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교회의 문헌
2013-04-30 00:00
2020-07-02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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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2013년 정의평화위원회 노동절 메시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노동절 메시지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묵시 21, 3)


123번째 세계 ‘노동절’을 맞이하여 보다 나은 세상과 산업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그리스도인과 선의의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축복이 풍성하게 머물기를 기원합니다.
교회는 ‘노동하는 사람들의 존엄성과 권리를 천명하고 이들의 존엄성과 권리가 침해되는 상황들을 고발하여 인간과 사회의 참된 진보를 보장하는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중대한 직무임을 엄중히 자각하고 선포해 왔습니다(노동하는 인간 1항 참조). 한국 가톨릭교회도 지금까지 교회의 공식 가르침인 ‘사회적 가르침’에 비추어 사회 문제의 핵심인 노동 문제에 대한 태도를 거듭 표명해왔습니다.
하지만 고질적인 고용 불안과 무차별적인 정리 해고 등으로 날이 갈수록 가혹해지는 노동자들의 현실은 이러한 교회의 노동자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현실 사회에서 노동 현실의 실제적인 개선과 변화를 이끌어 내기에는 여전히 부족했음을 고백하게 합니다.
최근 ‘기업 경영의 악화된 여건’을 이유로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정리 해고와 그로 인한 노동자 가정의 해체, 나아가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계속되는 죽음의 행진은 노동의 문제가 특정 계층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 문제 전체의 ‘본질적인 핵심’이자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짊어져야 할 공동의 책임임을 통감하게 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들은 날이 갈수록 우리 사회에서 교회가 늘 강조하며 가르쳤던 “인간의 생활을 보다 인간답게 만든다”는 인간노동의 대명제가 빛을 잃고 있음을 반증합니다(「노동하는 인간」, 13항). 자본은 있지만 ‘인간’이 없고, 이윤은 있지만 인간다움이라는 고귀한 가치가 사라진 형국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누리고 있는 경제적 성장과 풍요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묵묵히 노동 현장에서 일해 온 노동자들의 땀과 희생의 열매입니다. 하지만 국가의 위상이 높아지고 자본의 위력과 그 소득은 높아진 반면, 역설적으로 이를 가능케 했던 주인공들인 대다수 노동자들이 직면한 노동 환경은 여전히 열악합니다. 전국의 노동현장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정리해고와 수많은 사업장들의 농성 장기화 문제, 800만 이상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개인 사업자로 분류되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없는 간병인, 보험사, 학습지 교사, 화물차, 레미콘 기사 등 250만 명의 특수 고용직 노동자들, 이 모두가 현 사회가 안고 있는 ‘노동의 위기’를 드러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정리 해고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절망적 상황에서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끊는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고 있으며 사업주의 ‘부당 해고’와 ‘불법 파견’으로 판명된 대법원의 판결조차도 무시되는 ‘일상화된 노동의 위기’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저 멀리 부산에서부터, 울산, 대전, 평택, 인천,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정리 해고와 일방적인 직장 폐쇄로 인한 거리 농성, 위태로운 종탑과 고압전류가 흐르는 송전탑 위의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호소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심각한 노동 현실 앞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123번째 ‘노동자의 날’을 맞이하여 정부와 여야의 정치권, 그리고 자본을 대표하는 사용자측과 노동자들에게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1. 박근혜 정부에 호소합니다.
“국가의 주요임무는 노동자와 생산자가 동등하게 그들의 노동의 결실을 즐길 수 있고, 이렇게 효과적으로 그리고 정직하게 노동하도록 격려하기 위하여 안전하게 보장”하는 것입니다(「백주년」, 48항). 정부의 ‘경제민주화’ 실현은 우선적으로 경제 불평등의 직접적 피해자인 노동자들 안에서 분배의 정의가 온전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시장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노동하는 인간’의 소중한 가치가 존중되도록 경제 시스템 안에 ‘더불어’ 살아가는 실제적이며 근본적인 ‘인간 공동체’ 정신의 복원에 초점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노동사회의 안정과 노사의 균형적 발전이야말로 국가 안정에도 필수적이며 정부가 이미 국정 기조로 선포한 ‘사회 통합’의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최근 공권력을 통해 행해지고 있는 노동자들의 농성 천막 강제 철거 등은 문제의 근본적 해결 없는 피상적 해법에 불과하며 오히려 사회 통합을 가로막는 걸림돌일 뿐입니다. 부디 노동자들의 처지와 고통을 헤아려 주시길 청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정부 스스로가 서둘러 현안 노동 문제 해결에 직접적이며 즉각적으로 나서 줄 것을 엄중히 호소하는 바입니다.

