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주교회의 문헌
2004-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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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8차 정기 총회 최종 문서 - 완전한 생명 문화를 지향하는 아시아 가정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8차 정기 총회 최종 문서


완전한 생명 문화를 지향하는
아시아 가정

THE  ASIAN  FAMILY  TOWARDS
A  CULTURE  OF  INTEGRAL  LIFE


대전, 한국, 2004. 8. 17-23.

 


[차 례]

서론: 완전한 생명을 바라는 아시아 가정의 희망

제1부 아시아 가정의 사목적 도전

1. 가정의 전통과 가치
2. 다양한 가족 형태
3. 아시아 가정의 빈곤과 경제의 세계화
4. 무토지와 조상 전래의 영토 상실
5. 문화의 세계화와 가정에 미치는 영향
6. 아시아 가정과 사회의 가부장제
7. 여성과 여자 어린이
8. 가정 안의 청소년
9. 어린이 노동
10. 환 경
11. 인구 문제
12. 가정과 에이즈
13. 전쟁의 한가운데 있는 가정
14. 생명에 대한 생물 유전학의 위협
15. 가정과 교회/인간 기초 공동체
16. 요 약

제2부 신학적 사목적 성찰

가. 성찰의 틀과 과정

나. 완전한 생명 문화
1. 계약의 사랑과 생명, 친교와 연대
2. 생명이신 예수님: 사랑과 친교와 연대의 나눔
3. 성령 안에서 얻는 계약의 생명: 하느님의 가정인 교회

다. 가정: 사랑과 생명, 계약과 친교의 지성소
1. 마리아와 요셉과 함께하신 예수님의 가정 체험
2. 혼인: 남자와 여자의 거룩한 계약
3. 그리스도의 사랑의 성사
4. 혼인으로 이루어지는 계약의 사랑: 부모와 자식 관계
5. 가정과 하느님 나라에서 인간관계

라. 성소와 선교: “가정이여, 본래의 모습으로!”
1. 선교와 경제의 세계화
2. 가정과 문화의 세계화
3. 가정과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
4. 가정과 사회 변화
5. 가정과 종교 간 대화
6. 가정과 기초 교회 공동체
7. 예언자인 가정

마. 완전한 생명 문화를 지향하는 가정 영성
1. 친교의 영성
2. 제자 직분의 영성과 일상의 길
3. 양심 형성과 혼인의 은총
4. 기도, 파스카 신비, 그리고 성체성사

제3부 가정 사목을 위한 사목 제안

가. 아시아 가정 사목의 전망

나. 일반 계획 지침
양성하고 힘을 실어 주는 가정 사목
돌보고 봉사하는 가정 사목
사회 변화를 촉진하는 가정 사목

다.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8차 정기 총회
   지역별 모임들에서 작성한 우선 과제들과 계획들
전체적인 방향
계획들
구 조
연구와 활동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에 제안한 문제들과 관심사들

 


서론: 완전한 생명을 바라는
아시아 가정의 희망

 

1. 하느님 나라 안에서 완전한 생명을 향한 아시아 가정의 희망과 열망과 꿈은 결코 시들지 않는다. 극복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비참과 가난 속에서도 아시아 가정들은 생기 넘치고 활기찬 기쁨으로 이러한 희망을 안고 살아가며, 거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가정을 이룸으로써 지속적인 행복과 안녕을 찾는 아시아 가정들의 긍정적인 체험은 하느님의 성령이 활동하고 계신다는 신호이다. 이러한 희망을 지탱하는 것은 거룩함에 대한 아시아인들의 감각과 아시아의 풍부한 정신적 자원이다. 궁극적 존재이시며 생명의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이러한 희망의 이유이시다. 아시아 가정들 안에 지속되고 있는 친밀함, 화합, 상대적인 안정감, 그 밖의 다른 여러 긍정적인 가치들을 지탱하고 설명해 주는 것은 바로 아시아 문화들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성령이시다. 하느님 나라를 위한 친교와 연대와 선교의 여정에 있는 아시아 가정의 전망을 제시하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의 성령이시다. 이 모든 것이 희망의 이유이다.

2. 아시아 가정들과 완전한 생명을 향한 그들의 희망을 성찰하기 위하여, 아시아 주교들은 ‘생명 문화를 지향하는 아시아 가정’을 주제로 2004년 8월 17일에서 23일까지 열린 제8차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FABC) 총회에 모였다. 아시아에서 하느님의 ‘어린 양’들을 돌보는 목자들인 주교들은 이렇게 모일 수 있었던 것이 주님의 큰 축복이라는 것을 안다.1) 지난해에 들어서야 아시아 땅에서는 처음으로 마닐라에서 제4차 세계가정대회가 열려, 교회에 가정과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서 가정이 차지하는 막대한 중요성에 시급히 관심을 기울이도록 촉구하였다.

3. 이러한 관심은 세계 발전의 관점에서 특히 시급하다. 지난 20년간 전 세계의 급속한 문화적 발전과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인류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쳐 왔다. 이러한 사회 변화의 중심에서, 가정은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기본 단위이자 좋든 나쁘든 영향력 있는 문화 세력을 만들어 내는 주창자이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가정을 이상적인 사회, 정치, 경제 관계의 준거로 삼는다. 비록 서구의 일부 신자유주의 경향은 가정의 정체성에 문제를 제기해 왔지만, 국제기구인 국제연합은 아직도 가정을 사회의 기본 단위로 여긴다. 교회의 사회 교리도 언제나 가정을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단위이며 공동체로 인정해 왔다. 인간 생태계의 최초의 근본적인 구조 또한 가정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4. 보편 교회는 모든 역사가 거쳐 가는 길이며 가정 교회인 가정의 크나큰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2) 사도행전은 신앙이 “가정에서 가정으로”(사도 20,20 참조)3) 전달된다고 상기시켜 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신앙과 복음에 비추어 인류의 운명을 계획할 때 그리스도인 가정이 담당하는 절대적인 역할을 강조하시고자, 세계가정대회를 이미 네 차례나 소집하셨다. 세계의 발전과 보편 교회의 전반적 대응이라는 배경에서 볼 때, 아시아 가정에 관한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의 성찰은 보편적이면서 지역적인 의미를 갖는다. 세계의 발전이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아시아 농촌 가정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5. 우리 아시아 주교들은 아래의 성찰이 적절하고 효과적인 사목의 관점에서 아시아 가정들에 대하여 한층 더 깊이 성찰하는 데에 이바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또한 이 문서가 아시아 주교회의들과 교구들의 가정 사목의 전망과 가정 사목의 일반적인 사목 방향을 위한 준거가 되기를 희망한다. 따라서 우리는 아시아 가정이 직면한 사목 문제들을 성찰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제1부 아시아 가정의 사목적 도전


1. 가정의 전통과 가치

6. 급격하고 광범위하며 혁명적이기까지 한 세계 변화의 한가운데서 아시아 가정은 여전히 혼인을 거룩한 것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자녀는 하느님께서 주신 보물이자 선물로 사랑받고 있으며, 부모는 자녀에 대한 사랑을 보여 주려고 기꺼이 온갖 희생을 감내하며 자녀의 건강과 교육, 전반적인 행복을 책임진다. 핵가족의 끈끈한 유대는 확대 가족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가정의 연장자이며 부모이고 조부모이기도 한 노인들은, 많은 희생과 어려움이 따르긴 하지만, 가정 안에서 여전히 존경과 보살핌을 받고 있다. 가족들은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들을 존경하며 사랑한다. 가정의 결속을 보장하는 것은 바로 노인들이다. 아무리 가난한 가정이라도 아시아 가정들이 베푸는 환대는 잘 알려져 있다. 안팎의 여러 큰 어려움에도, 아시아 가정들은 비교적 높은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큰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에도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깊은 신앙심과 거룩함에 대한 감각을 지닌 아시아 가정들은 낙천적인 성향이 넘쳐흐른다. 농촌 지역에 있는 대다수 아시아 가정들은 자연스럽게 하느님의 피조물과 가깝게 지낸다. 이러한 가치들은 특히, 일반적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부류에 속하며 상대적으로 기술 문화의 영향을 덜 받은 토착 부족들에게서 보인다. 그 밖의 다른 많은 가치들은 가정의 가치의 일부로서 아시아에서 지속되고 있으며 아시아라는 배경에서 밝은 희망의 표지가 되고 있다.4) 오늘날 세계에서 가난과 죽음을 초래하는 여러 세력들에 아시아 가정들이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전통이다. 이러한 전통적인 아시아 가정의 긍정적인 가치들은 하느님 말씀의 씨앗으로서, 현명한 사람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에서와 같이(마태 7,24-25; 루가 6,47-48 참조) 우리 아시아 가정을 건설할 수 있는 “반석”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정들은 이러한 긍정적인 가치들을 의식적으로 실천하고 발전시켜, 그 위대한 가치가 사라지지 않고 증진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7. 또 다른 가치들은 양면적이다. 예를 들어, 강력한 친족 관계와 가족 중심의 관계는 부정적인 면도 있다. 아시아의 부정부패, 친인척 등용, 정치적 경제적 연고주의는 흔히 공동선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가족과 친척, 친구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지배적이고 이기적인 욕구에서 비롯되는 가족에 대한 지나친 집착 때문이다. 이는 전체 공동체나 사회를 일치시키기보다는 분열시키는 강력한 당파주의로 흐를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아시아에 널리 퍼져 있는 실재들, 그 가운데는 낡은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급속하게 생겨나고 있는 실재들이, 특히 세계화의 영향 아래 일고 있는 심층적인 사회 변화에 직면한 아시아 가정들을 취약하게 만든다. 그러한 사회 변화는 도덕적 종교적 신념뿐만 아니라 개인과 가정, 심지어는 혼인과 가정의 구조 자체에 대하여 개인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새롭게 바꾸어 놓고 있다.

8. 우리가 아시아의 다양한 문화적 상황을 깊이 인식할 때에만, 우리는 아시아 가정의 상황에서 주요한 공통점들을 알아볼 수 있다. 주지하듯이, 구(舊) 소비에트 연방의 가정들은 달라진 상황에서 특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톨릭 인구는 소수이며, 종교의 자유 없이 오랜 세월을 보낸 탓에 한 세대를 잃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혼인과 가정에 관한 믿음은 그리스도교 규범과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5)

2. 다양한 가족 형태

9. 오늘날 아시아의 가족 상황은 거의 공통적이며, 아시아인들이 ‘전통적’이거나 나아가 ‘이상적’이라고 여기던 가정과는 분명히 다르다. ‘혼종혼’의 결과, 가족들 간에 신앙이 다르고 문화가 다른 가정이 넘쳐 나고 있다. 그러한 혼인을 한 부부들은 같은 신앙을 가진 부부들보다 서로에게 맞추어 가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편부모 가정이나 부모가 별거 중인 가정, 부모 가운데 한 쪽이나 양쪽 모두 재혼한 가정도 역시 증가하고 있다. 부모들은 영원히 떨어져 지내는 경우도 있지만, 직장 때문에 일시적으로 떨어져 살기도 한다. 부모가 이혼한 아이들과 조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들도 드물지 않다. 홀아버지 또는 홀어머니만 있는 가정이 있는가 하면, 부모가 일년에 한두 번만 오는 가정도 있고, 자녀들이 아버지나 어머니가 서로 다른 가정도 있다. 또한 부모가 혼인을 하지 않아 자녀들에게 안정을 줄 수 없는 가정도 많이 있다. 또한 자녀를 갖지 않으려 하거나 출산을 미루는 가정들도 있다. 전통적으로 친밀하게 얽혀 있는 아시아의 ‘확대 가족’, 곧 조부모와 며느리나 사위, 손자 손녀로 이루어진 가족은 점점 보기 어렵다. ‘핵가족’은 확대 가족 구성원보다 서로 간에 대화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또한 확대 가족 안에서도 예를 들면 고부 갈등과 같은 것들이 있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는 과정과 용서의 치유력이 필요하다.

10. 새로운 자유화 운동이 도래하고 신자유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사고가 증대하면서 더욱 세속화되고 자유화된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는 부모가 동성(同性)인 가정 등 다른 형태의 ‘가정들’이 거센 반발 속에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러한 가정의 형태 가운데 일부는 심각한 혼란을 일으킨다. 이들은 성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남녀의 혼인이 가정의 출발점이자 규범이 되는 ‘그리스도인 가정’에 대한 우리의 전통적 인식에 반기를 든다. 또한 우리는 부부가 혼인을 진실로 거룩한 서약이라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단지 법적인 계약일 뿐이라고 생각하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또한 사회혼을 먼저 하고 나중에 교회혼을 하는 일반 관행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일부 사회에서 이러한 관행은 혼인 비용의 부족 때문이거나 부족법이나 관습법, 전통 때문이다.

11. 이러한 다양한 가족 상황을 신앙에 비추어 고찰하고, 혼인한 부부와 가정들이 하느님 나라에 대한 충성 서약에 비추어 이러한 상황을 성찰하도록 도와주며, 가정이 미리 행동할 수 있도록 전반적인 사목 지침을 마련하여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아시아의 모든 본당에 주어진 막중한 과제이다.

3. 아시아 가정의 빈곤과 경제의 세계화

12. 대다수 아시아 가정들이 직면한 첫 번째 주요 과제는 대량 빈곤이다. 그들은 날마다 비극적인 빈곤 현실에 맞서 싸워야 하며 거기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많은 가난한 젊은이들은 기본적인 부양이나 생계 수단이 없어서 혼인을 생각하고 가정을 꾸리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오늘날 아시아의 빈곤은 새로운 양상을 띠고 있다. 다시 말하여, 아시아 국가들은 새로운 세계 질서를 만들어 내는 신자유주의 경제 세계화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이 정한 경제 발전 도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모든 나라가 이 새로운 세계 질서를 따라야 한다. 그러나 세계화는 아무래도 양면성을 지닌다. 해마다 국제연합 인간 개발 보고서는 경제의 세계화가 가난한 사람들과 가난한 나라들, 특히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의 상황을 악화시켜 왔다고 정기적으로 보고하고 있다. 적어도 다음 세 영역에서 세계화가 빈곤 상황에 미치는 영향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가) 13. 농촌 가정의 빈곤. 경제의 세계화가 요구하는 두 가지 조건인 경제 자유화와 규제 철폐로 수입 농산물이 더욱 자유롭게 들어오고 지역 상품보다도 더 싼 가격으로 팔릴 수 있게 됨에 따라, 농촌 가정의 많은 농산물들은 그 수요가 서서히 감소하고 있다. 불공정한 경쟁에서 지역 농산물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정부 차원의 보호나 안전망이 사라져 경쟁력을 상실한 농촌 가정들은 자신들도 어찌 할 수 없는 새로운 경제적 빈곤 유발 요인을 경험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아시아 농민의 대다수가 소규모 농사를 짓고 있어서 대규모 기업농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는 대기업들과 경쟁할 능력이 없다. 나아가, 유전 형질 전환(GMO) 기술이 점점 확대됨에 따라 아시아의 소농들은 흔히 그들의 이해력이나 경제력이 미칠 수 없는 기술이나 회사들에 의존하게 된다. 또한, 농촌 가정들은 흔히 토지 소유 문제에 묶여, 그러한 새로운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자기네 땅이 생산성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이농 현상으로 더욱 악화되어 시골 지역의 정체를 낳는다. “일본 농촌 가정의 문제는 경제적 빈곤이 아니라, 농촌 자체의 붕괴에 있다.”는 의견은 주목할 만하다.6) 빈곤 상황에 놓인 가정들은 때때로 생존을 위하여 신체의 장기를 팔지 않으면 안 되는 극한 상황에 몰리기도 한다.

나) 14. 도시 가정의 빈곤. 아시아의 도시화 현상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농촌 빈민의 급속한 도시 지역 이동은 지난 몇 십 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늘어났다. 세계화는 가난한 나라들이 농업 분야에서마저 경쟁력을 잃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대다수 아시아 국가의 경제 발전 수준 때문에 많지도 않은 일자리를 찾아 농촌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이 도시 지역으로 몰려들게 만들었다. 도시 중심가의 빈민가가 급격히 늘어나고 확산되는 것도 이를 증명하여 준다. 도시 빈민의 빈곤 상황은 주거 환경, 가족의 생활 조건, 가족의 공간과 사생활, 위생적인 식수, 위생 시설, 위생 상태 등의 면에서 볼 때 더욱 열악하다. 빈민가 거주자들은 정부 소유지 또는 민간 소유지에서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쫓겨나거나 노숙자가 될 위험이 있다. 이러한 것들은 범죄, 가정 폭력, 가정의 붕괴를 가져오는 요인들이다.

다) 15. 아시아의 이민 현상. 아시아 가정의 경제 상황 때문에, 문자 그대로 수백만 명의 아시아인이 가정을 뒤로 한 채 흔히 그들의 지식이나 기술에 못 미치는 일자리를 찾아 떠난다. 명백히 아시아에서 경제적으로 더욱 발전한 일본이나 한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이나 중동의 산유국들이 주요 목적지가 된다. 불행히도, 그들은 흔히 심각한 차별과 착취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 아시아는 값싼 노동력의 주요 수출국이다. 물론 그들이 해외에서 받는 봉급은 자국에서 벌 수 있는 돈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은 분명하지만, 그 대신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성장기에 부모가 집에 없어 부모의 가르침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그들 자녀의 올바른 교육과 성장, 가정의 안정을 희생하여야 한다.

