노드를 통한 시노드 교부들의 발언에서 끊임없이 강력하게 한 목소리로 표명되었습니다. 이 신앙에 의지하여, 아프리카 주교들은 오직 주님이신 그리스도만이 그분의 복음과 교회를 통하여 현재의 수난에서 아프리카를 구원하시고 아픔을 치유하실 수 있다고 확신하면서 아프리카 대륙을 그분께 맡겨드렸습니다.10)

11. 동시에, 시노드의 성대한 개막식에서 아프리카 주교들은 “우리가 신경에서 고백하는 하나요, 거룩하고, 보편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유일한 그리스도의 교회”11)에 대한 그들의 신앙을 선포하였습니다. 이러한 특성들은 교회와 그 사명의 본질적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 특성들은 또한 “교회 스스로 소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통하여 당신의 교회를 하나요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적인 교회가 되도록 하신 분도 그리스도시며, 교회가 이 특성들 하나하나를 실현하도록 촉구하시는 분도 그분이십니다.”12)

아프리카 시노드에 참여하는 특은을 입은 교부들은 아프리카 가톨릭신자들이 자신들의 지역교회에서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책임을 행사하고 있으며, 또한 그들이 가톨릭신자인 동시에 아프리카인이라는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자 노력한다는 것을 알고 매우 흡족하게 생각했습니다. 시노드는 아프리카의 지역교회들이 교회의 친교 안에 정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베드로좌의 수위권을 어떤 방식으로든 축소시키는 일 없이 자신들의 고유한 전통을 지킬 수 있음을 전세계에 보여주었습니다. 사도좌는 다양성에서 오는 차이점들이 일치를 해치기보다 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13)

부활의 시노드, 희망의 시노드

12. 하느님의 기묘하신 섭리로, 아프리카 시노드의 성대한 개막식은 부활 팔일축제 마지막 날인 부활 제2주일에 열렸습니다. 그날 성 베드로 대성전에 모인 시노드 교부들은 그들 교회의 기쁨이, 부활절에 사도들의 마음을 기쁘게 했던 바로 그 사건(루가 24,40-41 참조), 곧 주 예수님의 부활에서 연유한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했습니다. 교부들은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요한 20,21.26) 하고 말씀하신 그들 가운데 계신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깊이 느꼈습니다. 그들은 또한 영원히 당신 교회와 함께 계시겠다는 그분의 약속(마태 28,20 참조)을 알고 있었기에, 시노드 동안에도 주님께서 내내 함께하시리라는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부활절 정신 ─ 아프리카 시노드 회원들은 이 정신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께 대한 신앙 안에 일치하여 시노드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 은 자연적으로 예수님께서 사도 토마스에게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고 하신 말씀을 떠올리게 하였습니다.

13. 시노드 교부들이 하느님의 백성에게 보내는 담화의 서두에서 기쁨과 열의에 넘쳐 선언한 바와 같이, 이는 참으로 부활과 희망의 시노드였습니다. 저는 기꺼이 그 담화의 말씀을 제 것으로 삼고 싶습니다. “부활절 아침의 막달라 여자 마리아처럼, 뜨거운 감동으로 눈을 뜨게 된 엠마오 제자들처럼, 아프리카와 마다가스카르, 그리고 인근 제도의 아프리카 시노드는 ‘우리의 희망이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찾아주셨고, 우리와 함께 걸으셨습니다.’라고 선언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성서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여기 우리에게 주신 그분의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고 살아있는 존재이다. 나는 죽었었지만 이렇게 살아있고 영원무궁토록 살 것이다. 그리고 죽음과 지옥의 열쇠를 내 손에 쥐고 있다’(묵시 1,18-19). …… 또한 환난의 시대에 하느님의 백성을 위한 희망의 예언을 받았던 파트모스 섬의 성 요한처럼, 우리도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정치적 이해 관계에서 야기되는 동족상잔의 깊은 증오가 우리 민족들을 갈가리 찢어놓고 있는 이때, 외채의 부담과 화폐의 평가절하가 우리 민족들을 짓누르는 이때, 우리 아프리카 주교들은 이 거룩한 시노드에 참석한 모든 분들과 함께, 교황 성하와 우리를 선출해 주신 주교단의 모든 형제 주교들과 일치하여, 아프리카와 전세계 하느님의 가족 여러분께 희망과 격려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의 희망이신 그리스도는 살아계시는 분이시며 우리도 살 것입니다!”14)

14. 저는 아프리카의 모든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아프리카 시노드가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 주기를 권고 합니다. 토론 중에 시노드 교부들은 자신들이 아프리카 가톨릭 신자들의 기대뿐 아니라, 오늘날 아프리카를 짓누르는 수많은 죄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의 모든 남녀의 기대를 표명하고 있음을 깊이 의식하였습니다. 교부들은 그들이 기대하는 변화를 위하여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며 무슨 일을 하도록 부름받고 있는지를 충분히 그리고 치밀하게 연구하였습니다. 그들에게서 비관이나 절망의 태도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아프리카 대다수 지역들이 어렵고 비참한 상황에 있지만, 교회는 이 모든 어려움들이 극복될 수 있음을 힘있게 주장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모든 아프리카 사람들의 마음속에 참된 해방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어 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확신은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교회의 인식에 기초합니다. 하느님의 약속은 우리에게 역사는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로 열려있음을 보증해 줍니다. 따라서 우리가 아프리카와 세계 어느 다른 지역의 미래에 대하여 절망이나 비관에 빠질 이유가 없습니다.

우호적이고 능률적인 주교단

15. 다른 주제들을 다루기 전에, 저는 주교대의원회의는 교회의 일치를 촉진하는 데 매우 유익한 기구라는 사실을 우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끝날 무렵, 교황 바오로 6세는 주교대의원회의를 설립하면서, 주교대의원회의의 본질적인 임무 중의 하나는 베드로 후계자의 인도 아래, 전세계 주교들간의 친교를 표명하고 육성시키는 것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15) 따라서 주교대의원회의 설치의 주된 원칙은 자명합니다. 그것은, 주교들간의 친교가 강화되면 될수록 전체 교회의 친교가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교회는 그에 헌신하는 주교대의원회의 총회 준비가 불러일으킨 열정과 실제 성과들을 체험했기에 이 말의 진실성을 입증합니다.

16. 아프리카 시노드를 논의하려고 모인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 평의회에 제가 처음으로 참석했을 때, 저는 아프리카 시노드 소집의 타당성에 대한 이유를 “아프리카와 인근 제도 전역의 유기적인 사목적 연대”16)의 촉진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씀과 더불어 저는 시노드가 추진해야 할 주요 목적과 목표를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저의 기대를 확실히 하고자, 저는 아프리카 시노드 준비에 “아프리카교회 생활의 모든 중요한 면들, 특히 복음화, 토착화, 대화, 사회 영역의 사목적 배려, 사회 홍보 수단 등을 포함시켜야 한다.”17)고 했습니다.

17. 아프리카 사목 방문 중에, 저는 아프리카 시노드와 시노드 소집의 주요 목적에 대하여 자주 언급한 바 있습니다. 제가 시노드 평의회 회의 차 아프리카 땅을 처음으로 밟았을 때, 저는 시노드가 실질 문제에 대한 협의 정도로 축소될 수 없다는 소신을 잊지 않고 강조하였습니다. 시노드의 존재 이유는, 교회는 그 목자들에서 시작하여 구성원들간의 친교를 강화함으로써만 전진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18)

모든 시노드는 개별교회 지도자들이 자기의 교구 경계선을 초월하여 그들의 사명을 수행해 나갈 때 결속성을 드러내고 이를 증진시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가르쳤습니다. “주교들은 사도들의 정당한 후계자들이며 주교단의 구성원들이므로 언제나 서로 결합되어 있음을 알아야 하고, 스스로 모든 교회들을 돌보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대로, 또 사도적 임무의 요청을 따라, 각 주교는 동료 주교들과 함께 교회의 책임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19)

18. 아프리카 시노드의 주제 “2000년대를 향한 아프리카교회와 그 복음화사명: ‘너희는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는 아프리카교회가 대희년에 이르는 시기를 ‘새로운 대림시기’, 곧 기대와 준비의 시기로 살아야 한다는 저의 원의를 표명합니다. 사실 저는 2000년을 위한 준비를 저의 교황직무의 핵심 역할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20)

대륙, 지역 또는 국가 차원의 일반 총회와 특별 총회 등 거의 30년에 걸쳐 연속적으로 개최되어 온 시노드는 모두 대희년 준비의 한 부분입니다. 복음화가 이 모든 시노드의 주제였다는 사실은 오늘날 교회가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구원의 사명을 얼마나 깊이 인식하고 있는지를 말해 줍니다. 이러한 의식은 특히 복음화, 교리, 가정, 교회와 모든 인간의 화해와 속죄, 평신도들의 소명과 사명 그리고 사제 양성을 위해 쓴 시노드 후속 교황권고 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보편교회와 완전한 친교를 이루며

19. 아프리카 시노드 준비가 시작되면서부터, 저는 사무처 평의회와 뜻을 같이하여, 이 시노드가 진정으로 그리고 분명히 아프리카다운 것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프리카 시노드가 보편교회와 완전한 일치 중에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아프리카 시노드는 보편교회의 필요성들을 항상 유념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의제 개요」(Lineamenta)를 발표할 즈음에, 전세계 주교단의 형제들과 하느님의 모든 백성들에게 아프리카 시노드를 위해 기도하도록 초대하면서 기도는 시노드 준비를 위한 활동의 일부임을 깨닫도록 촉구하였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씀 드렸듯이, 아프리카 시노드의 소집이 곳곳에서 불러일으킬 지대한 관심뿐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교회의 친교라는 바로 그 성격 때문에 이 시노드는 보편교회에 매우 깊은 의미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아프리카 시노드는 다른 대륙 사람들과 교회 공동체들에게 기도와 선행을 통해 시노드 과정에 참여해 줄 것을 호소하였습니다. 또한 천상의 성인들께서도 교회의 친교의 신비를 통해 기도로 시노드를 도와주셨을 것을 우리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제가 아프리카 시노드의 첫 회기를 로마에서 열도록 결정한 것은 아프리카교회를 보편교회와 이어주는 친교를 명백히 표명하기 위함이었고, 또한 아프리카에 대한 모든 신자들의 관심과 기여를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0. 제가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집전한 시노드 개막 장엄 미사는 매우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방식으로 교회의 보편성을 부각시켜 주었습니다. 이 보편성은 “획일성이 아니라 복음과 양립하는 다양성 속의 친교”21)로서, 모든 주교들이 체험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한 교구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세계의 구원을 위해 사도단을 계승하는 주교단의 구성원으로 봉헌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22)

저는 아프리카 시노드를 통하여 우리에게 진정한 보편성이 뜻하는 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전능하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보편성으로 말미암아 교회의 각 지체는 그 고유한 선물을 통하여 다른 지체들과 교회 전체의 선익에 기여합니다.”23)

시기적절하고 신뢰할 수 있는 메시지

21. 시노드 교부들에 따르면, 아프리카교회의 당면 과제는 아프리카교회의 메시지가 시기적절하고 신뢰할 수 있는 것이 되도록 아프리카교회의 정체성과 아프리카교회가 완수해야 할 책임을 될 수 있는 대로 정확하게 서술하는 것이었습니다.24) 아프리카 시노드의 모든 토의에서 아프리카교회의 진정한 도전인 이러한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요구가 언급되었습니다.

물론 “복음화의 주역은 성령이십니다. 복음을 선포하도록 각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주시는 분도 성령이시고, 또한 양심의 저 깊은 곳에서 구원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시는 분 역시 성령이십니다.”25) 이러한 진리를 재천명한 아프리카 시노드는 계속해서 복음화는 주 예수님께서 성령의 인도와 권능 아래 교회에 맡기신 하나의 사명임을 강조했습니다. 열심한 기도, 진지한 성찰, 적절한 계획과 인력 자원의 동원을 통한 협력이 필요합니다.26)

아프리카교회가 주는 메시지의 시기적절함과 신뢰성에 대한 시노드의 논의는 이 메시지의 선포자들에 대한 신뢰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시노드 교부들은 전혀 자기 만족에 빠지지 않고 참으로 솔직하게 그 문제를 직시했습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이미 이 문제에 대하여 기억해 두어야 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현대인들은 진실에 굶주리고 있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허위와 거짓을 싫어하고 진실과 정직을 찾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징표에 주목해야 합니다. 암묵리에 또는 공공연히 ─ 그러나 언제나 설득력 있는 ─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우리는 듣게 됩니다. 당신은 당신이 선포하는 것을 참으로 믿고 있습니까? 당신은 당신이 믿는 것을 참으로 실천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설교는 실제로 당신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까? 삶의 증거는 참된 선포의 효과를 거두는 데 중요한 조건입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우리가 선포하고 있는 복음의 성과는 어느 정도 우리의 책임이라 하겠습니다.”27)

그러한 이유로, 저는 정의와 평화 분야에 대한 교회의 복음화사명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 드렸습니다. “교회는 오늘날 다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의 사회교리가 그 내적 논리와 일관성보다는, 행동의 증거에서 직접적으로 신뢰를 얻는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습니다.”28)

22. 여기서 저는 1987년 나이지리아의 라고스에서 개최된 제8차 아프리카 주교회의 총회가 이미 아프리카인들에게 교회의 메시지가 주는 신뢰성과 적절성의 문제를 매우 진지하게 고려하였다는 사실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프리카교회의 신뢰성은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모범된 삶의 증거를 보여주는 주교들과 신부들, 복음적 권고의 생활을 하는 참된 증거자들인 충실한 남녀 수도자들, 신앙심이 깊은 부모들, 책임있는 교육자들, 깊은 윤리의식에 따라 행동하는 정치 지도자들과 같은 활발한 평신도들에 달려있다고 이 총회는 선언하였습니다.29)

시노드 과정에서 하느님의 가족

23. 1989년 6월 23일 사무처 평의회 회원들에게 연설하는 자리에서, 저는 모든 차원의 하느님의 백성, 특히 아프리카에 있는 하느님의 백성이 모두 아프리카 시노드의 준비 과정에 참여해 줄 것을 특별히 강조하였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씀 드렸습니다. “이 시노드가 준비가 잘된다면, 모든 차원의 그리스도 공동체, 곧 개인들, 소공동체들, 본당들, 교구들, 그리고 지역적 국가적 국제적 단체들을 여기에 참여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30)

저의 교황직 시작과 아프리카 시노드의 장엄 개막식 사이에, 저는 총 10회의 아프리카와 마다가스카르 사목 방문을 하였고 36개국을 순회하였습니다. 아프리카 시노드 소집 이후에 한 사도적 방문 중 아프리카의 하느님 백성들과 만나면서 저는 시노드의 주제와 시노드 준비에 대한 모든 신자들의 협력의 필요성을 확실히 했습니다. 저는 또한 아프리카 시노드 준비에 모든 이들의 협력을 끌어들이려고 아프리카 대륙 주교들의 사도좌 정기 방문을 활용하였으며 아프리카 땅인 아이보리코스트(코트디부아르 공화국)의 야무수크로(1990), 앙골라의 루안다(1992), 우간다의 캄팔라(1993)에서 시노드 사무처 평의회와 세 번에 걸쳐 각기 실무 회의를 개최하였습니다. 이들 모두 시노드 준비에 아프리카인들의 적극적이고 조화로운 참여를 끌어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24. 1990년 7월 25일, 토고의 로메에서 개최된 제9차 아프리카 주교회의 총회에서 있었던 「의제 개요」의 제시는 분명히 아프리카 시노드 준비에서 새롭고 의미 깊은 일보였습니다. 「의제 개요」의 발표로써 시노드 준비가 아프리카의 모든 개별교회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로메에서 있었던 아프리카 주교회의 총회는 아프리카 시노드를 위한 기도문을 승인함과 동시에 시노드 개최시까지 아프리카 전역의 모든 본당에서 공적으로 또는 개인적으로 이 기도를 바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아프리카 주교회의의 이러한 창안은 참으로 적절한 조치였고 보편교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의제 개요」를 잘 활용하기 위하여, 여러 주교회의와 교구들은 자기 나라말로, 예를 들면 스와힐리어, 아라비아어, 마다가스카르어 등으로 그 문서를 번역하였습니다. “여러 주교회의, 신학원, 신학교, 봉헌생활회 연합, 교구, 일부 주요 신문과 정기 간행물 출판사, 개별 주교들과 신학자들이 시노드의 주제에 대한 출판을 계획하고 회의와 심포지엄을 개최하였습니다.”31)

25. 저는 전능하신 하느님께 시노드의 「의제 개요」와 「의안집」(Instrumentum Laboris)32)이 작성되도록 세심하게 배려해 주신 데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것은 1989년 1월과 3월에 열린 시노드 이전 준비위원회를 시발점으로 아프리카 주교들과 전문가들이 수행한 임무였습니다. 그후 이 위원회를 대신하는 것으로서 1989년 6월 20일 아프리카 시노드 사무처 평의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저는 또한 시노드의 개막과 폐막을 위한 성찬 전례를 정성 들여 준비해 주신 실무진에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신학자들, 전례학자들, 아프리카 전례 성가와 악기 부문의 전문가들을 포함한 실무진은 제가 바라던 대로, 이 전례 거행들이 아프리카의 특징을 잘 나타내도록 해주었습니다.

26. 이제 저는, 시노드 준비에 동참해 달라는 저의 호소에 대한 아프리카 민족들의 반응이 참으로 훌륭하였다는 사실을 덧붙여 말씀 드려야 하겠습니다. 아프리카교회 공동체 안팎에서 보여준 「의제 개요」에 대한 반응은 우리의 기대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지역교회들은 신자들을 하나로 결집하려고 「의제 개요」를 사용하였으며, 그때부터 시노드의 결과는 아프리카 그리스도인들간에 새로운 투신과 각성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33)

아프리카 시노드의 여러 준비 단계를 통하여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등 아프리카교회의 많은 구성원들은 ‘함께 걸으며’, 각자의 재능으로 교회에 봉사하고, 시노드의 성공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면서 모범적 헌신으로 시노드 과정에 참여하였습니다. 시노드 교부들은 실제 시노드 동안, 바로 “신중하고 세심한 시노드 준비와, 아프리카교회 전체가 모든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참여”34)한 덕택에 그들의 작업이 한층 쉬웠다는 점을 실감했습니다.

아프리카를 구하시려는 하느님의 뜻

27. 이방인들의 사도 바오로는 우리에게,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게 되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은 한 분뿐이시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도 한 분뿐이신데 그분이 바로 사람으로 오셨던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그분은 자기 자신을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바치셨습니다.”(1디모 2,4-6)라고 말합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그분께서 예정하신 하나이며 동일한 목적으로 부르시므로, “우리는 성령께서 하느님께서만 아시는 방법으로 모든 사람에게 파스카 신비에 참여할 가능성을 주신다고 믿어야 합니다.”35) 하느님의 구원하시는 사랑은 인류 전체, 모든 인종, 종족, 민족을 포용하시므로, 아프리카의 모든 민족들 또한 끌어안으십니다. 하느님의 섭리는, 로마 병사들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였던 키레네 사람 시몬(마르 15,21 참조)을 대신하여, 아프리카가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기를 바라십니다.

28. 아프리카 시노드 폐막 미사에서 1994년 부활 제6주간 전례는 저에게 하느님의 아프리카 구원 계획에 대한 묵상을 개진시킬 기회를 주었습니다. 사도행전에 의한 독서가 교회의 만민 선교의 첫걸음으로 이해될 수 있는 한 사건을 생각나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베드로가 성령의 분부대로 이방인 백인대장 고르넬리오의 집을 방문한 이야기입니다. 그때까지 복음은 주로 유다인들에게만 선포되었습니다. 많은 망설임 끝에 베드로는 성령의 감화를 받아 마침내 이방인의 집에 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베드로가 그 집에 도착하였을 때, 기쁘고 놀랍게도 백인대장은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 받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신자가 된 유다인으로서 베드로와 함께 왔던 사람들은 성령의 은혜가 이방인들에게까지 내리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것은 이방인들도 기이한 언어로 말하며 하느님을 높이 찬양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10,45-46).

어떤 의미에서는 고르넬리오의 집에서 오순절의 기적이 되풀이되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사람을 차별 대우하지 않으시고, 당신을 두려워하며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면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다 받아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 이 사람들도 우리처럼 성령을 받았으니 이들이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사도 10,34-35.47)

이렇게 하여 교회의 만민 선교가 시작되었고, 다르소의 바오로가 그 첫째 사도가 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오지에 도착한 최초의 선교사들 역시 사도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임하심을 체험하였던 것과 비슷한 놀라움을 확실히 체험했을 것입니다.

29. 아프리카 대륙의 교회 성장의 기원은 하느님의 아프리카 구원 계획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교회는 본질상 선교사입니다. 따라서 아프리카교회 역시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이러한 뜻에서 저는 종종 “아프리카교회는 선교하는 교회인 동시에 선교 대상이 되는 교회”36)라고 언급했습니다.

아프리카 시노드는, 아프리카인들이 부활하신 주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리셨던 명령, 곧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으라.”(마태 28,19)는 명령을 잘 수행하기 위한 적절한 방법과 수단을 검토할 임무를 맡았습니다.




제 2 장  아프리카교회




I. 아프리카 대륙 복음화의 약사

30. 역사상 최초로 열린 아프리카 시노드 개막일에, 시노드 교부들은 아프리카의 복음화 여정에서 하느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일들 중 몇 가지를 상기하였습니다. 그 역사는 교회의 탄생 시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프리카의 복음 전파는 여러 단계를 거쳐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도교 초기에는 에집트와 북아프리카에 복음을 심었고 제2단계는 사하라 남부 대륙 지역을 포함하여 15세기와 16세기에 일어났습니다. 제3단계는 놀라운 선교 노력과 함께 19세기에 시작되었습니다.

