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교회의 문헌
2013-12-06 00:00
2020-07-02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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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 2013년 제13회 가정 성화 주간 담화

제13회 가정 성화 주간 담화문

그리스도인 가정의 삶과 기도

몸과 마음, 육체와 정신의 합일체인 인간이 자라고 성장하는 길로서 가정은 예나 지금이나 첫째가는 길이요, 소중한 길입니다. 이러한 가정의 길은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문화와 관습과 사조의 영향을 받는 길이기도 합니다.

도시화된 현대의 사회에서 마을 공동체의 해체와 더불어 개인주의, 자극적인 유흥문화, 모든 것이 상업화된 환경, 가시적 감각적 가치를 기치로 하는 소비문화, 경쟁주의, 경제 제일주의 등은 오늘날의 가정의 길에 내적 외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가정은 ‘혼인의 상호관계의 질에 대한 의식, 여성 존엄성의 촉진, 책임 있는 출산, 자녀의 교육’ 등에 깊은 관심을 드러냅니다. 이런 의식의 성장과는 달리 부정적 측면도 적지 않음을 우리는 인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가 겪는 학교폭력, 가정폭력, 수많은 부부 갈등, 이혼으로 인한 가족 해체 등의 현상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정의 길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문제는 흔히 생각하듯이 단순히 경제적 곤란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라고만 보아 넘길 수 없습니다. 그 근저에는 이 시대의 유해한 환경과 영향을 정화하지 못하는 가정의 삶에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 가정의 삶의 어려움과 그늘을 생각할 때, 신앙을 바탕으로 한 그리스도인 가정의 삶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의 길이 외적 물질의 구비와 재물의 충족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늘 인식하고, 하느님의 더 깊은 뜻과 계획에 마음을 개방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하시고 목숨까지 내어놓으신 그 사랑’을 바탕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자기를 위해 타자를 이용하는 사랑이 아니라, 타자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 여기에 그리스도인 가정의 삶의 깊은 본질이 들어있습니다. 아마도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가정의 길, 진정으로 행복한 가정의 길도 이러한 삶 안에 축약되리라 생각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듯이 부부도 서로 상대방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면, 수많은 가정의 문제를 푸는 길이 거기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가정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의 삶을 모범삼아 나아가지만, 그 길은 인간적 약점과 시대적 유혹의 무수한 난관 속에 놓여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인 가정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느님께 끊임없이 기도하며 주님의 도우심과 성령의 은총을 간구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가정의 가족들이 함께 드리는 기도는, 주님께서 하신 다음의 말씀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장소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마태 18, 19-20).

그리스도인 가정의 기도는 가정의 모든 생활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합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 가정은 큰일과 작은 일,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이별과 만남, 출생과 죽음 그 모든 삶에서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신뢰하고 하느님의 섭리에 가정을 맡기며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행해지는 부모의 한결같은 믿음의 삶과 기도는, 자녀들에게 지울 수 없는 아름다운 흔적으로 남고 인생의 모범이 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가족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은 현대의 기술문화가 줄 수 없는 것을 받고 체험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일찍이 교황 바오로 6세께서 남기신 말씀을 함께 묵상하고 싶습니다.
“부모님 여러분, 여러분들은 자녀들이 병이 났을 때, 그리스도의 고통을 생각하고 성모님과 성인들의 도움을 청하도록 자녀들을 격려하는지요? 가끔이라도 가족들이 함께 모여 공동체를 이루며 기도로 감사하고 주님의 도움을 청하는지요? 가족들과 함께하는 기도의 삶은 값진 교훈이 되고 하느님께 드리는 훌륭한 예배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가정의 평화를 가져오고 교회를 건설하는 일임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
위원장 황철수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