16. 또한, 일자리를 찾아 이민하는 토착민들은 다른 집단의 사람들보다 더욱 큰 문화적 혼란을 겪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토착 공동체가 너무도 소중히 여기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가치들을 잃어버리지만, 자기네 공동체로 다시 돌아갈 때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따라서 우리는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7차 정기 총회의 두 가지 우선 주제였던 이민 노동자와 토착민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보게 된다.

17. 요약하면, 이주 노동자들과 그 가정들은 본국과 이민국 교회의 커다란 사목적 배려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이주 노동자 사목은 사실 아시아 교회의 5대 사목 우선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7) 최근에 나온 훈령 「이민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Erga Migrantes Caritas Christi)의8) 지침과 지시들을 사랑으로 신중하게 이행한다면 교회의 깊은 사목적 관심을 잘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18. 발전 보고서들에서 ‘빈곤의 여성화’라고 일컫는 새로운 현상이 아시아 빈곤의 이러한 차원들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성들이 빈곤의 짐을 상당 부분 떠맡는 일이 현실화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가정의 생계에 필요한 자원을 조달할 사람은 남편이어야 하지만, 자녀들을 먹이고 입히며, 그들을 위해서 요리를 하고, 아플 때 돌보며, 확대 가족인 경우 노인들을 돌보면서 가계의 수지를 맞추어야 하는 것은 아내의 몫이다. 아내들에게는 시간표가 없는 것 같다. 집안일은 아침에 출근해서 점심시간에 한두 시간 휴식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일이 아니다. 딸들은 할 수 있을 때마다 집안일을 거들어야 한다. 흔히 어머니와 딸들은 바깥에서 몇 푼이라도 더 벌어 도움을 주어야 한다. 빈곤은 남자보다 여자들에게 더욱 가혹한 것 같다.

4. 무토지와 조상 전래의 영토 상실

19. 아시아 가정의 빈곤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은 토지가 없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아시아 가정이 자기 토지를 소유하거나 경작하지 못하고 있다. 소수의 사람이 대규모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아시아의 자원 분배에 심각한 불균형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는 수많은 가난한 사람에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실질적인 기회를 빼앗아 버리는 또 다른 사회 불의의 표지이다. 많은 아시아 국가에서는, 특히 부유층이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더욱 균형 있는 토지 분배를 위한 합법적 기회를 가로막는 곳에서는, 토지 개혁이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

20. 토지는 생명이다. 이 말은 토착민 가정에게는 특히 자명한 이치이다. 그들은 어떠한 법적인 소유 문서 한 장 없이도 아주 먼 옛날부터 땅과 강과 숲을 자기네 것으로 여기며 살아 왔다. 벌목꾼과 광산업자, 저지대 농부들은 토착민들의 이러한 소유 개념과 법률을 악용하여 토착민들의 조상 전래의 영토를 잠식하며 해마다 그 경계를 줄여 나가고 있다. 따라서 토착민 공동체들은 분쟁을 피하고자 정든 땅을 떠나 산속 깊숙이 들어가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명백히 그들의 토지에 대한 권리와 경제적 문화적 발전에 대한 권리를 침해받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 토착민들의 전래 영토에 대한 정부의 개발 계획은 때때로 토착민들의 완전한 발전에 역행하는 경우도 있다.

5. 문화의 세계화와 가정에 미치는 영향

21. 경제의 세계화는 결국 문화의 세계화를 불러오고 있으며, 그 중요성은 훨씬 더 크다. 20세기 중반 이후 서구의 세속주의가 아시아 사회에 강한 영향을 미쳐 왔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세속화 과정은, 포스트모더니즘 정신이 낳은 자유에 대한 개인주의 의식과 더불어, 20세기의 마지막 20년 동안 그 어느 때보다도 급속하고 실질적으로 아시아 가정의 가치 체계를 바꾸어 놓았다.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요인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은 경제적 요인과 온 세계를 지구촌으로 만들어 버린 전 세계 대중 매체의 지속적이고 혁명적인 발전이다.

22. 이러한 기술 혁명에는 사실 여러 가지 긍정적인 특징이 있다. 그것은 아시아인들에게 서양의 두드러진 특징인 개인의 존엄과 자율, 인권에 대하여 더욱 깊이 자각하게 한다. 또한 큰 재난을 당할 때면 거의 즉각적으로 범세계적인 연대를 형성하고 증진한다. 세계와 인간에 대한 지식을 급속하게 증가시켰으며 그러한 지식의 공유와 적용은 전반적으로 인간 생활을 크게 향상시켰다.

23. 그러나 이러한 문화의 세계화 과정에는 무서운 이면이 있다. 기술 문화의 급속한 부상으로 가정의 전통 문화가 뿌리째 흔들리고, 도시 지역에는 정체불명의 집단들이 생겨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속주의, 물질주의, 쾌락주의, 소비주의로 물든 기술 문화의 정신은 종교 지향의 아시아 문화에는 이질적이다. 관계 지향적이고 서로 연계를 맺고 의존하는 아시아 민족들의 생활방식 또한 훼손되고 있다. 기술 문화 가치의 대부분이 아시아 가정의 가치에 역행하는 것이다. 증대되고 있는 기술 중심의 사고방식이 정과 사랑의 유대로 맺어진 부부 관계와 가족 관계를 좀먹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더 이상 혼인을 일생 동안 지켜야 할 약속으로 보지 않는다. 이에 따라, 혼인하지 않고 동거하는 것이 도시 지역에서는 더 이상 드물지 않다. 도시에서는 익명성이 동거와 관련한 전통적인 불명예를 어느 정도 씻어 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제는 전통적인 개념의 혼인과 가정, 생명의 가치까지 바꾸려는 시도들이 있다.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도구, 특히 대중 매체에 이러한 정신이 너무도 깊이 침투하여 교묘하고 교활하게 많은 아시아인의 영혼을 현혹하고 있다.

24. 가정은 문화의 저장소인 동시에 전달체이므로, 아시아 가정 속에 침투하고 있는 세속 문화의 영향은 실상 매우 불온한 것이다. 그러한 세속 문화를 가장 먼저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주로 아시아의 상류층 가정들이다. 그들은 사회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가장 먼저 이용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 텔레비전과 라디오, 영화가 서구의 방송 프로그램에 열광하고 있어 신흥 문화가 일반 대중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그리하여 가정과 생명에 대한 서구의 가치와 묘사가 아시아의 시청자와 청취자들에게 점점 더 규범적인 것이 되어 가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텔레비전, 컴퓨터, 인터넷, 휴대 전화와 같이 가족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증진하고 가족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한 사회 커뮤니케이션 도구들은, 가족 구성원들이 함께 보내는 가치 있는 시간들이 줄어들면서, 오히려 가족 관계에 방해가 되고 있다. 가족이 함께 하는 행사나 식사, 여가 활동도 줄어든다. 그러한 부정적인 영향이 이혼의 증가, 가정의 붕괴, 청소년 범죄, 가정교육의 쇠퇴에 일조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25. 또한 문화의 세계화는 새로운 형태의 빈곤을 낳기도 한다. 새로운 형태의 기술과 그것으로 지식을 향상시키는 방식, 나아가 현대의 생활방식은 가난한 가정들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물질적인 빈곤 외에도 새로운 형태의 빈곤, 곧 지식과 지식 접근의 빈곤은 가난한 가정들을 더욱 소외시키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이러한 현상을 ‘가지지 못한 자’가 아니라 ‘알지 못하는 자’의 빈곤이라고 일컬으셨다. 산업 선진국들의 부가 천연자원보다는 ‘기술 지식의 보유’에 훨씬 더 많은 바탕을 두고 있다면,9) 그 밖의 나라들의 빈곤은 대부분 이러한 새로운 부의 결핍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우리는 경제적 기술적 빈곤 말고도 정신적 빈곤, 도덕적 종교적 확신과 가치의 빈곤도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10)

26. 우리는 또한 세계화가 가져 온 이러한 불안한 문화적 변화에 맞선 일부 영역의 대응 가운데 하나가 근본주의에 대한 의존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여야 한다. 그 신봉자들에게는 근본주의가 삶의 문제들, 곧 정의, 사랑, 혼인, 가정, 종교 간 관계, 정치, 통치와 같은 복잡한 문제들에 대한 명쾌한 답을 주는 듯 보인다. 극단적인 형태의 근본주의는 아시아 사회에 긴장을 고조시키는 불용과 더 나아가 테러리즘을 불러왔다.

6. 아시아 가정과 사회의 가부장제

27. 아시아 가정과 더 넓게는 아시아 사회에서 안타깝게도 가부장제는 아직도 여성과 남성의 역할을 결정짓는 요인으로 남아 있다. 아버지를 뜻하는 라틴어 낱말 ‘pater’를 어원으로 하는 가부장제(patriarchy)는 경멸적인 말이 되었다. 그러나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pater’는 예수님의 아버지(Abba) 체험, 그리고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맺는 사랑의 관계의 관점에서 쓰였으므로 지배적이고 억압적인 요소는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실, 예수님께서 탕자의 비유에서 말씀하신 너그럽고 용서하는 사랑의 아버지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하는 주님의 기도가 표현하는 사랑의 통치나,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모범을 보이신, 종이 됨으로써 주인이 되는 것과 같은 ‘pater’의 복음적 의미를 우리 시대에 되살릴 필요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가장답게 되지 않고서는 ‘아버지의 사랑’이나 ‘아버지의 권위’를 가질 수 없다. 초기 유다인 사회와 그리스 로마 사회에서처럼 오늘날에도 가부장제는 부정적인 의미로 이해된다. 사회적 태도인 가부장제는 사회 구조를 형성해 왔고, 성의 불평등과 남성의 상위 역할을 근본적으로 결정지어 왔다. 가부장적 세계관은 아시아의 문화적 종교적 잠재의식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어, 정치, 경제, 인간관계, 자녀 양육관, 관습, 남성과 여성에 대한 고정 관념, 공동체 역할 등에 지배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부장제는 남성을 용맹, 완력, 권위, 지배라는 말로 규정하며, 사회 안에서는 남성의 극단적 애국주의를, 가정 안에서는 남성의 권위주의를 뒷받침한다. 반면에 가부장제는 여성을 온순, 온화, 복종 등의 말로 규정하며, 여성을 가정에 귀속시켜 여성에게 가정의 일치와 심리적 행복을 책임지게 하는 배타적인 짐을 지운다. 가부장제는 여성을 종속적 인간으로 여기며, 남성과 여성, 소년과 소녀의 행동을 통제할 때에 일반적으로 이중적인 기준을 내세운다. 예를 들어, 이러한 가부장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아내에 대한 남편의 부정한 행위와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무책임한 행동이 아내나 어머니의 그러한 행동보다 더 쉽게 용서되고 묵인되는 것 같다.11)

28. 일부 나라들에서 가부장제는 임신 기간 동안 성을 감별하는 과정을 통해 부도덕한 모습들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한 나라들에서 남아 선호는 인구 구성에서 성비의 엄청난 불균형을 가져왔다. 과학은 이러한 부도덕한 모습의 가부장제에 악용되어 산전 성감별로 수많은 여아의 낙태를 초래하였다.

7. 여성과 여자 어린이

29. 그러나 남녀의 근본적 존엄은 평등하다는 것이 인정되고, 교육적 향상과 성취, 가족 부양에서도 평등이 이루어짐에 따라, 아시아 가정에서 남편의 전통적인 권위적 역할이 점차 도전을 받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최근 몇 년 동안 여성의 역할은 서서히 점진적으로 변화하였다. 사회의 더욱 가난한 계층의 여성들이 직업 교육을 받는 것은 심리적 선택이라기보다는, 남편이나 아들들이 가족을 부양할 만큼 충분한 돈을 벌지 못할 경우, 자녀 양육에 보탬이 되거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하여 밖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제적인 압력 때문이다. 그 결과 어머니와 딸들의 전통적인 가사 역할과 자녀 양육 역할의 상당 부분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러한 역할 변화는 단지 전통적인 가사 역할의 책임이 가정부나 가난한 친척과 같은 경제 수준이 낮은 사람들에게 넘어간 것을 의미할 뿐이다. 학교나 정부 관청에서 온종일 일하는 어머니들의 경우가 그러하다. 여성의 이러한 가사 역할에 대한 책임의 변화는 특히 아이 보는 여자나 가정부, 심지어는 조부모가 자녀와 가정을 돌보는 반면에, 아내는 의사나 간호사, 기술자, 교사, 변호사, 사업가 등 자신이 선택한 직업에서 온종일 일하는 도시 지역에서 두드러진다.

30. 그러나 남편과 아내의 평등한 관계를 향한 점진적 변화도 매 맞는 아내의 경우나 가정과 일터에서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다른 여러 형태의 차별과 억압을 가로막지는 못하였다.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는, 특히 농촌 지역에서는 유감스럽게도 아내와 여자 어린이에 대한 폭력을 전통적으로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한 나라들에서 아내들은 부담스럽고 억압적인 지참금 전통 외에도, 남편의 직계 확대 가족의 일부가 될 만한 진정한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자 노력하여야 하는 또 다른 부담을 안고 있다. 남아는 선호되는 반면, 여아는12) 어릴 때부터 차별을 받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영아 살해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아시아의 많은 지역에서 성매매 목적으로 국내 또는 해외로 여성을 인신매매하는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나고 있으며 어린이도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모든 사목 도전은 적절한 사목 대책을 촉구한다.

31.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여성 해방 운동이 아시아에서 이룬 긍정적인 발전에 주목한다. 그러한 발전은 가정 폭력과 여아 낙태 문제, 남성과 여성, 남편과 아내, 아들과 딸 사이에 더욱 평등한 관계를 발전시켜야 할 필요성에 대중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아시아 모든 나라에서 여성, 특히 어머니들이 사회적 정치적 주장과 협력, 그라민 은행(Grameen banking), 충분한 기술, 문맹 퇴치와 건강 증진 프로그램 등을 통하여 사회 해방을 위하여 일하고 있다.

8. 가정 안의 청소년

32. 우리 삶에 끼어든 정보 기술과 대중 매체를 생각해 볼 때, 새롭게 떠오르는 양면적인 포스트모더니즘 문화가 가정의 지성소에 파고들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는 특히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넓어진 교육 기회를 지닌 청소년들은 커뮤니케이션 세계에 접근하기도 더욱더 쉬워졌다. 청소년들은 기술 문화의 새로운 언어로 다른 이들과 의사소통을 한다. 가정 안에서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내야 할 필요성이 그토록 절실한 것도 이 때문이다. 청소년기는 청소년들이 그들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탐구할 시기이다. 부모의 지도가 없으면, 새로운 문화의 가치들을 때로는 무비판적으로 흡수한다. 그 결과 새롭게 떠오르는 문화는 노인과 청소년 사이에 가치관의 격차를 벌여 놓는다. 젊은이들 스스로도 가치의 위기를 겪기도 한다. 청소년들은 전통적인 가정에서 소중하게 여기지만 언제나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가치들과, 또한 언제나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집 밖 세계의 세속적 가치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가족 관계가 쇠퇴함에 따라, 청소년들은 현실 도피에 빠지거나 때로는 그들의 고민을 잊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착각에서 약물에 의존할 수도 있다.

33. 그러나 이전의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정기 총회들이 지적하였듯이, 아시아의 젊은이들은 흔히 여러 나라에서 사회적 종교적 변화의 선봉에 서 있으면서, 다양한 사회 해방과 옹호 운동을 이끌고 교회의 쇄신 운동에 참여하며 교회의 사목 프로그램과 소공동체 운동의 지도자로 떠오른다. 5대 주요 사목 우선 과제의 하나로 아시아의 젊은이를 꼽음으로써13) 젊은이의, 젊은이를 통한 희망은 더욱 자라난다. 아시아는 젊은이들의 대륙이므로, 젊은이들은 아시아 교회의 미래일 뿐만 아니라 현재이기도 하다.

9. 어린이 노동

34. 아시아 가정에 나쁜 영향을 주는 또 다른 현상은 만연한 어린이 노동 관행이다.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으로 수많은 어린이가 노동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부모가 자식을 가족 전체의 행복을 위하여 사용할 ‘재산’으로 여기는 문화적 사고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부모가 직접 자녀들에게, 가정의 수입을 보태고 식탁에 더 많은 음식이 올라오게 하며 자기 교육비의 일부라도 보태게 하려고 길거리나 공장, 상점 등에서 일거리를 구하도록 허락하거나 부추기기도 한다.14) 그러나 어린이 노동은 필연적으로 어린이의 완전한 성장과 발전의 저해, 높은 문맹률, 영양실조, 부모도 집도 없는 ‘거리의 아이들’, 높은 어린이 범죄 발생률을 낳는다.