제1단계

31. 아프리카 주교들과 아프리카 모든 민족들에게 전하는 아프리카 대륙의 종교, 문화, 사회 복지 증진에 관한 담화에서, 저의 존경하는 선임자 교황 바오로 6세는 아프리카 그리스도인들의 영광스럽고 찬란했던 과거를 다음과 같은 훌륭한 말로 상기시켰습니다. “우리는 그 기원이 사도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전통적으로 복음서 저자인 마르코의 이름과 가르침에 연관되어 있는 아프리카의 그리스도교 교회들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프리카 대륙의 무수한 성인들, 순교자들, 증거자들, 동정녀들을 생각하면서, 2세기부터 4세기에 이르기까지 북아프리카에서 그리스도교인들의 삶은 매우 활발하였고, 신학 연구와 저술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였다는 사실을 상기합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주역들인 오리게네스, 성 아타나시오, 성 치릴로, 그리고 북아프리카 해안 건너편의 테르툴리아누스와 성 치프리아노, 특히 그리스도교계의 대가들의 한 사람인 성 아우구스티노와 같은 유명한 박사들과 저술가들의 이름이 생각에 떠오릅니다. 또한 사막의 위대한 성자 바오로, 안토니오, 파코미오와 후에 그들의 모범을 따라 동서양에 두루 퍼지게 된 수도생활의 창립자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밖에도 언급하고 싶은 수많은 사람들 중에는 성 아타나시오에게 주교 서품을 받고 에티오피아의 첫 사도가 되었으며, 살라마 수도원장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성 프루멘시오가 있습니다.”37) 아프리카교회의 초기 몇 세기 동안, 일부 여성들 또한 그들 나름대로 그리스도에 대한 훌륭한 증거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중에서 성녀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 성녀 모니카, 성녀 테클라는 특기할 만한 여성들입니다.

“예로 든 이 위대한 성인 성녀들은, 빅토르 1세, 멜키아데스, 젤라시오 1세와 같은 거룩한 아프리카 교황들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공동 유산에 속하며, 아프리카의 그리스도교 저술가들은 오늘날까지도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에 비추어 구원 역사에 대한 지식을 깊이하는 데 필요한 원천으로 남아있습니다. 찬란하였던 아프리카 그리스도교의 옛 영광을 회상하며, 우리는 우리와 완전한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교회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싶습니다. 곧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좌의 그리스 정교회, 에집트의 콥트교회, 에티오피아교회 등은 가톨릭교회와 공통의 기원을 갖고 있으며, 자국뿐 아니라 모든 초대교회의 위대한 교부들과 성인들의 교리적 영적 유산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역사의 온갖 흥망성쇠 속에서도 아프리카에 그리스도가 존속하도록 많은 노력을 하고 수난을 견디어냈습니다.”38) 이들 교회들은 오늘날 우리 시대에까지도 사도시대부터 면면히 이어온 그리스도교의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특히 에집트와 에티오피아 그리고 17세기까지의 누비아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그 당시 아프리카 대륙의 나머지 지방에서 복음화의 새로운 단계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제2단계

32. 15세기와 16세기에 포르투갈인들의 아프리카 해안 탐험은 곧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지역의 복음화를 수반하였습니다. 그 당시 복음화의 노력이 펼쳐졌던 곳은 오늘의 베닌, 상투메, 앙골라, 모잠비크, 마다가스카르 지역을 포함하였습니다.

1992년 6월 7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앙골라 복음화 50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인 루안다에서 저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사도행전은 교회의 탄생과 성령의 활동에 직접 참여한 지역 사람들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입을 모아 말하였습니다. ‘저 사람들이 지금 하느님께서 하신 큰일들을 전하고 있는데 그것을 우리는 저마다 자기네 말로 듣고 있지 않은가?’(사도 2,11) 500년 전 이 여러 언어들의 합창에 앙골라 사람들도 들어있었습니다. 그 순간, 여러분의 조국 아프리카에 예루살렘의 오순절이 재현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조상들은 성령의 언어로 된 복음의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처음으로 그 메시지를 마음속에 받아들였고, 머리를 숙여 세례의 성수를 받았습니다. 그 성수를 통해 그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분의 부활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 1491년에 자이르 강어귀의 핀다에 입항하여 모험적 선교를 전개한 선교사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분 역시 같은 성령이셨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시며, 콩고의 위대한 임금 느징가 아 느쿠우(Nzinga-a-Nkuwu)의 마음을 움직여 선교사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도록 요청하게끔 하신 분도 성령이셨습니다. 유럽에서 돌아와 그리스도교 신앙을 증언하였던 네 명의 첫 앙골라 그리스도인들의 생명을 보호해 주신 분도 성령이셨습니다. 최초의 선교사들에 이어 많은 다른 선교사들이 이미 시작된 선교 활동을 계속하고 확장, 강화하려고 포르투갈과 다른 여러 유럽 국가에서 진출하였습니다.”39)

이 기간 동안 몇몇 주교좌가 창설되었으며, 그러한 선교 노력의 첫 결실들 중의 하나는 1518년 로마에서 교황 레오 10세가 콩고의 임금 돈 알폰소 1세의 아들 돈 헨리코를 유티카의 명의주교로 축성한 일이었습니다. 이리하여 돈 헨리코는 블랙 아프리카 대륙에서 최초의 본토 출신 주교가 되었습니다. 

저의 선임자 교황 그레고리오 15세가 선교활동을 더욱 체계적이고 광범위하게 펼칠 목적으로 포교성을 영구화했던 것은 바로 이 시기인 1622년이었습니다.

아프리카 복음화의 제2단계는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해서 사하라 사막 이남의 모든 선교활동의 소멸과 더불어 사실상 18세기에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제3단계

33. 아프리카의 체계적 복음화인 제3단계는 19세기에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아프리카선교의 위대한 사도들과 후원자들에 의해 조직된 비상한 선교 노력들로 특징지어집니다. 인류복음화성이 시노드에 제출한 통계 자료가 분명히 입증해 주듯이, 이 시기는 아프리카 선교가 급속히 성장한 시기였습니다.40) 아프리카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열과 성을 다하여 응답하였습니다. 최근 수십년 동안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복음화 100주년을 경축하였습니다. 실로 지난 100여 년 동안 이룩한 아프리카교회의 성장은 하느님 은총의 놀라운 업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프리카 복음화의 영광과 광채는 현대의 아프리카가 교회에 봉헌한 성인들을 통해 찬란히 빛나고 있습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1964년 전교주일에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우간다의 순교자들을 시성하는 자리에서 이 점을 특히 강조했습니다. “이 아프리카 순교자들은 승리에 빛나는 남녀 순교자들의 순교록에 새로운 한 면을 더해 주었습니다. 그들의 순교록 안에서 우리는 가장 비극적이고 가장 숭고한 이야기들을 발견합니다. 아프리카 순교자들의 순교록은 고대 아프리카의 놀라운 역사와 나란히 자리잡을 가치가 있습니다. …… 왜냐하면 이 새 시대의 순교자들인 그들의 피로 얼룩진 아프리카에서 구원된 자유의 아프리카가 태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순교자가 되기를 원하시는 하느님의 눈에 그들의 희생은 너무도 숭고하고 고귀한 것이었습니다.”41)

34. 아프리카 교회에 바친 성인들의 명단, 그 최대의 영광의 표시인 이 명단에 순교자들의 이름이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성인품에 오른 성인들 중에서, 제가 1985년에 아프리카에서 시복한 자이르의 동정 순교자인 복자 클레멘타인 안와리테와 역시 저의 교황 임기 중에 시복된 마다가스카르의 복자 빅토리아 라소아마나리보, 수단의 복자 조제핀 바키타를 어찌 언급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아프리카 시노드 기간 중에 영광의 제단에 오른 자이르의 순교 복자 이시도르 바칸자도 그렇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시복 조사들이 마무리 단계에 있습니다. 아프리카교회는 초세기의 빛나는 인물들에 우리 시대의 순교자들과 성인들을 더하여 …… 자체의 순교록을 만들고 기록해야 합니다.”42)

지난 100여 년에 걸쳐 아프리카교회가 이루어낸 엄청난 성장과 그것이 낳은 성덕의 결실 앞에서 가능한 설명은 단 한 가지입니다. 곧,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그렇게 짧은 기간 동안 그토록 큰일을 해낼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노드 교부들은 아프리카교회의 영광스럽고 찬란한 광채를 상기하며, 오직 아프리카의 해방과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놀라우신 업적을 경축하고 싶어했을 뿐입니다.

  “주님께서 이루신 일이옵기에,
   저희 눈에 놀랍게만 보이나이다”(시편 117,23).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해주신 덕분입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루가 1,49).

선교사들에 대한 경의

35. 아프리카교회의 두드러진 성장과 위업은 대부분 여러 세대에 걸친 선교사들의 이타적이고 사심없는 헌신 덕택이었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거룩한 아프리카 땅은 용감한 복음 전파자들의 무덤으로 씨뿌려져 있습니다.

아프리카 주교들이 시노드를 위해 로마에 모였을 때, 그들은 아프리카 대륙이 신앙 선조들에게 진 감사의 빚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1969년 7월 31일 캄팔라에서 개최된 아프리카 주교회의 총회 개막 연설에서 교황 바오로 6세는 이러한 감사의 빚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이제 아프리카인들은 여러분 자신의 선교사들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 축복받은 땅에 참으로 잘 세워져 있습니다(선교교령, 6항 참조). 그러나 수행해야 할 한 가지 의무가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에 앞서 아프리카에 복음을 전파하신 모든 분들과 오늘날 여러분과 함께 아프리카에 복음을 선포하고 있는 분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일러준 지도자들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이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를 살펴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십시오.’(히브 13,7)라고 권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입니다. 그 역사는 지역교회에 그 확실성과 숭고함의 표징, 그 ‘사도적’ 표징을 부여합니다. 그 역사는 바로 아프리카교회를 위대하고 거룩하게 만든 사랑과 이타심, 희생의 드라마입니다.”43)

36. 아프리카 시노드는 제1차 전체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함으로써 이 감사의 빚을 상당히 갚았습니다. “이 시점에서 아프리카 대륙 복음화 2천여 년 동안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리스도교 신앙의 횃불을 밝히는 일에 헌신해 온 모든 수도회와 재속회의 남녀 선교사들과 나라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는 것이 마땅합니다.`……`따라서 이 성대한 기회에 그 놀라운 모험의 행복한 상속자들인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하느님께 진 감사의 빚을 갚아드립니다.”44)

시노드 교부들은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보내는 담화에서 선교사들에 대한 그들의 경의를 열렬한 어조로 되풀이하였습니다. 한편 그들은 선교사들의 협력자들, 특히 교리교사와 번역가로 봉사하였던 아프리카의 아들딸들에게 찬사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45)

37. 우리가 아프리카 시노드를 로마에서 개최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2세기 동안 아프리카 대륙에서 활약한 용감한 선교사들의 덕택입니다. 그때 그들이 뿌린 씨앗이 많은 결실을 거두었고 아프리카의 아들로서 주교단에 속한 저의 형제들은 이에 대한 웅변적 증거자들입니다. 이제 그들은 사제들과 함께 복음화 과업의 주요 역할을 양 어깨에 걸머지고 있습니다. 하느님과 복음을 위한 완전한 봉헌의 횃불을 손에 들고, 오래 된 선교회나 아프리카 땅에 창설된 새로운 수도회에 입회하는 아프리카의 수많은 아들딸들 또한 이 결실의 증표입니다.

교회의 깊은 근원과 성장

38. 200여 년 동안 아프리카 가톨릭 신자의 수가 급속히 증가하였다는 사실은 어떤 기준에서 보더라도 두드러진 성과입니다. 특히, 아프리카 대륙의 교회 발전은 교회 관할 구역의 현저하고 급속한 수적 증가, 본토 출신 성직자, 신학생 그리고 봉헌생활회 지원자 증가, 아프리카 복음 전파에 큰 기여를 한 교리교사 조직의 꾸준한 증가 등과 같은 사실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끝으로, 가장 중요한 점은 현재 아프리카 대륙의 교계를 구성하는 본토 출신 주교들의 높은 비율입니다.

시노드 교부들은 토착화와 교회 일치를 위한 대화 분야에서 아프리카교회가 이룩한 많은 의미 깊은 업적들을 확인하였습니다.46) 교육분야의 가치있고 두드러진 성과들은 세계적으로 인정된 것입니다.

가톨릭 신자는 아프리카 인구의 불과 14%밖에 되지 않지만, 가톨릭 보건 시설들은 아프리카 전대륙에 있는 보건 기관의 17%를 차지합니다.

복음을 “땅 끝에 이르기까지”(사도 1,8) 전하고자 아프리카의 신생교회들이 대담하게 착수한 일들은 분명 눈여겨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아프리카에 창설된 선교회의 수가 늘어나고 있으며,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들뿐 아니라, 세계 다른 지역에까지 선교사들을 파견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정 기간 동안이지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국이나 해외의 타교구에서 교구 선교(fidei donum) 사제로 활동하기 시작한 사제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 관구를 둔 사도좌 관할권에 속하는 남녀 수도회들의 회원수 또한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는 아프리카 민족들에게 봉사하고 있으며 또한 하느님의 백성을 이루는 다른 개별교회들과 ‘선물 교환’에도 기꺼이 동참합니다. 이 모든 것은 아프리카교회가 달성한 성숙도를 뚜렷이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아프리카 시노드 개최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아프리카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39.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식민지 지배에서 독립을 쟁취한 지는 30년도 채 안되었습니다. 독립은 아프리카 민족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발전에 큰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나 “일부 국가에서는, 불행하게도, 국내 정세가 안정되지 못한 채 폭력이 난무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더욱 난폭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전국민, 전국가, 심지어는 전대륙을 함께 몰아넣어 단죄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47)

40. 그러나 오늘날 특히 교회의 복음선교의 관점에서, 아프리카 대륙 전반의 실제 상황은 어떠합니까? 시노드 교부들은 이 점에 대해 먼저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불행한 일들로 가득 찬 이 대륙에서 그리스도교의 메시지가 어떻게 우리 민족에게 ‘기쁜 소식’이 될 수 있습니까? 캄캄한 절망 속에 복음이 가져온 희망과 낙관은 어디에 있습니까? 복음화는 우리 아프리카 대륙에 부족한 많은 기본 가치들, 곧 희망, 평화, 기쁨, 조화, 사랑, 일치 등을 의미합니다.”48)

아프리카는 매우 다양한 상황들이 전개되고 있는 거대한 대륙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문제 진단과 해결책 제시에서 일반화를 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바로 직시한 다음, 아프리카 시노드는 애석하게도 다음과 같이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론의 여지 없이, 한 가지 공통된 상황은, 아프리카가 문제점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입니다. 거의 모든 아프리카 국가들 안에 극도의 빈곤, 이용 가능한 희귀 자원에 대한 관리 실책, 정치적 불안, 사회 혼란 등이 여기저기 쌓여 있습니다. 그 결과로 당하게 되는 것은 비참, 전쟁, 절망입니다. 부강한 나라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아프리카는 사실상 무의미한 부속물과 같은 존재로 잊혀지고 흔히 무시되어 왔습니다.”49)

41. 많은 시노드 교부들에게 현대의 아프리카는,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나 가진 것을 모두 털리고 두들겨 맞아 반쯤 죽은 상태로 쓰러져있는 사람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루가 10,30-37 참조). 아프리카는 남자, 여자, 어린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무수한 사람들이 말 그대로 병들고 다치고 불구가 되고 소외당하고 버려진 채 길가에 누워있는 대륙입니다. 아프리카는 착한 사마리아인들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교회가 착한 사마리아인으로서 맡은 바 일을 인내롭게, 싫증을 내지 않고 계속해 갈 것이라는 희망을 말씀 드립니다. 일부 정권은, 지금은 끝났지만, 참으로 오랜 기간 동안 아프리카인들에게 크나큰 시련이었으며, 상황에 대처하는 그들의 능력을 약화시켰습니다. 상처받은 사람은 그의 인간성을 되찾아야 합니다. 아프리카의 아들딸들은 이해해 주는 사람과 사목적 배려를 필요로 합니다. 그들의 힘을 회복하여 공동선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아프리카 문화의 긍정적인 가치들

42. 아프리카는 풍부한 천연 자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경제적으로는 빈곤합니다. 한편, 아프리카는 교회와 인류 전체에 줄 수 있는 풍부한 문화 가치들과 매우 귀중한 인간 자질을 부여받았습니다. 시노드 교부들은 하느님께서 복음 전파를 위한 준비로 마련해 주신 일부 문화 가치들을 강조하였습니다. 그 가치들이야말로 아프리카 대륙의 비극적 상황을 효과적으로 반전시키는 데 기여하며 각 국가들이 추구하는 발전과 연계된 전세계의 부흥을 용이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프리카인들은 깊은 종교적 감각, 곧 성스러운 것과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존재와 영적 세계에 대한 감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개별적 형태와 사회적 형태로 나타나는 죄의 실재에 대한 의식이 매우 강하며, 정화와 속죄 의식(儀式)에 대한 요구도 그에 비례합니다.

43. 아프리카 문화와 전통에서 가정의 역할은 어디서나 근본적인 것입니다. 가정, 사랑, 생명 존중에 대한 감각에 열려있는 아프리카인들은 자녀들을 하느님의 선물로 기쁘게 받아들이며 사랑합니다. “아프리카의 아들딸들은 생명을 사랑합니다. 조상 숭배에 그토록 지대한 중요성을 부여하게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생명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들은 죽은 이들이 계속하여 그들과 통교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직관으로 믿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성인들의 통공에 대한 신앙의 준비가 아니겠습니까? 아프리카 사람들은 잉태되고 태어나는 생명을 존중하고 기뻐합니다. 그들은 이른바 ‘진보된 문명’이 그들을 생명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려 할 때도, 생명이 파괴될 수 있다는 생각을 거부합니다. 한편, 생명경시 행위는 부자들의 이기심을 채워주는 경제 조직의 한 방편으로 그들에게 강요되고 있습니다.”50) 아프리카인들은 자연사에 이를 때까지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심을 간직하며, 연로하신 부모님과 친척들을 가정에 모십니다.

아프리카 문화는 연대와 공동체생활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마을 사람 전체가 참여하지 않는 축제 거행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실제로 아프리카 사회에서 공동체생활은 확대 가족의 표현입니다. 저는 아프리카가 언제까지나 이러한 값진 문화 유산을 보존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아프리카의 훌륭한 전통과는 너무도 이질적인 개인주의의 유혹에 결코 굴복하지 않기를 간절히 희망하며 기도합니다.

아프리카 민족들의 몇 가지 선택

44. 이상 말씀 드린 아프리카 상황의 그늘지고 어두운 면들을 과소 평가하지 않으면서, 우리는 칭송과 격려를 받아 마땅한 아프리카 민족들의 몇 가지 긍정적인 업적들을 여기서 상기해 봅니다. 예를 들어 시노드 교부들은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보내는 담화에서, 많은 아프리카 국가에서 민주화 과정이 시작되었음을 기쁘게 언급하면서 그것이 강화되기를 희망하였으며 법치 체제 확립에 대한 모든 장애와 반대가 민주화를 바라는 이들의 단합된 행동과 공동선에 대한 인식을 통하여 신속히 제거될 것을 희망하였습니다.51)

많은 아프리카 지역에서 ‘변화의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고,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집요하게 인권과 자유의 인정과 증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저는 소명에 충실한 아프리카교회가 압박 받는 사람들과 힘없는 사람들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 편에 결연히 서있음을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저는 교회가 앞으로도 이러한 증거를 계속해서 보여줄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은 “그리스도교의 사랑을 실천하는 최고의 형태로, 교회의 모든 전통이 이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 가난한 이들, 즉 말뜻 그대로 ‘주님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적극적인 관심은, 모든 차원에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안되며, 필요한 일련의 개혁을 결정적으로 달성하기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52)

45. 빈곤과 필수품의 결핍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교회는 전인적 인간 발전에 관계된 분야에서 주도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한 아프리카교회의 두드러진 업적은 흔히 정부와 국제 전문가들의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시노드는 “카리타스와 다른 개발 단체와 함께 원조와 보건 분야에서 일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선의의 모든 남녀들에게”53) 깊은 감사를 표명하였습니다. 그들이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전쟁과 재난을 당한 아프리카의 희생자들과 난민들, 유민들에게 제공하는 원조는 모든 인류의 칭송과 감사, 지지를 받아 마땅합니다.

저는 수년 동안 정치적 혼란, 충돌과 내란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평화와 화해의 촉진자로서 그 역할을 다해 온 아프리카교회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는 것이 저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II. 오늘날 아프리카교회의 문제점들

46. 아프리카 주교들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본질적인 물음에 직면해 있습니다. 교회는 다가오는 2000년의 복음화사명을 어떤 방법으로 수행해야 하는가? 아프리카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하면 한층 더 충실한 주님의 증거자가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적절한 답을 주고자, 주교들은 아프리카 시노드 이전은 물론 회의 중에도 오늘날 아프리카교회 공동체가 대처해야 하는 주요 과제들을 검토하였습니다.

더욱 깊이있는 복음화

47. 시노드 교부들이 주목하였던 일차적이고 가장 근본적인 사실은 아프리카 민족들이 느끼는 하느님께 대한 갈망이었습니다. 이러한 기대를 좌절시키지 않도록, 교회 구성원들은 먼저 자신의 신앙을 심화시켜야 합니다.54) 교회가 복음화에 앞장서야 하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교회는 “자신의 복음화부터 시작”해야 합니다.55) 교회는 “전세계를 복음화하려면 끊임없는 회개와 쇄신으로 교회 자체가 먼저 복음화되지 않으면 안된다.”56)는 도전에 응해야 합니다.

