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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 한국가톨릭 < 홈
관덕정
홈페이지 연락처 (064) 753-2271
주소 제주시 삼도1동 교구 제주교구

■ 지리좌표  관덕정 앞 북위 33 30′48″ 동경 126 31′17″
■ 문 의 처  중앙 성당 (064) 753-2271
■ 찾아가는 길
   제주시 구시가지에 위치한 관덕정은 제주 시내에 들어서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제주 공항에서 용문로, 서문로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관덕로로 접어들면 길 왼쪽으로 관덕정이 있다.

옛 제주시의 중심부인 삼도2동에 있으며 보물 제322호로 등록되어 있다. 1901년 신축교안 때에 이곳 광장에서 수많은 교우 및 양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조선 땅에 복음의 서광이 비치기 시작한 18C이후 100여년에 걸쳐 진행된 혹독한 박해는 수많은 교우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들의 피와 땀은 이 땅 구석구석에 뿌려져 오늘날의 한국교회를 꽃피우는 밑거름이 된 것이다.

1886년 한·불조약을 계기로 박해 정책은 막을 내린다. 하지만 유학적 전통이나 인습에 젖어 있었던 당시 조선 땅에서는 공식적인 박해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아침에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지방에서는 소규모 사건들이 지방 관리나 유림들에 의해 빈발하였고 어떤 사건은 그 규모가 공식적인 박해를 능가하는 예를 보이기도 했다.

이는 지방 관리와 교인들 사이의 분쟁이나, 교인들과 민간인 사이의 분쟁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예컨대 충청도 아산, 전라도의 지도(智島), 황해도의 장연(장연), 강원도의 이천(이천) 등지에서는 계속적인 교난 사건이 발생했다.

부패한 관리와 완고한 유생들, 혹은 무당 등의 인습에 젖은 지방민과 천주교인들과의 충돌이 결국에는 박해라는 양상으로 바뀌었고 지역에 따라서는 대규모의 민란으로 나타났다. 그 중의 하나가 1901년 신축년에 발생한 제주도의 신축교안이다.

지방 관리와 기득권을 주장하는 토호 세력, 그리고 일본인 밀어업자들의 결탁으로 유도된 이 사건은 중앙 정부의 조세정책, 즉 조정에서 파견된 봉세관(봉세관)이 온갖 잡세를 거두어가는 것에 불만을 품은 백성들을 선동하여 수탈정책의 시정을 요구하는 민란으로 출발하였다. 그러나 사건이 진행 과정에서 도정 책임자와 봉세관은 도피해 버리고 난민들은 공격 대상을 천주교로 돌렸다. 이에는 일부 신자들이 봉세관과 결탁하여 비리를 행한 사례도 원인의 하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신부를 타도하려는 일본인의 음모, 축첩과 인습에 젖은 토호 세력, 그리고 생존을 위협받게 된 무당 등의 작용이 결정적인 원인이었음이 틀림없다.

이리하여 제주시에 진입한 민군들은 신자를 포함한 양민 등 700여명을 살해하기에 이르렀다. 이 유서 깊은 관덕정 정자 앞 광장이 사형장으로 변했던 것이다. 서건이 수습되는 과정에서 당시 프랑스 함대장이 촬영한 사진에는 교우들을 죽일 때 사용했던 몽둥이들이 시신 옆에 놓여 있어 당시의 참상을 대변하고 있다. 이 때 희생된 교우들의 시신은 그 후 별도봉 기슭에 가매장되었다가 현재는 황사평에 안장 되었다.
 

번호 교구 성지명 소재지
1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서울 종로구 혜화동 90-1
2 대전교구 갈매못 충남 보령시 오천면 영보리 산 9-53
3 인천교구 갑곶순교성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해안동로 1366번길 35 (갑곶리)
4 춘천교구 강릉 동헌(칠사당, 객사문) 강원 강릉시 용강동 강릉시청 내
5 대구대교구 계산성당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 2가 71
6 광주대교구 곡성 성당 내 감옥터 전남 곡성군 곡성읍 읍내리 5구 425
7 수원교구 골배마실(은이성지)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남곡리 632-1
8 대전교구 공세리 성당 충남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 194-1
9 대구대교구 관덕정 대구시 중구 남산2동 938-19
10 제주교구 관덕정 제주시 삼도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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