10. 환 경

35. 아시아의 환경 파괴 또한 아시아 가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랜 기간 균형을 이루어 왔던 생태계가 단기간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삼림 자원과 수자원의 체계적이고 때로는 무자비한 파괴로 희생되고 있다. 가뭄과 홍수는 흔히 그러한 파괴의 결과이며, 토양의 생산성이 떨어짐으로써 농가의 수확률도 상당히 감소하였다. 불규칙하게 형성된 아시아의 대도시 지역에서는 환경 파괴가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주요한 문제가 되고 있는 대기 오염과 비효율적인 쓰레기 처리는 여러 가지 질병, 특히 호흡기 질환을 일으켜 무엇보다 도시 빈민 가정의 삶의 질을 더욱 떨어뜨리고 있다.

11. 인구 문제

36. 또한 정부의 인구 정책은 특별히 가난한 가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흔히 주장되듯이 인구 정책의 전체적인 목표는 식량 생산 감소에 대처하기 위한 적정 인구수와 인구 감소이다. 과거 30년 동안의 인구와 식량 생산 동향으로 그 오류가 자주 입증되어 온 맬서스의 인구론을 기본적으로 허위로 보는 경제학자들의 견해가 과학적으로 타당함에도, 이 이론은 여전히 정부의 공식 의견의 일부가 되고 있다.

37. 빈곤국의 인구와 관련한 선진국의 정치 경제 계획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들에게 개발 원조를 하면서 인구 감소 대책을 입법화하도록 요구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대책은 인공 피임을 강조하고, 적어도 일부 경우에는 낙태의 법제화를 옹호한다. 세속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경제 발전 이념에 바탕을 둔 이러한 대책들이 ‘죽음의 문화’를 조장하는 것은 자명하다. 젊은이들 사이에 퍼져 있는 피임 정서와 혼전 성관계의 증가는 전 세계적인 세속적 문화의 만연과 무관하지 않다.

38. 또한 인구 조절 계획에는 더 나은 상황과 기회를 찾아 떠나는 수많은 아시아인의 해외 이민 현상이 경제적인 위협일 뿐만 아니라 때로는 안전에 대한 위협이라는 믿음이 있다. 다른 한편 아시아의 많은 관측자들은 가난한 사람을 목표로 삼는 빈곤국 정부의 인구 감소 정책이, 더욱 정의로운 자원 분배와 더욱 공평한 개발 이익의 분배를 위하여 필요한, 빈곤 감소를 위한 사회 구조적 개혁이라는 더욱 힘든 과제의 중요성을 실질적으로 깎아내리고 있다고 믿는다. 위의 경우와는 대조적으로, 심각하게 낮은 출산율과 인구의 고령화를 겪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상황은 노동력 감소와 공공 연금 제도의 악화라는 큰 문제를 낳고 있다. 이들 나라는 현재 인구를 증가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15)

39. 공식적인 국제기구들과 아시아의 민간 또는 준정부 기구들과 연합한 힘 있는 로비 단체들은 정부의 인구 정책과 그 밖의 수단들을 이용하여, 인간 생명과 가정, 자녀, 혼인 등에 관한 세속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생각들을 받아들이도록 정부와 여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인간 생명이 임신[受精]되는 시점, 태어나지 않은 인간 생명을 죽이는 일, 남녀간의 평생의 약속인 혼인의 특성, 여성 건강의 의미, 인간의 선택과 관련한 인간 신체에 대한 ‘인권’의 개념 등 모든 것이 재정의되고 있다. 지역 해방 운동 단체와 연대하는 서구의 각종 해방 운동의 줄기를 통하여 그리고 대중 매체와 법률을 통하여 모든 아시아 국가에 유입된 이러한 철학 개념들은 교회의 가장 근본적인 일부 교리에 역행하는 것이다.

12. 가정과 에이즈

40. 아시아에서 에이즈의 망령이 거론되는 또 다른 이유는 정부의 인구 정책에서 ‘안전한 성’의 개념과 인공 피임의 사용을 강조하려는 데에 있다. 따라서 인구 조절 캠페인은 ‘출산 보건에 대한 권리’라는 모호한 용어를 사용하여 ‘안전한 성’의 문제를 건강과 정치의 문제로 전략적으로 변화시켰다. 이렇게 하여 이 문제의 윤리적 차원은 편의에 따라 무시되어 왔다.

41. 사실, 우리는 에이즈가 아시아 여러 나라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는 질병이라는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에이즈는 불길한 징조로 엄청난 비율의 아시아인에게 재앙이 되어 가면서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아시아 교회는 몇몇 사목 영역에서 ─ 에이즈 환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연민의 보살핌을 통하여 의료적으로, 국가의 입법 기관에 원칙에 의거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정치적으로, 그리고 특히 에이즈 관련 문제들과 연관이 있는 사회적 영역에서 교회의 도덕 교리들을 가르치고 끊임없이 옹호함으로써 도덕적으로 ─ 에이즈에 맞서야 한다. 이러한 각각의 영역에서 아시아 가정들은 온 교회가 식별하고 지원하고 증진하여야 할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가정들은 에이즈 문제에 대처하는 것 이외에도, 도덕적 의학적 사목적으로 모두 중요한 다른 건강 문제들에도 대처하여야 한다. 따라서 교회는 예를 들어, 약물 중독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체적으로 적절한 보살핌을 베풀도록 요구받고 있다.

13. 전쟁의 한가운데 있는 가정

42. 아시아 여러 곳에서 수많은 가정이 여러 가지 이유로 발생한 무력 전쟁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 수없이 많은 가정이 산발적이거나 지속적인 소규모 전투로 정기적으로 집을 떠나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부모들은 두려움, 긴장, 불안, 불안정 때문에 가정의 안전과 미래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자녀 교육은 중단되고 위태로워진다. 질병은, 피난민 막사의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자활을 위하여 노력하는 난민 가정들을 위협하고 있다. 더욱 깊은 차원에서 볼 때, 씁쓸한 일이지만 난민 가정들은 아시아의 정치, 경제, 이념, 민족, 종교 분쟁의 핵심에 있는 편견과 선입관, 관점, 태도, 가치관 등을 내포하고 있다. 자민족 중심주의와 근본주의는 이러한 분쟁의 특징이다. 전쟁을 겪는 어린이들은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슴속에 품고 있던 갈등의 씨앗들을 미래로 가져가 전쟁이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실질적인 가능성을 안고 자라난다. 전쟁으로 고통 받는 일부 국가에서, 전쟁의 피해와 고통을 가장 많이 겪는 어머니들이 평화의 옹호자로 뭉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자녀를 기르고 돌보는 데에 헌신적이고, 마음 깊은 곳의 요구에 민감하며, 열렬한 평화주의자인 여성, 아니 어머니는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유지하는 데에 특별한 역할을 해 왔다.

14. 생명에 대한 생물 유전학의 위협

43. 오늘날 놀랄 만큼 급속한 과학의 발전은 인간 생명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넓혀 주었으며, 소중한 과학 지식을 계속해서 제공하고 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인류에게 엄청난 도움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미래에는, 지금까지 치료법이 알려지지 않은 불치병들도 치료될 수 있을 것이다. 신앙의 관점에서 이러한 발전은 하느님의 무한한 창조력에 대한 우리의 경외심을 무한히 증대시켜 왔다. 다른 한편, 이러한 놀라운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첫 순간부터 생명이 지니는 존엄과 거룩함 그리고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인간이 관리하는 일과 관련한 근본적인 생명 윤리 문제들이 생겨났다.

44. 인간 배아 복제를 통한 배아 줄기 세포의 생산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병든 신체 부위를 치유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치료 가능성이 곧바로 인정받았다. 배아 줄기 세포는 치료 목적이나 시험관 수정을 통한 출산 목적으로 생산된 인간 배아에서 추출된다. 수많은 인간 배아가 배아 줄기 세포 생산을 위해서 파기된다. 그 이후, 한국의 몇몇 과학자들이 배아 줄기 세포 생산에 성공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2003년 일본 주교회의는 국가 생명 윤리 위원회에 의견서를 제출하여 연구 목적과 치료용 인간 복제를 위한 인간 배아 생산에 반대하였다. 과학자들, 윤리 신학자들, 윤리학자들, 종교 지도자들 사이에 열띤 논쟁이 진행 되고 있다. 이러한 발전은 아시아에도 무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일부 아시아 국가들에서 실험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교회의 가르침에 반대되는 생각들이 인간 배아의 생산과 파기를 정당화하는 데에 악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인간 배아는 인간이지만 인격체는 아니라는 생각이 그러하다. 우생학적으로, 우량 인간이나 ‘맞춤 아기’ 그리고 우량 인종을 과학적으로 선별하여 생산하려는 유전학의 망령이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하는 인류에게 다가오고 있다.

45. 명백히, 인간 배아 복제와 인간 배아의 파기를 통한 배아 줄기 세포 생산은 인간 존엄과 인간 생명의 신성함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다. 말하자면 치료나 출산 목적의 선한 의도라 하더라도 적절한 배아 줄기 세포를 얻기 위한 인간 배아의 생산과 조작, 파기는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16) “교황청은 출생 후의 인간 줄기 세포에 대한 연구를 지지한다. 최근의 연구들이 입증하였듯이, 이러한 시도는 인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조직 이식과 세포 치료를 할 수 있는 안전하고 유망하며 윤리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17) 사전에, 교회는 아시아의 문을 두드리는 이러한 발전들에 대해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15. 가정과 교회/인간 기초 공동체

46. 아시아에서 참으로 긍정적인 발전의 하나는 교회가 되는 새로운 길을 향하여 교회/인간 공동체를 건설하는 일에서 가정이 담당하는 지위와 역할에 대한 인식이 커졌다는 것이다. 가정은 바로 사회의 기초 단위이며 근본적인 교회 공동체 곧 가정 교회이다.18) 오늘날 아시아에서는 가정이 완전한 복음화의 중심이 되어야 하고, 교회/인간 기초 공동체, 나아가 전체 지역 교회에 없어서는 안 될 기본 요소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증대하고 있다. 다시 말하여, 교회는 본당 사목구가 아니라 가정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 비추어 사목 계획을 재고하여야 한다. 본당 사목구를 구성하는 소공동체 건설을 위한 여러 가지 계획에서, 본당의 모든 사목 계획이 가정에 초점을 맞추도록 가정과 구역 단위 가구에 이미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16. 요 약

47. 우리는 사목 상황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소들을 식별하였다. 그 가운데는 죽음을 초래하는 요소들과 생명을 주는 요소들이 있다. 새롭게 등장하는 세속적인 포스트모더니즘 문화는 양면적이다. 이 문화는 완전한 생명 문화의 발전에 긍정적인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고, 문화 경제 정치 종교적 요인과 구조들은 아시아 가정들에 긍정적 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경제와 문화의 세계화 과정으로 촉진되는 아시아의 대량 빈곤, 분열, 갈등, 착취와 억압적 구조와 같은 다른 요소들은 죽음을 초래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은 삶의 질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많은 아시아 가정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기도 한다. 심지어 유전학의 발전은 생명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카스트 제도, 가부장제, 성차별, 빈곤, 어린이 노동, 토지 문제, 생태계 파괴와 사회적 갈등은 명백히 죽음을 초래하는 주요 세력들이다. 그러한 위협적 요소들은 확대 가족의 긴밀한 유대, 자녀에 대한 사랑, 노인에 대한 존중과 보살핌, 조화, 깊은 도덕적 종교적 의식, 생명에 대한 깊은 존중과 태내 생명에 대한 보살핌, 신성한 것에 대한 깊은 경외감 등 전통적으로 아시아 가정의 특징이 되어 온 긍정적인 가치들을 깎아내린다. 그러한 세력들은 생명의 기원과 본질, 가정과 혼인의 본질과 구조에 대한 우리의 종교적 인식을 위협하고 있으며, 임신[受精]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 생명에 대한 책임 있는 보호, 남녀간 혼인의 성사적 성격과 하느님께서 혼인에 부여하신 목적에도 위배된다. 한 마디로, 아시아의 사목 상황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생명, 그리고 아시아 가정의 일치와 화목 ─ 친교와 연대 ─ , 하느님의 사랑과 생명 그리고 하느님께서 인간과 맺으신 계약에서 비롯함으로써 한때는 피조물 전체를 특징지었던 하느님 나라의 가치들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성서적 가치들이 우리의 신학적 - 사목적 성찰의 주제가 될 것이다.

48. 사목 상황은 아시아 교회의 가정 사목에 참으로 커다란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약 20년 전에 아시아 주교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아시아에서 교회에 대한 가장 커다란 도전은 아마도 아시아의 가정이 제기하는 도전일 것입니다. 아시아의 가정은 빈곤과 억압, 착취와 타락, 분열과 갈등 등 아시아의 모든 문제를 응축시켜 놓은 세포입니다. 가정은 아시아의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문제들로, 그리고 여성, 건강, 노동, 직업, 교육 등과 관련된 문제들로 직접적인 침해를 당하고 있습니다.”19)

49. 따라서 이런 것들이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최우선적인 사목 문제들이다. 아시아 교회, 특히 가정 교회가 위와 같은 사목적 도전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겠는가? 교회는 어떠한 방식으로 생명과 아시아 가정의 일치, 친교, 연대에 영향을 미치는 죽음을 초래하는 세력들과 생명을 주는 요소들을 사목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적절하게 성찰할 수 있을까? 또한 교회는 어떻게 아시아 가정을 위한 적절한 사목 계획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까?

 

제2부 신학적 사목적 성찰


가. 성찰의 틀과 과정

50. 이러한 신학적 사목적 성찰의 목적은 위의 문제들에 대하여 신앙의 응답을 제시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성서와 교회의 가르침의 내용들을 묵상하고,20) 교회의 복음화 사명에 도전이 되는 사목 상황의 주요 요소들을 언제나 명심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들에 응답을 줄 수 있다. 성찰의 틀은 일반적으로, 생명, 친교, 연대 그리고 선교가 될 것이며, 다음과 같은 주제별로 진행될 것이다.

가. 우리는 특별히 혼인과 가정을 지향하면서 완전한 생명 문화의 전망을 제시함으로써 아시아의 죽음의 문화에 대응한다. 우리는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생명을 중심으로 한 완전한 생명 문화, 곧 개인과 가정, 사회들 사이의 사랑, 친교, 연대와 같은 하느님 나라의 가치들이 다스리는 생명 문화를 계획한다.

나. 우리는 이러한 완전한 생명 문화를 하느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통하여 주신 선물이며 임무로 제시한다. 예수님께서는 인간 생명을 신성한 것으로 들어 높이셨고 성령을 통하여 교회 안에서 우리와 그 생명을 나누셨다.

다. 이어서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완전한 생명에 대한 약속이자 표지가 되는 하느님의 가족인 교회 자체에 대하여 성찰한다. 예수님과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는, 태초부터 가정이 지니게 되어 있는 모든 복음적 가치를 위협하는 죽음의 문화에 대한 신앙의 응답이다. 많은 아시아 가정의 다원적 특성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이러한 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라. 나아가 우리는 그리스도교적 전망에 관하여 묵상하면서, 계약과 사랑, 친교, 연대라는 근본적 가치들에 비추어 하느님께 받은 혼인과 가정의 특성을 성찰한다. 우리 성찰의 취지는 가정을 단순히 복음화하고 정체성을 찾도록 이끌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가정을 하느님 나라의 완전한 생명 문화를 지향하는 주체, 자신 안의 내적 선교(missio ad intra)와 다른 이들에 대한 외적 선교(missio ad extra)의 주체로 보려는 것이다.

마. 우리의 묵상이 추상적이고 무익한 것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이 묵상을 아시아의 사회, 문화, 교회의 몇몇 주요한 과제들에 적용한다.

바. 완전한 생명 문화를 지향할 사명을 지닌 가정에 관한 우리 묵상의 최종 단계는 위의 모든 단계를 통합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시아 가정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는 데에 필요한 영성에 관한 묵상이다.