시노드는 아직 복음을 모르고 있는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해야 할 절박성을 인정하였습니다. 교회는 분명 많은 아프리카인들이 믿고 있는 비그리스도교 종교들을 존중하며 높이 평가합니다. 왜냐하면 이 종교들 역시 인간 집단의 정신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종교들을 존중하고 높이 평가한다고 해서 또는 제시된 문제가 복잡하다고 하여 교회가 비그리스도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지 않아도 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비그리스도교 종교인들에게도 그리스도의 신비의 보화를 알 권리가 있다는 점을 교회의 입장에서 주장하는 바입니다(에페 3,8 참조). 이 신비의 보화에서 인류는 하느님에 대해서, 인간과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 삶과 죽음, 진리에 대해서 모색하고 추구하던 모든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57)

48. "급속히 발전하는 우리 사회 안에서 문화의 혼란과 소외를 피하려면 참되고 균형 잡힌 토착화에 대한 깊은 관심이 필요하다.”는 시노드 교부들의 주장은 옳습니다.58) 말라위를 방문하는 중에 저도 같은 주장을 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 앞에 하나의 과제를 내놓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훌륭한 전통과 여러분의 그리스도교 신앙에 부합하지 않는 생활방식을 물리치라는 것입니다. 많은 아프리카인들은 이른바 ‘현대적 생활방식의 자유’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여러분 자신의 내면으로 눈을 돌리라고 호소합니다. 여러분들의 전통이 지닌 풍요로움을 보십시오. 우리가 이 시노드에서 기념하고 있는 신앙에 눈을 돌리십시오. 여기서 여러분은 진정한 자유를 찾을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여러분을 진리로 인도하실 그리스도를 발견할 것입니다.”59)

분열을 극복함

49. 시노드 교부들이 확인한 또 하나의 과제는 솔직한 대화를 통하여 치유되어야 할 여러 형태의 분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60) 식민지 세력의 잔재인 국경선 안에 공존하는 서로 다른 전통과 언어를 가진, 심지어는 종교까지 다른 소수 민족 집단들은 흔히 심각한 상호 적대감에서 유발하는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는 지적은 옳습니다. “평화나 적어도 사회의 공동선을 위한 추구가 없다면 소수 민족들간의 대립은 종종 위험한 지경에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교회생활과, 다른 민족 집단 출신 사목자의 수용을 어렵게 합니다.”61) 아프리카교회가 분열을 치유해야 하는 책임과 도전을 느끼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프리카 시노드는 타교회들과 타교회공동체들과 나누는 교회 일치의 대화와 아프리카 전통 종교와 이슬람교와 나누는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교부들은 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수단들도 고려하였습니다.

혼인과 성소

50. 「의제 개요」에 대한 응답으로 아프리카 주교회의가 거의 만장일치로 강조하였던 주요 과제는 그리스도인의 혼인과 가정생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62)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진정 “세계와 교회의 미래는 가정에 달려있습니다.”63)

아프리카 시노드가 강조한 또 하나의 근본 과제는 사제직과 봉헌생활 성소에 관한 것입니다. 교회는 성소를 현명하게 분별하여 주고, 유력한 지도자를 제공하며 그들에게 주어지는 교육의 질을 보살펴야 합니다. 아프리카인의 선교성소가 번성하기를 바라는 희망의 실현은, 복음이 아프리카의 모든 지역과 그 밖의 지역에까지 선포되려면 선교성소가 번성해야 한다는 이 문제의 해결에 쏟는 관심에 달려있습니다.

사회적 정치적 어려움

51. “아프리카에서 복음을 구체적인 일상생활에 적용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강하게 대두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들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잊은 채 어떻게 그 거대한 대륙에 그리스도를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많은 국가들이 아직도 굶주림, 전쟁, 종족과 부족 간의 긴장, 정치 불안, 인권 침해 등과 씨름하고 있는 이 땅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어찌 고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모두 복음화의 도전입니다.”64)

아프리카 시노드의 토론뿐만 아니라 시노드의 모든 준비 문서들은 시노드가 밝힌 근본 과제들 중에서, 악화 일로의 빈곤, 도시화, 국제 부채, 무기 판매, 난민과 유민 문제, 인구 문제, 가정을 위협하는 것들, 여성 해방, 에이즈의 확산, 일부 지역에 잔존해 있는 노예제도 관행, 민족 중심주의와 종족간의 대립 양상 등과 같은 아프리카의 문제들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대중 매체의 침투

52. 마지막으로, 아프리카 시노드는 사회 홍보 수단에 대하여 언급하였습니다. 사회 홍보 수단은 복음화의 도구뿐 아니라, 복음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새로운 문화를 전파하는 수단들과도 관계되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65) 따라서 시노드 교부들은 다음과 같은 안타까운 현실에 직면해 있습니다. “개발도상국들은 재화와 서비스가 만인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야 할 방향으로 진보하는 문제에서 자율적인 국가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기계의 한 부품 또는 거대한 바퀴의 톱니가 되어버립니다. 이것은 사회 홍보의 영역에서도 일어나는 문제로서, 대개 북반구에 있는 센터들이 운영하기 때문에 이러한 국가들에 대해서는 우선권을 거의 두지 않을 뿐더러 그 국가들이 처한 문제 또는 그들의 문화적 특질에 관해서도 합당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사회 홍보를 장악하고 있는 기관들은 생활과 인간에 관하여 빈번하게 왜곡된 관점을 강요하기가 예사이며, 따라서 참다운 발전의 요구에 호응하지 못합니다.”66)

III. 복음화 주역들의 양성

53. 아프리카교회는 어떠한 자산을 가지고 이상에서 언급한 과제들에 성공적으로 대응하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은총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자산은 사람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Lumen Gentium)의 신학적 견해에 따르면, 전체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구성원들인 하느님의 모든 백성은 영광과 의무를 동시에 받았습니다. 곧 복음을 선포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 모든 공동체는 복음화를 위하여 각각 교회 안에서 자신의 특정 역할에 맞게 훈련 받고, 동기와 권한을 부여받아야 합니다.”67) 따라서 시노드는 아프리카 복음화를 이끌어갈 복음화 주역들의 양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저는 이미 사제 지원자들과 봉헌생활에 부름받은 이들에 대한 양성의 필요성을 언급하였습니다. 아프리카 시노드는 또한 아프리카 복음화에 없어서는 안될 평신도들의 역할을 인정하면서 평신도 양성, 특히 평신도 교리교사 양성에 역점을 두었습니다.

54. 마지막으로 해야 할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프리카교회는 평신도들이 시민의 책임을 성실히 수행하며, 복음과 하느님께 대한 신앙에 비추어 사회 정치 문제들을 고려할 수 있도록 충분히 교육했는가? 이것은 분명 그리스도인들에게 속한 임무입니다. 곧 그리스도인들은 사고방식뿐 아니라 사회의 기본 구조까지 변화시킬 수 있도록 사회 조직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인류 가족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을 반영해야 합니다. 따라서 저는 철저한 평신도교육, 이른바 그들이 온전한 삶을 충만히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줄 교육을 요구해 왔습니다. 믿음, 희망, 사랑은 모든 활동과 상황, 책임 영역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행동에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복음화는 기쁜 소식을 인류의 모든 계층에까지 전해 주어, 그 영향력으로 인류를 내부부터 변혁시켜 새롭게 하는 것”68)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아프리카와 모든 다른 대륙 사람들의 진정한 선의를 방해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그들의 증거가 예언적인 도전이 되도록 사회에서 복음을 생활화하도록 교육되어야 합니다.




제 3 장  복음화와 토착화




교회의 사명

55.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이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되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내리신 명령입니다. “제자들은 사방으로 나가 이 복음을 전하였다”(마르 16,20).

“모든 인류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교회의 본연의 사명입니다. …… 복음선포를 교회가 받은 소명이고 은총이라고 한다면 이는 교회의 본성을 실질적으로 잘 표현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바로 복음선포를 위해서입니다.”69) 예수님과 열두 제자의 복음선교 활동에서 생겨난 교회는 그들의 뒤를 이어 복음선교 활동에 파견되었습니다. “교회는 전해야 할 기쁜 소식의 보관자입니다. …… 교회가 파견되고 복음화된 것이라면, 교회도 복음선포자를 파견해야 마땅합니다. 교회는 선교사들에게 구원의 말씀을 전하게 합니다.”70) 교회도 이방인들의 사도와 같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1고린 9,16).

교회는 주님에게서 받은 말씀을 선포하는 것뿐 아니라 삶의 증거를 보여줌으로써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삶의 증거를 보여줌으로써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들 안에 있는 믿음과 희망, 사랑에 대한 증거를 보여주는 것입니다(1베드 2,15 참조).

그리스도와 복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증거는 순교라는 숭고한 희생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마르 8,35 참조).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반대를 받는 표적”(루가 2,34)이신 분을 선포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유다인들에게는 비위에 거슬리고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1고린 1,23)를 전합니다. 제가 앞서 말씀 드렸듯이, 아프리카는 초세기의 빛나는 순교자들뿐 아니라, 현대의 순교자들과 성인들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복음화의 목적은 “인류를 내적으로 변화시켜 새롭게 만드는 것입니다.”71) 한 분뿐이신 성자 안에서, 또 그 성자를 통하여 하느님과 인간, 그리고 모든 피조물에 대한 인류의 관계는 쇄신될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선포는 성령의 활동에 마음이 열려있는 선의의 모든 사람들의 내적 변화에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56. 말과 행동으로 복음에 대한 증거를 보여주는 것, 이것이 바로 아프리카 시노드가 받은 과업이었으며, 시노드는 이 과업을 이제 아프리카교회에 넘겨줍니다. “너희는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 이것은 하나의 도전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이 과업과 도전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시노드의 결실로 나타나야 합니다.

용감한 선교사 주교들과 신부들의 복음 전파에서 생겨났고, “많은 국가에서 헌신적으로 선교활동을 펼친 수많은 남녀 선교사들”72)의 효과적인 도움을 받아 “그리스도의 새 고향”73)이 된 아프리카교회는 이제 그 대륙과 전세계의 복음화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저의 선임자 교황 바오로 6세가 캄팔라에서 말했듯이, “아프리카인이여, 여러분은 이제 여러분 자신의 선교사입니다.”74) 아프리카인들의 대다수가 아직 구원의 기쁜 소식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시노드는 선교성소의 장려를 권고하고 있으며, 교회의 선교활동을 위해 기도와 희생, 효과적인 연대를 장려하고 적극 지원하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75)

선  포

57. “시노드는 복음화란 생명의 말씀과 증거를 통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것임을 상기시킵니다.”76) 모든 면에서 증오와 폭력, 분쟁과 전쟁의 위협을 받고 있는 아프리카에, 복음선포자들은 파스카 신비에 근원을 둔 생명에 대한 희망을 선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 대한 당신의 승리를 시간과 공간 안에 영원히 지속시키시려고 “무궁한 영광의 표시”77)인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것은, 인간적으로 보면 당신의 삶이 실패한 것처럼 보였던 바로 그때였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아프리카 대륙이 어느 면에서는 중대한 상황에 놓여있던 바로 그 시기에 아프리카 시노드는 “부활의 시노드, 희망의 시노드”가 되기를 원하였습니다. “우리의 희망이신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니 우리도 살게 되리라!”78) 아프리카는 죽음이 아니라 생명의 운명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복음화는 살아계신 그리스도와 만남으로써 이루어지는 변화에 중심을 두어야 합니다.”79) “첫 번째 선포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당신을 따라 신앙의 모험으로 들어서도록 부르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놀랍고도 감격스런 체험을 이끌어내도록 하여야 합니다.”80) 이러한 과업은 “아프리카인이 그 전통적인 삶과 종교에서 창조주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지니고 있고,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시며 사람이 되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느님의 충만하고 완성된 계시로 열려있기” 때문에 더 쉽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복음이신 예수님께서는 아프리카인을 …… 억압과 노예 상태에서 구해 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81)

복음화는 “개인생활과 사회생활의 모든 면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따라서 복음화는 다양한 활동, 특히 시노드에서 검토된 선포, 토착화, 대화, 정의와 평화 그리고 사회 홍보 수단과 같은 활동들에서 표현되어야 합니다.”82)

복음화사명의 완전한 성공을 위하여 해야 할 일은 “성령 강림이 계속되도록 성령께 기도하는 일입니다. 마리아께서는 첫 번째 성령 강림 때와 마찬가지로 이 지속적인 성령 강림에서도 그 자리에 계실 것입니다.”83) 성령의 권능은 교회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며(요한 16,13 참조), 확신에 찬 결의로 그리스도께 대한 증거를 보여주러 세상에 나가게 해줍니다.

58.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결코 헛되이 그분께 돌아가는 법이 없습니다(이사 55,11; 히브 4,12-13 참조). 따라서 우리는 끊임없이 그 말씀을 선포해야 하고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전하고 끝까지 참고 가르치도록”(2디모 4,2) 권고해야 합니다. 교회에 맡겨진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은 “임의로 해석해서는 안되며”(2베드 1,20), 교회에 의해 올바로 해석되어야 합니다.84)

하느님의 말씀이 알려지고 사랑 받고, 신자들의 마음속에 새겨져 간직되려면(루가 2,19.51 참조) 특히 성서의 완전 또는 부분 번역을 통해서 성서를 가까이할 수 있도록 더욱 큰 노력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성서 번역은 가능한 한 다른 교회들이나 교회공동체들과 협력하여 준비하고, 기도용이나 가정과 공동체의 학습용 연구 교재를 함께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사제와 수도자, 교리교사 그리고 일반 평신도들의 성서교육을 장려해야 합니다. 말씀 전례를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아프리카와 마다가스카르 성서센터의 도움과 다른 비슷한 조직들의 격려를 받아 모든 차원에서 성서사도직을 발전시키도록 장려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모든 신자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성서를 손에 쥐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져야 합니다.85)

토착화에 대한 절박한 요구

59. 시노드 교부들은 복음화에서 토착화가 차지하는 특별한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하였습니다. 토착화 과정을 통해 “교리교육은 여러 문화와 영역 속에서 ‘형태를 취하게’ 됩니다.”86) 토착화는 두 가지 차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 문화가 그리스도교에 수용됨으로써 그 문화의 참된 가치의 내적인 변모가 이루어지는 것”87)이고, 다른 하나는 “여러 가지 인간 문화 안에 그리스도교가 삽입되는 것”입니다. 시노드는 아프리카에 복음이 견고히 뿌리내리도록 하려면 지역교회들의 생활에서 토착화가 가장 절박하고 우선적인 과제라고 생각합니다.88) 토착화는 “복음화에 대한 요구”89)이며, “완전한 복음화를 향한 길”90)입니다. 또한 그것은 제삼천년기의 문턱에서 아프리카 대륙의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도전 중의 하나입니다.91)

신학적 토대

60. “그러나 때가 찼을 때”(갈라 4,4), 복되신 삼위일체의 제2위격이시며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말씀은 “성령의 권능으로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시어 사람이 되셨습니다.”92) 이것은 말씀이 육화된 숭고한 신비이며, 역사 안에서 일어난 신비입니다. 곧, 시간과 공간이 명시된 상황에서, 또한 자신의 문화를 가진 민족, 하느님께서 선택하셨고 구원의 전역사를 통해 함께하셨던 그 민족에게서 일어난 신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하신 민족에게 하신 일을 통하여 전인류를 위해 하고자 하셨던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명백한 증거이십니다(로마 5,8 참조). 당신의 삶,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 주심, 당신의 수난과 죽음, 영광스런 부활, 이 모든 행위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용서해 주셨고, 우리를 당신의 아버지이자, 당신 덕택으로 우리 아버지도 되시는 하느님과 화해하도록 해주셨습니다. 교회가 선포하는 말씀은 바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 곧 당신 스스로 이 말씀의 주체이자 대상이신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기쁜 소식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요한 1,14)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된 기쁜 소식인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도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삶의 상황 속에 뿌리내려야 합니다. 토착화는 바로 복음의 메시지가 문화들 속에 스며드는 것입니다.93) 왜냐하면 하느님의 아들의 육화는 완전하고 구체적인 육화였기에,94) 그것은 한 특정한 문화 안의 육화이기도 했습니다.

61.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가 선포하는 말씀 사이에 존재하는 밀접하고 유기적인 관계를 생각할 때, 계시된 메시지의 토착화는 구원의 신비가 갖는 ‘논리’를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상 말씀의 육화는 하나의 동떨어진 순간이 아니라 예수님의 ‘시간’과 파스카 신비를 향하고 있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 높이 들리게 될 때에는 모든 사람을 이끌어 나에게 오게 할 것이다”(요한 12,32). 이처럼 자신을 비우는 것, 높임을 위해 필요한 자기 비움(kenosis),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이 가는 길(필립 2,6-9 참조)인 이 자기 비움은 문화가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을 만날 때 빛을 냅니다. “모든 문화는 파스카 신비의 빛 안에서 복음의 가치들에 의해 변화될 필요가 있습니다.”95)
육화와 구원의 신비를 바라봄으로써 문화의 가치와 이에 상반되는 가치를 식별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죄를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이 되신 것과 마찬가지로, 기쁜 소식의 토착화도 모든 참된 인간적 가치들을 취함으로써 죄에서 정화시키고 완전한 의미를 되찾아 줍니다.

토착화는 또한 성령 강림의 신비와 아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능력과 재능을 하나 되게 하시는 성령의 강림과 활동으로, 지상의 모든 민족들은 교회로 들어올 때 새로운 오순절을 맞이하고, 그들 자신의 언어로 예수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며, 주님께서 그들을 위해 해주신 놀라운 일들을 선포합니다. 자연적인 수준에서 민족들의 지혜의 참된 근원이신 성령께서는 초자연적 빛으로 교회를 완전한 진리를 알도록 이끌어주십니다. 또한 교회도 다양한 문화의 가치들을 받아들여 “패물을 단 신부”(이사 61,10 참조)가 됩니다.

토착화의 기준과 영역

62. 토착화는 어렵고 다루기 힘든 과업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계속되는 문화의 발전 안에서 교회가 복음과 사도적 전통에 충실해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시노드 교부들은 다음과 같은 올바른 발언을 하였습니다. “문화, 사회, 정치, 경제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급격한 변화를 고려할 때, 우리 지역교회들은 지속적으로 토착화 과정에 참여하되, 두 가지 기준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스도교 메시지와 일치를 이루고 보편교회와 친교를 맺는 것입니다. …… 어떤 경우에도 혼합주의는 피하도록 주의해야 합니다.”96) “토착화는 완전한 복음화를 향한 운동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히 받아들이도록 합니다. 그것은 개인, 문화, 경제, 정치 차원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그들이 성령의 활동을 통하여 아버지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며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게 합니다.”97)

시노드는, 토착화에 대한 노력이 이미 아프리카교회들의 생활과 특히 아프리카의 옛 동방교회들 안에 많은 결실을 맺었음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토착화는 교회의 전체 생활과 복음화의 전과정을 포함한다는 것을 주지하도록 주교들과 각 주교회의에” 권고하였습니다. “토착화에는 신학, 전례, 교회의 생활과 조직이 포함됩니다. 이는 모두 다양성을 지닌 아프리카 문화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시노드는 목자들에게 “교회의 현재 학문들이 이 문제에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 탐구해 내도록”98) 권고합니다.

하느님의 가족인 교회

63. 시노드는 토착화에 대한 언급에 덧붙여, 교회는 하느님의 가족이라는 개념을 아프리카 복음화의 중심 사상으로 삼음으로써 토착화를 활용하였습니다.99) 시노드 교부들은 이러한 표현이 특히 아프리카에 적절한 교회 본질의 한 표현이라고 인정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이미지는 다른 사람에 대한 보살핌, 연대, 따뜻한 인간관계, 수용, 대화 그리고 신뢰를 강조하기 때문입니다.100) 그러므로 새로운 복음화는 모든 민족 중심주의와 지나친 배타주의를 거부하는 반면, 각 민족 간에 화해와 진정한 일치를 장려하고, 부당한 인종 차별을 배제하면서, 개별교회들간에 인력과 자원을 서로 나누고 연대를 촉진하는 가족으로서 교회 건설을 목표로 할 것입니다.101) “아프리카 신학자들은 가족인 교회에 대한 신학을 연구하여 이 개념 안에 담겨 있는 온갖 풍요로움을 밝혀주고, 그것이 교회에 대한 다른 이미지들을 보충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를 진심으로 희망하는 바입니다.”102)

이 모든 것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교회헌장’에서 제시한 성서와 성전(聖傳)의 유산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를 전제로 합니다. 이 놀라운 문헌은 신비체, 하느님의 백성, 성령의 성전, 양떼와 양우리, 하느님께서 인간과 함께 머무르시는 집과 같은 성서에서 따온 이미지들을 사용하여  교회에 관한 교리를 설명합니다. 공의회에 따르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우리의 어머니요, 성스러운 도시이자, 다가올 하느님 나라의 첫 번째 열매입니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시노드의 권고에 따라 하느님의 가족인 교회에 대한 개념에 초점을 둔 교회학을 발전시켜 나갈 때 고려되어야 할 점들입니다.103) 그렇게 되면 교회헌장의 출발점인 다음 진술의 모든 깊이와 풍요로움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하느님께 대한 깊은 일치와 전인류의 깊은 일치를 표시하고 이루어주는 표지요 도구입니다.”104)

적용 영역

64. 라틴예법교회나 동방예법교회의 고유한 전통들에 대한 편견 없이, “전례의 토착화는 그 본질적 요소들을 바꾸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신자들이 전례 거행을 더 잘 이해하고 따를 수 있도록 행해져야 합니다.”105)

시노드는 또한, 복음화의 오랜 기간을 거친 후에도 교리를 융화시키는 일이 힘들거나 교리의 실천이 특히 성사생활에서 심각한 사목적 문제를 일으킬 때, 교회의 가르침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하였습니다. 동시에 교회는 정의와 참된 사목적 사랑으로 사람들을 대해야 합니다. 시노드는 이러한 사실을 유념하면서, 주교회의들이 대학들이나 가톨릭 연구소들과 협력하여, 특히 혼인이나 조상 숭배, 영혼의 세계에 대한 문제들에 관하여 연구위원회를 설치함으로써 갖가지 문화 측면들의 문제들을 신학, 성사, 전례, 교회법 관점에서 깊이 연구하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피력하였습니다.106)

대  화

65. “대화에 열려있는 마음은 다른 신앙인들과 선의의 모든 남녀에 대해서뿐 아니라 공동체 내에서도 지녀야 할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107) 대화는 무엇보다도 먼저 교회 가족의 모든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곧 주교들간에, 주교회의들과 교계총회들과 사도좌 간에, 같은 대륙의 주교회의나 주교총회와 타대륙 주교회의나 주교총회 간에, 그리고 각 개별교회 내의 주교, 사제단, 봉헌된 사람들, 사목자들, 평신도들 간에, 또한 같은 교회 내의 서로 다른 예법들간에 대화가 실천되어야 합니다. 아프리카 주교회의는 유기적 사목 연대를 강화하기 위하여 “이러한 대화의 실천을 보장해 줄 기구들과 수단들”108)을 설치해야 합니다.

