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교회의 문헌
2014-06-30 00:00
2020-07-03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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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 2014년 제19회 농민주일 담화문
[담화] 2014년 제19회 농민주일 담화문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은 도농공동체운동입니다!

“땅이 있는 한, 씨뿌리기와 거두기,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멈추지 않으리라”(창세 8,22)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농민 주일을 맞이하여, 농민을 비롯한 먹을거리가 밥상에 오르기까지 수고한 모든 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1. 올해는 한국 교회가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의 타결로 농업과 농촌의 존폐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됨에 따라 1994년부터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을 시작한 지 20년이 되는 해입니다. 교회는 이 운동을 통해 지난 20년 동안 농촌에서는 공소와 마을을 중심으로 생명 농업을 실천하고 도시에서는 본당을 중심으로 생명 농업을 통해 생산된 먹을거리를 나누며 도농 공동체의 실현을 위해 힘써 왔습니다. ‘가족농 사랑 기금’, ‘암송아지 입식 운동’, ‘쌀 선수금제’, ‘농촌 일손 돕기’와 같이 단순한 농산물 직거래를 넘어 펼쳐진 사례들 역시 하느님의 창조 질서와 생명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작지만 아름답고 소중한 노력이었습니다.

2.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세계는 기후 변화에 따른 환경 문제, 에너지 문제와 식량난, 경제 불안과 맞물려 날로 심각해져 가는 사회적 양극화와 빈곤과 기아로 지구 생태계와 인류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마구 쓰고 버리는 산업 문명의 폐해와 물질과 시장 만능주의, 성장 제일주의 등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 빚어낸 결과임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농업과 농촌 사정 또한 농산물 시장의 전면 개방과 구조 조정을 바탕으로 한 농업 정책의 지속으로 농업 생산 및 소득 감소, 도·농 간 소득 격차가 확대됨은 물론 농촌 사회 내부의 양극화로 위기가 증폭되고 있습니다. 지난 20여 년간 규모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라는 기조 속에 지속되어 온 농업 정책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농가당 평균 경작 면적은 1.5ha, 평균 농업 소득은 1천만 원가량의 영세 소농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식량 자급률 23.6%에 주곡인 쌀마저도 자급률이 86.1%(2012년 통계)에 불과한 오늘의 현실은 이제 이러한 위기가 농민만이 감당할 몫이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깨닫게 합니다.

3. 올해는 국제 연합(UN)이 정한 “세계 가족농의 해”이기도 합니다. 국제 연합은 가족농이 식량 안보와 영양 개선, 빈곤과 기아 극복, 환경과 생물 다양성 보전, 지역 경제 유지 등에 큰 역할을 하고 있음에 주목하여 지난 2011년 총회를 통해 2014년을 ‘세계 가족농의 해’ 원년으로 정하였습니다. 이는 2000년 밀레니엄 정상 회의에서 의결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세계 기아 인구를 2015년까지(1990년 대비) 절반으로 줄이자’는 의도이지만, 더욱 주목할 것은 지금까지의 대규모 기업농으로는 이와 같은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농민의 절대다수가 소규모 가족농 구조를 유지해 왔지만, 급속한 노령화와 후계자의 절대 부족으로 큰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우리 농업에 최대 위협이 되고 있는 한·중 자유 무역 협정 협상의 타결 여부와 지난 20년간 유예해 온 쌀 시장에 대한 전면 개방 여부를 결정하는 해입니다. 이제라도 우리 농업과 농촌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농업과 농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전 사회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정부는 농업과 농촌의 가치와 소규모 가족농에 대한 재조명을 통해 농업과 농촌의 보다 근본적인 유지와 발전에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개방과 구조 조정 일변도의 농업 정책을 포기하고 소규모 가족농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과 사회적 연대를 통한 자연 생태계와 미래 세대를 고려한 지속 가능한 정책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시급합니다.

4. “한쪽에서는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음식이 버려지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더 이상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복음의 기쁨」, 53항)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는 깊은 성찰과 고백, 더욱 적극적인 행동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그대들의 밭에서 곡식을 벤 일꾼들에게 주지 않고 가로챈 품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곡식을 거두어들인 일꾼들의 아우성이 만군의 주님 귀에 들어갔습니다.”(야고 5,4)라는 절규는 비단 초기 교회 공동체만의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이러한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여야 할 요구가 바로 한 사람 한 사람 안에서 움직이는 은총의 해방 활동에서 생겨나는 것이고, 따라서 소수에게만 맡겨진 사명이 아님을 인식하고 있습니다.”(「복음의 기쁨」, 188항)라는 교황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되새겨야 하겠습니다. 따라서 교회가 지속해 온 ‘우리농촌살리기운동’ 또한 단순히 어려움에 처해 있는 농촌과 농민을 돕자는 시혜적이고 한시적인 차원을 넘어 도시와 농촌이 긴밀히 연결된 하나의 운명 공동체임을 인식해야 하겠습니다.

5. ‘우리농촌살리기운동’ 20주년을 맞이하여 이 운동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구체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나눔으로써 참된 나눔과 형제적 연대의 영성을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는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은 교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해야 할 일입니다. 따라서 내 가족의 밥상을 생명 농산물로 채우는 것에 머물지 말고 농산물을 생산하는 이의 온갖 수고와 땀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나아가 굶주리는 이웃에게 마음을 기울이고 구체적으로 도울 수 있는 사회적 영성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또한, 본당의 생명 농산물 직매장이 더욱 많이 설치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교우들이 보다 주체적으로 이 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생명, 환경, 농업, 식량에 관한 다양한 연구와 체험의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우리와 미래 세대 모두를 살릴 지속 가능한 생명의 영성이 뿌리내리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오늘 농민 주일을 맞이하여 어려운 여건과 환경 속에서도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동참하고 있는 농민들의 노고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땅이 있는 한, 씨뿌리기와 거두기,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멈추지 않으리라.”(창세 8,22)고 약속하신 하느님 말씀대로 생명의 터전이자 우리 모두의 고향인 농촌이 되살아나기를 희망합니다.

2014년 7월 20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이 용 훈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