2. 정치권은 노동 문제 해결에 있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교회는 정치권력의 본질을 규정함에 있어 “언제나 정의를 보장하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데에 간섭하고 그 최종 책임을 져야 한다”(「팔십주년」, 46항)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여야를 비롯한 정치 권력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극심한 노동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중차대한 책임을 지닙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입법 기관으로서 자본 우위의 일방적인 편중에서 벗어나 상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만들어진 현행 노동법과 관계 제도를 개정해야 합니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에 대한 엄격한 적용’, ‘정리 해고 규제’, ‘특수 고용노동자의 노동자 지위 인정 문제’, ‘비정규직 해소 방안’ 등에 관한 법률의 재정비를 통해 노사가 공동으로 협력하고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노동 문제가 선거 때마다 단순히 정치권력 획득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한 국민의 정치에 대한 불신은 가중될 것이며, 마침내 시민사회로부터 정치권이 신뢰를 상실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3. 경제를 이끌어 가는 기업인들에게 권고합니다.
교회는 ‘노동이 자본보다 우위에 있다는 원칙을 무엇보다도 먼저 생각하여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노동과 자본은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노동과 자본의 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인간 노동의 실제적인 우위성을 수용하고 노동자를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중하고 인격을 가진 주체로서 인정할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자본의 노동관은 노사 공생의 방향으로 재정립되어야 합니다. 즉, 노동자의 일할 권리를 보장하고 기업의 이익을 다시 고용 효과를 늘리는 데 사용하는 ‘순환적 경제 가치’를 수용해야 합니다. 기업은 노동자들이 일할 수 있는 건전하고 쾌적한 고용환경을 최우선적으로 만들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짊어진 ‘자본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을 진심으로 자각해야 합니다.
최소한의 법적 중재와 조치마저도 외면하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고용을 유지하는 형태로는 노사의 평화는 도래하지 않을 것입니다. 노사 모두 함께 성장하는 상호간의 진정한 협력과 존중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사용자측에서 먼저 희생하고 양보하는 자본의 ‘건강한’ 역할을 권고하는 바입니다.

4. 절망에 빠진 노동자들에게 진심으로 호소합니다.
정리해고와 빈곤한 생활 등으로 고단한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에게 호소합니다.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이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노동자로서의 긍지와 존엄을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노동이 세상의 역사를 일구어왔으며, 다가올 앞날에 대한 우리의 희망 역시 바로 ‘노동하는 인간’ 안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교회는 노동자들의 품위를 이 우주 안에 존재하는 것들 중에 가장 신성하고 불가침한 것으로 천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부동의 대명제와 그 가르침의 실천을 통해 온갖 역경과 고통에 처한 노동자 여러분을 언제나 따뜻한 형제애로 맞이하며 힘껏 포옹할 것입니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기본적인 권리를 되찾으려는 그리스도인의 노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중단될 수 없으며 교회는 이 세상의 정의와 평화의 도구로써 노동자들의 고통에 언제나 동참할 것입니다. 부디 용기와 희망을 잃지 마시길 간곡히 당부 드립니다.
다시 한 번 ‘노동자의 날’을 맞이하여 정치인과 기업인, 노동자 모두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2013년 ‘노동자의 날’을 맞이하여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이 용 훈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