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
2001-01-04 09:46
3586
[담화] 2002년 제88차 세계 이민의 날 교황 담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께서는 2002년 제88차 세계 이민의 날 담화를 지난 7월 25일 발표하셨습니다.

주제: 이민과 종교간 대화


* 사도좌에서 세계 이민의 날을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세 번째 주일'에 거행하되 각국의 상황에 따라 달리 거행할 수도 있다고 한 결정에 따라, 우리 주교회의(2000년 춘계 정기총회)에서는 사회 복지 주일 전(前) 주일을 '이민의 날'로 결정하였습니다. 2002년 이민의 날은 1월 20일(연중 제2주일)에 거행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2002년 제88차 세계 이민의 날 담화

이민과 종교간 대화

1. 지난 몇십 년에 걸쳐 세계는 점점 더 하나의 지구촌이라는 모습을 띠게 되었습니다. 거리는 더욱 가까워지고 통신망은 더욱 치밀해졌습니다. 교통 수단의 발달로 오늘날 사람들은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이 대륙에서 저 대륙으로 더욱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눈에 띄는 사회 현상 가운데 하나가 전세계 각지에 퍼져 있는 약 1억5천 만 이민의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회와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새 천년기를 시작하며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살아야 할 이 세상에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이 문제들에 적절히 대처할 방도를 성찰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서는, 서로 다른 종교인들의 마음 속에 안타깝게도 여전히 자리잡고 있는 경계심과 편견, 두려움의 장벽을 무너뜨려야만 합니다. 모든 나라에서, 다수파 종교인과, 흔히 이민으로 구성된 다양한 종교의 소수파 종교인 사이에 대화와 상호 관용이 필요합니다. 대화는 우리가 추구하여야 할 중요한 길이며, 경계심이 존중으로, 배척이 환대로 바뀌도록 하려면 이 길을 걸어야 한다고 교회는 촉구합니다.

최근 저는 2000년 대희년을 마치며 “다른 종교 신자들과 개방과 대화의 관계”를 맺으려면(?새 천년기?[Novo millennio ineunte], 55항)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호소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목적에 도달하는 데에는 주요 대중 매체들의 관심을 끄는 활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인간 관계에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소박하고 일관된 일상의 행동이 더 중요합니다.

2. 광범위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민 현상은 우리 시대의 특징이며 종교간 대화의 기회를 증대시킵니다. 다문화 사회뿐만 아니라 오랜 그리스도교 뿌리를 가진 나라들은 종교간 나눔을 위한 구체적인 기회를 제공합니다. 오랜 그리스도교 전통을 가진 유럽 대륙에 다른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들어옵니다. 이미 실질적인 다문화 사회를 체험하고 있는 북아메리카 대륙은 새로운 종교 운동 신봉자들의 중심지입니다. 힌두교가 우세한 인도에서는 가톨릭 수도자들이 그 나라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겸손하게 봉사하고 있습니다.

대화가 언제나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인내와 확신을 가지고 꾸준히 대화를 추구하여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마음과 정신을 밝혀 주시는 주님의 은총에 의지하여, 다른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을 열린 마음으로 반갑게 맞이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신념을 가지고 자기 신앙을 꾸준히 실천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과 대화를 추구합니다. 다른 사람과 참된 대화를 나눌 수 있으려면 자기 신앙을 분명하게 증언하여야 한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한편 이러한 진실한 대화 노력은, 서로 차이만이 아니라 때로는 모순까지도 받아들이고, 사람들이 자기 양심에 따라 내리는 자유로운 결정을 존중할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러므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선언한 것처럼, 어느 종교를 믿든 모든 사람은 근본적으로 종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에 따라 행동하도록 요구받는다는 것을 헤아려야 합니다(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Dignitatis humanae], 2항 참조).

저는 대다수 국민이 그리스도교와 다른 신앙을 고백하는 나라들에서도 이렇게 더불어 사는 연대의 삶이 이루어지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그런 나라들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 이민들은 불행히도 참된 종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항상 누리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이동이 빈번한 오늘날의 세계에서 모든 사람이 이러한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하느님의 섭리로 인간의 중심성이 결코 부인되지 않는 결실 있는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대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조국을 버리게 하였던 전쟁, “흔히 인류의 역사를 피로 물들였던 끔찍한 종교 전쟁의 참상을 막고자 하는” 바람을 키워 주는 유일한 길입니다. 한 분이시며 유일하신 하느님의 이름이 그 본래의 모습대로 “평화의 이름, 평화에 대한 호소”가 되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새 천년기?, 55항 참조).

