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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 인민 공화국 가톨릭 교회의 주교와 신부 봉헌된 이들과 평신도들에게 보내는 교황 서한
교황 베네딕토16세 발표시기 2007-05-27 전자북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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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의 서한

중화 인민 공화국 가톨릭 교회의
주교와 신부
봉헌된 이들과 평신도들에게 보내는 교황 서한

2007. 5. 27.

 

[차 례]

1. 인 사
2. 이 서한의 목적

제1부 교회의 상황

신학적 측면

3. 세계화와 현대성과 무신론
4. 정중하고 건설적인 대화에 기꺼이 참여하기
5. 보편 교회 안에서 개별 교회들의 친교
6. 교회 안의 긴장과 분열: 용서와 화해
7. 교회 공동체와 국가 기관: 진리와 사랑으로 살아가야 하는 관계
8. 중국의 주교직
9. 주교 임명

제2부 사목 생활 지침

10. 성사, 교구와 본당 통치
11. 교회 관구
12. 가톨릭 공동체들
13. 사제들
14. 성소와 양성
15. 평신도와 가정
16. 어른 그리스도교 입문
17. 선교 소명

결 론

18. 특별 권한과 사목 지침의 철회
19. 중국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
20. 축 복

 

인 사

1. 중국 가톨릭 교회의 사랑하는 형제 주교와 사랑하는 신부 여러분, 봉헌 생활자들과 모든 신자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할 때면 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여러분의 사랑을 우리가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마련되어 있는 것에 대한 희망에 근거합니다. …… 그래서 우리도 그 소식을 들은 날부터 여러분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며 간청하고 있습니다. 곧 여러분이 모든 영적 지혜와 깨달음 덕분에 하느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져, 주님께 합당하게 살아감으로써 모든 면에서 그분 마음에 들고 온갖 선행으로 열매를 맺으며 하느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라기를 빕니다. 또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에서 오는 모든 힘을 받아 강해져서, 모든 것을 참고 견디어 내기를 빕니다”(콜로 1,3-5.9-11).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은 베드로의 후계자이며 교회의 보편 목자로서 제가 여러분에게 느끼는 감정을 아주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 마음과 제가 날마다 바치는 기도 안에 여러분이 얼마나 크게 자리 잡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를 영적으로 결합시키는 친교의 관계가 얼마나 깊은지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서한의 목적

2.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에게 느끼는 형제적 친밀함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저는 주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여러분의 충실함을 매우 기쁜 마음으로 인정합니다. 여러분은 “때로는 엄청난 고난을 겪으면서도”1) 이러한 충실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위하는 특권을, 곧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하여 고난까지 겪는 특권을 받았기”(필리 1,29)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나라의 교회 생활에서 몇몇 중요한 측면들은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저는 이 서한에서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복잡한 문제들을 상세하게 다루기보다는, 중국에서 교회 생활과 복음화 임무에 관련된 몇 가지 지침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인류 역사 전체의 관건과 중심과 목적”2)이신 주님이시고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무엇을 바라시는지 깨달을 수 있도록 도우려는 것입니다.

 

제1부
교회의 상황


신학적 측면


세계화와 현대성과 무신론

3. 빛나는 고대 문명 속에 축적된 예지와 철학, 예술과 과학으로 아시아 민족들 사이에서 돋보이는 중국 민족을 생각할 때, 저는 특히 최근 들어 중국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가운데 사회 경제적 발전의 중요한 목적들을 성취하는 방향으로 큰 진보를 이루어 온 것을 기뻐합니다.

저의 존경하는 선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이미 강조하셨듯이, “가톨릭 교회도 이러한 놀라운 추진력과 장기적인 안목의 계획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며, 인간과 인간의 가치와 영성과 초월적 소명을 증진하고 수호하는 데에 고유한 방식으로 신중하게 이바지합니다. 연대와 평화, 사회 정의, 세계화 현상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길 등 현대 중국에도 매우 중요한 가치와 목표들을 교회는 매우 소중하게 여깁니다.”3)