나. 완전한 생명 문화

52. 새로운 문화는 확실히 우리 세계에 여러 가지 긍정적인 공헌을 하지만, 그 문화를 완전한 생명 문화로 변화시켜 복음화하고 해방하여, 완전한 인간 생명에 해가 되지 않도록 하는 일은 아시아 가정의 과제이다. 생명의 문화와 생명 문화에 대한 위협의 심각성을 이해하는 데에는 아시아의 고대 종교적 철학적 전통들이 확실히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사목적 신학적 성찰은 우리의 종교적 신앙의 관점에서 나올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인간 생명을 전체적인 의미에서, 다시 말하여 고유한 존엄성을 지닌 생명 그 자체로, 하느님의 선물로,21) 하느님 생명의 일부로,22) 충만하고 영원한 삶을 위하여23) 끊임없이 투쟁하며 오늘을 사는 생명으로, 다가올 하느님 나라의 충만한 생명으로24) 이해하고 존중하여야 한다. 이러한 전체적인 관점에서 우리는 보편 교회와 더불어, 인간 생명을 비인간화하고 착취하고 억압하는 모든 것을 단죄한다. 생명을 위협하고 손상시키는 모든 상황, 관계, 구조, 행동, 행위는 생명 자체를 거스르는25) 죽음의 문화의 일부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 나라를 거스르는 것이다. 반면에, 생명의 문화는 임신[受精]되는 순간부터 충만한 삶을 위한 지상의 투쟁을 거쳐 마침내 죽음과 세상 종말에 이르러 하느님 나라에서 하느님께 온전히 돌아가 심판을 받을 때까지 온전한 인간 생명을 존중하고 증진하며 향상하고 그 생명에 이바지한다.26) 이러한 완전한 생명에 대한 전망은 ‘생명 수호’의 의미와 가정 사목의 범위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1. 계약의 사랑과 생명, 친교와 연대

53. 성서에 따르면 완전한 생명 문화의 바탕에는 모든 생명, 특히 인간 생명을 지으시고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있다.27) 창세기에서 우리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인류와 친교를 나누신다는 일종의 암시를 발견하기도 한다.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 하느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셨다.”28) 그러므로 인간 생명은 오로지 하느님의 사랑에서 시작된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지어진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의 생명은 그 사람이 아무리 가난하고 지위가 낮더라도 귀중하고 거룩하다. 의심할 여지없이, 성서의 창조 이야기는 인간의 창조를 정점에 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창조 행위로 천지 만물이 참으로 상호 의존 관계로 연결되어 있고, 인간은 그 만물에 대하여 고귀한 의무와 영예로운 관리 직분을 행사함으로써 사랑으로 보살피시며 다스리시는 하느님의 지배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따라서 하느님의 본래 계획에서는 모든 피조물이 상호 의존하고 조화를 이룸으로써 연대를 이루게 되어 있었다. 인간에게 그러한 연대는 언제나 자유 선택에 따른 것이었으며, 따라서 벌거벗은 권력(naked power)으로 인위적으로 연대를 구축하는 것을 방지하였다.

54. 신약은 하느님의 계획이 완전한 정점에 이르게 한다. 사실, 모든 피조물의 정점과 중심에 그리스도께서 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이시며 만물에 앞서 태어나신 분이시다. 만물은 그분을 통해서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29)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만물을 당신과 화해시켜 주셨으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곧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로 평화를 이룩하심으로써,” 모든 깨진 관계들이 화해를 이룬다.30)

55. 하느님과 구약의 선택된 백성이 맺은 계약은 생명의 문화를 이룬 결정적인 계기이다. 주님께서는 생명을 보장하려면 어떠한 일을 해야 할 것인지를 명시하신다. 곧 사람들이 주체로서 자유로운 순종으로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계약 관계가 흔히 긴밀한 가족 관계, 특히 부부 관계로 표현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예를 들면 하느님께서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애정으로써 선택된 백성을 돌보아 주시고 또 그러한 애정을 베풀어 주신다.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팔에 안아 키워 주고, …… 인정으로 매어 끌어 주고 사랑으로 묶어 이끌고 …… 허리를 굽혀 입에 먹을 것을 넣어 주었다.”31) “어미가 자식을 달래듯이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32) 신랑과 신부 사이의 친밀한 언어도 사용된다.33) 다음 말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좋은 예이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내 사람이다 …… 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귀염둥이, 나의 사랑이다.”34) 하느님께서 선택된 백성과 맺으신 계약의 가족 관계는 무한한 인내와 애정, 쇄신에 대한 꾸준한 요청, 자비와 용서를 특징으로 한다.

56.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사랑의 섭리로, 계약의 백성은 모든 사람과 활발한 연대를 맺도록 요구받는다. 이는 다른 사람들, 특히 가난한 사람, 고아, 과부, 이방인들을 섬길 임무를 요구한다.35) 결국, 어리석은 배신으로 계약 관계가 근본적으로 깨진 듯 보일 때, 하느님께서는 생명을 주시는 사랑으로 돌 같이 굳은 마음을 유순한 ‘새 마음’으로 완전히 바꾸어 놓으시리라고 약속하신다.36)

57. 구약 성서에서 완전한 생명 문화는 명백히 다음 네 가지를 주로 강조하고 있다. 곧 하느님의 사랑의 선물인 생명, 하느님과 다른 사람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나 곤궁한 사람들과 이루는 친교와 연대 그리고 그들에게 봉사할 사명, 계약의 요구, 마지막으로 충만한 생명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이 그것이다. 이러한 전망은 의인이 구원받고 인간의 모든 소망이 이루어지는 종말에 올 하느님 나라에 관한 구약의 핵심 주제에서 완성될 것이다.37)

2. 생명이신 예수님: 사랑과 친교와 연대의 나눔

58.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신비에 비추어 볼 때, 생명은 하느님의 생명 자체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충만한 계시의 의미를 지닌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38) 당신의 외아드님을 보내시어 죄를 제외하고는 우리와 같은 인성을 지니시도록 하신 것만큼 숭고하고 뛰어난 하느님의 사랑은 없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말씀39)이시라는 것을 믿는다. 생명의 지배자이신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어 놓으실 수 있고, “다시 그 목숨을 얻으실”40)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마침내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며 이렇게 선언하신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41) 그런 다음 당신 말씀을 믿고 지키며, 긴밀한 사랑의 친교를 이루라고 말씀하신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잘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나의 아버지께서도 그를 사랑하시겠고 아버지와 나는 그를 찾아가 그와 함께 살 것이다.”42) 생명 자체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지상 사명은 생명을 주고, 다른 사람과 구원의 연대를 이루는 일이라고 설명하신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43)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주시는 당신의 사명과 하느님 나라를 되풀이하여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하느님 나라는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위한 곳이며,44)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45) 완전히 새로운 가르침을 주신다. ‘생명’, 곧 완전한 생명은 첫 제자들이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통하여 경험한 것이다. 요한은 그들의 경험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들이 ‘듣고’ ‘보고’ ‘바라보고’ ‘손으로 만진’ 것은 물리적으로 현존하실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속성을 지닌 생명, 곧 초월적인 생명을 지니신 분이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완전한 생명을 주러 오신 분이었다.

59. 이 새 생명은 세례 때 주어진다. 신자들은 세례를 통하여 죄로 생겨난 죽음에서 그리스도 안의 생명으로 옮아간다.46)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하는”47) ‘생명수’는 예수님에게서 나온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며 세상에 생명을 주는”48) “생명의 빵”49)이시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생명의 빵은 바로 당신의 몸과 피인 성체성사의 성체이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50)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51)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는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52)라며 기뻐 소리칠 수 있었다. 또한 요한 복음사가도 “우리는 모두 그분에게서 넘치는 은총을 받고 또 받았다.”53)라고 선포하였다.

3. 성령 안에서 얻는 계약의 생명: 하느님의 가정인 교회

60. 그러나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에는 신자들과 예수님의 인격적 관계 이상의 것이 있다. 이제 “예수님의 피”로 봉인된 계약의 사랑과 생명이 다시 한 번, 하느님과 새 계명을 받은 새로운 신앙의 백성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의 핵심에 놓인다. 새 계명은 또한 선교이다.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54) 예수님 자신의 몸과 피, 예수님의 온 생명을 신자들과 나누는 일보다 더 깊은 사랑과 생명의 친교는 없다. 예수님의 희생적 사랑은 새로운 공동체, 곧 성령 안에서 태어나는 신앙의 가정을 이루게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며 하느님께 ‘당신 성령을 맡기실’ 때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교회에 ‘당신 성령을 보내주신다.’”55) 그리하여 교회는 새것이 되고,56) 생명의 성령이신 예수님의 성령에게서 생겨난 하느님의 ‘집’, 하느님의 가족이57) 된다.58)

61.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은 성령 안에서 사는 삶이다.59) 신앙 안에서만 그러한 삶을 체험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의 몇 가지 표지가 있다. 그것은 곧 “성령께서 맺어 주시는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그리고 절제이다.”60)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61)라고 씀으로써 사랑의 언어로 하느님 나라의 생명에 대한 관점을 설명한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삶에 반대되는 것은 육정을 따라 사는 삶이다. 그것은 바로 “육정이 빚어내는 일인 음행, 추행, 방탕, 우상 숭배, 마술, 원수 맺는 것, 싸움, 시기, 분노, 이기심, 분열, 당파심, 질투, 술주정,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 그 밖에 그와 비슷한 것들”로서, 바오로 사도는 “내가 전에도 경고한 바 있지만 지금 또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일삼는 자들은 결코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62)라고 말한다. 새로운 계약이 근본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이러한 “육정이 빚어내는 일들”을 삼가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계약 관계를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사명이라는 말로 요약한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자유를 주시려고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여러분의 육정을 만족시키는 기회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은 사랑으로 서로 종이 되십시오.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신 한마디 말씀으로 요약됩니다.”63)

62.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사는 삶은 모든 사람과 또 모든 사람을 위하여 친교와 연대를 맺는 삶이다. 이러한 친교와 연대는 바오로 성인이 교회를 가리켜 하나하나의 지체가 모두 중요하고 상호 보완적인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할 때 한층 더 깊은 의미를 지니게 된다. 지체는 서로 다르지만 몸은 하나이다. 몸에는 다양성 안의 일치, 서로 다름 안의 상호 보완성, 전체를 이루기 위한 공동 책임이 있다.64)

63. 구약성서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약성서에서도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의 선물, 충만한 생명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 사랑, 친교, 연대와 선교는 완전한 생명 문화의 근본 특징을 이루는 중요한 실재들이다. 하느님은 생명이시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에 우리는 살아 있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사랑하여야 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친교와 연대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이러한 성찰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예수님의 복음을 ‘생명의 복음’이라 부를 수 있는 까닭을 이해할 수 있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 오실 분”이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가 충만한 생명의 나라인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다. 가정: 사랑과 생명, 계약과 친교의 지성소

64. 지상에서 하느님의 가족인 교회의 생활은 지금 여기에 있으며, 또한 언젠가는 온전히 다가올 하느님 나라의 충만한 생명을 미리 맛보게 하는 은총인 동시에 그 충만한 생명을 향한 여정에서 수행하여야 할 의무이기도 하다. 교회의 실재는 실제적 경험이며 또한 열망의 실현이다. 은총이며 의무인 교회 생활의 맥락에서 ‘가정 교회’인 가정은 더욱 깊은 의미를 지닌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가정은 이른바 죽음의 문화에 반대하여 생명 문화의 중심을 이룬다.”65)라고 말씀하셨다. 완전한 생명 문화는 가정에서부터 재발견되고, 새로운 힘을 얻으며, 우리의 새로운 환경에 맞게 다시 표현되어야 한다. 계약의 생명과 친교, 연대, 선교에 관하여 더욱 깊이 성찰해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1. 마리아와 요셉과 함께하신 예수님의 가정 체험

65.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예수님과 마리아, 요셉의 나자렛 가정을 탁월한 가정, 그리스도인 가정의 모범으로 생각해 왔다. 예수님은 나자렛 가정 안에서 인간 가정을 처음 경험하셨다. 이 가정은 마리아와 요셉을 아내와 남편이 되게 하신 하느님의 부르심에서 시작되었다. 복음서에서 말하고 있듯이,66) 마리아와 요셉은 그들을 부모로 부르신 소명의 신비를 신앙으로 밝히고 그들 외아들의 신비를 이해해야 했다. 그들은 날마다 이러한 근본적인 신비들에 직면해야 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 깊이 새겨 오래 간직하였다.”67) 이 모든 일은 사랑에 빠져서 혼인하는 남자와 여자의 평범한 운명이 아니다. 그러나 남편과 아내로서 함께한 그들의 삶은 실제로 단순히 목수와 목수 아내의 평범한 삶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들은 평범하지 않은 일들을 겪었다. 그들은 아기를 낳을 적당한 장소를 구할 수 없었지만 마침내 아기가 태어났을 때는 벅찬 환희를 느낀다. 성전에서 아기를 하느님께 바치면서 기쁨을 느끼지만, 아기와 어머니에게 앞으로 닥쳐올 고통을 암시하는 예언의 말 때문에 아픔을 느끼기도 한다. 낯선 땅에서 가족이 피난처를 찾아내고 기뻐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아들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죽음을 당하는 슬픔을 겪기도 한다. 아들을 사흘간 ‘잃어버려서’ 슬퍼하며 당황하였지만, 성전에서 찾아냈을 때에는 큰 안도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들은 “아버지의 집에 있다.”는 예수님 말씀의 참된 의미를 궁금해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마리아가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68)라고 대답함으로써 신앙 안에서 순종하며 자유로이 받아들인 계약 안에서 부모와 자식 간에, 가정과 하느님 간에 사랑과 친교의 유대를 더욱 강화시켜 준다.

66. 성서를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께서 기초적 신앙심이 집안에서 비롯되는 유다 인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라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을 몸소 체험하셨고 유다교의 특징인 영적 가치들, 곧 하느님에 대한 열정과 다른 이들에 대한 강한 관심을 배우셨다. 바오로 사도가 히브리 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그분은 복종하는 것을 배우셨습니다.”69)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곧 당시나 오늘날의 수많은 가정처럼 고통과 투쟁을 겪으면서도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법을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던 사람들에게 결국은 혈연의 유대를 초월하는 가정을 생각하도록 요구하시지만, “누가 내 어머니이고 형제냐?”70) 또는 “내 형제자매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에게 해 준 것이 ……”71)라고 말씀하시며, 가족 관계의 가치와 중요성을 결코 잊지 않으셨다. 마지막까지 예수님께서는 “아들”을 “어머니”에게, “어머니”를 “아들”에게 맡기심으로써 가족 관계를 권고하셨다.72) 예수님의 가정생활을 통하여 우리는 다시 한 번 계약의 사랑과 생명, ‘죽음에까지 이르는’ 친교, 연대 그리고 선교, 곧 핵가족의 한계에서 신앙의 가족과 그 이상의 가족으로까지 확대되는 선교의 주제를 만날 수 있다. 예수님과 마리아, 요셉의 가정의 길은 모든 그리스도인 가정의 길이다.

2. 혼인: 남자와 여자의 거룩한 계약

67. 가정의 출발에는 남녀 간의 거룩한 계약이 있다. 남자와 여자는 성적 차이를 지니고 있으므로 근본적으로 “일치를 지향한다.” “남성성과 여성성의 표징”을 지니는 그들은 처음부터 “혼인의 속성, 곧 인간을 선물이 되게 하는 사랑을 표현하는 능력을 지닌다.” 따라서 “남자와 여자는 처음부터 서로 ‘곁에서’ 또는 ‘더불어’ 살도록 부름 받을 뿐만 아니라, 상호 간에 ‘상대방을 위하여’ 살도록 부름을 받는다.…… 창세기 2장 18-25절의 본문은 혼인이 이 부르심의 첫 번째 차원 그리고 근본적인 차원임을 밝힌다. 그러나 이 사실 이외에도 인간 역사 전체가 이 부르심의 내용 속에서 전개된다.”73) 그러므로 가정의 근원이 되는 혼인은 “자신을 서로 주고받고”,74) 자신을 내어 주는 완전한 상호 관계 안에서 죽을 때까지 서로에게 사랑으로 충실하게 매여 있는75) 사랑과 생명의 계약이다. 이것은 죽을 때까지 완전히 자신을 내어 주는 혼인의 의미에 대한 놀라운 진리이다.

3. 그리스도의 사랑의 성사

68. 교회로 볼 때, 혼인은 친교의 성사이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그리스도의 보이지 않는 숨은 사랑을 가시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 또한 “그리스도와 교회의 일치”는 부부 사랑의 모범이다.76) 남녀의 친교의 성사적 유대는 그리스도와 교회가 맺는 사랑의 유대의 깊은 실재를 반영한다. 따라서 남편의 사랑은 신부인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마찬가지로 충실하고 희생적인 계약의 사랑이어야 한다. 남편에 대한 아내의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남편과 아내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성사이며 또한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성사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부부애, 부부 관계, 가정생활 안에 내면화되고, 부부의 영적 자양분과 성장의 원천이 된다. 그리스도의 이 사랑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알고 싶다면, 사랑하는 혼인한 부부들을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것이 바로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게 하는 혼인 서약으로 표명되고 혼인 반지나 또는 일부 아시아 문화에서 다른 상징물로 상징적으로 표현되는 사랑과 생명의 “위대한 신비”77)이다.

69. 바오로 성인이 남편에게 아내를 “사랑하라.”고 훈계할 때, 이러한 부부 사랑의 완전한 의미는 그가 아내에게 남편을 “존경하라.”고 가르침으로써78) 온전히 드러난다. 가부장적 환경에서, 바오로 성인이 남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셨던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혁신적이다. 남편들은 신부인 교회에 대한 신랑 그리스도의 사랑을 모범으로 삼아 아내를 사랑하도록 부름 받을 뿐만 아니라, 에페소서 5장 25절의 본문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사랑은 부부에게 상대에 대한 사랑의 원천이며 힘이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어의상 ‘존경한다’는 말에는 다른 사람의 참된 선을 ‘깊이 고려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추구하는 것”79)이다. 그러므로 바오로 성인이 비록 서로 다른 의무, 곧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을 존중할 의무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러한 가치는 완전한 의미에서 동일한 것이며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여야 한다. 상보성과 상호성은 부부 사랑에 본질적인 것이다.