3. 2002년 세계 이민의 날은 ‘이민과 종교간 대화’를 주제로 제시하였습니다. 저는 해마다 거행되는 세계 이민의 날을 기회로 모든 그리스도인이 새로운 복음화의 이러한 매우 실제적인 모든 측면을 더 깊이 헤아릴 수 있게 되기를 주님께 기도 드립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각자 활용할 수 있는 모든 도구를 소중히 여겨, 본당 공동체 안에서 적절한 사도적 사목적 활동을 펼쳐 나가기 바랍니다.

본당은 다양한 종교적 신념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의 만남으로 참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현장입니다. 본당 공동체는 다양한 행사를 통해서 환대를 가르치는 공간, 경험과 재능을 나눌 수 있는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다른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들어오는 이민들과 불화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더욱 평화로이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르지만 대화를 나누려는 공동의 의지가 있다면, 유익한 나눔의 토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친교를 발전시킴으로써 공동선에 이바지하려는 공동의 목적을 위하여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를 가진 이민이 많이 살고 있는 대도시 지역에서 더없이 좋은 기회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대도시는 서로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가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누는 진정한 ‘실험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또한 십자가 위의 죽음으로 인류를 구원하신 천상 스승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에 이끌려 마음을 열고 팔을 벌려 모든 사람을 끌어안습니다. 이러한 존중과 연대의 문화가 특히 다문화 다종교 환경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정신에 스며들어야 합니다.

4. 날마다 세계 곳곳의 가톨릭 기구와 본당에는 이민과 난민, 망명자들이  찾아와 도움을 호소하고 있으며, 가톨릭 교회는 문화와 종교에 상관 없이 그들을 받아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변함없는 소명인 사랑의 봉사는 인도적인 도움을 주는 일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교회 공동체는 이러한 새로운 사목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교회의 구성원들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신”(요한 3,16), 사랑이신 하느님의 계시의 선물을 새로 온 사람들과 나눌 적절한 기회를 찾아야 할 임무가 있습니다. 물질적인 빵을 나누는 것과 함께, 특히 자신의 삶의 증거를 통하여 또 언제나 모든 사람을 깊이 존중하며 신앙의 선물을 나누어 주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환대와 상호 개방을 통하여 사람들은 서로를 더 잘 알게 되고, 다양한 종교 전통들 안에도 귀중한 진리의 씨앗이 많이 들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깨달음에서 출발한 대화는 진리와 선에 열려 있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풍요롭게 합니다.

이처럼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과제들 가운데 하나인 종교간 대화는 이민 현상으로 촉진될 수 있습니다. 제가 교서 ?새 천년기?에서도 썼듯이, 물론 이러한 대화가 “종교적 무차별주의에 기초”(56항)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대화에 열중하면서도 우리 안에 간직하고 있는 희망을 분명하게 증언하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같은 곳). 대화에서 우리는 신앙의 선물을 감추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들어 높여야 합니다. 또한 그러한 부요를 어떻게 우리만 차지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간직한 이 위대한 보화를 다양한 신앙을 고백하는 이민과 이방인들에게 어찌 나누어 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섭리로 그들이 우리의 여정에 들어왔으니,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세심하게 헤아리면서 그들과 우리의 신앙을 나누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명을 완수하려면 성령의 인도에 우리를 내맡겨야 합니다. 오순절에 진리의 성령께서는 다양한 문화와 종교 안에서 인류의 일치라는 하느님의 계획을 완성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 모였던 수많은 순례자들은 사도들의 말을 듣고 어리둥절해 하며 “저 사람들이 지금 하느님께서 하신 큰 일들을 전하고 있는데 그것을 우리는 저마다 자기네 말로 듣고 있지 않은가?”(사도 2,11) 하고 외쳤습니다. 그 날부터 교회는 계속해서 자기의 사명을 수행하며, 하느님께서 서로 다른 인종과 민족과 나라의 사람들 가운데서 끊임없이 이루시는 ‘놀라운 일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5. 서로 다른 종교와 문화 환경에서 대화의 길을 성실하게 추구하는 모든 사람의 기쁨과 노력을 예수님과 모든 인류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께 맡겨 드리며, 광범위한 이민 현상에 관계된 사람들을 어머니의 사랑의 옷자락으로 품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침묵’을 지키신 분, 그 안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셨던 분, 이민들의 버림받은 고통과 고독의 시련을 겪으신 겸손한 ‘주님의 종’이신 성모님, 저희 가운데서 저희를 위하여 생명이 되신 말씀을 증언하도록 일깨워 주소서. 서로 다른 종교를 가졌지만 이민 온 모든 형제 자매들과 저희가 솔직하고 우애 넘치는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이러한 소원을 빌며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하겠다는 다짐을 드립니다. 그리고 여러분 모두에게 사랑의 축복을 보내 드립니다.

카스텔 간돌포에서,
2001년 7월 2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