사람들이 바라고 필요로 하는 경제 사회 발전을 이루고 현대성을 추구하는 일에는, 서로 대조적이지만 똑같은 신중함과 긍정적인 사도적 정신으로 평가되어야 하는 두 가지 현상이 따릅니다. 한편으로는,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간의 영적, 초월적 차원과 종교 특히 그리스도교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져 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대도시들에서 전국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물질주의와 향락주의의 경향이 나타나며 이는 중국도 예외가 아닙니다.4)

여러분이 살아가고 일하여야 하는 이러한 환경에서 저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그토록 강력하게 힘주어 강조하셨던 것을 일깨워 드리고 싶습니다. 새 복음화가 요구하는 현대인들에 대한 복음 선포에는,5) 그리스도교 제일천년기에 십자가가 유럽에 뿌리내렸고 제이천년기에는 아메리카 대륙과 아프리카에 뿌리내렸듯이, 제삼천년기에는 광활하고 약동하는 아시아 대륙에서 신앙의 큰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라는 분명한 인식이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6)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라’(루카 5,4). 오늘 우리에게 들려오는 이 말씀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열심히 살며 신뢰를 가지고 미래를 바라보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히브 13,8).”7) 중국에서도 교회는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희망으로 내다보며, 중국인들이 부딪히게 되는 새로운 도전들에 부응하면서 복음을 선포하도록 부름 받고 있습니다.

하느님 말씀은 우리가 세상에서 교회가 나아가는 길의 신비롭고 심오한 의미를 다시 한 번 발견하도록 돕습니다. 실제로 “요한 묵시록의 가장 중요한 환시 가운데 하나는 일곱 번 봉인되어서 아무도 뜯을 수 없었던 두루마리를 펼치는 어린양입니다. 요한은 심지어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들여다볼 수 있는 이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슬피 울기까지 합니다(묵시 5,4 참조). 역사는 완전히 해독되거나 이해될 수 없는 채로 남아 있어서, 누구도 읽을 수 없습니다. 희미하기만 한 역사의 신비 앞에서 요한이 슬피 우는 것은 어쩌면 아시아인들이 받아야 했던 박해 앞에서 하느님께서 침묵하신 것에 대한 아시아 교회의 절망을 표현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교회가 세계 여러 지역에서 겪게 되는 심각한 시련과 오해와 적의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당혹감을 분명하게 반영하는 절망입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고난이 그분께 맞갖은 것이 아니었듯이, 이러한 것들도 물론 교회가 마땅히 겪어야 하는 시련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악의 부추김에 동조하는 인간의 사악함과 더불어 사건들 안에 보이는 하느님의 탁월한 안배를 드러냅니다.”8)

예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부활하신 죄와 죽음의 정복자, 새 인간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증언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분께서는 인간이 원수에게까지 자비와 사랑을 베풂으로써 인간의 모든 나약함과 비극을 이기는 십자가의 승리를 증언할 수 있는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설 수 있게 하십니다. 여러분이 복음에 충실한 가운데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와 보편 교회와 친교를 이루어 사랑과 일치의 징표를 실천할 수 있을 때, 여러분 나라에서도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선포할 수 있습니다(“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요한 13,34-35; 17,21]).


정중하고 건설적인 대화에 기꺼이 참여하기

4. 교회의 보편 목자로서 저는 참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중국 가톨릭 공동체의 마음 깊이 우러난 신앙 증언에 대하여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저의 뿌리칠 수 없는 막중한 임무와 아버지다운 사랑의 표현으로, 교회의 고유한 수단으로 중국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을 굳건히 하고 그들의 일치를 증진하여야 함을 절실히 느낍니다.

저는 중국 국민 전체에 진심 어린 존중과 우정의 마음을 지니고 그들이 겪는 사건들을 특별한 관심으로 지켜보며, “교황청과 중화 인민 공화국 사이에 의사소통과 협력을 위한 구체적인 형태들이 곧 수립되기를” 바라는 뜻을 밝힙니다. “우정은 자주 만나고, 모든 상황에서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연대와 상호 도움을 실천함으로써 길러집니다.”9) 이러한 맥락에서 저의 존경하는 선임 교황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교황청은 전체 가톨릭 교회의 이름으로, 또한 제가 확신하듯이 온 인류 가족의 유익을 위하여, 중국 당국과 어떠한 형태든 대화를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단 과거의 오해를 극복하고 나면, 그러한 대화로 우리는 중국인들의 선익과 세계 평화를 위하여 협력할 수 있을 것입니다.”10)

