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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2-29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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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 2001년 제20회 인권 주일 담화



제20회 인권주일 담화문

사형제도, 그것은 또 하나의 살인행위입니다.




1.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1999년 제18회 인권주일과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면서 사형제도 폐지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인간 존엄성을 침해하는 사형으로부터 인간생명을 회복하고,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바꾸자는 취지에서 이 운동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는 흉악한 범죄와 비인간적인 삶의 형태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들을 없애기 위해서는 사형제도가 이 시대에 필수 불가결한 하나의 제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형제도가 이러한 현상들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없으며, 어떠한 이유에서도 사형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2.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창세 1,26-27). 이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임을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존엄성을 지닌 인간생명의 기원과 목적은 인간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을 어떠한 인간적 이유나 제도를 통해서 빼앗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끊임없는 윤리적 선의 추구와 완성을 향한 회개와 보속의 삶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의 체험 그리고 친교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구원에로 불리운 존재이며, 하느님으로부터 선사된 미래로 나아가는 존재입니다. 사형제도는 바로 이러한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것이기에 마땅히 폐지되어야 합니다.


3. 일반적으로 형벌의 의미는 첫째, 범죄에 대한 응보와 보복이며, 둘째, 범죄의 예방, 셋째, 범죄의 억제, 넷째, 범죄자의 개선입니다. 그러나 사형제도는 이러한 형벌의 의미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응보의 필수성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사고는 인간을 일종의 무책임한 형식주의로 이끌게 되고, 이러한 형식주의는 모든 인간애와 인간을 무시해 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법 없는 삶이 불가능한 것처럼 관용없는 삶 또한 불가능합니다. 치안을 위해 무자비함과 응보의 의미 안에서만 정의를 실천하려고 하는 국가는 인간을 위한 삶의 공간을 스스로 파괴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형은 범죄의 예방이나 억제를 도와주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집행해 온 사형횟수에 형벌이론을 적용시켜보면 범죄 발생률이 줄어들어야 하고 나아가서는 사형이 국가통치에 합당한 것이었다면 범죄는 사라져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범죄는 더 흉악해지고 범죄 발생률은 증가 일로에 있습니다.


4. 범죄자의 개선은 사형에 의해 죽은 죄수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형벌이론대로라면 사형은 형벌이 아니며 국가 공권력에 의해서 저질러지는 또 하나의 살인이며 인간의 심리 속에 내재한 보복본능을 법이라는 미명(美名) 하에 시행하는 제도적인 살인인 것입니다.


사실 현대 국가의 형벌의 의미는 보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 지향적인 사회의 질서보존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공공생활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력을 가능한 제거하기 위한 것이며 사람들에게 평화스럽고 안전한 공동생활을 가능하게 하려는 목적을 위해 형벌이 집행된다고 할 수 있기에 처벌보다는 개선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에 정부가 사형제도를 폐지하지 못하는 이유로 내세우는 내용은 우리의 문화수준이나 사회 현실이 어느 정도 발전되고 안정되어야 사형을 폐지할 수 있다는 것이고, 또 국민의 법감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보복으로서의 사형을 인정하고 있는 한, 국민의 법감정이라는 것이 결국 자신 안에 있는 보복의 감정과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사형의 폐지를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5. 법은 이성의 표현이지 감정의 발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따라서 국가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문화수준을 퇴보시키고 사회현실에 더 악영향을 주는 것은 아닐지 심사숙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의 행위로서만 보는 범죄는 결코 최종적이라거나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기에 인간은 그가 살아있는 한 회개하고 새롭게 시작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범죄자에 맞서 보복하고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 인간 역시 바로 그 멀어진 곳에서도 하느님으로부터 사랑 받고 돌아오라는 부름을 듣고 있는 피조물이며, 이 피조물 위에 하느님만이 홀로 심판할 권리를 가졌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6. 그리스도인들은 보복과 응징, 형벌과 처벌이 아니라 화해와 용서와 사랑을 통하여 범죄자들에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범죄자 또한 하느님이 주신 인간의 존엄성을 지닌 우리의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사형제도의 폐지를 통해 죽음의 문화를 거부하고 새로운 생명존중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2001년 12월 9일 제20회 인권주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최영수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