“아프리카에서 증거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결합되어 있는 가톨릭 신자들은 다른 그리스도교 교파들의 모든 세례 받은 형제자매들과 교회 일치의 대화를 발전시켜 나가도록 초대받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염원하셨던 일치가 성취되도록 하기 위함이요, 아프리카 사람들에 대한 가톨릭 신자들의 봉사로,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의 눈에 복음이 한층 더 신뢰성있게 비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109) 그러한 대화는 공동 성서 번역과 다양한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신학 연구와 같은 작업이나 정의, 평화, 인간 존엄에 대한 공동의 복음적 증거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전국, 교구 차원의 교회일치운동위원회의 설치를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110)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아프리카 대륙에 복음을 증거할 책임이 있습니다. 교회 일치 운동을 촉진함은 이러한 증거를 더욱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66. “대화의 노력에는 모든 선의의 무슬림들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무슬림들이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고 십계명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111) 이 점에서, 시노드의 담화는 살아계신 하느님, 하늘과 땅의 창조주, 역사의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속해 있는 하나의 위대한 인류 가족의 아버지이심을 강조합니다. 그러한 자격으로 그분께서는, 우리가 모든 차원에 걸친 인류의 진보와 발전을 위하여 함께 일하면서 각 개인이 가진 가치와 종교 전통에 대한 존중을 통하여 그분께 대한 증거를 보여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이름으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고, 신자들에게 정의와 평화 안에서 다 함께 생명에 봉사하도록 요구하십니다.112) 따라서 무슬림과 그리스도인 간의 대화는 양편 모두 외적이고 공적인 신앙 고백을 포함해서, 종교 자유의 원칙과 그것이 내포한 모든 것을 존중하도록 특별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113) 그리스도인들과 무슬림들은 그릇된 평화주의나 호전적 근본주의의 위험에서 벗어나 대화 증진에 투신하고, 종교 자유 문제에서 호혜주의의 결여뿐 아니라 불공평한 정책과 관행에 대항하여 목소리를 드높이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114)

67. 아프리카 전통 종교와 갖는 진지하고 신중한 대화는 한편으로 많은 가톨릭신자들의 생활방식을 규제하는 부정적 영향에서 그들을 보호할 수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영원하신 분, 창조주, 섭리자, 정의로운 심판관이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같은 긍정적 가치들, 곧 신앙의 내용들과 쉽게 조화를 이루는 가치들의 흡수를 강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가치들은 복음을 위한 준비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가치들에는, 과거에 이미 그랬던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을 “복음의 선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의 충만한 계시에 열려있도록”115) 이끌 수 있는 귀중한 말씀의 씨앗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프리카 전통 종교 신봉자들을 큰 존중과 예우로 대해야 하며, 부정확하고 무례한 언어는 절대 삼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사제와 수도자 양성소 같은 곳에서 아프리카 전통 종교에 대한 적절한 강좌를 실시해야 합니다.116)

인간의 완전한 발전

68. 인간의 완전한 발전 ─ 개개인과 전체 인간, 공동체에서 가장 가난하고 무시당하는 사람들의 발전 ─ 은 복음화의 핵심입니다. “복음화와 인간의 진보 ─ 발전과 해방 ─ 이 두 가지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인간학의 측면에서 볼 때, 복음화되어야 할 인간은 추상적 존재가 아닌 사회, 경제 문제와 관련된 존재이기 때문이며 신학의 측면에서는 창조 계획과 구원 계획을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 계획은 불의의 타파와 정의 회복이라는 매우 구체적인 상황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복음의 측면에서 본다면 이것은 애덕의 관계라고 하겠지만, 만일 정의와 평화로써 참되고 진정한 인간 발전을 증진시키지 못한다면 어떻게 사랑의 새 계명을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117)

주 예수님께서 나자렛의 회당에서 당신의 공생활을 시작하셨을 때, 그분께서는 당신의 사명을 밝히시려고 이사야서의 메시아에 관한 본문을 선택하셨습니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가 4,18-19; 이사 61,1-2 참조).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인간을 비참에서 해방시켜 주고 모든 종류의 무시에 대항해 싸우도록 파견된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다. 그분은 인류를 해방시키러 오셨으며 우리의 허약함과 병고를 짊어지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명 전체는 그분께서 당신 주위의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 곧 상을 당한 사람들, 중풍병자들, 나병환자들, 소경들, 귀머거리들, 벙어리들(마태 8,17 참조)에게 보여주셨던 관심으로 특징지어집니다.”118) “복음화에서, 오늘날 수없이 거론되는 정의, 해방, 개발, 세계 평화에 관한 문제들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있거나 무시해야 한다는 주장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119) 복음화가 선포하는 해방은 “단순히 경제, 정치, 사회 또는 문화 영역에만 한정시킬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참된 해방은 모든 차원에서, 절대자이신 하느님께 대한 열린 마음을 포함해 …… 인간 전체를 고려해야 합니다.”120)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는 구원을 고유의 목적으로 추구하며 인간에게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어 줄 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이 생명이 반사하는 광명을 전세계에 비추고 있습니다. 특히 인간 존엄에 가해진 상처를 치료하고 인간 존엄을 드높이며, 인류사회의 결속을 강화하고, 인간의 일상활동에 더욱 깊은 의미와 중요성을 부여함으로써 세계에 빛을 던져줍니다. 이렇게 교회는 각 지체와 그 전공동체를 통해서 인류 가족과 그 역사를 날로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데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121)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그 나라를 가져다 줍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나라의 본질은 모든 인간 상호간의 친교와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친교”122)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완전한 해방과 온전한 구원의 원천입니다. 이를 명심하고 있는 교회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며 인류 역사에 실제로 굳게 결속되어 있습니다.”123)

69. 인류 역사는 회복된 인간 존엄의 근원이신 하느님 말씀의 육화에서 그 참된 의미를 발견합니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이시며 만물에 앞서 태어나신 분”(골로 1,15)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됩니다. “성자께서는 당신의 육화를 통하여 어떤 의미에서 당신을 모든 사람과 일치시키신 것입니다.”124) 어떻게 우리가 대 레오 성인과 함께 이렇게 외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여, 여러분의 존엄을 인식하십시오.”125)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은, 하느님의 외아들의 육화를 통하여 하느님께 받은 양도할 수 없는 존엄을 사람들에게 밝혀주는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의 최후 목적인 하느님의 신비를 밝혀주는 것이 교회에 맡겨진 사명이므로, 교회는 동시에 인간 존재의 의의, 곧 인간에 대한 깊은 진리를 인간에게 밝혀줍니다.”126)

이러한 특별한 존엄성을 부여받은 인간이 인간 이하의 사회, 경제, 문화, 정치 조건에서 살아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인간 존엄의 수호, 정의, 사회 평화, 모든 인간과 각개인의 향상, 해방, 인간의 완전한 발전을 위한 해방신학의 토대입니다. 저의 선임자 바오로 6세가 적절히 지적한 대로, 민족들의 발전이 모든 국가 안에서 그리고 국가들간에 연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함은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127) 바로 이러한 이유로 바오로 6세는 이렇게 단언할 수 있었습니다. “평화의 새 이름은 발전입니다.”128) 따라서 “완전한 발전은 인간 존엄에 대한 존중을 내포하며 이는 오직 정의와 평화 안에서만 성취될 수 있다.”129)고 천명할 수 있습니다.

소리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어

70. 예수님의 구원 능력에 대한 믿음과 희망으로 힘을 얻은 시노드 교부들은 아프리카 민족들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구원의 도구가 되어야 할 도전을 받아들이려고 그들의 투신을 새롭게 함으로써 시노드 작업을 마무리지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선언하였습니다. “교회는 자신의 예언자 역할을 계속 수행해 나가야 하며 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어야 합니다.”130) 이는 모든 개인의 인간 존엄이 어디에서든 인정받을 수 있고, 인간이 언제나 모든 정부 계획의 중심에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시노드는 “국가 수반들과 공공 분야에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국민들의 해방과 발전을 한층 더 보장하도록 촉구합니다.”131) 이러한 값을 치렀을 때만 국가간의 평화가 확립됩니다.

복음화는 개인의 정신적 물질적 삶의 발전과 품위에 이바지하는 활동들을 증진시켜야 합니다. 여기에는 인간 개개인과 인간 전체의 발전이 포함되며, 개인뿐 아니라 특히 국가의 모든 구성원과 전세계 모든 민족들의 조화로운 공동 발전이 고려되어야 합니다.132)

마지막으로, 복음화는 인간을 타락시키고 파괴하는 모든 것들을 고발하고 그에 대응해 투쟁해야 합니다. “악과 불의에 대한 단죄 역시 사회 분야에서 복음선포를 하는 봉사직의 일부이며, 교회의 예언자 역할의 한 측면입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점은, 선포가 단죄보다 언제나 더 중요하다는 것이며, 후자는 전자를 무시한 채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선포야말로 참다운 연대성을 간직하고 더 고귀한 동기에서 오는 힘을 갖추고 있는 까닭입니다.”133)

사회 홍보 수단

71. “시초부터 하느님께서는 통교를 원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통교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피조물에게 생물 또는 무생물의 존재를 부여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인간과 관계를 맺으십니다.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시켜 여러 번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시대에 와서는 당신의 아들을 시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 1,1-2).134) 하느님의 말씀은 본질적으로 말씀이자 대화이며 통교입니다. 그분께서는 한편으로는 하느님과 인류 사이의,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 사이의 통교와 관계를 회복시키러 오셨습니다.

시노드는 대중 매체가 갖는 두 가지 중요하고 상호 보완의 측면 때문에 대중 매체에 큰 관심을 보였는데, 그 하나는 새롭게 부각되는 문화 세계로서의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일련의 전달 수단으로서의 측면입니다. 먼저, 대중 매체는 고유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 새로운 문화이며, 특히 그 고유의 특별한 가치와 그에 상반되는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다른 모든 문화와 마찬가지로 대중 매체는 복음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135)

실상 오늘날 대중 매체는 하나의 세계를 이룰 뿐 아니라 하나의 문화와 문명을 이루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 세계에도 구원의 기쁜 소식을 가져다 주기 위해 파견되었습니다. 따라서 복음의 전달자는 이 세계에 들어가 대중 매체를 훌륭히 활용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이 새로운 문명과 문화에 스스로 젖어들도록 해야 합니다. “현대의 첫째가는 아레오파고는 홍보의 세계입니다. 홍보 매체들은 인류를 하나로 묶어서 이른바 ‘지구촌’을 형성해 갑니다. 사회 홍보 수단들은 정보와 교육의 주요 도구가 되었고, 개인과 가정과 사회의 행동 규범과 발상의 주요 도구가 되었습니다.”136)

따라서 대중 매체 사용에 대한 훈련은, 다른 무엇보다도 홍보라는 매체양식에 숙달되어야 하는 복음 설교자들뿐 아니라 독자들과 시청자들에게도 필요합니다. 그들은 이러한 종류의 홍보를 이해하도록 훈련받아 식별력과 비판력을 가지고 그것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두 전달이 문화의 특징 중의 하나인 아프리카에서 그러한 훈련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러한 홍보가 사목자들, 특히 주교들과 신부들에게, 교회는 말과 행위로써 복음을 말하고 전하도록 파견되었음을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침묵 자체가 말과 증거의 방법이 될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사명을 저버릴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침묵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2디모 4,2 참조) 언제나, 사랑과 진리 안에서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




제 4 장  그리스도교 제삼천년기에 비추어



I. 오늘날의 도전들

72. 아프리카 시노드가 소집된 것은 대륙에 있는 하느님의 교회 전체가 제삼천년기에 비추어 그 복음화사명을 성찰하고, “아프리카 전역과 인근 제도의 유기적인 사목적 연대”137)를 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한 사명은 앞서 언급한 대로, 아프리카 사회의 심각하고 급속한 변화와 지구촌 문화의 출현에서 오는 영향 때문에 절박한 과제와 도전을 내포합니다.

세례의 필요성

73. 가장 절박한 과제는 물론 복음화 자체입니다. 교회는 한편으로는, 주님께서 교회에 맡기신 메시지를 그 어느 때보다도 완전히 받아들여 실천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메시지를 전하고 그에 대한 증거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참으로 그들을 위한 것입니다.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라”(마태 28,19).

신앙선포(kerygma)의 목적은, 오순절과 마찬가지로, 그 복음을 듣는 사람들을 회개와 세례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의 선포는 그리스도교적 회개를 지향하는데, 이 회개는 신앙으로써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에 완전하고 진지하게 귀의하는 것입니다.”138) 더욱이 그리스도께 회개하는 것은 “세례와 결부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교회의 관습이기 때문이 아니라, 만민을 제자로 삼고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도록 사도들을 파견하신 그리스도 자신의 뜻이기 때문입니다(마태 28,19 참조). 회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생명의 충만함을 얻고자 하는 내적 요구 때문에 세례와 결부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정말 잘 들어두어라.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고 말씀하셨듯이, 사실 세례는 우리를 하느님 자녀로 새로 태어나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시켜 주며 성령의 은총으로 도유해 줍니다. 세례는 단순히 회개의 인장이거나 회개를 표시하는 외적 표지나 확인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례는 성령을 통한 재생을 의미하고 이를 실현시키는 성사이며, 삼위이신 하느님과 실질적이고 파괴될 수 없는 일치를 이루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의 지체가 되게 합니다.”139) 따라서 세례의 절정에 이르지 못한 회개의 여정은 중도에서 멈춘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자신의 잘못과는 전혀 상관없이 복음을 전해 받지는 못했지만 하느님의 법에 따라 양심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의인들은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틀림없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언제나 하느님의 실제적 부르심이 있으며, 이 부르심은 동의와 수락을 기다리고 있습니다(1디모 2,4 참조).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질 때까지 쉬지 말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를 깨닫고 받아들이는 일을 도와주기 위해서 입니다.

복음화의 절박성

74.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이름입니다(사도 4,12 참조). 아프리카에는 아직 복음화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교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을 세례와 그리스도교생활로 인도할 절실하고 시급한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선교활동의 절박성은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시고 그 제자들이 살아온 생명의 근본적 새로움에서 명백히 드러납니다. 이 새로운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이요,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합당하도록 그들의 사명을 완수하기를 원한다면 당연히 받아들이고 발전시켜야 하는 것입니다.”140) 복음의 근본적 새로움에서 기인하는 이 새로운 생명은 세계 어느 민족이든 그 민족의 관습과 문화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나올 것을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결코 어느 특정한 나라의 내부 산물이 아니라 언제나 ‘외부에서’, 높은 곳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세례 받은 사람들에게 언제나 가장 큰 도전은, 죄에 대해 죽음으로써 날마다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는 것을 의미하는 세례성사 때의 약속(로마 6,4-5 참조)에 따라 그리스도교생활을 영위해 가는 문제일 것입니다. 그 약속을 지키지 않고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세상의 소금”과 “세상의 빛”(마태 5,13.14)이 되기 어렵습니다. 아프리카교회가 주저하지 않고 과감하게 이 길에 자신을 투신한다면, 구원자에게 문 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민족들의 구원을 위해 대륙 곳곳에 십자가가 세워질 것입니다.

교육의 중요성

75. 교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교육은 가장 중요합니다. 한번도 배움의 기회를 가져보지 못한 사람들은 신앙의 참된 진리를 알 수 없으며, 한번도 배워본 적이 없는 행동을 행할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전 공동체는 각자 교회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역할에 따라 복음화 교육과 동기와 권한을 부여받아야 합니다.”141) 여기에는 주교, 신부, 봉헌생활회와 사도생활단의 구성원들, 재속회 회원들 그리고 모든 평신도들이 포함됩니다.

선교사 교육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해야 합니다. 그것은 “지역교회가 선교사들과 그들의 기관과 신생교회 출신 교역자들의 도움을 받아서 해야 할 과업입니다. 이 사업은 그리스도교생활의 변두리 사업이 아닌 핵심 사업으로 생각해야 합니다.”142)

교육 프로그램에 특히 평신도 양성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이는 평신도들이 그들 소명의 특수한 임무인 정치, 문화, 경제, 사회와 같은 현세 질서에 그리스도교의 원칙을 불어넣는 역할을 충분히 실행할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능력있고 의욕을 가진 평신도들의 정치 참여를 장려할 필요가 있습니다.143) 공직의 의무를 훌륭하게 수행함으로써 그들은 “공동선을 증진시키고 복음의 길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144)

신앙의 심화

76. 아프리카교회는 복음화를 위해서 “그 자신부터 복음화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 교회는 자신이 믿어야 할 것과 희망하는 것, 그리고 사랑의 새 계명에 끊임없이 귀기울여야 합니다. 하느님의 백성은 세속사회에 속해 살면서 때때로 우상의 유혹을 받고 있기에 주님께 복귀하고 ‘하느님의 크신 일들’을 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145)

오늘날 아프리카의 “신앙교육은 초보 단계에 그치는 경우가 잦아 종파들이 이 무지를 쉽게 이용합니다.”146) 급격한 사회발전으로 특히 가정 붕괴, 도시화, 실업, 온갖 물질의 유혹, 대중 매체가 퍼뜨리는 무비판적 사상의 범람에서 오는 세속화와 지적 혼란 등의 현상과 관련된 새로운 문제들이 야기되고 있기 때문에 신앙의 심화가 절실히 요구됩니다.147)

증거의 힘

77. 교육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의 내용을 분명하게 전해 주는 전문 기술뿐 아니라, 일상생활 안에서 신앙에 관한 증거를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깊은 확고한 신념을 심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따라서 복음선포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누구나 성령께 완전히 순종하고 행동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초대교회나 지금이나 다 같이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의지하는 선교자 안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148) “복음선교의 기술이 많이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발전하였다 하더라도 성령의 조용하신 활동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준비가 아무리 완벽하다 하더라도 성령께서 안 계시면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그 아무리 설득력있는 화술이라 해도 성령께서 안 계시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안 계시면 사회학이나 심리학을 토대로 발전한 훌륭한 학문도 무가치한 것이 됩니다.”149)

신앙인들의 참된 증거야말로 오늘날 아프리카의 올바른 신앙선포에 가장 본질적인 것입니다. 특히 신앙인들은 그들간의 참된 사랑의 증거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곧 참되시고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 17,3). 선교의 최종 목적은 아버지와 아들의 친교에 참여케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아버지와 아들 안에 머물면서 서로 일치하여 세상이 이것을 알고 믿도록 살아야 합니다(요한 17,21-23 참조). 이 대목은 대단히 중요한 선교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말과 행동으로 선교사이기 전에 우리의 신원, 곧 사랑의 일치를 최고의 생명으로 하는 교회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150)

신앙의 토착화

78. “문화가 되지 못하는 신앙은 완전히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충실히 실천할 수 없기 때문에 문화와 신앙의 통합은 문화의 요구일 뿐 아니라 신앙의 요구이기도 합니다.”151) 이러한 깊은 확신으로, 아프리카 시노드는 토착화를 아프리카 개별교회의 생활에서 가장 우선적이고 긴급한 과제로 보았습니다. 오직 이 길을 통해서만 복음은 아프리카 대륙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들 속에 확고히 뿌리내릴 수 있습니다. 시노드 교부들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뜻을 이어152) 토착화를, 신학, 전례, 관습, 구조 등 그리스도교의 존재 전체를 포함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해석하였습니다. 물론 신권과 수세기에 걸쳐 이룩한 덕행과 영웅적 행위의 놀라운 결실로써 확인된 교회의 기강에 손상을 주지 않는 한에서 말입니다.153)

아프리카의 토착화 과제는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참된 아프리카의 가치들에 충실하면서 복음 메시지를 완전히 소화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생활과 인간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신앙의 토착화는 교회를 온전한 진리로 이끌어주시는 주님의 영(요한 16,13 참조)의 도우심이 있어야만 실행될 수 있는 힘든 작업입니다.

공동체의 화해

79. 대화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종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생활에서 개인간, 국가간, 민족간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문제입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도전이며 제자들은 이 사랑을 자신의 생활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5).

“복음화는 하느님께서 인류와 나누시는 대화의 연장으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절정을 이룹니다.”154)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를 통해서, 사람들을 갈라놓고 멀어지게 하는 증오를 당신 안에서 끝맺게 하셨습니다(에페 2,16 참조).

현대의 ‘지구촌’ 문명하에서도 세계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역시 대화, 평화, 화해의 정신이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잡으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전쟁, 분쟁, 인종 편견, 이방인 배척 행위가 인간 세계에서 아직도 너무나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교회는 그 자신의 아들딸들의 증거를 통하여 자신이 모든 사람을 위한 진정한 화해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서로 용서하고 화해함으로써 아프리카의 아들딸들은 우리의 평화이신 그리스도(에페 2,14 참조)께서 당신의 교회를 통하여 인류에게 주시는 용서와 화해를 세상에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은 점점 더 전쟁의 장으로 변할 것이며 사리사욕과 힘의 법칙이 난무할 것입니다. 그 법칙은 결국 인류가 희망하는 사랑의 문화에서 인류를 멀어지게 만들 것입니다.