저는 중국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며, 양쪽의 선의를 전제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교황청은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에 꼭 필요한 협상에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오해와 몰이해의 이러한 상황은 무거운 짐이 되며, 중국 당국에도 중국 가톨릭 교회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마테오 리치 신부가 베이징에서 보낸 글을 상기하며11)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말씀하셨듯이, “오늘날에도 가톨릭 교회는 중국과 그 지도자들에게 아무런 특권도 요구하지 않으며, 상호 존중과 더욱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관계를 이룩하려고 대화의 재개만을 바랄 뿐입니다.”12) 가톨릭 교회는 중국 가톨릭 신자들의 선익과 중국에 사는 모든 사람의 선익을 위하여 자기의 관할 영역 안에서 겸손하고 사심 없이 봉사하고자 한다는 것을 중국이 납득하기를 바랍니다.

중국 정치 공동체와 중국 교회의 관계에 관해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훌륭한 가르침을 상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교회는 그 임무와 권한으로 보아 어느 모로도 정치 공동체와 혼동될 수 없으며, 결코 어떠한 정치 체제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동시에 교회는 인간 초월성의 표지이며 보루이다.” 공의회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정치 공동체와 교회는 그 고유 영역에서 서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이다. 그러나 양자는, 자격은 다르지만, 동일한 인간들의 개인적 사회적 소명에 봉사한다. 양자가 장소와 시대의 환경을 고려하며 서로 건실한 협력을 더 잘 하면 할수록, 그 봉사는 더 효과적으로 모든 사람의 행복에 이바지할 것이다.”13)

그러므로 중국 가톨릭 교회도 국가의 조직이나 행정을 바꿀 사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 교회의 사명은 자신의 고유한 사도직을 수행하면서 하느님 권능의 바탕 위에서 그리스도를 세상의 구원자로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제가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에서 말씀드렸듯이, “교회는 가장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하고자 정치 투쟁을 할 수는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됩니다. 교회는 국가를 대신할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는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비켜서 있을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됩니다. 교회는 이성적인 토론의 길로 그러한 투쟁에 들어서야 하며, 그 정신적인 힘을 다시 일깨워야 합니다. 그러한 힘이 없으면, 언제나 희생을 요구하는 정의는 구현될 수도 없고 진보할 수도 없습니다. 정의로운 사회는 교회가 아닌 정치를 통해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공동선의 요구에 마음을 열고 의지를 불러일으키도록, 교회는 정의 증진을 위한 활동에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14)

이러한 포기할 수 없는 원칙들에 비추어 볼 때, 현재의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은 합법적 국가 권위와 계속 갈등해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또한 국가 권위가 교회의 신앙과 규정에 관한 문제에 부당하게 간섭할 때 그러한 권위와 결탁하는 것은 받아들여질 수 없습니다. 국가 당국자들이 잘 알고 있듯이, 교회는 자신의 가르침으로 신자들에게는 좋은 시민이 되고 국가의 공동선에 훌륭하고 적극적으로 이바지하도록 권유하며, 국가에는 참된 종교 자유를 존중하면서 가톨릭 시민들이 신앙을 온전히 실천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을 분명히 요청합니다.


보편 교회 안에서 개별 교회들의 친교

5. 사랑하는 중국 가톨릭 교회 신자 여러분, 여러분은 역사 안에서 순례하는 큰 백성 가운데 현존하며 활동하는 작은 양 떼입니다. “너희들 작은 양 떼야,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기로 하셨다.”(루카 12,32)라는 예수님 말씀은 여러분에게 얼마나 힘이 되고 격려가 됩니까! 예수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그러므로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3.14.16).