70. 남편과 아내는 서로 사랑하고 존경함으로써 인간으로서 또 그리스도인으로서 함께 성숙해 가며, 올바른 부부 생활을 영위하고 책임에서 오는 어려움에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사랑은 나머지 가족에게로 퍼져 나가, 인내, 친절, 존경, 신뢰, 용서, 희생, 자비, 기쁠 때와 마찬가지로 슬프고 힘들 때에 견딜 수 있는 힘을 심어 준다. 또한 새로 태어나는 아기는 가정의 유대를 강화하고 즐거움을 준다. 새 생명의 축복을 받은 부모들은 흔히 그들의 힘을 뛰어넘는 생명의 선물에 경외를 느낀다. 이러한 생명 체험은 부부에게 가정의 실재 안에 현존하시는 생명의 하느님을 인식하고 미래를 내다보도록 권고한다. 행복은 더 나은 내일의 삶에 대한 꿈과 희망으로 넘쳐흐른다. 가정의 위대한 신비는 그 거룩한 내적 풍요로움 때문에 참으로 기쁜 소식이다.

4. 혼인으로 이루어지는 계약의 사랑: 부모와 자식 관계

71. “혼인의 제정자”80)이신 하느님께서는 처음부터, 혼인을 깨지 못하도록 명령하셨으며,81) 출산을 통한 하느님의 생명의 선물을 철저히 받아들이게 하셨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되는 것은 처음부터 하느님의 모습대로 지어진 남녀의 상호 보완성에 내포되어 있는 선물이다. “혼인 제도 자체와 부부 사랑은 그 본질적 특성으로 자녀의 출산과 교육을 지향하며, 그로써 마치 절정에 이르러 월계관을 쓰는 것과 같다.”82)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남편과 아내에게 “한 몸”83)이 되도록 주신 선물과, 사랑과 생명, 곧 부부 자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부부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만드시는 모든 새 생명의 일치는 분리될 수 없다. 사실 부부는 근본적으로 모든 새 생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느님의 사랑은 남자 아이든 여자 아이든, 장애아든 지극히 건강한 아이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그 누구도 차별하거나 배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어린이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이것은 불임 부부에게 낙인을 찍는 것이 전혀 아니다. 육체적으로 아이를 가질 능력이 없더라도, 하느님께서 주실 수 있는 모든 생명을 근본적이고 도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이미 하느님의 축복이며 은총이기 때문이다.

72. 그리스도인 부부는 하느님 나라와 신앙의 방식으로 자녀를 교육시키고자 함께 노력하여야 한다. 그들은 자녀에게 최초로 신앙을 가르치는 교사이다. 그러므로 남편과 아내는 교회가 제공하는 다양한 기회를 통하여, 또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서 그들 나름의 창의적인 방식으로 자녀들이 신앙 안에서 성장하게 하고 그들이 삶에서 신앙을 표현하며, 다른 이들 특히 또래의 아이들과 신앙을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예수님과 마리아와 요셉의 가정처럼 그리스도인 가정도 거룩함과 제자 직분을 가르치는 학교, 곧 하느님의 방식과 복음의 가치들을 배우고 실천하며, 주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명심하는 것이 하나의 삶의 규범이 되고, 자녀들이 하느님의 현존을 가장 먼저 체험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소수이며 학교 안에서는 종교 교육을 받을 수 없는 다원적인 아시아 사회에서, 자녀들에게 하느님에 대하여 가르쳐 줄 부부의 사명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신앙이 깊은 가정은 교회와 하느님 나라의 표지이다. 가족 간에 다른 교파나 종교가 공존하는 가정들에서 그러한 깊은 신앙심은 세속 문화의 신앙심 결핍 증대에 반대되는 표지이다.

73. 명백히 하느님께서는 자녀를 통하여 가정의 본성 자체에 미래의 씨앗을 심으시고, 노인을 통하여 과거에 대한 고마운 기억을 심어 주신다. 남편과 아내가 하느님의 경이로운 창조 활동에 참여하는 혼인으로써 하느님께서 주시는 초월적인 선물에 대하여 노인과 젊은이 모두 감사와 희망, 경외심, 존경으로 응답을 드린다. 그러므로 가정은 참으로 관심과 존경, 보살핌과 사랑, 하느님께서 주시는 오래되거나 새로운 보물의 보고이다.

5. 가정과 하느님 나라에서 인간관계

74. 우리가 성찰을 통하여 그리스도교의 독특한 특징들을 이끌어 내고, 혼인과 가정, 가정 안의 인간관계를 하느님 나라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한 가지 새롭고 중요한 차원이 추가된다. 우리는 교파나 종교가 다른 사람들 간의 혼인과 그렇게 이루어진 가정들도 마찬가지로 계약의 생명, 친교, 연대, 자기 증여의 상보성과 상호성의 가치들을 진실하게 공유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배우자는 혼인의 계약과 가정 안에 서로 신앙의 독특한 부요를 불어넣어 주는 한편, 자신의 배우자와 자녀들과 함께 하느님 나라를 향하여 함께 성장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75. 가정 안에서 계약의 생명, 친교, 연대, 선교의 근본적인 신학적 차원들은 추상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일상생활에서 가정 안의 실제적인 인간관계, 배우자 간, 부모와 자식 간, 형제와 자매 간에 사랑하고 보살피는 화목한 관계, 특히 가정이 큰 시련을 겪을 때 고통과 기쁨을 통하여 완전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가정의 여정, 이 모든 것이 구체적인 친교와 연대, 선교를 실현한다. 소속감, 친밀감, 온정, 기쁨, 우애는 가정의 깊은 친교를 드러내는 익숙한 표지들이다. 가정 문제 상담자들은 흔히, 그러한 인간관계의 열쇠는 말이나 행동을 통한 가족 구성원 사이의 질 높은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아시아의 가정 사목은 인간관계 형성을 하나의 중요한 사목적 관심사로 삼아야 한다.


라. 성소와 선교: “가정이여, 본래의 모습으로!”

76. 가정의 본성 자체에는 거룩한 성소와 선교가 새겨져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도 하느님 나라를 추구하도록 부름 받는다. 이는 모든 사람의 유일하고 공통된 성소이다. 혼인한 사람들은 혼인과 가정생활을 통하여 이 부르심에 응답해 왔다. 그들은 혼인함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였다. 그들이 혼인 생활과 가정생활을 하는 방식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충실을 나타낸다. 서로에 대한 사랑, 부부 행위를 통한 그 사랑의 표현, 자녀 양육, 물질 자원의 사용을 통하여 그들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서약을 표현한다. 사실 혼인은, 참된 의미에서, 하느님 나라를 근본적으로 지향하는 것이다. 

77. “가정이여, 본래의 모습으로!”라는 말은 가정을 선교로 부르는 것이다. 이 선교는 성사적으로 세례와 견진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이끌린 부부들은 혼인한 부부라는 그들의 정체성 때문에 선교로 재촉받고 있다. 혼인 안에서 혼인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그들의 하느님 체험은 그들을 선교사로 만든다. 그들은 바로 혼인한 부부이기 때문에 가정 안팎에서 수행해야 할 특별한 교회 직무를 가진다.84) 그들은 서로를 보살피며, 함께 하느님 나라를 추구한다. 그들은 자녀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무엇보다도 우선하도록 가르친다. 가족 전체가 서로를 섬긴다. 평상시에도, 걱정이 있거나 기쁜 일이 있을 때에도, 그리고 날마다 혼인 생활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상호 복음화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복음화는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보살피며 섬기고 각자의 책임을 완수하도록 서로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 줌으로써, 또 자녀를 사랑하고 돌봄으로써, 또한 자녀들이 사랑하고 순종함으로써 가정 안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진다. 특히 그리스도인 가정의 경우, “복음이 전달되는 곳이며 복음이 빛나는 곳, 모든 가족이 복음 선교를 하고 동시에 복음화되는 곳은”85) 바로 가정이다. 가정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될 수 있고 온전히 성장할 수 있는 곳이다. 가정은 여러 다른 생활 방식 안에서 선교 성소를 포함하여 봉사에 대한 감각과 열정이 길러지는 곳이다.86) 가정 안에서 날마다 이루어지는 인간관계의 상호 작용에서, 가족들은 하느님 나라와 구원의 복음인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한다. 이것이 바로 삶의 교리교육이다. 또한 남편과 아내, 그리고 그들 가정의 내적 선교(missio ad intra)이다.

78. 그러나 가족들은 가족 상호 간에만 하느님 나라와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다른 이들에게도 이를 선포하도록 부름 받고 있다.

“가정이여, 본래의 모습으로!”라는 말은 가정들을 외적 선교(missio ad extra)로 부르고 있다. 가정 안에서, 곧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 핵가족과 확대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발전하는 사랑의 관계는 선교의 차원을 띤다. 그들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87)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실천한다. 가정 전체가 교회라는 사실을 독특한 방식으로 조명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혼인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은 교회가 되고 되어 가는 하나의 길이다. 가정은 인간적 정을 쌓고 모든 가족 구성원의 개인적 행복을 위하여 노력함으로써 말과 행동으로 교회와 교회 구조 안에서 사랑과 생명 전수 관계의 실재와 중요성을 증진한다.

79. 가정은 하느님께서는 자신을 내어 주시는 사랑이시라는 그리스도교의 확신을 구체화한다. 가정은 특히 인간 고통이 극도로 만연되어 있는 상황에서 하느님의 자비와 선하심을 성사화한다. 가정 안에서 사랑을 배신하지 않는 헌신적이고 충실하며 자양분을 주는 사랑(친밀함)은, 하느님의 끊임없는 관심, 곧 하느님 가족인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무한하고 충실하며 용서를 베푸는 풍요로운 사랑에 대한 온전한 신뢰의 복음적 가치를 더욱 확실하게 해 준다. 그리스도인의 혼인과 가정에 대한 이러한 상징적 가치는 이기심과 무감각, 좁은 마음, 불성실 또는 경제적 심리적 사회적인 지나친 관심으로 무너지고 있는 가정과 혼인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

80. 하느님께서 피조물을 보시고 “좋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피조물의 외적 아름다움만을 의미하신 것은 아니었다. 하느님께서 피조물이 좋다고 생각하신 데에는 당연히 도덕적 영적인 차원이 있다. 온 세상이 좋은 것은 그것이 하느님의 계획에서 나왔고 하느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의 지배를 특징으로 한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신다. 그러한 도덕적 영적 차원은 하느님께서 최초의 남편과 아내이며 우리의 첫 조상인 아담과 하와에게 하신 말씀, 곧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88) 하신 말씀에 구체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의 이 말씀은, 단순히 외적인 명령의 의미를 넘어, 사람들에게 온 땅을 하느님의 선하심과 아름다움, 정의와 사랑으로 채우라는 말씀이기도 했다. 우리의 첫 조상은 죄의 실재와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경험함으로써 인간적 성장과 성숙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한계와 실패는 가정의 성소와 사명을 실현하는 데에 장애가 되지 못한다. 하느님께서 언제나 당신 백성을 보호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8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시련 한 가운데서 가정들을 부르시어, 인류 본래의 도덕적 정신적 광채가 다시 온 땅에 퍼져 하느님의 좋으심을 다시 한 번 유한하게나마 적절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도우신다.

81. 그러므로 다른 이들에 대한 가정의 선교는 사회와 문화, 정치, 교육의 영역으로 확대된다. 가정은 “또한 가장 효과적인 복음화의 매개체들 가운데 하나”90)이다. 이는 실제로 가정의 존재와 가족 관계를 강화하려면, 다시 말하여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 하느님 나라의 참된 표지인 가정을 건설하려면, 또는 참된 가정 교회를 건설하려면 교회의 지도자들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이것은 가족 구성원들이 하느님 나라의 가치나 복음의 가르침,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혼인과 가정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가정에 선교할 힘을 부여해 주는 과제이다. 어떻게 이러한 힘을 실어 줄 것인가 하는 것이 가정 사목의 주요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1. 선교와 경제의 세계화

82.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선과 정의, 하느님의 선하심을 드러내어야 할 모든 가정의 임무는 무엇보다도 도덕과 사회생활 영역에서 가장 시급하고 절실하다. 따라서 우리는 가정의 사명에 관한 사목과 성찰을 통하여 세계화 현상과 과정, 그리고 그것이 지닌 많은 문제점들을 다루도록 촉구받는다. 사실 세계화는,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이라는 뜻에서 20년 전에 등장한 용어가 더욱 현실화된 것이다. 우리는 세계화가 세계의 다양한 민족, 인종, 문화가 평화롭고 조화롭게 어울려 살고, 세계의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창조된 재화와 발전의 혜택을 공정하고 공평하게 나누며, 전 세계가 하느님 아래 하나의 조화로운 인류 가족을 이루어 전쟁이나 분열, 분쟁, 편견, 차별, 배타, 억압, 고립이나 소외가 들어설 수 없게 하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83. 그러나 현재의 세계화의 결과는 안타깝게도 우리가 마음속에 그리는 신학적 이상향과는 거리가 멀다. 사회 정의와 평화, 창조 보전, 서로에 대한 책임, 하나의 인류 가족의 공동선은 아직도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대다수 아시아 국가에서 세계화는 많은 경우에 불의, 가난, 착취, 억압과 환경 파괴를 더욱 악화시켰다. 극단적인 경쟁 추구는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범세계적인 다윈주의의 경제 문화 속에서 수많은 아시아 인을 뒤처지게 하였다. 바벨탑은 최초의 낙원을 계속해서 비웃고 있다. 신앙에 비추어 상황을 살펴보면 세계화는 현재 인류 가족에게 매우 해로운 길로 나아가고 있으므로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84.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세계화가 세계의 사회 정의에 이바지하려면 “연대를 통한 세계화, 소외 없는 세계화”91)가 되어야 한다고 적절히 지적하셨다. 그러려면 현재 세계의 더욱 부유하고 힘 있는 경제 선진국들이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자유 시장 세력을 올바르게 규제하여야 한다. 세계화는 국제법의 규범에 따라, 그리고 창조된 재화의 사용과 개발, 발전 혜택의 분배를 규정하는 보편적 윤리 원칙에 따라 규제되어야 한다. 교회의 사회 교리에서 가르치는 그러한 원칙들에는 창조의 온전한 보전, 창조된 재화의 보편적 이용, 인간의 완전한 발전, 발전 혜택의 공정한 분배,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선택, 가난한 이들을 발전에 참여시키기 등이 있다. 아시아 교회는 특히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를 통하여, 그 가운데서도 수차례의 사회 활동 주교 연수회(BISA)와 사회 활동 신앙 연수회(SAFEISA)를 통하여 이러한 원칙들을 꾸준히 가르쳐 왔다.

2. 가정과 문화의 세계화

85. 우리는 또한 문화의 세계화 문제와 포스트모더니즘 문화의 확산에 대처하여야 한다. 다행히 오늘날에는 공동선에 없어서는 안 될 근본 가치인 개인의 자율성과 인권이 적절히 증진되고 보호되고 있다. 따라서 지배적인 가부장 문화에 맞서, 아시아 여성의 권리를 강조하고 증진하여야 한다. 그러나 한편 오늘날에는 ‘사랑과 생명의 공동체’인 가정을 덜 중요하게 여기고, 경우에 따라서는 공동체를 희생해서까지 개인의 특정 권리를 지나치게 강조하며, 가정과 공동체의 선보다는 부부와 자녀들의 개인적 권리를 더욱 강조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모든 경우에, 서로 대립하는 양극단 사이에서 올바른 균형을 찾는 것이 미덕이다.

86. 그러나 혼인과 관련해서는 자유의 본질 자체가 위기에 놓여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흔히 자유의 개념을 “혼인과 가정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을 실현하는 능력”으로 이해하기보다는 “타인에게 해로워도 자신의 이기적 안녕을 위하여 자기주장을 펼치는 능력”92)으로 잘못 이해하기도 한다. 자유에 대한 이러한 잘못된 이해는, 우리의 신앙 전통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새로운 관습과 가치들, 예를 들면 이혼, 동성애 결합, 낙태, 그 밖에 국제연합의 여러 회의에서 사용하는 ‘출산 보건’이라는 모호한 말에 함축된 다양한 개념들을 법으로 제도화하려는 갖가지 시도에서 드러난다. 따라서 새롭게 떠오르는 문화에서 보편적 인정을 받고자 하는 새로운 ‘권리’들을 주의 깊게 식별하여야 한다.

87. 교회는 언어와 문화의 한계를 지니고 표현되기는 하지만 일정한 보편 진리들이 있다고 언제나 주장해 왔다. 한편 교리적 도덕적 상대주의는 그러한 진리의 가치를 폄하하고 진리는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비판가들은, 혼인을 성사로 여기고 동성애 결합, 이혼, 피임, 낙태를 부정하는 교회의 교리는 ‘시대에 뒤진’ 것이라고 조롱한다. 그들은 역설적이게도 교의적 확신을 가지고 ‘교회가 시대에 맞추려면’ 교회의 교리도 시대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가정의 복음화 과정에서 대처하여야 할 것은 이러한 새로운 문화의 교리적 도덕적 상대주의이다. 사실 우리는 이혼과 파혼, 낙태로 잃은 생명 등으로 엄청나게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따라서 진리는 크나큰 겸손과 연민과 사랑으로 가르쳐야 한다.93) 이러한 가르침이 부부와 그 가정들을 진정으로 배려하고 돌보는 사목에 요구된다.