II. 가  정

가정의 복음화

80. “세계와 교회의 미래는 가정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155) 그리스도인 가정은 살아있는 교회 공동체의 첫 번째 세포일 뿐 아니라 사회의 기본 세포이기도 합니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가정은 사회 건설의 초석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시노드는 아프리카 가정의 복음화를 주요한 우선 과제로 보았습니다. 한편 가정은 가정을 통한 가정의 복음화를 위한 자기 나름대로의 주역이 되어야 합니다.

현대사회를 특징짓는 큰 변화의 결과로서 아프리카 가정이 직면해야 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난점들을 사목적 관점에서 볼 때, 가정의 복음화는 현실적 도전입니다. 아프리카 가정은 현대의 긍정적 가치들을 받아들이는 한편 자신의 고유한 본질적 가치들을 보존해야 합니다.

모범으로 삼아야 할 성가정

81. 복음서가 한때 아프리카에서 살았다고(마태 2,14-15 참조) 전하는 성가정은 “모든 그리스도인 가정의 원형이자 모범”156)이며, 각 그리스도인 가정의 지표요 정신적 근원157)입니다.

교황 바오로 6세가 성지 순례 중에 한 말을 되풀이하자면, “나자렛 가정은 우리가 예수님의 생활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학교, 곧 복음의 학교입니다. …… 복음의 가르침을 따르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우리는 영성생활 규칙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이곳에서, 이 학교에서 배우게 됩니다.”158) 교황 바오로 6세는 나자렛의 신비에 대한 깊은 묵상을 통해 다음 세 가지 교훈을 배우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곧 침묵, 가정생활 그리고 노동입니다. 나자렛 가정에서 각자는 성가정의 가족들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면서 자신의 소임을 다하며 살아갑니다.

남성과 여성의 존엄과 역할

82. 남성과 여성의 존엄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하느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셨다.”(창세 1,27)는 사실에서 연유합니다. 남녀 모두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으며, 따라서 지혜와 의지 그리고 그에 따른 자유를 부여받았습니다. 우리 첫 조상들이 지은 죄에 대한 이야기가 이를 확인해 줍니다(창세 3장 참조). 시편 저자는 비할 데 없는 인간 존엄을 두고 이렇게 노래합니다. “천사들보다는 못하게 만드셨어도,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주셨나이다.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삼라만상을 그의 발 아래 두시었나이다.”(시편 8,6-7).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르긴 해도 모두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본질적으로 동등합니다. “남녀는 처음부터 그들 주변의 세계에서 발견되는 다른 생명체들과는 달리 인격체입니다. 여자는 공통 인간성 안의 또 다른 ‘나’이며,”159) 각자는 다른 한쪽을 거들어줍니다(창세 2,18-25 참조).

“인류를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실 때에, 하느님께서는 남자와 여자에게 동등한 인격적 존엄성을 주시고, 인간에게 적합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와 책임을 부여하셨습니다.”160) 시노드는 “여성에게서 그들의 당연한 권리와 존엄성을 빼앗는”161) 아프리카의 풍습과 관습을 개탄하면서 이들 권리의 수호를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줄 것을 아프리카교회에 요청하였습니다.

혼인의 존엄성과 그 역할

83. 하느님 ─ 성부, 성자, 성령 ─ 께서는 사랑이십니다(1요한 4,8 참조).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의 일치는 인류의 구세주로서 사랑과 아울러 당신 자신을 주었을 뿐 아니라 인류를 당신 몸에 일치시키신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적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그분께서는 혼인의 본래의 진리, ‘처음’의 진리를 밝혀주셨고, 굳어진 마음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면서 이 진리를 완전히 실현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이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이 인성을 취함으로써 인류에게 보여주신 사랑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신부인 교회를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감수하신 희생에서 결정적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이 희생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창조 때부터 남자와 여자의 인간성 안에 부여해 놓으신 그 계획(에페 5,32-33 참조)이 완전히 드러났습니다. 세례 받은 사람들의 혼인은 그리스도의 피로써 맺어진 그 새롭고 영원한 계약의 참된 상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162)

세례 받은 부부의 부부애는 당신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냅니다. 혼인은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징표로서 새로운 계약의 성사입니다. “부부는 십자가 위에서 일어난 일을 교회에 계속 상기시킵니다. 그들은 서로에게나 자녀들에게는 구원의 증인이고, 성사는 그들을 구원의 참여자로 만듭니다. 다른 성사와 마찬가지로 혼인은 이 구원 사건의 기념이고 실현이며 예언입니다.”163)

따라서 혼인은 삶의 상태이고, 그리스도인들의 성덕의 길이며, 영광스런 부활과 하느님 나라로 인도하게 될 성소입니다. 하느님 나라에서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습니다”(마태 22,30). 그러므로 혼인은 불변의 사랑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흔들림없는 사랑을 통해 혼인은 부부의 세례성소를 충만히 완성시키는 데 효과적으로 기여할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가정의 구원

84. 시노드 회의장에서 있었던 여러 발언들은 오늘날 아프리카 가정을 위협하고 있는 것들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시노드 교부들의 우려는 아프리카 가정이 지닌 많은 가치들과 명백히 대립되는 결의들을 채택하려 했던, 1994년 9월 아프리카 땅인 카이로에서 열린 국제연합 회의의 준비 문서에서 더욱 분명히 입증된 바 있습니다. 시노드 교부들은 이전에 제가 국제연합 회의와 세계의 모든 국가 수반들164)에게 표명한 우려를 받아들여 가정 수호에 대한 절박한 호소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간청하였습니다. “아프리카 가정이 자기 땅에서 비웃음거리가 되는 일이 없게 합시다! 세계 가정의 해가 가정 파괴의 해가 되지 않게 합시다!”165)

사회로 열린 가정

85. 인류 존속의 특별한 사명을 지닌 혼인은 본질상 부부의 범위를 초월합니다. 마찬가지로 가정도 본질상 개별 가정의 범위를 넘어 사회로 확대됩니다. “가정은 사회의 기초이며 생명에 봉사하는 역할을 통해서 계속적으로 사회를 육성하기 때문에 사회와는 활력적이며 유기적인 연관성을 맺고 있습니다. 사회인은 가정을 통해서 태어날 뿐 아니라 가정 안에서 사회 자체의 존재와 발전의 활성 원리가 되는 사회적 미덕의 첫 번째 학교를 발견합니다. 따라서 가정은, 자신 안에 폐쇄되어 있기는 고사하고, 본성과 소명을 통해서 다른 가정과 사회에 개방되어 있고 사회적 역할을 담당합니다.”166)

이러한 노선을 따르면서, 아프리카 시노드는 복음화의 목적이, 비록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지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앞당기는 하느님의 가족으로서 교회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단언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아프리카의 그리스도인 가정들은 참된 ‘가정교회’가 되어, 더욱 형제적인 삶을 향한 사회발전에 이바지하게 될 것입니다. 아프리카 사회는 이런 식으로 복음을 통해 변화될 것입니다!



제 5 장  아프리카에서 “너희는 나의 증인이 되어라”



증거와 성덕

86. 앞에서 언급된 과제들은 아프리카 시노드가 얼마나 시기적절한 때 열렸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교회가 할 일은 너무도 많습니다. 그 일을 해 나가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협력에서 증거는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프리카의 당신 제자들을 일깨워 주시며, 당신께서 승천하시던 날 사도들에게 내리셨던 명령을 그들에게 내리십니다. 아프리카에서 “너희는 나의 증인이 되어라”(사도 1,8).

87. 말과 행위로써 기쁜 소식을 전파함은 사람들의 마음을 성덕으로,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열망으로 열리게 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각처에 있는 모든 성도들과 함께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리스도 예수를 믿어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 사람들”(1,2)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또한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날에 아버지께 바치실 나라(1고린 15,24 참조)의 도래에 비추어 하느님의 교회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사고방식과 행동의 전환(metanoia), 말과 행위를 통한 증거의 생활, 성사, 특히 교회 안에서 구원의 성사인 성체성사를 통해 교회 안에서 자양분을 얻는 생활이 요구됩니다.”167)

개인과 그들의 주된 공동체의 삶에 신앙을 스며들게 하는 토착화 역시 성덕에 이르게 하는 한 방법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강생을 통해 죄를 제외한 모든 것에서 인성을 취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 메시지 역시 토착화를 통해, 죄에 물든 것은 무엇이나 거부하면서, 그 메시지가 선포되는 사회의 가치들을 흡수합니다. 교회 공동체가 어떤 특정 문화의 긍정적 가치들을 흡수할 수 있을 때, 토착화는 그 공동체가 그리스도교 성덕의 풍요로움에 자신을 열게 하는 도구가 됩니다. 지혜롭게 이루어지는 토착화는 다양한 민족들의 문화를 정화하고 승화시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례는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요청받습니다. 전례는 구원의 신비를 전하고 체험케 하는 효과있는 방법으로서, 한 민족이 지닌 고유한 문화의 표현을 드높이고 풍요롭게 하는 데 효과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 규범에 비추어 예술적 가치가 있는 모델에 따라 변화될 수 있는 전례 요소의 토착화를 준비하는 것이 유능한 권위자의 임무일 것입니다.168)

I. 복음화의 일꾼들

88. 복음화는 일꾼을 필요로 합니다. “믿지 않는 분의 이름을 어떻게 부를 수 있습니까? 또 들어보지도 못한 분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말씀을 전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전도자로서 파견받지 않고서 어떻게 전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로마 10,14-15) 복음선포는 보편교회와 지역교회의 모든 신자들의 협력과 공헌을 통해서만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신자들을 하나로 모으고, 사제들과 교리교사들의 활동을 통해 신앙을 확인시켜 주며, 그들 각자의 임무를 완수하도록 도와줌으로써 복음화에 투신하도록 조정하는 일은 주교의 책임에 맡겨진 지역교회의 특별 관심사입니다. 이를 위해 교구는 함께 대화하고 계획에 필요한 조직들을 창설해야 합니다. 주교는 이 조직들을 통해 신부들, 수도자들, 평신도들의 활동을 인도하고, 각자의 재능과 카리스마를 수용하여 이를 새롭고 안목있는 사목활동 계획을 수립하는 데 적절히 이용해야 합니다. 교회법의 현행 규범이 규정하고 있는 각종 회의들은 이 목적에 이바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보아야 합니다.

활력있는 그리스도교 공동체

89. 애초부터 시노드 교부들은 교회가 밀접한 인간관계를 강화시킬 수 있을 정도의 작은 공동체들로 재구성되지 않는다면 가족으로서 교회는 교회가 지닌 충분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였습니다. 아프리카 시노드는 그러한 공동체들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습니다. 이 공동체들은 우선 자체 복음화에 투신하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 공동체들은 기도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며, 책임있는 구성원들이 되게 하고, 교회생활의 실천을 공부하며, 여러 가지 인간 문제들을 복음의 견지에서 성찰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들 공동체들은 만인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 곧 가문이나 부족 또는 그 밖의 이익 집단들의 자연적 연대의 한계를 초월하는 사랑의 실천에 헌신해야 합니다.169)

평신도

90. 평신도들이 교회 안에서 그들의 역할을 깊이 인식하여, 교회와 세계에 있어서 평신도의 소명과 사명에 관한 저의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후속 교황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Christifideles Laici)170)과 불변하는 선교사명에 관한 회칙 「교회의 선교사명」(Redemptoris Missio)171)의 가르침에 따라, 세례와 견진을 받은 사람들로서 그들의 특별한 사명을 완수하도록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평신도들은 적절한 성서/사목 교육 센터나 학교에서 그들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교회의 사회교리에 대한 확고한 교육을 통해 정치, 경제, 사회 임무에 대해 만반의 준비를 시킴으로써 그들이 직장에서 충실한 복음 증거자가 되게 해야 합니다.172)

교리교사

91. “교리교사들의 역할은 아프리카에 교회를 이식하고 확장하는 데 결정적인 힘이 되어왔으며 지금도 그렇습니다. 시노드는 교리교사들이 건전한 입문교육뿐 아니라 …… 계속해서 도덕과 영성 차원의 지원 및 교리교육을 받도록 권고합니다.”173) 주교들과 신부들은 교리교사들이 합당한 생활 조건과 근로 조건을 보장받아 그들의 사명을 적절히 수행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교리교사들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내에서 그들의 책임을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합니다.

가  정

92. 시노드는 아프리카의 모든 그리스도인 가정을 향하여 “복음 증거를 위해 특권을 부여받은 장소,”174) 참된 “가정교회,”175) 믿고 복음화하는 공동체,176) 하느님과 대화하는 공동체,177) 그리고 인류 봉사를 위해 너그러이 열려있는 공동체178)가 되어줄 것을 호소하였습니다. “가정에서 부모는 말과 모범으로 자녀들에게 신앙을 가르치는 첫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179) “그 가정의 아버지, 어머니, 자녀들 그리고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여러 가지 성사를 받으며, 기도하고 감사를 드리며, 거룩한 생활의 증거와 자제와 적극적 사랑으로’ 세례 받은 자의 사제직을 특별한 방식으로 행사하는 곳이 바로 가정입니다. 따라서 가정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배우는 첫 번째 학교이며 ‘풍부한 인간성을 길러내는 학교’입니다.”180)

부모들은 자녀들의 그리스도교교육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교구들은 건실하고 헌신적인 그리스도인 가정들의 실질적인 도움을 통해 가정 사도직 프로그램을 전반적 사목 계획의 일부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아프리카 가정 전통의 굳건한 문화 토대와 고귀한 가치들 위에 세워진 ‘가정교회’로서, 극심한 변화를 겪고 있는 현 사회에서 그리스도께 대한 증거를 보여주는 주역이 되라는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교회가 다른 국제 공동체들과 함께 가정의 해를 보내고 있던 당시의 시점에서 아프리카 시노드는 가정문제에 대한 도전을 느꼈습니다.

청소년들

93. 아프리카교회는  청소년은 인류의 현재일 뿐 아니라 인류의 미래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청소년들이 문맹, 우상, 굶주림, 마약과 같이 그들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들을 극복하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습니다.181) 이러한 과제들을 해결하려면 청소년들 스스로가 그들 또래의 친구들을 복음화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촉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보다 이 일을 더 훌륭히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청소년사목은 명백히 교구와 본당의 전반적 사목 계획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청소년들은 인간이 성숙에 달하기 위한 본질적 수단인 자신의 재능의 가치를 일찌감치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182) 이러한 점에서, 기도와 연구, 묵상을 통해 청소년교육을 장려하는 세계청소년주일 행사는 청소년사목을 위한 훌륭한 도구입니다.

봉헌된 남녀

94. “하느님의 가족으로 이해되는 교회에서, 봉헌생활은 모든 사람들이 성덕에 부름받고 있음을 보여줄 뿐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형제다운 삶에 대한 증거를 보여주는 특별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봉헌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주교, 사제, 평신도 들과 친교와 협력의 정신으로 그들의 성소에 응답하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183)

오늘날 아프리카의 선교 상황은 관상과 활동 생활에 대한 수도성소를 장려할 것을 요청합니다. 성소자의 선택은 명확한 분별력을 가지고 해야 하며, 이어서 영성, 교리, 사도직, 선교, 성서, 신학 분야의 확고한 교육뿐 아니라 전인적 교육을 받는지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교육은 정기적으로 충실히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교육으로 쇄신해야 합니다. 새로운 수도회를 창설하는 데는 신중성과 깊은 식별력이 요구되며,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현행 교회법의 규범에 정해진 기준을 따라야 합니다.184) 이 수도회들이 일단 설립되면, 그 수도회들이 법적 지위를 얻고 또한 자체 활동과 자금원을 자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아프리카에 분원을 가지고 있지 않은 수도회”는 “지역 교구장과 먼저 대화를 나누지 않고 아프리카에 새 성소자들을 구하러”185) 오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표명한 시노드는 지역교회와 수도회, 사도직회의 지도자들에게 그들간의 대화를 촉진함으로써 가족으로서 교회 정신 안에서 형제애에 대한 증거를 보여주고 공동 선교를 위한 일치를 나타내는 표지가 될 수 있는 공동 자문단을 설치하도록 촉구하였습니다.186) 저 또한 이러한 견지에서, 지역교회 내 수도생활의 역할을 더욱 잘 정의할 수 있도록, 필요하다면 수도회성 문서 ‘교회 안의 주교들과 수도자들 간의 상호 관계를 위한 지침’ 「상호관계」(Mutuae Relationes)187)의 일부 사항들을 수정하자는 시노드 교부들의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188)

미래의 사제들

95. 시노드 교부들은 이렇게 단언하였습니다. “그 나라의 참된 문화 가치와 정직, 책임, 성실의 정신 안에서 미래의 사제들을 양성하는 것이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참된 시종이자 고무자가 될 자질을 갖출 수 있게 양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곧 영성적으로 확고하며, 섬길 준비가 되어있고, 복음화에 헌신하며, 교회 재산을 효율적이며 공개적으로 관리하고, 그들의 신분에 어울리는 소박한 삶을 살 수 있는 자질을 갖추도록 양성되어야 합니다.”189)

동방교회의 전통들을 존중하면서도, 신학생들은 “성숙한 사랑을 지녀야 하며, 사제에게 독신과 정결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다는 확실한 소신을 가지고 이를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합니다.”190) 더 나아가 “그들은 사제직을 통해 그리스도께 봉헌된 자의 의미와 신분에 대한 적절한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191)

부제들

96. 사목 조건이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교회의 봉사직인 부제에 대한 존중과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경우에, 주교회의와 총회는 종신부제직을 “서품 받은 봉사직으로, 또한 복음화의 도구로”192) 발전시키고 장려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부제들이 이미 있는 곳에서는 그들에게 총체적이고 철저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신부들

97. 시노드는 신부들 ─ 교구 신부들과 수도회 신부들 ─ 의 사도활동에 깊이 감사하고, 아프리카인들과 마다가스카르인들의 복음화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가운데, 그들에게 “자기 사명에 자신을 전적으로 바치고 주교들과 완전한 친교 안에 자기 성소에 충실하게”193) 살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주교들은 신부들에게, 특히 그들의 사제직무 초기에 계속교육의 기회를 마련해 줌으로써194) 신성한 독신제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그 생활을 충실하게 지켜 나가며, “성부께서 내려주시고 그리스도께서 그토록 명확히 찬양하신 이 은혜의 위대함을 인식하며, 그 안에서 제시되고 실현되는 큰 신비를 늘 생각하도록”195)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교육 프로그램은 신부들의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가치들에도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더 나아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사제들에게, 진정한 인간적 사목적 요구에 맞는 적절한 “형태의 공동체 생활”을 장려하였음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생활은 영성, 지성 생활의 성장과 사도직과 사목직의 성장, 사랑과 상부상조, 특히 노인 신부들과 병들거나 도움이 필요한 신부들에 대한 사랑과 지원을 키워가는 데 이바지할 것입니다.196)

주교들

98. 주교들 자신도 하느님께서 당신 아들의 피로써 탄생시키신 교회를 정성껏 보살피면서 성령께서 그들에게 맡기신 책임을 완수하여야 합니다(사도 20,28 참조).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권고에 따라 “모든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자기의 사도직 수행”197)에 헌신하는 주교들은 개인적으로 사제단이나 다른 사목활동가들과 믿고 협력하는 정신 안에서, 가르치고 성화하고 다스리는 직무를 신중히 완수하면서, 사랑 안에서 그 무엇과도 대치할 수 없는 일치를 위한 직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나아가 그들은 주교회의나 사도좌가 마련하는 쇄신과 양성 모임에 가능한 한 자주 참석하여 정기적으로 최신 신학 정보를 확보하고 자신의 영성생활을 강화해야 합니다.198) 특히 주교들은, 사목자는 무엇보다 성덕과 도덕 행위의 모범을 통해 신자들의 빛이 된다는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의 훈계199)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II. 복음화의 구조

99. 평신도들이 “가톨릭운동과 사도직 단체 그리고 새로운 영성 운동들의 활력” 덕분에 아프리카와 마다가스카르 교회의 선교활동에 점점 더 깊이 참여하고 있음”200)을 주목하는 것은 기쁨과 용기를 줍니다. 시노드 교부들은 모든 평신도들, 곧 성인, 청소년, 어린이들 사이에 이러한 박력있는 활동이 추진되고 뻗어 나가기를 요청하였습니다.

본  당

100. 본당은 원래 신자들이 예배를 드리고 그리스도교생활을 실천하는 일상 장소입니다. 신자들은 본당 안에서 그들의 신앙과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실천하고 신자 공동체에 관심을 갖습니다. 본당은 다양한 단체들과 운동 조직들이 친교를 이루는 곳이며, 영적 양식과 물적 지원을 얻는 곳입니다. 신부들과 평신도들은 본당생활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서로 도와주며 빵을 나누어 먹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사도 2,42)하는 가족교회의 조화로운 생활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사도직 운동들과 단체들

101. 복음의 산 증거가 되는 형제로서 일치하는 삶은 모든 사도직 운동들과 종교 단체들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단체들 안에서 평신도들은 ‘밀가루 반죽 속의 누룩’(마태 13,33 참조)이 되는 참된 은혜의 기회를 얻습니다. 특히 하느님의 계획에 따른 지상 재물의 관리와 인간 존엄성과 정의, 평화의 증진을 위한 투쟁과 관련된 분야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학  교

102. “가톨릭 학교들은 복음화, 균형 잡힌 교육, 토착화의 장소인 동시에 서로 다른 종교와 사회 배경을 가진 청소년들간에 삶의 대화를 촉진하는 장소입니다.”201) 따라서 아프리카와 마다가스카르 교회는 가톨릭 학교에서 “모든 사람을 위한 교육”202)을 강화하는 데 이바지하는 한편, “비가톨릭 학교 학생들의 그리스도교교육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대학생들에게는 그들의 지식 수준에 맞는 종교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203) 이러한 교육은 교육자 스스로의 인간적, 문화적, 종교적 양성을 전제로 합니다.

