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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0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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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주교회의 2019 해외 동행 취재 (4) 체코
  • 카테고리 : 소식
  • 작성자 : 주교회의
  • 작성일 : 2019-10-10 15:35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보편 교회인 가톨릭의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을 사회 일반에 환기하고자, 2019년 9월 21-29일 ‘동유럽 가톨릭 문화유산’을 주제로 해외 동행 취재를 실시했다. 교계 신문 주교회의 출입기자단과 일간지 종교담당 기자단을 대상으로 폴란드, 오스트리아, 체코의 가톨릭 성지와 순례지를 답사했으며, ▲민중과 동고동락한 동유럽 가톨릭의 역사 ▲지역색과 역사 속에서 토착화된 대중 신심 ▲현대 수도원의 모습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체코의 사회학자 다나 함플로바는 체코인들의 종교생활을 연구한 소논문에서, 수도 프라하의 주교좌 성 비투스 대성당에 관람객은 많아도 순례자는 드물다고 꼬집었다. 폴란드 교회가 국난 극복의 원동력이 된 것과 대조적으로, 체코 교회는 15세기부터는 후스파와의 대립, 20세기에는 제국주의와 공산주의를 겪으며 입지가 좁아졌다. 2017년말 체코 주교회의가 집계한 가톨릭 신자 비율은 32%이지만, 교회 관계자들이 체감하는 신자 비율은 그보다 적다. 그럼에도, 전염병과 전쟁의 혼란 속에서 하느님의 은총과 성인들의 도움에 매달리던 옛사람들의 절절한 신앙 표현은 종교가 민중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를 성찰하도록 도와주었다. 

▲쿠트나호라 세들레츠 해골 성당, 성녀 바르바라 대성당 

폴란드에는 소금광산이, 체코에는 은광산이 있었다. 수도 프라하로부터 동쪽 80km 거리의 쿠트나호라는 14세기경 시토회가 개척한 마을 공동체와 은 채굴의 호황에 힘입어 전성기를 구가했다. 흰옷에 모자를 쓴 광부들의 모습이 수도복을 입은 것 같다고 해서 지역명도 쿠트나(Kutna: 수도복)+호라(Hora: 산)로 지어졌다. 자원 고갈로 도시는 300년 만에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이곳에는 중세 말기 체코인들의 신심을 보여주는 유적들과 당시에 조성된 도로,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그런 까닭에 1995년 쿠트나호라는 도시 전역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9월 26일 오후에 방문한 세들레츠 납골당(해골 성당)은 14세기에 지어졌다. 흑사병과 종교전쟁으로 목숨을 잃고 무덤마저 훼손된 이들의 유골을 수습해 지하 납골당을 성당 형태로 꾸몄다. 11월 1일에 기념하는 ‘모든 성인’을 주보로 모시며 이름없는 영혼들을 위로하고 모든 이가 하느님의 어좌 앞에 평등함을 일깨우는 곳이다. 성당 앞뜰에는 19, 20세기에 세상을 떠난 신자들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었다. 실제 미사는 지상 성당에서 봉헌된다. 

세들레츠 납골당에서 2km 거리의 언덕에는 시토회와 별도로, 광산 채굴로 부를 축적한 귀족들이 광부들을 동원해 세운 성당이 있다. 광산의 수호성녀 바르바라에게 봉헌된 대성당이다. 조각상이 아닌 벽화들은 채색이 상당히 바래 있었다. 내벽에 광부들과 은화(탈러화) 주조자들의 생활상을 그려넣은 풍속화 부분이 특히 그랬다. 다음날 찾아간 프라하대교구 주교좌 성 비투스 성당과 대비되는 풍경이었지만, 자연스럽게 낡아진 성당은 하느님과의 대화가 필요한 순례자들에게 알맞은 휴식과 묵상의 자리였다. 


① 쿠트나호라 세들레츠 납골당. 성당 뜰에 교우들의 무덤이 조성되어 있다. ② 세들레츠 납골당(해골 성당) 입구. ③ 쿠트나호라 성녀 바르바라 대성당 전경. ④ 쿠트나호라의 옛 은광산 입구. ⑤ 성녀 바르바라 대성당에는 성화상뿐 아니라 광산노동자들의 생활상도 그림과 조각으로 묘사되어 있다.

▲ 프라하대교구 주교좌 성 비투스 대성당, 천주의 성모 틴 성당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도시 프라하의 중심, 1구에 위치한 프라하 성에서도 가장 높은 언덕에 건설된 성 비투스 대성당은 입장 대기 시간만 최소 30분에 이르는 관광 명소이다. 

