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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 2018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

2018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


평화의 발걸음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신 주님의 크신 사랑을 기억하는 6월, ‘예수 성심 성월’입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하신 주님께서는 당신 스스로 십자가 죽음을 당당히 받아들이심으로써 우리 신앙인들에게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그 사랑의 초대에 응답해야 하는 우리 앞에,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이 겹쳐 있음은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전쟁의 상처와 아픔을 이겨 내고 사랑으로 화해와 일치를 이루기를 다짐하는 올해의 6월은 우리 민족에게 더더욱 특별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겨우 6개월 전만 하더라도 전쟁의 위기로 불안감이 최고조에 다다랐는데, 새해 들어 기적과도 같이 평화의 바람이 불어오더니,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 회담과 더불어, 예전에는 상상조차 어려웠던 북미 간의 역사적인 정상 회담이 전 세계인의 관심 속에 감동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을 우리는 생생하게 지켜보았습니다. 이 모든 일은 위기의 순간에 마음을 모아 지속적으로 함께 봉헌하였던 우리의 간절한 기도와 더불어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롯한 전 세계 교우들의 평화를 위한 기도의 연대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고 생각합니다.
4.27 판문점 선언에서 강조하였듯이, 이제 대결과 갈등으로 이어진 긴장과 불안의 65년, 비정상적 정전 체제가 끝을 맺을 때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종전 선언과 더불어 새로운 평화 시대를 맞이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특별히 올해는 요한 23세 교황의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가 반포된 지 5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교황께서 회칙을 통하여 강조하신 것처럼 “지상의 평화는 모든 시대의 인류가 깊이 갈망하는 것으로서 하느님께서 설정하신 질서를 충분히 존중할 때에 비로소 회복될 수 있고 견고해지는”(「지상의 평화」, 1항) 것입니다. 세상의 질서, 힘의 논리를 바탕으로 평화를 유지하려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16)라는 신앙 고백을 바탕으로 주님께서 약속하신 참평화를 이루고자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창조 질서 안에서 생명과 평화의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어야 합니다.

분단은 죄의 결과

창세기 3장에는 아름답고 선하게 창조된 세상에서 인간이 어떤 죄를 지었고, 그로써 어떤 벌을 받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죄를 저지른 인간이 처음으로 보인 행동은 자신의 몸을 가리고 서로 멀리하며 하느님을 피하여 숨으려 하고, 또한 자신의 책임을 다른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것이었습니다. 죄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멀어지게 합니다. 죄의 가장 무서운 결과는 ‘관계의 단절’이고, 성경은 그 관계의 단절이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지위의 상실, 곧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창세 3,7-24 참조).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관계의 단절’인 분단은 죄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지난 73년을 이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죄가 또 다른 죄를 낳듯, 분단 체제 속에서 서로를 적대시하고 악마화하며 수없이 많은 상처와 아픔을 주고받으며 지내 왔습니다. 또한 이념 갈등이 정치적으로 악용되면서 지역과 세대 간의 극단적 대립으로 이어졌고, 이로 말미암은 희생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대결 구도 속에서 악의 세력에 대항한다는 명분으로 우리 스스로 악함 속에 살아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화해의 직분

바오로 사도는 그의 서간에서 아담과 그리스도를 비교하며 원죄와 구원에 대하여 설명해 줍니다(로마 5,12-21 참조). 아담의 죄로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지만, 그리스도의 부활로 영원한 생명의 지위를 회복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는 죄의 결과인 ‘관계의 단절’을 이겨 내고 관계를 회복해 주시러, 곧 하느님과 우리를 화해시켜 주시러 오셨다고 말합니다(로마 5,10-11; 에페 2,16 참조).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은 우리는 모두 그 화해의 직분을 부여받았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2코린 5,18).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 신앙인들은 모두 화해의 직분을 부여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화해하였듯이 갈라진 세상 안에서 서로 화해해야 합니다. 그 화해를 이루는 유일한 힘은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남겨 주신 사랑의 계명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께서 주신 유일한 명을 거슬러 죽음의 벌을 받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남기신 유일한 명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얻게 됩니다.
‘화해를 통한 일치.’ 이는 우리 신앙인이 나아가야 할 구원의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죽음을 앞두시고 당신을 따르는 모든 이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십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 주님의 이 간절한 기도를 마음에 새기며 시대의 징표를 읽어야 합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는 남북으로 갈라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 모두에게 주어진 주님의 뜻임이 분명합니다.

새로운 길

지난 4월 27일, 남과 북의 정상이 손을 마주 잡고 판문점 군사 분계선을 넘나드는 모습과 도보 다리에서 배석자 없이 함께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세계 많은 이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2014년 우리나라를 방문하셨던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말씀하셨듯이 한반도에서 불어오는 평화의 바람은 세계 모든 분쟁 국가에 커다란 희망이 될 것임은 분명합니다. 이제 한반도가 분쟁으로 말미암은 위험과 불안의 상징이 아닌 새로운 평화의 표징이 될 수 있도록 함께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북미 정상 회담 이후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 한 번도 걸어 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가게 됩니다. 그동안 불가능해 보였던 모든 일이 순차적으로 또는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종전 선언으로 65년의 정전 체제를 끝내고, 비핵화와 평화 협정을 통한 새로운 상생의 시간들을 맞이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그 여정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관심과 기도가 더욱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복음화는 ‘평화의 복음’을 선포하고 증언하는 것입니다(「복음의 기쁨」, 239항 참조). 사실 분단의 과정에서 우리는 끔찍한 전쟁을 경험하였고, 또 이념 갈등으로 상처와 아픔이 많았습니다. 그 부정적 기억들이 마음의 완고함으로 자리하여 복음의 기쁨을 누리는 데 큰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에제 36,26) 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평화가 우리 마음을 다스릴 수 있도록 자신을 활짝 열어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에페 2,14). 그리고 당신의 이름으로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모인 곳에는 늘 함께해 주십니다(마태 18,20 참조). 우리는 참평화를 안겨 주시는 주님 안에서 평화를 구해야 합니다. 마음을 모아 함께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로써 연대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함께 바치는 기도로 놀라운 변화를 이루어 왔듯이, 평화를 향한 이 조심스러운 여정을 공동체 기도로써 함께해 나갑시다. 
교우 여러분! 매일 저녁 9시에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하여 주모경을 바쳐 주십시오. 우리 주교들도 사제들과 함께 축복의 기도로 함께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콜로 3,15).


2018년 6월 25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이기헌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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