대학과 고등교육기관

103. “아프리카의 가톨릭 대학들과 고등교육기관들은 하느님의 구원 말씀 선포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합니다. 그들 대학들과 기관들은 신앙의 진리와 체험을 통합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도록 도와주는 연구를 함으로써 교회 성장의 표지가 됩니다. 그들 대학들과 기관들은 교육받은 인력을 제공하고, 교회에 유익한 중요한 신학과 사회 문제들을 연구하며, 아프리카신학을 발전시키고, 특히 전례 거행에서 토착화 사업을 추진하고, 서적을 발간하고 가톨릭의 진리를 공표하며, 주교들이 맡긴 연구 과제를 수행하고, 과학적인 문화 연구에 기여함으로써 교회에 봉사합니다.”204)

대륙 전체에 사회 격변이 일어나고 있는 이 시기에, 그리스도교 신앙은 아프리카 사회에 유익한 빛이 되어야 합니다. “가톨릭 문화센터들은 문화적 변화 분야에 현존하고 활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교회에 제공합니다. 가톨릭 문화센터들은 사실상 교회가 창조적인 대화를 통해 남성, 여성, 가정, 일, 경제, 사회, 정치, 국제생활, 환경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신념을 광범위하게 알릴 수 있도록 해주는 열린 장소입니다.”205) 따라서 이 문화 기관들은 경청, 존중, 관용의 장소입니다.

물질 수단

104.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시노드 교부들은 각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필요한 것들을 가능한 한 자율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조직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206) 복음화에는 자질을 갖춘 인력 외에도 물질과 재정 수단이 요구되는데, 많은 교구의 경우에 그러한 수단을 충분히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프리카 개별교회들은 가능한 한 빨리 자생력을 기르고 자급자족의 목표를 세우는 일이 시급합니다. 저는 주교회의들, 교구들, 아프리카교회의 모든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에게 자생력을 능력껏 키워갈 것을 진심으로 권유합니다. 동시에 저는 전세계 자매교회들이 교황청 전교원조회에 더 많은 지원을 함으로써 그 산하 조직들을 통해 가난한 교회들이 경제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기를 촉구합니다. 이러한 경제 지원은 교회의 재정 자립을 키워가는 데 필요한 사업 자원으로 쓰일 것입니다.207) 마지막으로, 우리는 교회에 맡겨진 사람들이 극빈 상태에서 벗어날 때에야 비로소 교회는 물질과 재정의 자립을 이룰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제 6 장  하느님 나라의 건설



정의와 평화의 나라

105.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하신 명령은 모든 시간과 모든 장소의 하느님의 교회에 내리신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하느님의 가족으로서 교회는 아프리카 대륙과 전세계에 정의와 평화를 증진시킴으로써 그리스도의 증거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9-10). 교회의 증언에는 하느님 백성 개개인의 정의와 연대에 대한 확고한 투신이 뒤따라야 합니다. 이는 공직을 맡고 있는 평신도들에게 특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증언은 한결같은 영적 자세와 그리스도교 신앙과 일치하는 생활방식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증거의 교회적 차원

106. 시노드 교부들은 이러한 증거의 교회적 차원에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다음과 같은 엄숙한 선언을 하였습니다. “교회는 계속해서 예언자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소리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어야 합니다.”208)

그러나 이 일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 교회는 신앙 공동체로서 그 조직 내에서 그리고 신자들과의 관계에서 정의와 평화의 힘찬 증거자가 되어야 합니다. 시노드 담화는 다음과 같이 용기있는 진술을 합니다. “아프리카교회는, 그 자체의 내부 문제와 관련해서,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남녀들에 대한 정의가 항상 존중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정의에 대한 증거를 보여주어야 하는 교회는, 다른 사람들에게 정의를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우선 자기 눈에 정의롭게 보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관리 절차, 재산, 생활방식 등을 면밀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209)

정의 증진과 특히 인간의 기본권 수호와 관련된 교회의 사도직은 즉흥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인간존엄과 인권에 대한 무차별적인 유린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고 있는 저는 정의평화위원회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주교회의들에게 여러 차원의 정평위를 서둘러 설치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이 위원회들은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에 인권 수호에 대한 복음적 책임을 일깨워 줄 것입니다.210)

107. 정의와 평화의 선포가 복음화 임무의 필수 부분이라면, 이들 가치들의 증진 또한 당연히 그리스도교 공동체 사목 계획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저는 모든 사목활동가들이 이 사도직에 대한 적절한 양성을 받을 것을 촉구합니다. “각자의 사도직 분야에서 수행되는 사제, 수도자, 평신도 양성은 교회의 사회교리에 주안점을 두어야 합니다. 각자는 자신의 신분에 따라 자신의 권리와 의무, 공동선의 의미와 그것을 위한 봉사, 공공 재산의 정직한 관리, 적절한 방법의 정치생활 참여를 익힘으로써 사회의 불의에 맞서 신뢰성있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특별히 훈련받아야 합니다.”211)

공동체와 국가 내의 한 조직체로서 교회는 자신의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 건설에 전적으로 참여할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교육과 보건, 사회의식 영역, 그 밖의 사회사업 프로그램들에서 수행되는 교회의 사도직활동을 언급해야 합니다. 이러한 활동들이 무지를 줄이고, 공중 보건을 향상시키며, 모든 이들이 자유와 공동 책임의 정신 안에서 사회문제 해결에 더욱 깊이 참여하도록 도움을 주는 한에서, 교회는 정의와 평화 발전을 위한 조건을 창출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소금

108. 오늘날과 같이 다원화된 사회에서 교회가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가톨릭 신자들의 공공생활 참여에서입니다. 그들이 전문인이든 교사든, 사업가든 공무원이든, 법조인이든 정치가이든, 가톨릭 신자들은 일상생활에서 선의와 진리, 정의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증거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충실한 평신도의 임무는 …… 특히 평신도만이 교회를 현존하게 만들 수 있는 곳에서,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것입니다.”212)

다른 신자들과 이루는 협력

109. 민족들의 발전에 투신할 의무는 단지 개인의 의무만은 아니며 개인주의의 의무는 더더욱 아닙니다. 다시 말해 개개인의 개별 노력을 통해 이러한 발전이 성취될 가능성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남녀 개인과 모든 사람, 그리고 모든 사회와 국가에 부과된 책임입니다. 특히 그것은 가톨릭교회와 다른 교회와 교회 공동체에 지워진 의무이며, 가톨릭 신자들은 이들과 함께 이 분야에서 기꺼이 협력해야 합니다.213) 이러한 의미에서, 가톨릭 신자들이 다른 그리스도인 형제자매들에게 그들의 활동에 참여하도록 초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그러한 초대를 받았을 때 이를 수락한다면, 가톨릭 신자들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착수하는 계획들에 협력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완전한 인간 발전의 촉진에서 가톨릭 신자들은, 사실 다양한 장소에서 이미 실행하고 있듯이, 다른 종교의 신자들과도 협력할 수 있습니다.214)

공적인 문제의 올바른 처리

110. 시노드 교부들은 아프리카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는 데 가장 큰 도전은, 정치와 경제라는 두 상관 영역에서 공적인 문제를 올바로 처리하는 데 있다는 사실에 만장일치로 동의하였습니다. 어떤 문제들은 대륙 외부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전적으로 권력가들이나 국가 지도자들의 조정에만 달려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시노드는 대륙 문제의 대부분이 흔히 부패로 얼룩진 통치 행태의 결과라는 점을 인정하였습니다.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될 해결책들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확고한 결단과 진지한 의식의 재각성이 있어야 합니다.

국가 건설

111. 대다수 국가들이 비교적 짧은 정치 연륜을 가지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의 정치 전선에서 통일 국가 건설이라는 어려운 과정은 특별한 문제들에 봉착하게 됩니다. 큰 차이들을 조화시키고,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인종간의 증오를 극복하며, 국제생활에 융합되기 위해서는 고도의 통치 기술이 요구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시노드는 아프리카에 열심한 남녀 신자 정치인들과 자기 민족을 깊이 사랑하며, 섬김을 받기보다는 섬기는 덕이 높은 국가 수반들이 나오기를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215)

법  치

112.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의무를 규정하는 건전한 법의 토대 위에 훌륭한 통치 기반이 조성되어야 합니다.216) 저는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이 아직도, 그들 국민의 자유와 인간의 기본권, 특히 자유롭고 정직한 선거를 통해 그들 정부를 선택할 권리뿐 아니라, 집회의 자유와 정치 표현의 자유까지 부인하는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체제 아래 고통받고 있음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를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한 정치의 불의는 흔히 무력 전쟁과 내전으로 몰아가는 긴장을 야기하면서, 대량학살과 수치스럽고 비극적인 난민 양산은 말할 것도 없고, 기아, 전염병, 파괴와 같은 심각한 결과들을 낳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시노드는, 다원주의를 존중하는 참된 민주주의는 “교회가 백성들과 함께 가는 여정의 주된 행로의 하나”이며, “…… 복음 정신에 따라 민주 투쟁에 참여하는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은 아프리카 전역의 법치 증진에 참여하는 교회의 징표”217)라는 점을 깊이 인식하였습니다.

공동 재산의 관리

113. 시노드는 또한 새로운 직장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경제 성장과 투자를 늘리는 데 필요한 적절한 정책들을 수립해 줄 것을 아프리카 정부에 촉구하였습니다.218) 여기에는 국민의 기본 생계 수단을 마련해 주고, 이윤과 부담을 정직하고 공평하게 나누며, 풍족하지 못한 국가 자원의 개발과 분배를 바른 순서에 따라 수행함으로써 건전한 경제정책을 추구하려는 노력이 포함됩니다. 특히, 정부는 공공의식이 없는 국민이나 파렴치한 외국인들의 온갖 낭비와 착취에 맞서 공동 재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국제 무역 조건을 개선하기 위하여 적절한 조처를 취하는 것 또한 정부의 의무입니다.

아프리카의 경제문제는 부패한 정부 지도자들의 비리로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국내 또는 외국의 이해 관계자들과 공모하여, 국가 자원을 딴 데로 빼돌리거나 공공 자금을 외국 은행의 비밀 계좌로 이체시켜 자신의 이익을 챙깁니다. 이러한 행위는 그 어떤 합법적 위장술에도 불구하고 명백한 도둑질입니다. 저는 국제 기관들과 아프리카와 세계 다른 지역의 정직한 사람들이 이러한 횡령금을 되찾을 수 있는 적절하고 합법적인 방법을 연구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차관 허락에서 중요한 것은 수익자의 책임과 정직함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219)

국제 차원

114. 베드로의 후계자가 주재하는 보편교회 주교들의 회의인 시노드는 보편교회와 세계 공동체들이 아프리카의 위치와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갈수록 상호 의존적인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각 지역의 운명과 문제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의 하느님 가족으로서, 교회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계 공동체 건설을 위한 보편 연대의 산 징표이자 효율적인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더 나은 세계는 그것이 건전한 윤리와 정신의 원칙의 확고한 토대 위에 세워질 때에만 오게 될 것입니다.

현세계 체제에서 아프리카 국가들은 가장 불이익을 당하고 있습니다. 잘 사는 나라들은 빈곤과 비참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국가들의 노력을 지원해 줄 의무가 있음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사실, 결속의 길을 선택하는 것은 잘 사는 나라들 자신을 위한 길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길을 통해서만 인류의 평화와 일치가 지속적으로 보장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선진국들의 교회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의와 사랑에 투신하는 데 따르는 부수 책임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남녀는 하느님의 모상을 지니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피로써 구원된 같은 가족에 속하도록 부름받고 있기 때문에, 각개인은 하느님께서 우리가 모두 다 같이 사용할 수 있게 해주신 세계 자원을 공평하게 가질 수 있도록 보장받아야 합니다.220)

여기에는 여러 가지 실질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먼저, 그것은 독립이 된 후 짧은 시간에 국제 공동체의 일원이 된 국가들의 정의와 존엄을 철저히 보장하면서 국가간의 사회 정치 관계 개선을 위해 일할 것을 내포합니다. 또한 영양실조, 생활 수준의 전반적 악화, 청소년교육 수단의 미비, 치료하기 힘든 풍토병에 대한 기초 보건과 사회사업의 결여, 끔찍한 재앙인 에이즈의 확산, 막중한 외채 부담, 비양심적인 무기 거래로 조장되는 동족 간 전쟁에 대한 공포, 수치스럽고 가슴 아픈 난민과 유민 문제 등 이와 같은 중요한 분야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는 가난한 나라들의 신음 소리에 연민의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 문제들은 신속한 개입이 요청되는 분야의 일부입니다. 전반 상황에서는 그러한 개입이 부적절해 보인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I. 염려되는 문제들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되찾아주기

115. 빈곤이라는 경제 상황은 특히 청소년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그들은 실의에 빠져 현재의 난관을 헤쳐 나갈 의욕을 상실한 채 성인의 생활로 접어듭니다. 또한 그들은 슬프고 암울하게 보이는 미래에 대해 거의 희망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그들은 방치 상태의 농촌 지역을 벗어나 도시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도시도 그들에게 줄 것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외국으로 건너갑니다. 그러나 외국에서 역시 그들은 마치 망명지에서처럼 경제 난민들로서 불안정한 삶을 살아갑니다. 저 역시 시노드 교부들과 함께 그들을 변호할 의무를 느낍니다. 시급한 문제는 국가와 교회 생활에 참여하고 싶어하는 그들의 갈망을 해결할 방법을 찾는 일입니다.221)

그러나 동시에 저는 청소년들에게 이렇게 호소하고 싶습니다. 친애하는 청소년 여러분, 시노드는 여러분이 국가발전의 책임을 맡고, 여러분 민족의 문화를 사랑하며, 과학과 기술의 전문 지식의 연마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증거를 통하여 여러분의 문화 유산에 충실하면서 그 문화의 쇄신을 위해 일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222)

에이즈의 재앙

116. 시노드는  만연된 가난과 미비한 의료 사업을 배경으로 아프리카 곳곳에 고통과 죽음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에이즈라는 비극적 재앙에 관해 성찰해 보았습니다. 시노드는, 이 질병의 확산에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은 무책임한 성행위임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강력한 권고문을 작성하였습니다. “신자들과 특히 청소년들에게 그리스도인의 혼인과 충실성이 제공하는 동반자 의식, 기쁨, 행복, 평화, 그리고 사랑이 가져다 주는 안정감을 지속적으로 제시하여야 합니다.”223)

에이즈에 대한 전쟁은 모든 이의 전쟁이 되어야 합니다. 시노드 교부들이 한 말을 다시 되풀이하면서 저는 사목활동가들에게, 에이즈에 감염된 그들 형제자매들에게 가능한 모든 물질, 도덕, 정신의 위안을 베풀도록 요청하였습니다. 저는 모든 인간에 대한 존중과 사랑으로 행동하는 전세계 과학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에게 이 재앙을 끝장내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을 촉구합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이사 2,4): 더 이상 전쟁은 없어야!

117. 시노드는 아프리카를 분열시키고 있는 전쟁의 비극을 예리하게 묘사하였습니다. “수십 년간 아프리카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자연 자원과 문화 자원을 파괴시키고 있는 동족상잔의 무대가 되어왔습니다.”224) 이와 같은 비참한 비극적 상황에는, 아프리카 외부의 원인들에 덧붙여 “종족주의, 족벌주의, 인종차별주의, 종교적 불관용 그리고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개인의 권리와 존엄을 짓밟는 전체주의 체제로 극대화되는 권력에 대한 욕망과 같은 내부 원인들이 가세해 있습니다. 압박받고 침묵할 수밖에 없는 민중들은 죄없이 체념하며 사는 희생자들로서 이 모든 불의한 상황들로 고통받고 있습니다.”225)

저는 시노드 교부들과 목소리를 합하여, 현재 진행되고 있거나 발발 위기에 처한 수많은 분쟁들로 야기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참상들을 개탄하고, 그러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러한 비극을 끝장내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 줄 것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시노드 교부들과 함께, 아프리카 대륙에 더욱 큰 사회 정의와 훌륭한 정부를 갖추기 위한 조건을 강화하여 평화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진지한 투신을 촉구합니다. “여러분이 평화를 원하신다면 정의를 위해 일하십시오.”226) 전쟁이 터진 후에 전쟁을 막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사전에 막는 것이 훨씬 바람직합니다. 이제는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 때이며 창을 쳐서 낫을 만들 때입니다(이사 2,4 참조).

118. 아프리카교회는  특히 일부 교회 지도자들을 통하여, 대륙 여러 곳의 무력 분쟁을 협상으로 해결하기 위한 일에 앞장서 왔습니다. 주님께서 산상수훈의 약속을 통해 장려하시는 이러한 화해의 사명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마태 5,9).

무기 거래를 통해 아프리카에 전쟁을 조장하는 사람들은 인류에 대한 잔혹한 범죄의 공모자들입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한 시노드의 권고를 저의 권고로 삼습니다. “죽음의 씨앗을 뿌리는 무기 판매는 추악한 것입니다.”고 말한 시노드는 아프리카에 무기를 판매하는 모든 국가들에게 무기 판매를 중지해 줄 것을 호소하였으며, 아프리카 모든 정부에는 “엄청난 군사비를 자국민들의 교육과 보건, 복지에 쓰도록”227) 요청하였습니다.

아프리카는 군사 체제가 민간인에게 권력을 이양하도록 평화적이고 효율적인 수단을 지속적으로 강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군대도 국가를 위해 특별한 역할을 하도록 부름받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시노드는 “국가의 이름으로 군 복무를 수행하고 있는 형제들”228)을 격찬하면서도, “무죄한 사람들의 생명을 폭력으로 짓밟는 모든 행위에 대해 하느님 앞에 답해야 할 것입니다.”229)라고 엄중하게 경고하였습니다.

난민들과 유민들

119. 전쟁과 경제 궁핍에서 오는 가장 쓰라린 결과 중 하나는 난민과 유민 현상입니다. 이러한 슬픈 현상은 시노드가 언급했듯이 비극적 차원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상적 해결책은 정의와 평화, 화해와 경제발전의 회복입니다. 따라서 지역, 국가, 국제 기구들이 시급히 난민과 유민 문제에 대한 공평하고 지속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230) 동시에, 아프리카 대륙은 난민의 대량 이동으로 계속 골치를 앓고 있기 때문에, 저는 이들 난민들이 아프리카에 있든 다른 대륙에 있든 어디에서나 그들에게 물질적 도움과 사목 지원을 해줄 것을 강력히 호소합니다.

외채의 부담

120. 가난한 나라들이 잘 사는 나라들에게 진 부채 문제는 사도좌의 여러 공식 문서와 발언에서 표명된 바 있듯이 교회의 큰 관심 사항 중의 하나입니다.231)

저는 시노드 교부들의 말 그대로, “아프리카 국가의 수반들과 정부는 내외채로 자국민들을 압박하지 말도록”232) 촉구할 의무를 절실히 느낍니다. 저는 또한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그리고 외국의 모든 채권자들에게 아프리카 국가들을 괴롭히는 부채를 경감해 줄 것”233)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마지막으로, “선진 산업국가들의 주교회의에 이 문제를 그들 정부와 관계 기관에 지속적으로 제기해 줄 것”234)을 진정으로 요청합니다.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상황은 우리가 무관심과 자기 만족에 머물러있을 수 없을 만큼 심각합니다.

아프리카 여성들의 존엄

121. 우리 시대의 특징적 징표 중의 하나는 여성의 존엄과 그들이 교회와 사회 전반에서 수행하는 특별한 역할에 대한 의식의 증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셨습니다”(창세 1,27).

저는 남성과 여성의 기본 평등성과 서로를 풍요롭게 하는 상호 보완성을 여러 차례 천명해 왔습니다.235) 시노드는 이러한 원칙을 아프리카 여성들의 상황에 적용시켰습니다. 시노드는 가정을 일구고 교회와 사회발전에 온전히 참여할 여성들의 권리와 의무를 강력히 주장하였습니다. 특히 교회에 관해서는, 여성들이 적절한 교육을 받음으로써 합당한 수준에서 사도직활동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일부 아프리카사회에 아직도 “여성의 권리를 박탈하고 그들이 받아야 할 마땅한 존중을 허용하지 않는 풍습과 관습”236)이 살아있음을 개탄하고 이를 단죄합니다. 주교회의들이 정부 관계 기관과 협력하여 여성문제를 더 깊이 연구할 수 있는 특별위원회를 가능한 곳에는 어디에나 설치해 줄 것을 촉구합니다.237)

II. 복음의 전파

‘탁월한’ 전달자이신 그리스도를 따라


122. 시노드는 현재 상황을 주의 깊게 고려하면서, 아프리카의 복음화와 관련하여 사회 홍보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있습니다. 신학의 출발점은 탁월한 전달자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천상 성부와 성령과 함께 공유하시는 진리와 생명, 사랑을 그분을 믿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십니다. 이러한 까닭에 “교회는 내외적으로 사회 홍보 수단을 육성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교회는 교회 구성원들간에 더 나은 정보 보급을 통하여 교회 내부에서부터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해야 합니다.”238)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느님의 사랑의 복음을 세상에 전파하는 교회의 입장을 유리하게 해줄 것입니다.

전통적인 홍보 형태들

123. 전통적인 사회 홍보 형태들을 결코 과소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에서 그러한 형태들은 아직도 매우 유용하고 효과적입니다. 더욱이 그것들은 “비용도 덜 들며 가까이하기가 더 쉽습니다.”239) 그러한 형태들에는 노래와 음악, 무언극, 연극, 잠언, 우화 등이 포함됩니다. 그것들은 사람들의 지혜와 얼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현대 대중 매체의 자료가 되고 영감을 주는 값진 원천입니다.

대중 매체 세계의 복음화

124. 현대의 대중 매체는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일 뿐 아니라 복음화되어야 할 세계입니다. 대중 매체는 그것이 전하는 메시지에서, 선하고 진실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전달해야 합니다. 시노드 교부들처럼 저도 대중 매체가 아프리카 대륙에 쏟아놓는 수많은 프로그램들의 도덕성에 대하여 깊은 우려를 표명합니다. 특히 저는 가난한 나라들에 범람하고 있는 포르노그라피와 폭력물에 대해 경고하는 바입니다. 또한 시노드는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대중 매체의 매우 부정적인 묘사”를 개탄하며, “그것의 즉각 중지를 요구하였습니다.”240)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커뮤니케이션 매체가 복음화의 수단이라는 사실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한편 이 분야의 직업에 종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특별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의 원칙이 기술과 관리 분야를 포함하여 그들의 전문직에 영향을 미치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들이 이러한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건전한 인간적, 종교적, 정신적 훈련을 제공해 주어야 합니다.