보편 교회가 중국 가톨릭 교회 안에 현존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신경에서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온다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의 교회, 말하자면 주님의 제자들의 보편 공동체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중국의 개별 교회들을 하나로 묶어 주고 전 세계 다른 개별 교회들과 내밀한 친교를 이루게 하는 깊은 일치는 같은 신앙과 같은 세례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성찬례와 주교직에 뿌리를 둔 것입니다.15) 마찬가지로,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이 …… 영구적이고 가시적인 근원이며 토대”16)가 되는 주교직의 일치는 사도 계승을 통하여 수 세기 동안 계속되고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 위에 세우신 그 교회와 모든 세대의 교회를 동일하게 만드는 토대가 됩니다.17)

가톨릭 교리는 주교가 자신의 사목에 맡겨진 개별 교회 안에서 일치의 가시적인 근원이며 토대라고 가르칩니다.18) 그러나 모든 개별 교회가 온전히 교회가 되려면 교회의 최고 권위, 말하자면 로마 교황을 단장으로 하며 그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주교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후계자의 직무는 “내부에서부터”19) 모든 개별 교회의 본질에 속하여 있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개별 교회가 하나인 가톨릭 교회 안에서 이루는 친교와, 사도들의 후계자인 모든 주교가 베드로의 후계자와 이루는 교계적 친교는 모든 가톨릭 신자의 신앙과 삶의 일치를 보장합니다. 그러므로 개별 국가들에서 교회의 일치를 위해서는 반드시 각 주교가 다른 주교들과 친교를 이루어야 하고 모든 주교는 교황과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친교를 이루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누구도 이방인이 아니며, 모든 사람이 같은 백성이고 그리스도의 같은 신비체의 지체들입니다. 성사적 친교를 가능하게 하는 끈은 주교와 신부들의 직무가 보장하는 성찬례입니다.20)
중국에 있는 교회 전체는 더욱 풍요로운 친교의 영성으로 이러한 일치를 실천하고 드러내 보임으로써, 가톨릭 공동체가 놓여 있는 복잡하고 구체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교회가 조화로운 교계적 친교 안에 성장할 수 있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자들과 신자들은 교회의 교리와 전통에 속한 것을 지키고 보호하도록 부름 받습니다.


교회 안의 긴장과 분열: 용서와 화해

6. 저의 존경하는 선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교황 교서 「새 천년기」(Novo Millennio Ineunte)에서 온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편 교회와 개별 교회의 노력과 계획이 있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영역은 교회 신비의 본질 자체를 구현하고 계시하는 친교(koinonia)의 영역입니다. 친교는 영원하신 성부의 마음에서 솟아 나오는 그 사랑의 결실이며 증거로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부어지며(로마 5,5 참조), 우리가 모두 ‘한마음 한뜻’(사도 4,32)이 되게 합니다. 이러한 사랑의 친교를 이룰 때 교회는 ‘성사’, 곧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며 도구’로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에 대한 주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너무도 꼭 들어맞아 그 중요성이 감소될 수 없습니다. 교회의 역사적 여정에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며, 이 새로운 세기에는 특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랑(agape)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헛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다시 한 번 사랑의 송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일깨워 줍니다. 곧, 우리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또 우리가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닙니다’(1코린 13,2 참조).…… 사랑이야말로 진정 교회의 ‘핵심’입니다.”21)