88. 문화의 복음화에는 여러 차원이 있다. 우리는 우리 가운데 하느님께서 현존하신다는 것을 풍부하게 드러내는 우리 각자의 문화를 더욱 깊이 알아야 한다. 또한 우리는 우리 각자의 문화를 복음화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이 이해하는 하느님 계획과 일치하지 않는 듯한 전통과 믿음, 풍습과 관습들을 정화하여야 한다. 문화를 가장 먼저 만나고 받아들이는 곳인 가정은 문화를 발전시키고 정화할 수 있는 터전이다. 가정은 하느님 나라의 정신이 스며 있는 문화를 전달해 줄 기회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다른 종교와 신앙 전통 안에 성령께서 뿌리신 말씀의 씨앗에 비추어 우리 자신의 신앙을 서로 이해하여야 한다. 아시아 문화의 정신과 언어로 우리의 신앙을 표현하고 이해하고 거행할 수 있도록 이러한 성령의 선물들을 우리 문화 안에 통합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새로운 물질주의적 상대주의적 윤리 규범을 강요하려는 세계화가 제기하는 새로운 문화적 위협에 대처하여야 한다.

3. 가정과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

89. 새로운 세계 문화의 주요 통로는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커뮤니케이션의 전달력과 영향력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가난한 사람들도 한두 개 정도의 매체는 접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세계는 현대의 “첫 아레오파고”94)이며, 윤리적 차원을 지니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도구들은 “정보, 교육, 문화의 풍요, 나아가 영적 성장을 위한 무한한 기회”95)를 제공한다.

90.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정보와 교육, 지도와 영감을 위한 주요한 도구이다. 따라서 교회는 이러한 도구들을 이해하고 자신의 복음화 사명을 위하여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과 기술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매체들은 생명과 가정, 종교와 도덕에 대해서 부적절하거나 심지어는 왜곡된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가정에 큰 해를 끼칠 수도 있다.”96)그러므로 매체들을 복음화하고 정화하며 복음과 하느님 나라의 가치에 부합하도록 이끄는 것은 교회의 사명이다. 매체를 복음화할 수 있는 힘은 상당 부분 부모와 가정에 달려 있다. “가정과 사회 커뮤니케이션 책임자들의 대화”97)는 모든 가정에 유익할 것이다. 가정에서 매체 사용을 규제하고, 진리와 인간 존엄의 기준에 바탕을 둔 매체 지침을 발표하도록 공공 권위에 촉구할 필요도 있다. 효과적인 가정 사목은 가정을 이러한 중요한 임무로 이끌고 가정의 힘을 활용하여야 한다.

4. 가정과 사회 변화

91.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모든 가정은 그 본질상 사회적 역할이 있다. 특히 그리스도인 가정은 더욱 그러하다. 혼인 성사는 “그리스도인 부부와 부모에게 자신들의 소명대로 살아갈 힘과 투신을 부여하고, 동시에 현세의 일에 종사하며 그 일을 ‘하느님의 뜻대로 관리하며 하느님 나라를 추구할’ 힘과 투신도”98) 준다. 그러므로 “하느님 뜻대로 현세의 일을 관리”하거나 사회 변화에 이바지하는 일은 가정이 수행하여야 할 봉사, 곧 왕직 사명에 속한다. 그러나 그러한 사명은 그리스도인 가정이든 아니든 모든 가정의 사명인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어느 가정도 끊임없이 변화를 필요로 하는 이 세상과 결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하느님 나라를 향한 여정은 모든 가정의 여정이기도 하다.

92. 아시아에서 사회 변화는 적어도 사회 정의와 평화 추구, 깨끗한 공직, 창조 보전이라는 세 영역에서 절실히 요구된다. 불의는 흔히 가부장제와 같은 가정 구조를 포함한 사회 구조 안에서 자란다. 문화와 민족, 정치와 경제의 차이가 폭력과 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공직 부패라는 고질병은 단순히 태도의 문제만이 아니라, 젊은 공직자들의 이상이 맥없이 무너지고 결국은 ‘제도’에 짓밟히면서 구조적인 문제가 되었다. 환경 파괴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93. 사회 변화는 부모들이 태도를 바꾸고, 자녀들을 올바로 교육하며, 정의와 평화, 개인의 도덕성, 환경 보호와 같은 가치들과 관련하여 모범을 보여 줌으로써 가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동시에 자녀들은 정의롭고 투명하며 공정하고 친절하며 관대한 행위를 본능적으로 알아보는 감수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부모를 복음화한다. 또한 부모와 자녀가 다른 가정들과 연대하여 “가정 정치”,99) 곧 공직자들의 투명성과 책임감을 증진하거나 여당과 야당 사이에 중재와 화해를 촉진하는 정치적 개입을 통하여 사회에서 강력한 수호자 역할을 할 수 있다.

94. 그러한 가정 정치는 때때로 국가가 짓밟는 가정의 권리들을100) 수호하기 위하여 펼쳐야 한다. 그러므로 아시아 가정들은 교황청이 정부 간 기구와 국제기구들에게 제안한 ‘가정 권리 헌장’을 숙지하고 옹호하며, 이를 보호하고 증진하여야 한다.101) 이러한 권리들은 가톨릭 신앙에만 고유한 것이 아니라, 혼인과 가정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쉽게 종교 간 협력의 목적이 될 수 있다.

5. 가정과 종교 간 대화

95. 세계의 대종교들이 탄생한 아시아에서, 다른 종교인들과 만남은 일상생활 안에서 통상적으로 이루어진다. 바로 이러한 일상의 만남에서 복음의 가치를 증언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복음화 사명에 무엇보다 중요하다. 교회가 해석하는 성서의 가르침은 그리스도인 가정들이 그들의 생활 안에서 실천하여야 하는 가치들을 보여 준다. 복음화 사명을 수행하려면 그리스도인 가정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분명한 정체성을 늘 명심하고, 그리스도인의 임무에 충실하며, 그리스도교의 가치에 따라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 가정들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책임에 충실할 때에만 다른 신앙인들과 생명의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그 열매를 맺을 수 있다.

96.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모든 신자와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비록 같은 모양, 같은 정도는 아닐지라도 대화를 실천하도록 촉구받는다.”102)라고 말씀하셨다. 가정 차원에서 종교 간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방법은 실로 다양하다. 우선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 가정이 날마다 하여야 하는 복음의 가치들에 대한 증언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복음의 가치들 가운데에는, 임신[受精]에서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거룩함, 인간 존엄, 남녀 혼인의 거룩함, 거룩하게 제정된 혼인과 가정, 자녀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 각자의 성소에 따른 정결, 가난한 사람, 병자, 궁핍한 사람들과 이루는 연대를 들 수 있다.103) 공통의 가치들을 상호 존중할 때에 그러한 가치들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한 상호 협력이 가능해질 것이다.

97. 특히 가난한 이들과 이루는 연대는 그리스도인 가정이 다른 종교의 가정들과 함께 사회 정의를 증진하고 평화와 화해를 추구하며 환경을 보호하고자 행동하도록 확실하게 이끌어 주는 사회적 가치이다. 또한 이러한 종교 간 관계 안에서 기회가 되면 그리스도인 가정들이 그들이 체험한 하느님과 신앙, 예수님의 사랑을 다른 종교인들과 나눌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지나친 것이 아니다. 이것은 개종을 권유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우정과 일치를 나누고자 하는 것이다.104)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 가정이 구원의 기쁜 소식을 듣고 또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사람들에게 이를 전할 수 있는 능력을 불가능한 것으로 접어 두어서는 안 된다.105) 그리스도인 가정은 적어도 가족들의 모범을 통해서 그리고 그들 삶의 증거를 통해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여야 한다.

98. 한편, 특히 혼종혼의 경우에 종교 간 대화는 말의 대화이며 동시에 사랑과 생명의 대화가 된다.106)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남자와 여자가 사랑의 만남을 시작할 때에 종교적 차이에 대한 배려와 화해가 이미 시작된다. 말의 대화, 사랑의 대화는 교제와 혼인을 거쳐, 혼인 생활의 평범한 일상 사건들 안에서 생명과 사랑의 대화로 무르익는다. 그러한 대화의 태도와 가치들은 자녀들에게도 전달된다. 종교가 다른 이러한 부부들을 통하여, 종교 분쟁으로 골머리를 앓는 사회에 너무도 중요한 사랑과 화해의 다리가 놓이는 것이다. 또한 혼인 생활과 가정생활의 근심과 슬픔, 기쁨과 희망, 사랑 안에서, 성령께서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겸허한 존중의 태도로 조용하면서도 힘 있게 선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는 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6. 가정과 기초 교회 공동체

99. 가정 교회는 교회의 가장 근본적인 공동체 형태로서, 교회의 한 실재로 여겨져야 하며, 지역에서 교회의 완전한 실재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아시아 주교들이 사목적으로 강조하는 기초 교회 공동체는 “본당과 교구 안의 친교와 참여를 증진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이며 복음화를 위한 진정한 힘으로서 …… 사랑의 문화의 새로운 표현인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확고한 출발점”107)이라고 인정하셨다. 아시아에 기초 교회 공동체를 건설하고자 추진하는 사목 활동에서 가정 교회인 가정이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은 의심할 바가 없다. 가정은 기초 교회 공동체와 기초 인간 공동체를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공동체이다. 대부분의 경우 기초 교회 공동체는 이웃한 가정들의 집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들은 정기적으로 모여서 기도하고, 하느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이를 일상생활에서 실천한다. 기초 인간 공동체 안에서 종교가 다른 가정들도 이와 마찬가지로 모여서 종교 간 기도와 묵상을 하고, 친목을 도모하며 이웃의 선익을 위하여 함께 행동한다.

100. 기초 교회 공동체에서 복음화의 대상이며 주체인 가정이야말로 본당의 모든 사목 계획이 목표로 삼는 복음화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할 때 기초 교회 공동체는 가정들의 공동체가 될 것이며 본당은 참으로 공동체들의 공동체가 될 것이다.108) 기초 인간 공동체뿐만 아니라 기초 교회 공동체 안에서 가정들이 인간 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연대하는 것은 실제로 경제와 문화의 세계화 현상에 대한 미시적 차원의 대응이 될 수 있겠지만, “사랑과 연대의 세계화”가 시작되는 것은 바로 가정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공동체들 안에서이다.109) 물론 이를 위해서는 본당 조직과 사목 계획의 쇄신, 그리고 평신도 직무와 성품 직무에서 우선순위의 재조정이 요구된다. 기초 교회 공동체와 기초 인간 공동체 안에서 생명의 문화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도록 가정의 힘을 키워 주는 가정 신앙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목의 우선 과제가 될 것이다.

7. 예언자인 가정

101. 가정에 관한 이 모든 성찰에서, 매우 중요한 차원이 강하게 드러난다. 가정은 참으로 예언자적이라는 것이다. 하느님에게서 친교와 연대를 부여받고, 완전한 생명 문화를 건설하는 데에 도움을 주도록 부름 받은 가정의 본성 자체는 하느님 나라의 가치들을 보여 준다. 그러한 가치들은 함께 나누도록 요구받는 탁월한 인간적 가치들이다. 하느님 나라의 표지인 가정은 사회 안에서 예언자적인 공동체이다.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과 사랑, 정의, 조화, 평화를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수많은 죽음의 세력들에 맞서 가정은 사회에 철저한 자기 쇄신을 요구한다.

102. 가정 교회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소명에 충실한 가정은 또한 온 교회에 대한 예언자이다. 교회가 계약의 사랑과 생명의 지성소이며 친교이자 연대인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살지 못할 때에, 완전한 구원의 사명을 수행할 교회의 활력이 약해질 때에, 교회의 사목자들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목자답지 못한 행동을 할 때에, 존엄성, 공동 책임, 참여, 아낌없는 자기 증여가 더 이상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지 못할 때에, 권력, 이기심, 차별이 교회의 내부 구조를 위협할 때에, 예언자적으로 하느님 가족에게 철저한 쇄신의 길을 요구하는 것은 바로 가정이다. 이처럼, 가정 교회의 증거를 통하여 온 교회는 ‘혼인화된다.’ 다시 말하여, 혼인한 부부의 경험에서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까닭에, 가정은 친교와 제자 직분의 역동적 영성을 통하여 언제나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어 살아야 한다.


마. 완전한 생명 문화를 지향하는 가정 영성110)

103. 부모들과 그 가정들은 ‘나의 신앙은 혼인과 가정의 의미에 관하여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하는 중요한 물음을 제기한다. 만약 그들이, 신앙과 삶을 일치시켜 주고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대답을 갖고 있지 않다면, 혼인 생활과 가정생활은 다양한 도전에 대처할 가장 근본적인 지침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일차적 차원의 대답은 우리가 사랑과 생명의 계약, 친교, 연대, 선교와 같은 말로 성찰한 혼인과 가정의 의미 안에 있다. 이보다 더 심오한 차원, 곧 인간 존재의 바로 중심에 있는 대답은 영성이다. 곧 친교의 영성, 제자 직분의 영성, 성찬의 영성이다.

1. 친교의 영성

104. 혼인의 핵심에는 사랑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남자와 여자가 혼인을 통하여 사랑의 결합 ─ 친교 ─ 안에서 서로를 지향하도록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며, 자녀 출산을 통하여 근본적으로 생명으로 열려 있는 사랑이다. 혼인의 영성은 이러한 사랑의 친교를 토대로 한다. 혼인 영성이 친교의 영성이 되려면, 감성, 감정, 마음과 육체, 여자와 남자를 다르게 하고 근본적으로 서로를 지향하게 하는 성적인 요소들을 포함하여 아내나 남편의 전 인격이 관계된다. 이는 곧 혼인에서 정신과 마음의 깊은 일치가 절묘하게 절정을 이루는 순간은 사실 서로 자신을 내어 주는 부부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이는 참으로 하느님의 놀라운 선물이며 신비가 아닐 수 없다. 혼인한 부부가 부부 행위에서 경험하는 깊은 일체감은 상대를 위하여 자신을 완전히 내어 주는 부부의 신비 체험을 가리킨다. 부부는 생명의 선함으로 이끌리고 또 생명의 선함에 힘입어,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아가페)이신 하느님의 본성 자체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된다. 그러므로 부부 행위를 통하여 표현되는 정신과 마음의 사랑의 일치는, 인간의 육체를 모욕하는 이원론적인 시각에서 영성을 약화시키기보다는 친교의 영성인 부부 영성에 활기를 주고 부부 영성을 뒷받침하며 강화한다. 또한 부부 사랑은 자녀 출산에 열려 있는 그 본질을 실현함으로써 친교를 증진한다. 자녀의 탄생에 따른 아버지, 어머니, 자녀의 모습은 삼위일체적 친교를 연상시킨다. 자녀는 하느님의 귀중한 선물이며 하느님의 모상이다. 자녀는 부모에게 기쁨을 가져다준다. 자녀는 부부 관계와 가족 관계를 강화하고, 부모에게 성숙한 부모가 되도록 요구한다.

105. 혼인에서처럼, 가정의 핵심에도 친교가 자리한다. 그것은 하느님과 이루는 친교, 부부의 친교, 젊거나 나이든 부모와 그 자녀들이 이루는 친교, 확대 가족의 조부모와 다른 가족 구성원이 이루는 친교이다. 그러한 친교 관계는 단순히 한 지붕 아래 사는 것 또는 육체적인 혈연관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가정의 근원이신 삼위일체 하느님, 곧 성부, 성자, 성령의 일치를 인간적인 방식으로 반영하는 마음과 정신의 일치이다.111) 생명 문화는 그 본질상,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과 생명에 그 궁극적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일치의 영성은 가정을 완전한 생명 문화의 주역이 되게 이끈다.

106. 그러나 가정 안의 일치는 더 넓은 공동체로 확대되어, 가정이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봉사의 사명을 지향하도록 촉구한다.112) 가정은 이러한 외부의 활동으로 자신이 받은 삼위일체의 친교를 나눌 수 있게 된다. 친교의 영성은 가정의 역동성, 곧 배우자 간의 관계, 부모 자식 간의 관계, 확대 가족 구성원들 간의 관계 안에 활기와 열정, 생명을 불어넣는다. 또한 친교의 영성은 이웃과 전체 공동체를 아우르는 더욱 넓은 동심원을 그리며 확대된다. 이러한 영성이 없다면 가정은 그 정체성과 사명을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2. 제자 직분의 영성과 일상의 길

107. 그리스도인 가정에게 친교의 영성은 제자 직분의 영성, 곧 그리스도께 몸담고 그분을 따르는 영성이다. 가정의 제자 직분은 그리스도께 귀 기울이고, 부부와 가정이 복음에 비추어 일상적 경험들 안에서 그분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신혼부부가 혼인 생활을 시작하는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성모님께서 하인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113)라고 하신 말씀은 가정들에게 하신 말씀이기도 하다. 그것은 가족 관계와 직장, 그리고 가정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일상의 사건들에서 예수님께 귀 기울이고 그분의 뜻을 식별하는 문제이다. 사실 우리는 가정이 경험하는 기쁨과 희망, 슬픔과 근심, 고민과 고통을 포함한 일상의 사건들 안에서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그리고 통합, 정의, 일치, 조화, 평화, 사랑으로 이끄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하느님의 은총으로 성화에 이를 수 있는 것도 가정 안에서 사랑하고 돌보고 섬기며 책임을 다하는 일상적인 방식을 통해서이다. 제자 직분에 사랑으로 충실하며 이루어지는 일상생활은 가정이 완전한 생명 문화를 지향하는 길이 된다. 이러한 매우 일상적인 환경 안에서 살아가는 가정의 생활 방식이야말로 하느님 나라에 대한 가정의 헌신을 보여 주는 길이다. 신앙 안에 젖어 있는 혼인한 부부들과 가정들은 바로 일상적인 것에서 경이로움을 경험하며 인식한다. 일상적인 것 안에서 하느님을 볼 수 있고 감지할 수 있다.