사회 홍보 수단의 이용

125. 오늘날 교회는 현대적인 것뿐 아니라 전통적인 것을 포함하여 다양한 사회 홍보 수단을 갖추고 있습니다. 교회는 구원의 메시지 전파에 그 수단들을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이용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장애물들이 아프리카교회가 이 수단들에 접근하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이중 적지 않은 장애 요인이 비싼 가격입니다. 더욱이, 많은 지역에서는 정부의 규제로 그러한 수단들이 통제를 받고 있습니다. 이 장애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 노력을 해야 합니다. 민영이든 공영이든 대중 매체는 예외 없이 모든 사람에게 봉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아프리카 개별교회들에게,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힘 자라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주시기를 당부합니다.241)

대중 매체의 협력과 공동 작업

126. 특히 최신 형태의 대중 매체는 광범위한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모든 차원, 곧 교구, 국가, 대륙, 전세계 차원에서 더욱 효과적인 공동 작업이 이루어지도록 이 분야에서 더욱 밀접한 협력이 필요합니다. 아프리카교회는 부유하고 기술적으로 진보된 국가의 자매교회들과 연대하는 일이 매우 필요합니다. 아프리카에 이미 존재하는 범아프리카 사회홍보주교위원회와 같은 대륙 차원의 협력 프로그램을 장려하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시노드가 제안하였듯이, 직업 훈련, 라디오와 텔레비전 제작 기구, 전 아프리카를 대상으로 하는 방송국 등 여러 영역에서 더욱 밀접한 협력을 확립해 가야 합니다.242)



제 7 장  “너희는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되어라”



127. 아프리카 시노드 동안에 시노드 교부들은 모든 지역교회와 모든 국가, 모든 지역 그리고 아프리카 전대륙에서 그리스도께 대한 더욱 효과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증거를 장려하고자 아프리카의 전반적 상황을 철저히 검토하였습니다. 아프리카 시노드의 모든 토론과 권고에서 최우선의 관심사는 그리스도께 대한 증거를 보여주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 토론과 권고에서 제가 한 아프리카 주교단에게 드렸던 말씀의 정신을 발견하였습니다. “여러분 민족이 보유한 문화 유산의 특별한 가치와 풍요로움을 존중하고, 보존하고, 장려함으로써 여러분은 여러분 민족에게 그리스도의 신비를 더 잘 이해하도록 이끌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비는 또한 아프리카인의 숭고하고 구체적이며 일상적인 삶의 체험 안에서 생활화되어야 합니다.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더럽힌다든지 또는 십자가의 힘을 잃게(1고린 1,17 참조)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를 아프리카인들의 삶의 중심에 모시고, 모든 아프리카인들의 삶을 그리스도께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는 아프리카와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는 그분 몸의 지체들 안에서 그분 자신이 아프리카인으로 현존하시는 것입니다.”243)

선교에 대한 개방

128. 아프리카교회는 아프리카 대륙에서만 그리스도의 증거자가 되도록 부름받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아프리카교회에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되어라”(사도 1,8).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교부들은 시노드 주제에 대한 토론에서, 아프리카교회를 고립주의에 빠지게 하는 모든 경향을 조심스럽게 피하였습니다. 아프리카 시노드는 교회가 그리스도께 받은 선교 명령, 곧 전세계에 그분에 대해 증거를 보여주라는 명령을 늘 마음에 되새겼습니다.244) 시노드 교부들은 하느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한 당신 계획(1디모 2,4 참조)에서 아프리카교회가 세계 차원에서 그 역할을 해주기를 요청하고 계심을 인정하였습니다.

129. 아프리카 시노드의 「의제 개요」도 그와 같은 교회의 보편성을 고려해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습니다. “어떠한 개별교회도, 가장 가난한 교회일지라도, 영적, 세속적 자산뿐 아니라 그 인력까지도 다른 개별교회들 및 보편교회와 함께 나눌 의무에서 면제될 수는 없습니다”(사도 2,44-45 참조).245) 아프리카 시노드는 ‘땅 끝에 이르기까지’ 선교해야 할 아프리카의 책임을 다음과 같은 말로 강력히 주장하였습니다. “‘여러분 아프리카인들은 여러분 자신에 대한 선교사들입니다.’라는 바오로 6세의 예언자적 말씀은 ‘전세계에 대한 선교사’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 아프리카 개별교회들은 자기 교구의 경계를 넘어 선교하라는 호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246)

130. 아프리카 시노드의 이 선언을 기쁘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지하면서, 저는 아프리카의 모든 형제 주교들께 몇 년 전 제가 드렸던 말씀을 다시 반복하고 싶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선교사가 되어 아프리카 대륙을 복음화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는 아프리카교회들은 아프리카 각 국가 내의 개별교회들 사이에,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과 또한 다른 대륙들의 여러 국가들 사이에 협조를 필요로 합니다. 이렇게 아프리카는 선교활동을 통해 완전히 통합될 것입니다.”247) 신생교회든 오래 된 교회든 모든 개별교회에게 했던 이 호소에서 저는 이미 다음과 같이 말씀 드렸습니다. “세계는 꾸준히 더욱 일치되어 가고 있는 마당에, 복음 정신은 모든 고립주의를 물리치면서 문화와 민족주의의 장벽을 극복하도록 우리를 인도해야 합니다.”248)

아프리카의 신생교회들이 ‘땅 끝에 이르기까지’ 선교에 투신할 것을 분명히 표명한 아프리카 시노드의 결정은 다음과 같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중대한 지침 중의 하나를 가능한 한 헌신적으로 수행해 주기를 바라는 소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런 선교의 열의가 자기 국민들 사이에 꽃피기 위해서는 아직 신생교회라도 할 수 있는 한 속히 ─ 예컨대 그 자체 교역자의 부족에 시달리고 있을지라도 ─ 복음을 전세계에 전파할 선교사들을 스스로 파견하여 교회의 일반 선교활동에 실천적으로 참가하는 것이 극히 적절한 일입니다. 아직 신생교회라 하더라도 다른 민족을 향한 선교활동에 활발히 참가할 때 보편교회에 대한 일치는 어느 정도 완성될 것입니다.”249)

유기적인 사목적 연대

131. 이 권고의 서두에서, 저는 아프리카 시노드의 소집을 발표하면서 염두에 둔 것은 “아프리카 전지역과 인근 제도들 간의 유기적인 사목적 연대”250)였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저는 아프리카 시노드가 이 목적을 굳게 지키고 있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시노드 토론에서 주교들은 그들 나라에서도 선교사들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사목적 연대와 그들의 자원을 다른 나라와 함께 나누려는 준비 자세와 아량을 보여주었습니다.

132. 특히 “주교단의 일원으로서, 또 지역교회의 목자로서 저와 함께 세계의 복음화에 직접 책임을 지고 있는”251) 형제 주교들에게 저는 이와 관련하여 특별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주교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양떼들에 대한 일상의 직무에서 전체 교회의 요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보편교회(Catholic)의 주교들로서 그들은 사도들의 가슴속에 뜨겁게 타올랐던 온 교회에 대한 관심(2고린 11,28 참조)을 느껴야 합니다. 주교들은 특히 그들이 각 주교회의의 회원으로서 함께 협의하고 결정할 때 이러한 관심을 표현해야 합니다. 지역과 대륙 차원의 연결 단체들을 통해서 그들은 세계의 다른 지역들에서 표면화되고 있는 사목 요구를 분별하고 평가할 수 있는 더 좋은 위치에 있게 됩니다. 주교들은 시노드를 통해서 사도적 연대의식을 훌륭하게 표현합니다. “시노드는 일반 관심사 중에서 교회의 가장 중대하고도 성스러운 임무인 선교활동을 특히 중시하여야 합니다.”252)

133. 또한 아프리카 시노드는 아프리카 전체의 사목적 연대를 이루려면 사제 양성 과정의 쇄신을 추진해야 한다는 올바른 지적을 하였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다음과 같은 언급은 더 이상의 생각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사제가 서품식 때에 받은 영적 은혜는, 어떤 한정된 좁은 사명을 위해서가 아니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세계 구원의 사명을 준비하기 위해서 부여되었습니다.”253)

제가 사제들에게 다음과 같이 촉구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사제들은 ‘복음을 선포하기 위하여 자기 나라의 국경을 초월할 수 있도록 성령과 주교에게 협력할 태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성숙한 소명감이 요구될 뿐 아니라, 조국과 문화와 가정을 떠날 수 있는 각별한 용의와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적응력이 요청됩니다.’”254)

점점 더 많은 아프리카의 사제들이 ‘땅 끝에 이르기까지’ 증거자가 되라는 부르심에 응답하고 있음을 하느님께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이러한 경향이 아프리카의 모든 개별교회에서 장려되고 강화되었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134. 아프리카에 오래 전부터 있었던 선교회들이 오늘날 “그들이 설립한 신생교회에서 점점 더 많은 지원자들을 받아들이고 있고”255) 그리하여 이 신생교회들을 보편교회의 선교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하고 있다는 사실은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설립되어 오늘날 선교사들을 다른 나라로 파견하고 있는 새로운 선교회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아프리카교회의 성숙함과 역동성을 보여주는 놀라운 발전입니다.

135. 특별히 저는 ‘땅 끝에 이르기까지’ 선교를 위한 유기적 사목적 연대를 성취하는 수단으로서 4개의 교황청 전교원조회를 모든 개별교회와 모든 나라 안에 설립할 것을 제안한 시노드 교부들의 실질적 권고를 지지하고 싶습니다. 교황청 전교원조회는 교황과 주교단의 후원 아래 있으므로 당연히 첫 번째 위치를 차지합니다. “왜냐하면 교황청 전교원조회는 가톨릭 신자를 어려서부터 참으로 보편적 선교 정신으로 채워주기 위한 방법인 동시에 또한 전 선교지를 위하여 그 가지가지의 필요에 응한 효과적인 원조 기금을 촉진하는 수단도 되기 때문입니다.”256) 전교원조회 활동의 중요한 결과는 “평생 외방선교 성소를 기성교회와 젊은 교회 안에 육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성소 증진 사업이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추진되기를 강력히 권고하는 바입니다.”257)

성덕과 선교

136. 시노드는 아프리카의 모든 아들딸들이 성덕의 길로 그리고 전세계에 그리스도께 대한 증거를 보여주도록 부름받고 있다는 것을 재천명하였습니다. “복음화는 성령의 활동으로, 무엇보다도 사랑의 증거, 성덕의 증거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역사의 교훈은 확인시켜 줍니다.”258) 그러므로 저는 아프리카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제가 몇 년 전에 기술했던 것을 다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선교사는 성덕의 길에 투신할 때만 참된 선교사일 수 있습니다.`…… 모든 신자는 성덕과 선교의 길로 부름받았습니다. …… 외방선교에 대한 새로운 자극은 거룩한 선교사를 요구합니다. 사목 방법을 혁신하거나, 교회의 역량을 조직하고 조정하거나, 신앙의 성서적 신학적 기초를 깊이 탐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필요한 것은 선교사들과 그리스도교 공동체 전체에 새로운 ‘성덕에 대한 열의’를 고무하는 일입니다.”259)

그때처럼 저는 신생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의 책임을 상기시켜 주기 위해서 다시 말씀 드립니다. “여러분은 2000년이 된 우리 교회의 희망입니다. 신앙의 초보자인 여러분은 초기 신자들을 본받아 여러분 주위에 열성과 용기를 확산시켜야 합니다. 한마디로, 여러분은 성덕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방법으로써만 여러분은 세상에서 하느님의 표지가 되고, 여러분의 나라에서 초기교회의 선교 업적을 되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또한 기성교회에 선교 정신의 누룩이 될 것입니다.”260)

137. 아프리카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허물어진 모든 분열이 현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민족, 문화, 국가, 사회, 그리고 여러 다른 분열들을 초월하여, 무엇보다도 교회 안에서, 인류의 일치를 실현하는 숭고한 소명”261)을 보편교회와 함께 나눕니다. 세상 안에서 구원과 일치의 백성에 부름 받은 소명에 응답함으로써 교회는 모든 민족의 형제적 공존을 증진시키는 데 기여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인종과 국적의 차이를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맡기신 고유한 소명을 고려하여 저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에 근원을 두고 있는 그리스도교 보편주의에 대한 증거를 온 인류에게 올바로 보여줄 것을 아프리카 가톨릭 공동체에 진지하게 요청합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은 누구나 동일한 근원을 가집니다. 역사상 그들이 어느 곳에 살아왔든지 또는 그들의 두드러진 차이점이 무엇이든지간에, 모든 인류는 ‘태초에’ 정해진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단일 가족을 이루도록 예정되어 있습니다.”262) 아프리카교회는 “성자께서 당신의 강생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모든 사람과 결합하셨다.”263)는 사실을 확고하게 믿으면서 사랑 안에서 모든 인간에게 다가가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

특히 아프리카는 제삼천년기의 문턱에서, 제가 일치운동에 관한 회칙 「하나 되게 하소서」(Ut Unum Sint)에서 다시 한번 강조했던 시급한 과제인 교회 일치 운동에 특별히 기여해야 합니다.264) 아프리카교회는 무엇보다도 이슬람교도들과 밀접한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그리고 아프리카 전통 종교의 가치 존중을 장려함으로써 분명히 종교간 대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연대를 실행에 옮김

138. ‘땅 끝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께 대한 증거를 보여줄 때 아프리카교회는, 분명, “개인과 국가 사이에 커가고 있는 상호 의존 의식의 긍정적이고 윤리적인 가치”를 확인함으로써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세계 도처의 사람들이 먼 나라, 아마도 결코 찾아갈 일이 없는 나라들에서 저질러지는 불의와 인권 유린 때문에 개인적으로 상처를 받는다는 사실은 의식화된 현실의 표시로서 윤리적 의미를 띱니다.”265)

저는 아프리카의 그리스도인들이 개인과 국가 간의 이러한 상호 의존을 더욱 깊이 깨닫고, 연대 정신을 실천에 옮김으로써 이에 부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연대의 결실은 평화이며, 평화는 세계 도처의 민족들과 국가들에게 평가할 수 없을 만큼 귀중한 선(善)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연대를 촉진하고 강화함으로써 평화의 참 문화에 구체적이고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39. 교회는 다양한 문화와 갖는 대화를 통해 세계의 모든 민족들과 접촉함으로써 민족들이 신앙 안에서 더욱 가까워지고, 다른 민족의 참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도록 도와줍니다.

선의의 모든 민족과 국제 공동체와 협력할 준비가 되어있는 아프리카교회는 그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아프리카교회가 보여주는 연대는 “그 자체를 초월하고자 하며, 전적인 무상의 베풂과 용서 그리고 화해와 같은 각별히 그리스도교적인 차원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합니다.”266) 교회는 가난한 이들과 궁핍한 이들을 위한 자선활동과 병행하여 복음에 대한 증거를 통해 인류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받아들이도록 인도함으로써 인류의 회개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그럼으로써 교회는 인간의 영원한 구원의 첫째가는 결실인 초월적인 것과 초자연적 실체들의 수위성을 결코 간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노드 교부들은 민족과 국가에 대한 교회의 연대에 관해 토론하면서, “현세의 진보와 그리스도 왕국의 발전은 분명히 구별되어야 하겠지만, 전자가 인간사회의 질서를 개선하는 데에 이바지하는 한,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도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267)는 것을 항상 깊이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아프리카교회는, 아프리카 시노드의 활동이 분명히 보여준 바와 같이, 세속 상황들이 영원을 향한 인류의 순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종말에 올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상황에서, 그리고 고유한 사회, 국가, 국제 생활에서 인간들에 대한 관심을 결코 소홀히 할 구실이 될 수는 없다.”268)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줍니다.



결론: 새로운 그리스도교의 천년기를 향하여



140. 아프리카 시노드의 회원들은 새롭게 맞는 성령 강림일에 성모 마리아 주위에 함께 모여, 제삼천년기의 문턱에서, 아프리카교회의 복음선교를 깊이 연구하였습니다. 아프리카와 마다가스카르 그리고 인근 제도의 교회와 전체 가톨릭교회에 이 회의의 결과를 제시하고 있는 아프리카 시노드 후속 교황권고의 결론을 맺으면서, 저는 시노드가 개최되는 동안 참 ‘은총의 순간’을 체험하는 특권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느님 ─ 성부, 성자, 성령 ─ 께 감사합니다. 또한 아프리카의 모든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이번 아프리카 시노드를 위해 바친 모든 노고에 대해 깊이 감사합니다. 아프리카 시노드는 「의제 개요」에 첨부된 질문에 대한 답변과, 「의안집」에 수렴된 의견들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헌신과 성의로 준비하였습니다. 아프리카의 모든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은 아프리카 시노드가 좋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였고, 주님께서는 넘치는 은총을 내려주셨습니다.

141. 시노드는  아프리카교회가 그리스도교 제삼천년기를 맞는 준비에서 복음선교를 가능한 한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하도록 소집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권고를 통해 저는 앞으로 몇 해 후에 맞게 될 대희년을 향해 결연히 나아가도록 아프리카의 하느님의 백성들 ─ 주교들, 신부들, 봉헌된 사람들, 평신도들 ─ 을 초대합니다. 아프리카의 모든 민족들에게 새로운 천년기를 위한 가장 좋은 준비는,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교황의 권위를 가지고 제가 이 권고에서 제시하는 결정과 방침들을 충실히 수행하고 이에 투신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결정들과 방침들은 교회의 참된 유산인 가르침과 규범들에서, 그리고 특히 아프리카 시노드의 영감의 주된 원천이 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42. 제가 아프리카의 하느님의 백성에게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도록 초대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기쁨에 초대하는 힘찬 호소입니다. “성탄 밤에 천사가 알려준 큰 기쁨은 참으로 모든 백성을 위한 것입니다(루가 2, 10 참조). …… 성모 마리아께서는 가브리엘 천사에게서 처음 그 소식을 들은 분이셨으며, 그분의 마니피캇은 이미 모든 겸손한 이들의 기쁨에 찬 송가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묵주기도를 바칠 때마다 묵상하는 환희의 신비는 우리를 다시 한번 역사의 중심이자 정점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건, 곧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께서 이 땅 위에 오신 사건으로 이끌어갑니다.”269)

이제 우리는 우리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 준 그 사건의 2000년을 대희년으로 기념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갓난아기이셨을 때 헤로데의 박해를 피해 찾아가신 피난처였던 아프리카는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의 ‘제2의 조국’이며,”270) 기쁨을 누리도록 초대받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희년의 첫째 목표인 신앙과 그리스도인의 증거를 강화시키는 데에 집중되어야 합니다.”271)

143. 아프리카 대륙에 엄청난 고통과 불행을 안겨준 많은 난관들, 위기들, 분쟁들 때문에 일부 아프리카인들은 때로는 주님께서 그들을 버리셨으며 잊어버리셨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이사 49,14 참조).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위대한 예언자의 말로 응답하십니다. ‘여인이 자기의 젖먹이를 어찌 잊으랴! 자기가 낳은 아이를 어찌 가엾게 여기지 않으랴! 어미는 혹시 잊을지 몰라도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 너는 나의 두 손바닥에 새겨져 있다’(이사 49,15-16). 그렇습니다. 십자가의 못으로 뚫린 그리스도의 두 손바닥에 여러분 각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확신에 차 외칩니다. 저의 힘, 저의 방패이신 주님, 제 마음 주님을 믿었삽기에, 저는 도움을 받았나이다. 그러기 제 마음은 기뻐 뛰놀며, 저는 저의 노래로 당신 찬미하나이다.(시편 27,7).”272) 

교회의 어머니 마리아께 드리는 기도

144. 아프리카 시노드에 내려주신 은총에 감사하면서, 제삼천년기에 다가서는 이때 저는 복음화의 별이신 마리아께 간청하며, 아프리카와 그 복음선교를 그분께 맡깁니다. 저는 로마에서 열린 주교대의원회의 실무 회기 폐회식에서 형제 주교들께서 지어 올리신 기도에 표현된 그 생각과 느낌으로 마리아께 간청합니다.

    오, 하느님의 어머니시며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님,
    당신의 은혜로,
    새 시대를 여는 
    주님의 탄생 예고의 날,
    전인류는 자기 문화 안에서    
    복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깨닫고 기뻐했습니다.
    아프리카와 마다가스카르
    그리고 그 인근 제도들의 교회가 맞는
    새 오순절 전야인 오늘
    하느님의 백성은 사목자들과 함께
    당신께 시선을 돌리며
    당신과 함께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충만히 내리시는 성령께서
    이 위대한 대륙의 민족들을
    성부의 가족, 성자의 형제, 성삼의 모상인 교회,
    지상에서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도시인
    하느님의 도시에서 완성될   
    영원한 왕국의 씨앗이요 시작인
    교회의  
    너그러운 아들딸들이 되게 하심으로써
    아프리카 문화들로
    다양성 안에 친교의 장을 이루게 하소서.   