9월 27일 오전에 찾아간 성 비투스 대성당은 유럽의 많은 중세 성당처럼 고딕 양식의 첨탑과 천장 직전까지 닿는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순례자들의 시선을 하늘로 이끌었다. 외벽이 검어진 것은 사암(沙巖)에 함유된 금속 성분 때문이라고 한다. 회중석 양옆을 찬찬히 둘러보면 신구약 시대와 체코 가톨릭 교회사를 따라 시간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 오스트리아 화가 클림트의 제자인 알폰스 무하의 역작이면서 슬라브족에 복음을 전한 선교사 형제를 형상화한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 스테인드글라스, 체코의 국가 개념을 정립하며 가톨릭 신앙을 도입한 군주 바츨라프(=성 벤체슬라오), 카를교의 순교자이면서 프라하의 주보성인이 된 성 요한 네포묵 사제의 조각상과 유해를 이곳에서 모두 볼 수 있다. 취재단이 방문한 날은 성 벤체슬라오 축일 전날로, 회중석에서는 축일 미사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보편 전례력에도 들어 있는 9월 28일 성 벤체슬라오 기념일은 체코의 건국절이기도 하다. 

성 아래 구도심에는 여행자들의 쉼터인 후스 광장이 있다. 후스 동상 정면에서 오른쪽에는 좌우대칭의 두 첨탑이 인상적인 천주의 성모 틴 성당, 왼쪽에는 확실히 후대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는 로마 바실리카 양식의 성 니콜라스 후스교회가 있다. 그 가운데 틴 성당은 가톨릭과 후스파의 오랜 갈등, 그리고 조심스러운 화해의 몸짓을 증언하는 건물이다. 

마르틴 루터보다 한 세기 앞섰던 얀 후스의 종교개혁 주장은 1415년 콘스탄츠 공의회의 단죄와 후스의 화형으로 이어졌지만, 여파는 수세기를 거쳐 30년 전쟁(1618-1648년)으로 이어졌다. 14세기 초부터 가톨릭 성당으로 건설됐던 틴 성당은 15세기 후스파 지도자였던 이르지 스 포데브라드 왕 재위 때 완공돼 후스파 거점교회가 됐다. 80m 높이의 쌍탑 사이에는 후스파의 상징물인 황금 성작을, 그 밑에는 이르지 왕의 조각상을 설치했었다. 30년 전쟁 중인 1620년, 빌라호라에서의 전투(백산 전투)에서 가톨릭이 승리한 뒤 대응종교개혁이 본격화되면서 이르지 조각상과 황금 성작은 1623년 1월 17일 철거되고, 성작을 녹여 만든 황금 성모자상이 그 자리에 설치됐다. 

여기까지가 일반 여행자들이 아는 부분이다. 27일 낮에 확인한 황금 성모자상 아래에는 400년간 사라졌던 황금 성작이 돌아와 있었다. 체코 주교회의의 결정에 따라 성작이 성체(제병) 모형과 함께 2018년 2월 14일 재설치된 것이다. 성당 측은 이를 “후스파와 나누는 교회일치적 화해,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인 성체성사를 시각화한 상징물”이라 설명했다. “주님의 최후 만찬에서 시작된 성체성사에 대한 공경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공통된 신앙”인 것이다. 사진 촬영에 골몰하는 관광객들이 아닌 개인 순례자들, 해설자의 나직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중앙 제단과 경당들을 순례하는 단체 순례자들의 경건함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프라하에는 저녁마다 성당 오르간 연주회와 관현악단 초청 연주회를 개최하는 성당이 많다. 프라하대교구 홈페이지도 성당 연주회 유치 신청 안내문을 제공하고 있어, 성음악을 통해 현대인의 신앙 감각을 일깨우고 교회에 대한 친근감을 높이려는 노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① 프라하성에서도 가장 높은 언덕에 건설된 프라하대교구 주교좌 성 비투스 대성당. ② 최후의 심판, 의인들의 부활과 악인들의 멸망을 묘사한 성 비투스 대성당 외벽 모자이크화. 성화상은 대부분 문맹이었던 중세 민중에게 성경과 교리를 가르치는 도구였다. ③ 구도심 후스광장. 왼쪽에 얀 후스 동상이, 오른쪽에 천주의 성모 틴 성당이 보인다. ④ 성 비투스 대성당의 대표 성미술품인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 스테인드글라스. ⑤ 2018년 틴 성당 외벽에 설치된 성체 성혈(제병과 성작) 조형물. 성체성사로 하나 되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뜻한다.