보편 교회의 본질 자체에 관련된 이러한 문제는 중국 교회에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실제로 여러분은 교회가 내부적으로나 중국 사회와 맺는 관계에서 극복하고자 하는 문제들, 긴장과 분열과 상호 비난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해 저는 신생 교회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다음과 같이 상기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제자들의 공동체에는 성령의 기쁨과 진리와 사랑의 은총뿐만 아니라 특히 신앙의 진리에 관한 불일치로 생기는 시련들과 그에 따라 친교가 입은 상처들도 있었습니다. 사랑의 친교는 처음부터 있어 왔고 끝까지 계속될 것입니다(1요한 1,1 이하 참조). 이와 마찬가지로, 안타깝지만 분열도 처음부터 있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분열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에 놀랄 필요는 없습니다. …… 그래서 세상의 일들과 교회의 나약함은 언제나 신앙을, 나아가서는 사랑과 형제애를 잃어버릴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랑의 교회를 믿고 그 안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위험까지도 인정하여야 할 특별한 임무가 있습니다.”22)
교회의 역사는 화해를 위하여 끈질기게 노력하지 않고는 참된 친교를 표현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23) 실제로, 기억을 정화하고 잘못한 이들을 용서하며 그동안의 불의를 잊어 주고 괴로운 마음에 사랑으로 평안을 되찾아 주는 것,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이 모든 일은, 아프고 힘든 경험을 통하여 형성된 개인의 입장이나 견해를 뛰어넘도록 요구할 수 있습니다. 중국 신자들과 목자들의 친교의 유대를 성장시키고 가시적으로 드러내려면 하루빨리 이러한 일들을 실천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까닭에, 저의 존경하는 선임 교황께서는 여러 기회에 여러분을 용서와 화해로 절박하게 초대하셨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2000년 대희년을 앞두고 여러분에게 보내신 메시지의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대희년을 준비하면서 기억하여야 할 것은, 성경 전통에서 이 순간에는 언제나 다른 이의 빚을 탕감해 주고, 그동안 저지른 불의에 대하여 배상하며, 이웃과 화해할 의무가 뒤따랐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준비된 큰 기쁨’, 곧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된 구원이 선포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이러한 기쁨의 선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따라 여러분도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으로 이를 전달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의 내적 이끄심에 응답하여 어떠한 잘못도 서로 용서하고 서로 더욱 가까이 다가가며 서로를 받아들이고 분열을 일으킬 수 있는 온갖 원인을 극복하고자 모든 벽을 허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께서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5)라고 하신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대희년을 맞아 여러분이 가장 소중하게 바라는 선물이 여러분의 일치와 베드로의 후계자와 이루는 일치라는 소식을 듣고 기뻤습니다. 이러한 지향은 화해와 일치를 향한 힘든 길에서 교회를 이끄시는 성령의 열매가 아닐 수 없습니다.”24)

우리는 모두 이러한 여정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지만, 온 교회가 이러한 목적으로 여러분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할 것을 확신합니다.

또한 여러분의 화해의 길은, 중국 가톨릭 교회의 미래를 위하여 삶을 바치면서 고통 받고 용서하였던 수많은 ‘신앙의 증인들’의 모범과 기도로 뒷받침된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그들의 존재 자체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서 여러분에게 영원한 축복이 되며, 그들에 대한 기억은 분명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와 국가 기관: 진리와 사랑으로 살아가야 하는 관계

7. 앞에서 말한 것처럼 심각한 차이 때문에 빚어진 가슴 아픈 상황에는(6항 참조) 평신도와 목자가 모두 관련되어 있으며, 이 상황을 면밀히 분석해 보면, 가톨릭 공동체 생활의 주요 결정자로 지정된 기구들이 의미심장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여러 원인들 가운데에서도 두드러집니다. 실제로 오늘날에도 이러한 기구들의 인정이 공동체나 개인이나 종교 장소를 합법적이고 ‘공식적인’ 것으로 선언하는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성직자 사이에서나 평신도 사이에서 분열을 일으켜 왔습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교회 외적인 요인들에 좌우되는 상황이지만, 의혹과 상호 비방과 비난을 낳으면서 교회의 발전에 심각한 영향을 미쳐 왔으며, 여전히 교회의 취약한 부분으로 남아 있어 걱정을 낳습니다.

국가 기관과 유지되어야 할 관계라는 민감한 문제와 관련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동 방식(modus operandi)을 따르라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권고에서 중요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힘으로 다스리는 정치적 메시아가 되기를 바라지 않으시고,25) 당신은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온’(마르 10,45) 사람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시기를 더 좋아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는’(마태 12,20) 하느님의 완전한 종으로 당신을 드러내셨습니다.26)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마태 22,21) 하시면서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라고 이르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국가 권력과 그 권리를 인정하셨으나 하느님의 더 높은 권리를 받들라고 분명하게 권고하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십자가 위에서 구원 활동을 완수하시어 인류에게 구원과 참자유를 주시고 당신의 계시를 완성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진리를 증언해 주셨지만,27) 반대자들에게 그 진리를 힘으로 강요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나라는 힘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28) 진리를 증언하고 들음으로써 굳건해지며 사랑으로 넓혀집니다. 십자가에 높이 들리신 그리스도께서는 그 사랑으로 인간을 당신께 이끌어 들이십니다(요한 12,32 참조).”29)
진리와 사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생활을 지탱하는 두 기둥입니다. 이 때문에 저는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습니다. “사랑의 교회는, 무엇보다도 주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맡기신 복음에 충실하고자 하는 진리의 교회이기도 합니다. …… 그러나 하느님 자녀의 가정이 일치를 이루고 평화롭게 살아가려면 그 가정을 진리 안에 지키고 현명하고 권위 있는 식별로 이끌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들의 직무가 수행하도록 부름 받는 일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것을 알게 됩니다. 온전히 성령에 이끌리는 교회는 사도 계승이라는 분명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사도 계승은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주신 진리 안에 계속 머물도록 보장할 책임을 지니고 있으며, 사랑의 역량도 사도 계승에서 비롯됩니다. …… 그러므로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은 교회에 맡겨진 진리의 유산의 관리자이며 권위 있는 증인이고, 또한 사랑의 봉사자들입니다. 이 두 측면은 함께 나아갑니다. …… 진리와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나오며 사도 직무에 힘입어 교회 안에 보존되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전해져 오는 같은 선물의 두 얼굴입니다.”30)