카메룬 야운데에서,
교황 재위 17년,
1995년 9월 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주(註)

1. 「건의안」(Propositio), 1항 참조.
2. 주교대의원회의 제3차 정기 총회에 참석한 아프리카와 마다가스카르 주교들의 선언(1974.10.20.): La Documentation catholique 71(1974), 995-996면.
3. 사도좌 정기 방문 중인 자이르 주교단에게 한 연설(1983.4.21.), 9항: AAS 75(1983), 634-635면.
4. 삼종기도(1989.1.6.), 2: Insegnamenti XII/1(1989), 40면.
5.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Lumen Gentium), 6항 참조.
6. 복자 가롤로 르왕가, 마티아 몰룸바 칼렘바와 20명의 동료 순교자들의 시성식에서 한 강론(1964.10.18.): AAS 56(1964), 907-908면.
7. 요한 바오로 2세, 아프리카 주교대의원회의 특별 총회 폐막 미사 강론(1994.5.8.), 6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1994년 5월 11일자, 2면 참조.
8. 아프리카 주교대의원회의 특별 총회, 「토론 전 보고서」(1994.4.11.), 1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1994년 4월 13일자, 4면.
9. 아프리카 주교대의원회의 특별 총회 사무처 평의회 제3차 회의 연설, 루안다(1992.6.9.), 5항: AAS 85(1993), 523면.
10. 아프리카 주교대의원회의 특별 총회, 「토론 후 보고서」(1994.4.22.), 2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1994년 4월 24일자, 8면 참조.      
11. 교회헌장, 8항.
12. 「가톨릭교회 교리서」, 811항.
13. 교회헌장, 13항.
14. 아프리카 시노드 담화(1994.5.6.), 1-2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1994년 5월 11일자, 6면.
15. 자의교서 Apostolica Sollicitudo(1965.9.15.), II: AAS 57(1965), 776-777면 참조.
16. 아프리카 시노드 사무처 연설(1989.6.23.), 1항: AAS 82(1990), 73면; 삼종기도(1989.1.6.), 2항: Insegnamenti XII/1(1989), 40면 참조.
17. 아프리카 시노드 사무처 연설(1989.6.23.), 5항: AAS 82(1990), 75면.
18. 아프리카 시노드 사무처 연설, 야무수크로(1990.9.10.), 3항: AAS 83(1991), 226면 참조.
19. 제2차 바티칸공의회, 주교들의 교회 사목직에 관한 교령(Christus Dominus), 6항.
20. 요한 바오로 2세, 2000년 희년 준비에 관한 교황교서 「제삼천년기」(Tertio Millennio Adveniente) (1994.11.10.), 23항: AAS 87(1995), 19면 참조.
21. 아프리카 시노드 담화, 7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1994년 5월 11일자, 6면.
22.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의 선교활동에 관한 교령(Ad Gentes), 38항 참조.
23. 교회헌장, 13항.
24. 「토론 전 보고서」, 34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1994년 4월 13일자, 5면 참조.
25. 바오로 6세, 교황권고 「현대의 복음선교」(Evangelii Nuntiandi) (1975. 12.8.), 75항: AAS 68(1976), 66면.
26. 「토론 전 보고서」, 34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1994년 4월 13일자, 5면 참조.
27. 「현대의 복음선교」, 76항: AAS 68(1976), 67면.
28.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백주년」(Centesimus Annus) (1991.5.1.), 57항: AAS 83(1991), 862면.
29. 제8차 ‘아프리카와 마다가스카르 주교회의’(SECAM) 정기 총회 담화(1987.7.19.): La Documentation catholique 84(1987), 1024-1026면 참조.
30. 아프리카 시노드 사무처 연설(1989.6.23.), 6항: AAS 82(1990), 76면.
31. 아프리카 시노드, 「사무처 보고서」(1994.4.11.), VI: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1994년 4월 11-12일자, 10면.
32. 아프리카 시노드, “2000년대를 향한 아프리카교회와 그 복음화사명: ‘너희는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 「의제 개요」(Lineamenta), 바티칸 시, 1990년; 「의안집」(Instrumentum Laboris), 바티칸 시, 1993년 참조.
33. 「의안집」 참조. 아프리카 주교회의 서른네 곳 중에서 서른한 곳은 보고서를 제출하였으나, 나머지 셋은 그들이 처한 곤란한 상황 때문에 보고서를 제출할 수 없었다.
34. 「토론 전 보고서」, 1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1994년 4월 13일자, 4면; 「토론 후 보고서」, 1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1994년 4월 24일자, 8면 참조.
35. 제2차 바티칸공의회,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헌장(Gaudium et Spes), 22항; 「가톨릭교회 교리서」, 1260항 참조.
36. 일반 알현 연설(1985.8.21.), 3항: Insegnamenti VIII/2(1985), 512면.
37. 담화 Africae Terrarum(1967.10.29.), 3항: AAS 59(1967), 1074-1075면.
38. 위의 담화, 3-4항: 위와 같은 곳, 1075면.
39. 앙골라 복음화 500주년 기념 미사 강론, 루안다(1992.6.7.), 2항: AAS 85(1993), 511-512면.
40. “아프리카와 마다가스카르 교회의 상황: 일부 요인들과 관찰 소견”,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1994년 4월 16일자, 6-8면; 교회 통계처, “아프리카 교회: 수치와 통계(1978-1992)”,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1994년 4월 15일자, 6면 참조.
41. 바오로 6세, 복자 가롤로 르왕가, 마티아 몰룸바 칼렘바와 20명의 동료 순교자들 시성식에서 한 강론(1964.10.18.): AAS 56(1964), 905-906면.
42. 아프리카 시노드 폐막 미사 강론, 6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1994년 5월 11일자, 2면.
43. 아프리카와 마다카스카르 주교회의에 한 연설, 캄팔라(1969.7.31.), 1항: AAS 61(1969), 575면.
44. 「토론 전 보고서」, 5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1994년 4월 13일자, 4면.
45. 10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1994년 5월 11일자, 6면 참조.
46. 「토론 후 보고서」, 22-26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1994년 4월 24일자, 8면 참조.
47. 바오로 6세, 담화 Africae Terrarum(1967.10.29.), 6항: AAS 59(1967), 1076면.
48. 「토론 전 보고서」, 2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1994년 4월 13일자, 4면.
49. 위의 보고서, 4항.
50. 요한 바오로 2세, 아프리카 시노드의 특별 총회 개막 미사 강론(1994.4.10.), 3항: AAS 87(1995), 180-181면.
51. 36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1994년 5월 11일자, 8면 참조.
52.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사회적 관심」(Sollicitudo Rei Socialis) (1987.12.30.), 42-43항: AAS 80(1988), 572-574면.
53. 시노드 담화, 39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1994년 5월 11일자, 8면.
54. 「토론 전 보고서」, 6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1994년 4월 13일자, 4면 참조.
55. 「현대의 복음선교」, 15항: AAS 68(1976), 14면.
56. 위의 책: 위와 같은 곳, 15면.
57. 위의 책, 53항: 위와 같은 곳, 42면.
58. 「토론 전 보고서」, 6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1994년 4월 13일자, 4면.
59. 제6차 아프리카 사목 방문 종결 미사 강론, 릴롱궤(1989.5.6.), 6항: Insegnamenti XII/1(1989), 1183면.
60. 「토론 전 보고서」, 6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1994년 4월 13일자, 4면 참조.
61.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 「교회와 인종 차별주의: 더욱 우호적인 사회를 향하여」(1988.11.3.), 12항: 바티칸 시, 1988년.
62. 「의안집」, 68항; 「토론 전 보고서」, 17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1994년 4월 13일자, 5면; 「토론 후 보고서」, 6.9.21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1994년 4월 24일자, 8면 참조.
63.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권고 「가정 공동체」(Familiaris Consortio) (1981.11.22.), 75항: AAS 74(1982), 173면.
64. 요한 바오로 2세, 삼종기도(1994.3.20.), 1: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1994년 3월 23일자, 1면.
65. 아프리카 시노드 담화, 45-47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1994년 5월 11일자, 8면 참조.
66. 「사회적 관심」, 22항: AAS 80(1988), 539면.
67. 「토론 전 보고서」, 8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1994년 4월 13일자, 4면.
68. 「현대의 복음선교」, 18항: AAS 68(1976), 17면.
69. 「현대의 복음선교」, 14항: AAS 68(1976), 13면.
70. 위의 책, 15항: 위와 같은 곳, 15면.
71. 「현대의 복음선교」, 18항: AAS 68(1976), 17면.
72. 선교교령, 17항.
73. 바오로 6세, 복자 가롤로 르왕가, 마티아 몰룸바 칼렘바와 20명의 동료 순교자들의 시성식에서 한 강론(1964.10.18.): AAS 56(1964), 907-908면.
74.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주교회의 연설, 캄팔라(1969.7.31.), 1항: AAS 61(1969), 575면; 「건의안」, 10항 참조.
75. 「건의안」, 10항 참조.
76. 「건의안」, 3항.
77.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 제2 저녁기도 성모의 노래: 후렴, 오 거룩한 잔치여!
78. 시노드 담화, 2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1994년 5월 11일자, 6면.
79. 「건의안」, 4항.
80. 아프리카 시노드 담화, 9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1994년 5월 11일자, 6면.
81. 「건의안」, 4항.
82. 「건의안」, 3항.
83. 「건의안」, 4항.
84. 「건의안」, 6항 참조.
85. 「건의안」, 6항 참조.
86.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권고 「현대의 교리교육」(Catechesi Tradendae) (1979.10.16.), 53항: AAS 71(1979), 1319면.
87.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교회의 선교사명」(Redemptoris Missio) (1990.12.7.), 52항: AAS 83(1991), 229면; 「건의안」, 28항 참조.
88. 「건의안」, 29항 참조.
89. 「건의안」, 30항.
90. 「건의안」, 32항.
91. 「건의안」, 33항 참조.
92.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DS 150.
93. 「현대의 교리교육」, 53항: AAS 71(1979), 1319면 참조.
94. 요한 바오로 2세, 코임브라 대학에서 한 연설, 코임브라(1982.5.15.), 5항: Insegnamenti V/2(1982), 1695면.
95. 「건의안」, 28항.
96. 「건의안」, 31항.
97. 「건의안」, 32항.
 98. 위와 같음.
 99. 교회헌장, 6항 참조.
100. 「건의안」, 8항 참조.
101. 위와 같음.
102. 「건의안」, 8항 참조.
103. 위와 같음.
104. 교회헌장, 1항. 또한 제1장과 제2장도 참조.
105. 「건의안」, 34항.
106. 「건의안」, 35-37항 참조.
107. 「건의안」, 38항.
108. 「건의안」, 39항.
109. 「건의안」, 40항.
110. 「건의안」, 40항 참조.
111. 「건의안」, 41항.
112. 23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1994년 5월 11일자, 7면 참조.
113. 「건의안」, 41항 참조.
114. 위와 같음.
115. 「건의안」, 42항 참조.
116. 위와 같음.
117. 「현대의 복음선교」, 31항: AAS 68(1976), 26면.
118. 「의제 개요」, 79항. 
119. 「현대의 복음선교」, 31항: AAS 68(1976), 26면.
120. 「현대의 복음선교」, 33항: AAS 68(1976), 27면..
121. 사목헌장, 40항.
122. 「교회의 선교사명」, 15항: AAS 83(1991), 263면.
123. 요한 바오로 2세, 주교대의원회의 후속 교황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Christifideles Laici) (1988.12.30.), 36항: AAS 81(1989), 459면.
124. 사목헌장, 22항.
125. 「설교 XXI, 3」 : SCh 22a, 72.
126. 사목헌장, 41항.
127. 바오로 6세, 회칙 「민족들의 발전」(Populorum Progressio) (1967.3.26.), 48항: AAS 59(1967), 281면 참조.          
128. 위의 책, 87항: 위와 같은 곳, 299면.
129. 「건의안」, 45항.
130. 「건의안」, 45항.
131. 「건의안」, 45항.
132. 「민족들의 발전」, 48항: AAS 59(1967), 281면 참조.
133. 「사회적 관심」, 41항: AAS 80(1988), 572면.
134. 「의안집」, 127항. 
135. 시노드 담화, 45-46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1994년 5월 11일자, 8면 참조.
136. 「교회의 선교사명」, 37항: AAS 83(1991), 285면.
137. 삼종기도(1989.1.6.), 2: Insegnamenti XII/1(1989), 40면.
138. 「교회의 선교사명」, 46항: AAS 83(1991), 292면.
139. 「교회의 선교사명」, 47항: AAS 83(1991), 293-294면.
140. 「교회의 선교사명」, 7항: AAS 83(1991), 255-256면.
141. 「토론 전 보고서」, 8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1994년 4월 13일자, 4면.
142. 「교회의 선교사명」, 83항: AAS 83(1991), 329면.
143. 아프리카 시노드 담화, 33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1994년 5월 11일자, 8면 참조.
144. 제2차 바티칸공의회,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Apostolicam Actuositatem), 14항.
145. 「현대의 복음선교」, 15항: AAS 68(1976), 14면.
146. 요한 바오로 2세, 카메룬 주교회의 연설, 야운데(1985.8.13.), 4항: Insegnamenti VIII/2(1985), 378면.
147. 위의 연설, 5항: 위와 같은 곳, 378면 참조.
148. 「현대의 복음선교」, 75항: AAS 68(1976), 65면.
149. 위의 책, 75항: 위와 같은 곳, 65-66면.
150. 「교회의 선교사명」(1990.12.7.), 23항: AAS 83(1991), 269-270면.
151.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회의 문화 참여 운동에 대하여 이탈리아 국회에서 한 연설(1982.1.16.), 2항: Insegnamenti V/1(1982), 131면.
152. 선교교령, 22항 참조.
153. 「건의안」, 32항; 제2차 바티칸공의회,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Sacrosanctum Concilium), 37-40항 참조.
154. 「건의안」, 38항.
155. 「가정 공동체」, 75항: AAS 74(1982), 173면.
156. 「가정 공동체」, 86항: AAS 74(1982), 189-190면.
157. 「건의안」, 14항 참조.
158. 나자렛의 성모 영보 성당에서 한 강론(1964.1.5.): AAS 56 (1964), 167면.
159.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교서 「여성의 존엄」(Mulieris Dignitatem) (1988.8.15.), 6항: AAS 80(1988), 1662-1664면; 여성들에게 보내는 서한(1995.6.29.), 7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1995년 7월 12일자, 2면 참조.
160. 「가정 공동체」, 22항: AAS 74(1982), 107면.
161. 「건의안」, 48항.
162. 「가정 공동체」, 13항: AAS 74(1982), 93-94면.
163. 「가정 공동체」, 13항: AAS 74(1982), 93-94면.
164. 1994년 인구와 발전에 관한 세계회의 사무총장 나피스 사딕 여사에게 보낸 담화(1994.3.18.): AAS 87(1995), 190-196면 참조.
165. 시노드 담화, 30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1994년 5월 11일자, 7면.
166. 「가정 공동체」, 42항: AAS 74(1982), 134면.
167. 「건의안」, 5항.
168. 「건의안」, 34항 참조.
169. 「건의안」, 9항 참조.
170. 「평신도 그리스도인」, 45-56항: AAS 81(1989), 481-506면 참조.
171. 「교회의 선교사명」, 71-74항: AAS 83(1991), 318-322면 참조.
172. 「건의안」, 12항 참조.
173. 「건의안」, 13항.
174. 「건의안」, 14항.
175. 교회헌장, 11항.
176. 「가정 공동체」, 52항: AAS 74(1982), 144-145면 참조.
177. 위의 책, 55항: 위와 같은 곳, 147-148면 참조.
178. 위의 책, 62항: 위와 같은 곳, 155면 참조.
179. 「가톨릭교회 교리서」, 1656항: 교회헌장, 11항 인용.
180. 「가톨릭교회 교리서」, 1657항: 교회헌장, 10항; 사목헌장, 52항 인용.
181. 「건의안」, 15항 참조.
182. 위와 같음.
183. 「건의안」, 16항: 교회헌장, 43-47항 인용.
184. 선교교령, 18항; 제2차 바티칸공의회, 수도생활의 쇄신 적응에 관한 교령(Perfectae Caritatis), 19항 참조.
185. 「건의안」, 16항.
186. 「건의안」, 22항 참조.
187. 수도회성, 교회 안의 주교들과 수도자들 간의 상호관계를 위한 지침 「상호관계」(Mutuae Relationes) (1978.5.14.): AAS 70(1978), 473-506면.
188. 「건의안」, 22항 참조.
189. 「건의안」, 18항.
190. 위와 같음.
191. 위와 같음.
192. 「건의안」, 17항.
193. 「건의안」, 20항.
194. 요한 바오로 2세, 주교대의원회의 후속 교황권고 「착한 목자」(Pastores Dabo Vobis) (1992.3.25.), 70-77항: AAS 84(1992), 778-796면; 「건의안」, 20항 참조.
195.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교령(Presbyterorum Ordinis), 16항.
196. 위의 문서, 8항 참조.
197. 주교교령, 11항.
198. 「건의안」, 21항 참조.
199. Epistolarum Liber, VIII, 33: PL 77, 935 참조.
200. 「건의안」, 23항; 「토론 전 보고서」, 11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1994년 4월 13일자, 4면 참조.
201. 「건의안」, 24항.
202. 위와 같음.
203. 위와 같음.
204. 「건의안」, 25항.
205. 「건의안」, 26항.
206. 선교교령, 15항 참조.
207. 「건의안」, 27항 참조.
208. 「건의안」, 45항.
209. 43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1994년 5월 11일자, 8면.
210. 「건의안」, 46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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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아프리카 시노드 담화, 57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1994년 5월 11일자, 9면.
213.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하나 되게 하소서」(Ut Unum Sint) (1995.5.25.), 40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1995년 5월 31일자, 부록, VI 참조.
214. 「사회적 관심」, 32항: AAS 80(1988), 556면 참조.
215. 시노드 담화, 35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1994년 5월 11일자, 8면 참조.
216. 「건의안」, 56항 참조.
217. 시노드 담화, 34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1994년 5월 11일자, 8면.
218. 「건의안」, 54항 참조.
219. 「건의안」, 54항 참조.
220. 「민족들의 발전」: AAS 59(1967), 257-299면; 「사회적 관심」: AAS 80(1988), 513-586면; 「백주년」: AAS 83(1991), 793-867면; 「건의안」, 52항 참조.
221. 아프리카 시노드 담화, 63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1994년 5월 11일자, 9면 참조.
222. 아프리카 시노드 담화, 63항.
223. 「건의안」, 51항.
224. 「건의안」, 45항.
225. 「건의안」, 45항.
226. 바오로 6세, 제5차 세계 평화의 날에 보이즈 타운(Boys’ Town)에서 한 연설(1972.1.1.): AAS 64(1972), 44면.
227. 「건의안」, 49항.
228. 시노드 담화, 35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1994년 5월 11일자, 8면.
229. 위와 같음.
230. 「건의안」, 53항 참조.
231. 사목헌장, 86항; 「민족들의 발전」, 54항: AAS 59(1967), 283-284면; 「사회적 관심」, 19항: AAS 80(1988), 534-536면; 「백주년」, 35항: AAS 83(1991), 836-838면; 「제삼천년기」, 51항: AAS 87(1995), 36면: 2000년 대희년 준비의 일환으로, “여러 국가의 미래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국제 부채를 완전히 탕감해 주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대폭 삭감해 줄 것”을 제시하고 있다;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 「인류 공동체를 위하여: 국제 부채 문제에 대한 윤리적 접근」(1986.12.27.): 바티칸 시, 1986년 참조.
232. 「건의안」, 49항.
233. 위와 같음.
234. 위와 같음.
235. 「여성의 존엄」, 6-8항: AAS 80(1988), 1662-1670면; 「여성들에게 보내는 서한」, 7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1995년 7월 12일자, 2면 참조.
236. 「건의안」, 48항.
237. 위와 같음.
238. 「건의안」, 57항.
239. 위와 같음.
240. 「건의안」, 61항.
241. 「건의안」, 58항 참조.
242. 「건의안」, 60항 참조.
243. 케냐 주교들에게 한 연설, 나이로비(1980.5.7.), 6항: AAS 72(1980), 497면.
244. 「현대의 복음선교」, 50항: AAS 68(1976), 40면 참조.
245. 42항.
246. 「토론 후 보고서」, 11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1994년 4월 24일자, 8면.
247. 세네갈, 모리타니, 카보베르데, 기니비사우, 주교회의 연설, 포퐁긴(1992.2.20.), 3항: AAS 85(1993), 150면.
248. 「교회의 선교사명」, 39항: AAS 83(1991), 287면.
249. 선교교령, 20항.
250. 삼종기도(1989.1.6.), 2: Insegnamenti XII/1(1989), 40면.
251. 「교회의 선교사명」, 63항: AAS 83(1991), 311면.
252. 선교교령, 29항.
253. 사제직무교령, 10항.
254. 「교회의 선교사명」, 67항: AAS 83(1991), 316면.
255. 위의 책, 66항: 위와 같은 곳, 314면.
256. 선교교령, 38항.
257. 「교회의 선교사명」, 84항: AAS 83(1991), 331면.
258. 요한 바오로 2세, 사도좌 정기 방문 중인 나이지리아 주교단에게 한 연설(1982.1.21.), 4항: AAS 74(1982), 435-436면.
259. 「교회의 선교사명」, 90항: AAS 83(1991), 336-337면.
260. 위의 책, 91항: 위와 같은 곳, 337-338면.
261.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 「교회와 인종 차별주의: 더욱 우호적인 사회를 향하여」(1988.11.3.), 22항: 바티칸 시, 1988년.
262. 「교회와 인종 차별주의: 더욱 우호적인 사회를 향하여」, 20항.
263. 사목헌장, 22항.
264. 77-79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1995년 5월 31일자, 부록, XI.
265. 「사회적 관심」, 38항: AAS 80(1988), 565면.
266. 「사회적 관심」, 40항: AAS 80(1988), 568면.
267. 사목헌장, 39항.
268. 「사회적 관심」, 48항: AAS 80(1988), 583면.
269. 바오로 6세, 교황권고 「그리스도인의 기쁨」(Gaudete in Domino) (1975.5.9.), III: AAS 67(1975), 297면.
270. 아프리카 시노드 특별 총회 개막 미사 강론, 1항: AAS 87(1995), 179면.
271. 「제삼천년기」, 42항: AAS 87(1995), 32면.
272. 요한 바오로 2세, 하르툼에서 한 미사 강론(1993.2.10.), 8항: AAS 85(1993), 96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