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2013-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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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프란치스코] 2013년 3월 14일, 선거인 추기경단과 함께 드린 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
선거인 추기경단과 함께 드린 미사 강론
(시스티나 경당, 2013년 3월 14일)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저는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바로 어떤 움직임입니다. 제1독서(이사 2,2-5)에서는 길을 걷는 움직임, 제2독서(1베드 2,4-9)에서는 교회를 세우는 움직임, 복음(마태 16,13-19)에서는 신앙을 고백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걸어가고, 세우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걸어가기.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이사 2,5) 이는 하느님께서 아브람에게 내리신 첫 말씀입니다. “너는 내 앞에서 살아가며 흠 없는 이가 되어라”(창세 17,1). 길을 걷기, 우리 삶은 하나의 여정입니다. 우리가 걷기를 멈출 때 일은 잘못 흘러갑니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 앞에서, 주님의 빛 속에서 걸어가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으시며 그에게 요구하신 대로, 우리는 흠 없이 살아가야 합니다.

짓기. 교회 세우기. 돌을 두고 말합니다. 돌은 견고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 있는 돌,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은 돌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바로 주님이신 모퉁잇돌 위에 짓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 삶의 또 다른 움직임인 세우기입니다.

세 번째는 고백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만큼 걸어갈 수 있고, 많은 것들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지 않는다면, 일은 잘못 흘러갑니다. 우리가 자선을 하는 비정부기구가 될 수는 있겠지만 주님의 신부인 교회가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걸어가지 않을 때 우리는 멈춰 서게 됩니다. 우리가 돌들 위에 건물을 짓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생기겠습니까?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는 아이들에게 일어나는 일과 똑같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곧,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견고함은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지 않는다면, 레옹 블루아의 이러한 말이 생각납니다. “주님께 기도하지 않는 자는 마귀에게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지 않는다면, 마귀의 세상, 악마의 세상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걸어가고, 교회를 세우고, 고백하기. 이는 그리 쉽지 않은 일입니다. 걸어가고, 세우고, 고백하는 일 속에 참으로 많은 흔들림, 정확하게는 걸어가기가 아닌 다른 움직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뒤에서 우리를 잡아당기는 움직임들입니다.

오늘 이 복음은 특별한 상황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했던 바로 그 베드로는 이제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저는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십자가만은 이야기하지 맙시다. 그건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입니다. 저는 다른 길로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다만 십자가 없이 따르겠습니다. 우리가 십자가 없이 걸어간다면, 십자가 없이 교회를 세운다면, 십자가 없이 그리스도를 고백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제자가 아니라 세상의 속인들입니다. 우리가 주교, 사제, 추기경, 교황이기는 하겠지만, 주님의 제자들은 아닐 것입니다.

저는 은총이 가득한 이 며칠을 보낸 뒤 우리가 모두 용기를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앞에서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는 용기,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주님의 피 위에 교회를 세우는 용기,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유일한 영광으로 고백하는 용기를 지녀야 합니다. 이러한 길로 교회는 나아갈 것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어머니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전구로, 우리에게 걸어가고 세우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이러한 은총을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아멘.

 
(원문: ‘Missa pro Ecclesia’ with the Cardinal Electors, Homily of the Holy Father Pope Francis, 2013.3.14. 영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