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교회의 문헌
2013-05-30 00:00
2020-07-02 11:09
3,308
[담화] 2013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

2013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문


한국 천주교회에는 매년 6월이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 주일이 있고 남북통일 기원 미사를 드리지만, 올해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금년은 정전 6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난 춘계 주교회의 총회에서도 해마다 지내오던 6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달에 특별 기도를 바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같은 민족끼리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러 수많은 사상자를 내었고 또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한 지 60년이란 세월이 흘러 이제는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뿐 아니라, 전쟁의 상처는 미움과 증오라는 부산물을 우리 민족의 가슴에 남겨주었으나 그 부산물을 떨쳐버리는 것이 그토록 힘이 드는 가봅니다. 같은 민족끼리 이렇게 오랫동안 화합을 이루지 못하고 적대감정을 가지고 으르렁거리는 나라가 이 세상에 어디 또 있겠습니까? 이제는 남과 북이 과거의 미움과 증오를 잊어버리고 화해의 손을 잡고 함께 살아가는 평화의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용서와 화해를 통해 상생의 길로

정전 60주년을 맞은 우리가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회개를 통한 용서와 화해입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비롯하여 남북관계와 통일을 논하는 자리에서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용서와 화해입니다. 용서와 화해를 통한 대화와 교류 및 상호협력 없이는 우리 한반도에 쌓여있는 불신과 불안, 더 나아가 전쟁의 위기는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남과 북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비롯하여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와 2000년 6.15 남북 정상 회담들을 통해 화해와 협력을 모색해 왔습니다. 그러나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서로 헐뜯고 비방하였고, 급기야 핵이라는 카드로 위협받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동안 남북 갈등의 어떠한 사태에서도 존속시키며 남북 경제 협력의 큰 상징이 되어 왔던 개성 공단마저 중단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지금까지 남북 관계의 과정과 그동안 일어났던 여러 가지 돌발 사태 등을 보면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남북 관계는 우리 민족의 생존이 걸린 일이고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과제이기에 온 민족이 함께 마음을 모으고 인내하며 풀어나가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교회의 역할도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교회에 맡겨진 민족 화해의 사명을 기억하면서 먼저 우리 자신이 이 사명에 충실하였는지 반성해 보아야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교회에 남북이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본래 한 형제였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도록 화해의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 사명을 마음에 새기며 그동안 기도와 희생을 바쳐왔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기도와 희생은 소수의 일이었을 뿐, 대부분은 분단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북한 주민들의 고통에 무심하게 살아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남과 북 우리 모두가 지나간 시간들을 떨쳐버리고 용서와 화해로 손을 잡고 이 땅에 평화와 통일을 이루는데 한마음이 될 것을 다짐합시다.

새 정부에 바랍니다.

그동안 대북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졌습니다. 각 정권은 나름대로 의미 있는 대북정책을 펼쳐가며 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하였지만, 다시금 대결의 길로 돌아섰습니다. 더욱이 남북 대화가 단절되고 남한은 물론 국제사회가 대북제재와 압력을 가하는 동안 북한의 핵 능력만 향상되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이제는 북한이 먼저 비핵화해야 한다는 것에 매달리지 말고 평화협정과 비핵화를 융합할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남북교류와 경제협력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가는 길만이 화해와 평화를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독일 통일을 위해 서독 정부는 입으로만 통일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동독지역에 사회간접자본과 물류체계를 구축하였으며 분단 상황에서도 고속도로 4개, 국도, 국경을 통과하는 철도, 내륙운하는 물론 항공로도 3개나 건설하였다고 합니다. 통일을 지향하며 경제협력과 동서교류를 위한 서독정부의 이러한 지속적인 노력이 통일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생각합니다.

이제 새롭게 출발한 새 정부의 대북 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도 신뢰를 위해 북의 행동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고 신뢰의 끈을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남북 관계의 길이 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북한 정부에 바랍니다.

북한은 어리석은 전쟁 위협과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는 태도를 버리고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합니다. 북한의 핵 개발 전략이 오히려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힘을 실어 주는 결과를 초래하였으며, 일본의 군국주의화에도 빌미를 제공하여 바람직스럽지 못한 결과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 뿐 아니라 지난 기간 긴장 고조와 제재 그리고 대화의 악순환이 이제는 더 이상 국제사회에 통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반도 평화와 민족 번영을 위해서 시도했던 개성 공단과 그 밖의 남북 협력 사업도 다시 재개해야하며, 지극히 인도적인 사업인 이산가족 상봉이 하루 빨리 재성사되어 이산가족의 한을 풀어 주어야 합니다.

교형자매 여러분,

남북관계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 속에서 신앙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가장 큰 무기는 기도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마르 9,29)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독일이 통일의 길로 나아갈 때, 독일 교회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인도적 지원과 교류 협력 사업도 활발하게 펼쳤지만,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지속적인 기도 운동을 펼쳤다는 것입니다. 매주 월요일 라이프치히의 니콜라이 교회에서는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도회가 있었습니다. 이 기도 운동이 독일 통일의 원동력이 된 ‘월요 기도회’였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도 우리의 노력에 기도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정전 6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 교회가 참회해야 할 일이 바로 민족의 화해를 비롯한 북한 주민들을 위해 바쳐야 할 기도의 소홀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일은 과정의 결실입니다. 힘을 키우는 방식으로는 평화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마음을 열고 대화하고, 함께 교류하고 협력하는 남과 북이 될 수 있도록 평화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기도드리며 그분의 축복을 구합시다.
남과 북의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13년 6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이 기 헌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