108. 어떤 가치와 관습을 채택하고 실현할 것인지를 식별할 때 부부와 가정은 그들 삶 안에 하느님께서 친히 현존하신다는 것을 상기하여야 한다. 성령께서 그들에게 또 그들을 통하여 말씀하신다. 따라서 온 교회는 부부들과 가정들의 신앙 경험을 교회 식별의 중요한 한 요소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109. 우리는 그리스도교 혼인성사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하고 풍요로우며 그것은 또한 그리스도인 가정의 영성을 요구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우리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그리스도인 가정의 영성에서 중요한 가치들은 교파와 종교가 다른 가정들 내의 인간관계에서 요구되는 가치들과 거의 동일하다. 그러한 가치들은 하느님 나라의 가치들인 생명, 친교, 연대, 선교, 봉사, 충실, 통합, 정의, 일치, 조화, 평화, 사랑, 하느님께 귀 기울이기, 하느님의 뜻에 유의하기 등이다. 이러한 가치들은 일상의 평범한 가정생활 안에서 실천된다. 이러한 것들이 하느님 나라의 제자 직분이다. 가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양심 형성, 기도, 슬픔이나 기쁨을 서로 나눔으로써 더욱 견고해지는 사랑, 충실한 책임 완수, ‘성찬의’ 자기 증여, 상호 성화 등에 관하여 아래에서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하느님 나라의 영성에 필수적이다.

3. 양심 형성과 혼인의 은총

110. 가정 영성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바로 양심의 역할이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라는 당신의 목소리에 복종하게 하는 법을 새겨 놓으셨다. 양심은 “존재의 핵심,” “마음의 지성소”에 있다. 양심은 하느님께서 인간이 참으로 인간다워지도록, 하느님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다. 가정의 모든 구성원이 “객관적 윤리 기준”114)의 도움을 받는 양심을 따를 때, 가정은 사랑 안에서 하느님의 뜻과 일치를 이룬다. 하느님과 이루는 일치가 강화되며, 그 일치는 가정들이 공동으로 진리를 찾도록 인도한다. 양심을 따를 때, 가정의 구성원들은 시대의 사조나 자기 자신의 소망과 욕구만을 따라서는 안 된다. 그들은 “하느님 법의 참된 해석자”115)인 교회의 권위 있는 가르침에 비추어 그들의 양심에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법을 따라 생활하고 행동하여야 한다. 특히 인간의 자유가 죄로 무질서해지고, 죄가 선을 향하게 하려면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하다는 것을116) 인식할 때 이는 매우 중요하다. 세속주의가 팽배한 오늘날, 하느님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그분의 교회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되고 있다. 따라서 양심은 “부부 사랑의 완전한 의미를 밝혀 주고 보호하며 참으로 인간다운 완성으로 이끌어 주는 하느님 법에 따라야 한다.”117) 그러므로 부부 영성과 가정 영성의 차원에서 필요한 것은 교회가 해석하는 하느님의 법을 따르는 올바른 양심을 형성하는 일이다. 이 때문에 자녀를 교육하고 그들에게 올바른 양심을 심어 주는 부모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또한 자녀들은 책임에 충실한 부모들의 모습을 볼 때, 부모에게서 보고 배운 대로 본받으려는 마음을 갖고 힘을 얻게 된다. 그러한 자녀들은 부모에 대한 효성, 공경, 복종을 더 잘 배우고 실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111. 언제나, 그리고 일상적이거나 특별한 모든 일에서, 하느님께서 가정 안에 확실하고 은혜롭게 또 변화를 일으키시며 현존하신다는 것은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여정에서 힘을 얻는 확실한 원천이다. 우리의 신앙은 “그 신분의 의무와 존엄성을 위하여 특수한 성사로 견고하게 되고, 이를테면 축성되는” 그리스도인 부부들이 “이 성사의 힘으로 혼인과 가정의 임무를 수행하며, 온 삶을 믿음과 바람과 사랑으로 채워 주는 그리스도 정신에 젖어 들어, 날로 더욱 자기완성과 상호 성화를 위하여, 또 그럼으로써 다 같이 영광을 위하여 나아간다.”118)고 우리에게 알려 준다. 기도할 때나 일할 때 이러한 혼인의 특별한 은총을 명확히 깨닫는다면 가정은 분명히 영적으로나 세속적으로 큰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생생한 현존을 언제나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4. 기도, 파스카 신비, 그리고 성체성사

112. 이러한 영성의 중심에는 기도, 곧 “가정이 바치는 기도, 가정을 위하는 기도, 가정과 함께 드리는 기도”119)가 있다. 가정들은 생일이나 다른 기념일과 같은 특별한 경우만이 아니라, 규칙적으로 가정 기도를 하도록 촉구되고 교육받아야 한다. 가정 기도는 일상의 경험들을 복음의 가치와 창의적으로 연관시켜야 한다. 영적 독서에서처럼 하느님 말씀에 대한 독서와 묵상이 가정 기도에 언제나 포함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경험이 보여 주듯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가정의 모후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 대한 신심, 특히 깊은 신심으로 규칙적으로 드리는 묵주기도는 가정생활을 매우 풍요롭게 한다. 가정 안에 새로운 기도 형태를 만들고 아울러 그들에게 익숙해진 예식과 신심 행위들을 쇄신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의 통치를 가장 잘 일깨워 주는 것은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신앙 가족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이다. 주님의 기도는 참으로 보편적인 기도이며 하느님을 궁극적 아버지로 모시는 가정의 탁월한 기도이다.

113. 기도하는 가정은 성령과 함께 걷고, 성령 안에 살며, 성령 안에 머무르고, 그리스도의 충실한 제자로서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게 된다. 혼인의 정절, 혼인의 힘, 부부와 자녀들이 일상생활의 도전들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들은 사실 근본적으로는 혼인성사에서 흘러나오지만 기도로 요청한 성령의 은총이다. “이러한 그리스도인 소명의 의무를 항구히 수행하려면 뛰어난 덕행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부부는 거룩한 생활을 북돋워 주는 은총의 힘으로 확고한 사랑과 너그러운 마음과 희생정신을 끊임없이 닦고 또 기도로 간구할 것이다.”120)

114. 마지막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인 가정의 성화의 역할은 세례성사와 견진성사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성체성사에서 최상의 표현”121)을 발견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여야 한다. 성찬례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 곧 우리 구원의 샘인 파스카 신비를 기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고통과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처럼, 성찬례 안에서 성사가 된 파스카 신비를 통하여 가정은 일상의 시련과 근심, 낙담과 절망 등 일상의 부부 생활과 가정생활이 겪게 마련인 온갖 ‘죽음’에서 부활할 힘을 얻는다. 부부와 그 가정들의 기쁨, 희망, 용서, 화해, 힘은 분명 성체성사에서 온다.

115.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가 맺은 사랑의 계약을 상징한다. 따라서 남편과 아내가 그들의 사랑의 계약의 근원을 발견하는 것도 바로 성찬례의 희생 제사 안에서이다. 그러므로 남편과 아내는 성찬례의 희생 제사를 단순히 하나의 의무적인 일이 아니라, 부부 친교의 성사적 근원과 대면하게 되는 예식으로 보아야 하며, 자녀들과 함께 부부 사랑의 계약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기념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성체성사는 친교를 낳고 친교를 강화한다.”122)고 말씀하신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가족 전체는 성체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하나가 되고 서로가 하나 되는 신비를 거행하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그분의 몸이며 지체라면,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신비가 주님의 식탁에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신비를 받는 것입니다.”123) 이러한 맥락에서, 2004년 10월에서 2005년 10월까지 성체성사의 해를 가정의 해로 삼아, 가정이 “가정이여, 본래의 모습으로!”라고 하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씀을 더욱 충실히 따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각 가정에 요구되는 친교와 제자 직분의 영성은 또한 성체성사의 영성이며, 예수님의 성찬 행위가 뜻하는 모든 것, 곧 완전한 자기 비움과 자기 증여의 사랑을 포함하는 영성이다. 이러한 까닭에, 성찬의 거행은 어린이와 유아를 포함하여 온 가족이 참여하는 가족 행사가 되어야 한다.124)

 

제3부 가정 사목을 위한 사목 제안


가. 아시아 가정 사목의 전망

116. 아시아 가정에 대한 신학적-사목적 성찰과 사목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가정 사목에 대한 확실한 방향이 요구된다.

─ 가정 사목은 깊이 있고 광범하게 전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앞에서 논의한 생명의 문화를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고려하여야 한다.
─ 따라서 가정 사목은 피임, 낙태, 안락사, 자연 가족계획, 혼인 전과 혼인 후 교리교육, 가정 향상 세미나에 대한 일반적인 관심을 포함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범위를 확대하여야 한다.
─ 가정과 관련하여 새롭게 떠오르는 세상의 가치들에 비추어 가정 사목은 다음과 같은 우리의 신앙 - 확신을 강력하게 수호하고 증진하여야 한다.
● “가정은 혼인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자유로운 계약과 해소할 수 없는 유대 관계의 공적인 표현으로 이루어지는 혼인은 상호 보완적인 생명의 친밀한 결합이며 생명을 전수하는 자리이다.”125)
● “혼인은 생명 전달의 사명이 배타적으로 위임되어 있는 자연적인 제도이다.”126)
● 그리스도교 혼인은 거룩하게 제정된 성사이다.
─ 가정 사목은 아시아의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현실을 고려하여 부부와 가정들이 빈곤, 이민, 성, 청소년, 환경, 정치, 경제와 문화의 세계화와 같은 과제들에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야 한다.
─ 특별한 관심을 필요로 하는 가정들을 돌보아야 한다.
─ 가정 사목은 생명의 문화를 위하여 노력하는 부부와 가정들이 우리 신앙의 내적 자원들(성사, 전례, 기도, 일상의 영성)을 철저히 활용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 가정 사목은 가정들이 복음화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곧 가정을 위한 사목뿐만 아니라 가정들에 의한 사목이 될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117.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아시아의 일부 주교회의는 혼인 전 교리교육과 혼인 계속 교육을 위한 확실한 가정 사목 프로그램들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또한 자연 가족계획을 강조하면서 책임 있는 부모 역할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매우 잘 정착시키고 있다. 그러나 특히 본당 차원에서 가정 사목 기금의 배치와 가정 사목에 종사할 평신도의 교육은 그다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아시아의 전반적인 사목 상황에서 요구되는 가정 사목의 방향을 고려하여, 아시아의 가정 사목은 각국 주교회의에서 이미 세운 목표들 이외에 다음과 같은 계획 목표들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나. 일반 계획 지침

118. 양성하고 힘을 실어 주는 가정 사목

(가) 복음화의 초점인 가정
─ 모든 사목 계획이 지원하고 중심으로 삼아야 하는 복음화의 초점인 가정을 최우선 순위에 두기.
─ 모든 사목 계획이 선교를 위하여 가정을 강화하고 힘을 실어 주는 데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재설정하기.

(나) 가정의 신앙 교육
─ 가정 안에서 선교 양성을 포함한 통합적인 신앙 교육을 장려하여 친교와 제자 직분, 선교의 영성으로 나아가도록 이끌기.
─ 부모들이 자녀를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이고 시민 의식을 길러 줄 수 있도록 부모들에 대한 교육 장려하기.
─ 적절한 신앙 교육, 가정 상담, 혼인 강화, 그 밖의 방법들을 통하여 부모들이 자녀의 으뜸가는 교육자이자 교리교사, 선교 양성자로서 소명을 다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기.
─ 완전한 생명 문화와 관련한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의 신앙 교육을 계속하기.
─ 다른 종교의 신앙과 가치들을 존중하며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는 한편, 혼인에 관한 가톨릭의 가치들을 강화하기.
─ 가정에서 가정 기도, 성서 읽기와 묵상, 곧 영적 독서를 훈련시키기.
─ 가정 사목의 필수적인 한 요소인 가정 권리 헌장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기.

(다)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의 역할
─ 가정 안의 다양한 역할에서 남편과 아내의 공동 책임과 협력, 상호 보완성, 평등한 존엄성을 회복하기.
─ 남성과 여성의 평등한 존엄을 인정하지 않는 억압적이고 전통적인 가치와 구조에서 여성을 해방시키고 가부장제의 악습을 뿌리 뽑기.
─ 인간관계와 가족 관계에서 남녀 성 역할에 대한 적절한 교육을 실시하기.
─ 남녀가 혼인 생활을 지속하고 발전시키며 자녀들을 온전히 돌보는 일에서 상호 보완적이고 협력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양성하기.
─ 여성에게 힘을 실어 주는 프로그램을 교구와 본당 차원의 사목에서 하나의 근본 요소로 삼기.

(라) 가정 사목을 위한 자금과 인력
─ 교구와 본당의 가정 사목을 정규적으로 운영하는 데에 필요한 인력과 자금 등의 통상적인 수단을 제공하며, 평신도 인력 모집에 중점을 두기.
─ 가정 사목에 종사하는 모든 인력을 대상으로 집중적이고 적절한 교육을 실시하기. 특히 여성 상담원과 ‘부부 상담원’을 모집하고 교육하는 것이 시급하다.
─ 다양한 가정 복지 관련 직업에 종사할 사람들을 모집하고 격려하여 교구와 본당의 가정 사목에 참여시키기.

(마) 가정 사목과 성소
─ 가정에 대한 성소를 포함하여 교회 안의 다양한 성소에 대하여 가정들의 의식을 증진하기.
─ 혼인을 통한 일생의 반려자를 충분히 식별하여 선택하는 것을 비롯하여 젊은이들에게 가정에 대한 성소를 교육시키기.
─ 완전한 생명 문화를 위하여 부부, 부모, 자녀에 대한 계속 신앙 교육 실시하기.
─ 완전한 생명 문화를 위한 부부, 부모, 자녀의 계속 신앙 교육을 비롯하여 젊은이들에게 가정에 대한 성소를 교육시키기.
─ 가정 사목에 성소 활성화 부문을 마련하여 가정이 사제직과 봉헌 생활에 대한 성소를 후원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성소를 발견하고, 활성화하며, 육성하고, 모집하는 일에도 참여하게 하기.

(바) 가정 사목을 위한 접근, 후원 단체, 프로그램
─ 본당에 후원 단체를 결성하여 모든 측면의 통합적 선교에 도움이 되게 하기.
─ 부부는 다른 부부에게, 또 가정은 다른 가정에게 다가가 상호 도움과 후원, 격려를 줄 수 있게 하기.
─ 부부들에게 반출산, 반생명적 인구 조절 방법에 관련된 의식을 증진시키고, 부부들을 위한 ‘가족 정치학’을 마련하는 한편, 책임 있는 부모 역할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촉진하기.
─ 학교와 기초 교회/인간 공동체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성교육, 부부 관계의 도덕적 문제, 그리스도인 부모의 역할, 자녀의 선교 교육, 가정 교리교육에 관한 자료를 만들기.
─ 신학교와 다른 양성소의 교과 과정에 가정 사목을 포함시키기.
─ 대중 매체를 교회의 사목 계획과 활동에 포함시키고, 현대 커뮤니케이션이 증진하는 ‘새 문화’를 그리스도교 메시지에 통합시킴으로써 가정들이 복음을 선포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

119. 돌보고 봉사하는 가정 사목

가정 사목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

─ 편부모, 국제결혼, 교파와 종교가 다른 사람들끼리의 혼인 사목을 위한 전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 어려움에 놓인 가정들, 예를 들면 이혼한 부모, 이혼한 뒤 재혼한 부모들의 사목을 위한 계획을 세우기.
─ 가족을 외국으로 보낸 이주 노동자 가정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출국 전과 귀국 후에 이주 노동자들을 지원하기.
─ 가정 폭력과 학대, 미성년자 혼인, 정략결혼, 약물 중독, 에이즈 관련 문제들을 다루기.
─ 청소년 성소 상담을 포함하여 가정 상담 지원하기.
─ 보육 계획 세우기.
─ 혼종혼 가정이 상호 이해와 존중으로 나아가도록 함께 모여 서로 종교적 체험을 나누는 기회를 마련하여 주기.