그러므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렇게 강조합니다. “사회, 정치, 종교 문제에서 우리와 달리 생각하고 달리 행동하는 사람들까지도 우리는 존경하고 사랑하여야 한다. 우리가 참으로 친절과 사랑으로 그들의 사고방식을 더 깊이 이해할수록 그들과 더욱 쉽게 대화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또 공의회는 “이러한 사랑과 호의가 진리와 선에 대하여 우리를 무관심하게 만들어서는 결코 안 된다.”31)고 권고합니다.

“예수님의 본래 계획”32)을 생각하면, 국가의 지지를 받지만 교회 조직과는 무관한 몇몇 기구들이 스스로 주교들보다 위에서 교회 공동체 생활을 이끌겠다고 하는 주장은 가톨릭 교리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가톨릭 교리에 따르면,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강조하는 대로 “사도적”입니다. 교회는 “‘사도들의 기초’(에페 2,20) 위에 세워졌으므로 그 기원에서 사도적입니다. 교회는 사도들이 가르쳐 준 동일한 가르침을 보존하기에 사도적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베드로의 후계자와 하나 되어 주교단과 그들을 계승한 사람들을 통하여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거룩하게 되며, 지도를 받는 구조를 갖기에 사도적입니다.”33) 그러므로 모든 개별 교회에서 “교구장 주교가 자신에게 맡겨진 양 떼를 고유한 직접적 직권을 가진 목자로서 지도하는 것은 바로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34) 또한 국가 차원에서는 오직 합법적인 주교회의만이 해당 국가의 가톨릭 공동체 전체에 유효하게 적용될 사목 지침을 규정할 수 있습니다.35)

마찬가지로, 앞에서 말한 기구들이 표방하는 “교회의 독립, 자주, 자영(自營)과 민주적 운영의 원칙들”36)을 실행하려는 목표는 가톨릭 교리와 양립할 수 없습니다. 가톨릭 교리는 고대의 신경에서부터, 교회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온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에서 밝히는 원리들에 비추어 볼 때, 복음 선포와 교리 교육과 자선 활동, 전례와 예배 행위, 사목적 결정들은 성경과 성전(聖典)을 통하여 사도들이 물려준 신앙의 항구한 연속성 안에서 오로지 주교들과 신부들의 권한이므로 어떠한 외부 간섭에도 얽매일 수 없다는 것을 목자들과 평신도들은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이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가톨릭 공동체의 많은 구성원은 공적 활동을 위해서 필요한 국가 권위의 인정이 보편 교회와 나누는 친교를 어느 모로 손상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문제가 목자들과 신자들의 마음에 아픔과 불화를 일으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저는 우선, 신앙의 유산과 성사적, 교계적 친교를 마땅히 용감하게 지키는 것 자체는 교회 공동체 생활에서 국가 영역에 속하는 측면들에 관하여 국가 권위와 나누는 대화에 반대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신앙과 교회 친교의 포기할 수 없는 원리들을 부인하지만 않는다면 국가 권위에 인정을 받는 것에는 어떤 특별한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경우는 아니라도 적지 않은 경우에, 그러한 인정을 받는 과정에는 어떤 기구들의 개입이 따르기 때문에, 여기에 관련된 사람들은 가톨릭 신자로서 자신의 양심이 시키는 것에 반대되는 태도를 취하고 행동을 하고 책임을 맡도록 강요받습니다. 저는 그러한 다양한 여건과 상황에서 올바른 결정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이해합니다. 이러한 까닭에 교황청은 원칙들을 다시 한 번 밝힌 다음, 결정은 개별 주교들에게 맡깁니다. 주교들은 자기 신부들과 논의를 거쳐 지역 상황을 더 잘 파악하고, 구체적인 선택 가능성들을 더 잘 가늠하며 교구 공동체에 가져올 결과들을 더 잘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종 결정은 모든 신부와 신자들의 합의를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 결정이 받아들여져서 교구 공동체와 그들 목자의 일치가 유지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주교와 신부들이 진정 사목적인 마음으로, 추문의 상황을 피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하고 가장 약한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면서 신자들의 양심을 형성할 기회들을 놓치지 않는다면 유익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비판과 상호 단죄를 피하면서 친교와 형제적 이해 안에 실천되어야 합니다. 이 경우에도, 특히 자유의 여지가 거의 없는 곳에서는 더욱, 어떤 행위의 도덕성을 평가할 수 있도록 객관적인 잘못은 물론 관련자의 실제 의향을 밝히는 데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경우는 상황을 고려하여 개별적으로 숙고되어야 할 것입니다.