▲ 프라하의 아기 예수 성당 

한국에서도 사랑받는 프라하의 아기 예수 신심의 역사와 현황을 알아보고자, 취재단은 9월 27일 오후 프라하 2구에 자리한 ‘승리의 성모와 프라하의 아기 예수 성당’을 찾아갔다. 

본디 이름인 ‘승리의 성모’보다 ‘프라하의 아기 예수’로 더 유명한 이 성당은 구도심의 명물 카를교에서 불과 600m 거리에 있다. 가르멜 프라하 수도원장 파벨 폴라 신부에 따르면, 본디 후스교회로 지어졌다 루터교회로 전환됐고, 1620년 백산 전투 이후 신성로마제국 페르디난트 2세 황제에 의해 가르멜 수도회 관할의 가톨릭 성당으로 전환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45cm 높이에 4-5세 어린이의 모습을 한 아기 예수 목각상. 제작 연대는 알 수 없지만, 1556년 스페인 귀족 가문의 딸이 보헤미아에 시집을 오면서 가르멜 영성이 반영된 아기 예수상을 가져왔고 1628년 가르멜 수도원에 선물했다고 한다. 예수님의 인간적 면모를 조명하는 가르멜회 전통에 따라, 수사들은 어린 예수님을 수련자들의 모범으로 삼았다. 30년 전쟁 때 수도원이 해산되면서 방치, 훼손된 예수상을 1637년에 돌아온 천주의 성모 치릴로 수사가 복원했다. 그가 전파한 아기 예수 경배는 1648년 교회(프라하대교구) 인가를 받았고, 1655년에는 프라하대교구장의 주례로 대관식이 거행됐다. 아기 예수상이 현재 위치인 성당 회중석 오른쪽 제단에 모셔진 것은 1741년이다. 

20세기 들어 성 비오 10세 교황이 가르멜 수도회에 힘을 실어주면서 프라하의 아기 예수가 널리 알려졌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체코의 공산화로 성당은 신부 1명만 남고 사실상 방치됐다. 체코인들의 찬미는 끊기고 스페인어권 국가에서만 경배가 간간이 이어졌다. 1993년 가르멜회가 복귀했을 때 폐허에 가까웠던 성당은 복구되고 아기 예수 경배도 활기를 되찾았다. 한국에서도 1997년 ‘프라하의 아기 예수’ 번역서 출판을 계기로 신자들의 기도와 순례가 시작됐다. 

프라하의 가르멜회원들은 한국과도 접점이 있다. 아기 예수님의 사랑을 세계의 고통받는 어린이들과 나누고자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 회원들을 파견하고 물적 영적 지원을 하고 있는데, 파견지의 하나인 방기대교구에 한국 대구대교구의 선교사제들도 파견돼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아기 예수 제단은 수직으로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수평으로는 인간과 다르지 않은 예수님의 가정을 형상화한다. 그 신성과 인성의 교차점에 프라하의 아기 예수님이 계신다. 제의실에서 취재단과 만난 파벨 신부는 “이 성당에 온 사람들이 무엇을 배워갔으면 좋겠는가”라는 질문에 “누구든지 이곳에 오기 전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순수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보고, 하느님을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파벨 신부는 “정작 프라하 사람들은 아기 예수님을 잘 모른다”면서, 체코 젊은이들이 교회 권위자들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 때문에 교회를 멀리하면서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를 주목하며 다시 기대를 건다고 했다. “남아 있는 10%의 신자들은 정말 진실한 신자라고 믿는다”며 환히 웃는 그에게서, 단 열 명의 의인이라도 하느님께서 좋게 보아주시기를 청하던 아브라함의 믿음을 떠올렸다.


① 프라하의 아기 예수 성당 정면에 모셔진 승리의 성모상. ② 미사의 영성체 예식을 마친 신부가 아기 예수 제단에 자리한 감실에 성체를 안치하고 있다. ③ 아기 예수 제단 앞에서 기도하는 순례자들. 프라하의 아기 예수님께 바치는 기도문이 22개 언어로 비치되어 있다. ④ 가르멜 프라하 수도원장 파벨 폴라 신부. ⑤ 성당 2층 박물관에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의 순례자들이 아기 예수님께 봉헌한 민속 의상들이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