120. 사회 변화를 촉진하는 가정 사목

─ 가정과 관련하여 국가와 교회 기관의 보조 역할을 증진하기.
─ 기초 교회/인간 공동체를 통하여 가정을 위한 통합적인 인간 계발 계획을 세우고, 가정들이 사회적 정치적 주장과 행동을 위하여 결집될 수 있도록 먼저 사회적 인식을 길러 주기.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옹호하신 ‘새로운 페미니즘’에 따라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에 성(gender)의 관점을 통합하기.
─ 사회 정의와 평화를 증진하는 일에 여성을 참여시키고, 그러한 일을 위하여 여성을 조직하고 교육시키기.
─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과 사이버 공간에 대한 감시를 포함하여, 사회 정치적인 주장을 펴도록 기초 교회/인간 공동체 안에 혼종혼 가정들의 가정 연대를 조직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기능 교육을 시키기(일반 대중 차원에서 가정 연대의 세계화).
─ 특히 학교는 부모를 대신하는 역할을 하므로, 교파나 종교가 다른 가정들을 돌볼 수 있도록 가톨릭 학교에서 가정 사목을 장려하기.
─ 언론과 법 때문에 위협을 받는 복음의 가치들을 사회적 정치적으로 옹호할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에서 종사하는 능력 있는 평신도와 부부들로 이루어진 단체를 설립하기.
─ 어린이와 미성년자를 전쟁에 끌어들이는 일을 중단하기.
─ 온갖 파렴치한 활동, 특히 매춘 관광을 목적으로 한 어린이와 여성 인신매매를 중단하기.

121. 아시아 가정 사목의 근본적인 역동성은 교회적이고 성사적이며 그리스도 중심적인 제자 직분의 가정 영성과, 적절하고 참여적인 ‘친교와 선교의 가정 영성’이 되어야 한다.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종교를 가진 아시아 가정의 상황을 고려할 때, 이러한 영성은 아시아 가정들이 참된 생명의 문화를 확립하도록 돕고 선교의 공통분모로 기여할 하느님 나라의 영성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다.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8차 정기 총회
지역별 모임들에서 작성한 우선 과제들과 계획들

122. 전체적인 방향

가. 새로운 세기에 새 복음화를 위한 복음 전파자인 가정
나. 교구 계획에서 복음화의 중심인 가정
다. 가정 교회인 가정
─ 교육 개혁과 올바른 사회 정책의 지지 등을 통하여 가정생활을 증언하는 교회.
─ 사회 변화에서 가정의 역할에 대한 인식을 키우기.
─ 가정들이 이웃의 참여와 마음 맞는 이들 간의 협력을 통하여 행동하고 삶의 대화를 나누도록 준비시키기.
─ 혼례(noce) 전야, 기념일, 첫 영성체 등과 같은 예식을 위하여 가정생활 전례와 기도서를 개발하기.

123. 계획들

─ 체계적이고 전체적인 사랑과 생활/가정 향상 프로그램을
● 모든 차원에서(어린이, 청소년, 성인)
● 다교파, 다종교, 다문화 가정들을 위하여
● 또한 다른 형태의 가정들(편부모 가정, 이혼 가정, 재혼 가정, 이민 가정 등)을 위하여 증진하기.
─ 특별한 상황에 있는(이혼, 약물 중독, 폭력에 시달리는) 가정들을 위하여 전문적인 치료와 사목을 하기.
─ 가난한 가정의 어린이들을 특별히 배려하기.
─ 남편들을 위한 사목
● 남편들을 위한 영성을 계발하기.
● 왜곡되고 부도덕하고 변형된 남성성과 아버지상을 변화시켜 남편들이 하느님의 계획대로 자신들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빛낼 수 있게 하기.
● 남편들이 가정생활에서 다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을 수 있게 하기.
─ 가정의 중요한 시점(예를 들면 결혼기념일이나 생일)마다 전례를 통하여 훌륭하고 안정된 혼인의 의의를 공개적으로 증언하도록 장려하기.
● 혼인한 지 5년 이하의 부부들을 위한 친교 프로그램을 제도화하기.
● 예를 들면 더 좋은 부모 되기, 형제자매나 부모, 시집이나 처가 식구들과 관계 맺기, 갈등 해소 등과 같이 가정들이 유익하다고 판단하는 프로그램들을 증진하기.

124. 구 조
─ 조언자 부부들(Mentor Couples)을 지도자로, 사제들을 협력자로, 전문 상담원들을 조력자로 하여 가정 사목이 가정생활 환경을 확인하고 장려하며 증진할 수 있도록 재편하기.
─ 신앙 교육 구조를 확립하기.
● 본당 사목구와 교구의 가정 선교/가정 회의/셀(cell).
● 소규모 교회 기초 공동체/그리스도인 기초 공동체/그리스도인 소공동체 나눔.
● 오순절파에 대응하고 가정들을 결속시키기 위한 가족 또는 가정 성서 모임.
● 가정 사목을 활성화시키는 목자들을 위한 계속 교육 실시.

125. 다음과 같은 것들에 대하여 연구하고 활동한다

─ 여성의 지위.
─ 직업 때문에 흔히 떨어져 살아야 하는 이주 노동자들의 가정이나 사무직과 다른 전문직 종사자들의 가정.

126. 지역별 모임들이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에 제안한 문제들과 관심사들

─ 성소와 선교, 부부 친교 등 혼인과 가정에 관한 아시아 신학을 발전시키기.
─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에 가정 위원회 또는 사무국 설립하기.
─ 아시아 가정의 가치들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 신앙 실천에 대한 상호 존중과 자녀들에게 대한 가치 전달을 가르치도록 교파 간, 종교 간, 문화 간 혼인 사목을 증진하기.
─ 토착민들의 사회 체계와 그들이 가정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데에 어떻게 이바지할 수 있는지 연구하기.
─ 가정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개념을 쇠퇴시키는 경향이나 새로운 법들(안락사, 낙태, 동성애 혼인, 계약 결혼, 동거, DINK 또는 SINK 문화)을 감시하기.
─ 새로운 정보, 오락,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포르노뿐만 아니라 ‘자기 일에만 관심을 갖는’ 고립주의도 포함하여) 가정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장려하기.
─ 매체 내용에 대한 식별과 비판적 평가를 장려하기.
─ 다음에 대하여 특별한 사목적 관심을 증진하기.
● 소외되거나 취약한 사람들.
● 이주 노동자 가정(고용주들이 가정 도우미들에게 가족 - 친구 같은 태도를 지니도록 권장하기).
● 노인이나 고령자들을 위하여 이웃의 확대 가족 지원을 늘리기.
● 여성과 어린이 인신매매 문제.
● 혼인 파탄과 가정 폭력.
● 동성애자들이 성덕과 봉사에 대한 보편적 소명에 응답하고 교회의 충실한 구성원으로 살 수 있게 하는 사목.


<원문 Federation of Asian Bishops’ Conferences, The 8th FABC Plenary Assembly Final Document The Asian Family towards a Culture of Integral Life, in FABC Papers, No.111>

 

1. 1974년 발족된 이후,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는 정기 총회에서 가정이 복음화에서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을 짐작만 해 오다가, 평신도를 주제로 한 1986년의 제4차 정기 총회에 이르러서야 가정에 대해서 지나가는 말로 언급하는 수준을 넘어 가정이 직면한 문제와 복음화와 평신도 교육, 나아가 교회 전체의 교육에서 없어서는 안 될 가정의 역할에 열 개의 항을 할애하였다.
2.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11항;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사도직 활동」(Apostolicam Actuositatem), 11항; 요한 바오로 2세, 현대 세계의 그리스도인 가정의 역할에 관한 교황 교서 「가정 공동체」(Familliaris Consortio), 21항. 집이란 뜻의 domus에서 가져 온 가정 교회(domestic church)라는 말은 문서 전체에 걸쳐 사용될 것이다. 그러나 이 말과 관련되어 떠오르는 ‘길들여진’(domesticated), ‘종’(domestic worker)과 같은 단어들은 열등함, 수동성, 복종, 소심함 등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킬 수도 있다.
3. 별도의 언급이 없으면, 영어 원문의 성서 구절은 New Revised Standard 판에서 인용된 것이다.
4. 회의 자료에 대한 한국 주교회의 의견서(2004.7.22.) 1면에 인용된 ‘국제 사회 조사 프로그램’(ISSP), 2002 참조.
5. 예를 들면, 카자흐스탄에서는 “냉담 신자나 모슬렘, 또는 비신자와 혼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톨릭’ 또는 ‘그리스도인’ 가정을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사실 “그리스도인이 된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흔히 친척이나 동포들에게 배척당하거나 심지어 죽음의 위협까지 받는다.” 따라서 가정 사목은 적절한 인력 양성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8차 정기 총회를 위한 카자흐스탄 주교회의 보고서, 1-2면 참조.
6. 회의 자료에 대한 일본 주교회의 의견서, 2004.7.1., 1면.
7.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6차 정기 총회, 마닐라, 1995 참조.
8. 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 로마, 2004.
09.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백주년」(Centesimus Annus), 32항 참조.
10. 일본 주교들은 다른 아시아 가정들이 경제적 빈곤에 직면한 것과는 달리 “일본 가정이 직면한 가장 큰 빈곤은 정신적 빈곤”(일본 주교회의 의견서, 1면)이라고 지적하였다.
11. 일본의 경우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지는 가정들에서 아버지의 권위가 약해졌지만 “여전히 사회에서 (특히 회사에서) 성차별을 목격할 수 있다” (일본 주교회의 의견서, 2004.7.1., 2면).
12. 국제 사회학의 분류에 따르면, ‘여아’나 ‘남아’는 네 살 미만의 어린이를 일컫는다.
13.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6차 정기 총회, 마닐라, 1995.
14. 일본은 어린이 노동 금지를 엄격하게 따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나라의 어린이들이 일을 하러 들어오는 국가로 기록되어 있다(일본 주교회의 의견서, 2면, 2004년 6월 미국무성 연례 보고서 인용).
15. 한국 주교회의 의견서, 2면; 일본 주교회의 의견서, 2면.
16. 인간 배아 복제에 관한 제57차 국제연합 정기 총회 특별 위원회에 대한 교황청 대표단의 의견서, 2002.9.23. 참조.
17. 인간 배아 복제에 관한 제57차 국제연합 정기 총회 특별 위원회에 대한 교황청 대표단의 의견서, 2002.9.23. 참조. 한 예로 교황청은 성인의 골수에서 추출한 줄기 세포를 언급하고 있다.
18. 일본에서는 “가족 가운데 한 명만 가톨릭 신자인 가정들이 매우 많기 때문에 가정을 기초 공동체의 기본 단위로 삼기 어렵다.”(일본 주교회의 의견서, 2면)고 한 일본 주교회의의 의견서를 지적할 필요가 있다.
19.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4차 정기 총회 최종 보고서, 도쿄, 1986. 9.16-25, 3.4.1항.
20. 예를 들면, 『가톨릭 교회 교리서』, 1601-1658항.
21. 창세 2,7; 사도 17,25 참조.
22. 로마 6,23; 요한 4,10.14.; 묵시 21,6 참조.
23. 로마 6,22 참조.
24. 요한 10,10 참조.
25.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27항 참조.
26. 2디모 1,10; 4,1; 히브 9,27-28 참조.
27. 창세 1,26-28; 2,7; 지혜 15,11 참조.
28. 창세 1,26.27.
29. 골로 1,15-16.
30. 골로 1,20.
31. 호세 11,3-4.
32. 이사 66,13.
33. 호세 2,16.19-20 참조.
34. 이사 43,1.4.
35. 출애 22,22-23; 신명 24,17-22; 이사 1,17; 예레 22,3; 즈가 7,10 참조.
36. 에제 11,19; 36,26 참조.
37. 예를 들면, 시편 96(97),11-12; 144,12.16-20(145,13.17-21); 지혜 4,7-14 참조.
38. 요한 3,16 참조.
39. 1요한 1,1 참조.
40. 요한 10,17-18; 5,26 참조.
41. 요한 14,6.
42. 요한 14,23.
43. 요한 10,10.
44. 예를 들면 마태 5,3-10의 참행복 참조.
45. 요한 3,3-8 참조.
46. 로마 6,4; 골로 2,12 참조.
47. 요한 4,14.
48. 요한 6,33.
49. 요한 6,34.48.
50. 요한 6,51.
51. 요한 6,54.56.
52. 필립 1,21.
53. 요한 1,16.
54. 요한 13,34-35.
55. Dictionary of Biblical Theology, ed., Xavier Leon-Dufour, updated 2nd ed., 1982; 요한 19,30 참조.
56. 2고린 5,17 참조.
57. 에페 2,19; 1디모 3,15 참조.
58. 하느님의 가족인 교회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아프리카 특별 총회의 특별 주제였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권고 「아프리카 교회」(Ecclesia in Africa), 1999 참조.
59. 로마 8,1.9-10 참조.
60. 갈라 5,22.
61. 로마 14,17.
62. 갈라 5,19-21.
63. 갈라 5,13-14.
64. 로마 12,4-5; 1고린 12,4-7; 12,12; 에페 4,16 참조.
65. 「백주년」, 39항.
66. 마태 1,18 ─ 2,23; 루가 1,26 ─ 2,52 참조.
67. 루가 2,19.51.
68. 루가 1,38.
69. 히브 5,8.
70. 마르 3,33; 마태 12,48.
71. 마태 25,40.
72. 요한 19,26-27 참조.
73. 교황청 신앙교리성, 교회와 세상 안에서 남녀의 협력에 관하여 가톨릭 교회의 주교들에게 보내는 서한, 2004.5.31., 6항. 창세기 2,4-25를 바탕으로 한 인간의 몸에 관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성찰 인용.
74. 사목 헌장, 48항; 창세 2,24 참조.
75. 마태 19,6 참조.
76. 사목 헌장, 48항 참조.
77. 에페 5,21-33 참조.
78. 에페 5,33 참조.
79. Salvatore Fisichella, “The Christian Family in a Time of Cultural Change” in Acts of the International Theological-Pastoral Congress(AITPC), The Christian Family: Good News for the Third Millennium, Fourth World Meeting of Families, Manila, 2003.1.22-24, 46면.
80. 사목 헌장, 48항.
81. 마태 19,5-6 참조.
82. 사목 헌장, 48항; 50항도 참조.
83. 창세 2,24; 마태 19,3-9.
84. 교회 헌장, 11항 참조.
85. 바오로 6세, 교황 권고 「현대의 복음 선교」(Evangelii Nuntiandi), 71항.
86.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Redemptoris Missio), 80항; 「가정 공동체」, 54항 참조.
87. 요한 13,35.
88. 창세 1,28.
89. 이사 38,19; 예레 31,3.
90.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권고 「아시아 교회」(Ecclesia in Asia), 46항.
91. 요한 바오로 2세, 세계 평화의 날 담화, 1998.1.1., 3항.
92. 「가정 공동체」, 6항.
93. 에페 4,15 참조.
94. 「교회의 선교 사명」, 37항.
95. 요한 바오로 2세, 2004년 홍보 주일 담화 “매체와 가정, 그 위험과 풍요”, 2항.
96. 위와 같음.
97. 요한 바오로 2세, 1980년 홍보 주일 담화.
98. 교회 헌장 31항을 인용한 「가정 공동체」, 47항.
99. 같은 곳, 44항.
100. 「가정 공동체」, 46항에 그러한 권리들이 열거되어 있다.
101. 이 문서는 ‘가정 권리 헌장’을 부록으로 싣고 있다(한국어판은 『생명과 가정』,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생명윤리연구회 엮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493-503면 참조.).
102. 「교회의 선교 사명」, 57항.
103. 사목 헌장, 51항;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 58-67항; 「가정 공동체」, 16항 참조.
104. 교황청 인류복음화성과 타종교위원회 공동 문헌 「대화와 선포」, 57항 참조.
105. 로마 10,14-15 참조.
106. 1고린 7,12-16에서 든 상황을 참조하라.
107. 「아시아 교회」, 25항.
108. 사도 4,32 참조.
109. 교황께서는 세계 평화의 날 담화들에서 사랑과 연대의 세계화를 언급하셨다.
110. 1986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에서 평신도의 소명과 사명에 관한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4차 정기 총회의 성찰 가운데 평신도 영성에 관한 4.8.1 - 4.8.11항의 내용은 가정 영성에 관한 이 성찰을 보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느님 나라의 영성을 강조한 제4차 정기 총회의 성찰은 종교가 서로 다른 아시아 가정들에 더욱 적절하게 적용된다. 1990년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우리 시대의 영성에 관한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5차 정기 총회 9.1 - 9.7항도 참조하라.
111. 요한 17,21; 사도 4,32; 필립 2,2; 1베드 3,8 참조.
112. 요한 17,14.18.20 참조.
113. 요한 2,5.
114. 사목 헌장, 16항 참조.
115. 같은 곳, 50항 참조.
116. 같은 곳, 17항 참조.
117. 같은 곳, 50항.
118. 사목 헌장, 48항.
119. 요한 바오로 2세, 「가정 교서」(Gratissimam Sane), 4항.
120. 사목 헌장, 49항.
121. 「가정 공동체」, 57항.
122.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Ecclesia de Eucharistia), 40항.
123. 「설교집」(Sermo), 272, 『라틴 교부 총서』(PL) 38, 1247.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40항에서 인용.
124. 어린이 미사가 정기적으로 있는 경우에는,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가족이 모두 함께 미사에 참여한다. 한국 주교회의 의견서, 6면 참조.
125. 교황청, 가정 권리 헌장, 전문, 1983.10.22.
126. 위와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