중국의 주교직

8. 하느님 백성인 교회 안에서는 충분한 교육과 양성을 받아 합당하게 서품된 성직자만이 ‘가르치고 거룩하게 하며 다스리는’ 직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평신도들은 주교에게 교회법적 사명을 받아 신앙을 전달하는 일에서 유익한 교회 직무를 수행합니다.

형제 주교 여러분은 최근 다양한 이유로 어려움에 직면하였습니다. ‘서품되지’ 않은 사람들, 때로는 심지어 세례 받지 않은 사람들까지 다양한 국가 기관의 이름으로 주교 임명을 포함하여 중요한 교회 문제에 관한 결정들을 내리고 통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우리는 교황과 주교와 신부들이 사실상 직무도 권한도 상실하게 할 위험이 있는 교회관 때문에 베드로 직무와 주교 직무가 격하되는 것을 목격해 왔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베드로 직무와 주교 직무는 교회의 성사 구조에 관한 가톨릭 교리에서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요소들입니다. 교회의 이 본질은 주 예수님의 선물입니다.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에페 4,11-13).

거듭 말씀드리지만(5항 참조), 친교와 일치는 가톨릭 교회의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러므로 종교 영역에서 성좌로부터 ‘독립된’ 교회를 구상하는 것은 가톨릭 교리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저는 앞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은 상황에서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와 베드로의 후계자에게 충실하려는 데에서 부딪히게 되는 큰 어려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말한 것처럼(로마 8,35-39 참조) 어떠한 어려움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을 다시 일깨우면서, 저는 여러분이 주님의 은혜를 신뢰하며 커다란 희생이 따르더라도 일치와 교회의 친교를 지키려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리라고 확신합니다.

최근 몇십 년 동안 교회를 이끌어 온 많은 중국 주교들이 자신의 공동체와 보편 교회에 빛나는 증언을 해 왔고 지금도 계속 증언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양 떼의 “으뜸 목자”(1베드 5,4)에게 바치는 진심 어린 찬미와 감사의 노래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실제로, 많은 주교들이 박해를 겪었고 직무 수행에 방해를 받아 왔으며, 몇몇 이들은 피를 흘리기까지 하며 교회를 풍요롭게 만들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새로운 시대, 그리고 새 복음화의 과제는 주교 직무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대희년 거행을 위하여 로마에 모인 전 세계 모든 지역의 목자들에게 말씀하셨듯이, “목자는 친교의 요구에서나 선교 활동에서나 교회 공동체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책임이 있는 첫 번째 사람입니다. 현대 문화를 크게 훼손하고 있는 상대주의와 주관주의에 맞서서, 주교들은 신자들의 교리적 일치를 옹호하고 증진하도록 부름 받고 있습니다. 신앙이 상실되었거나 알려지지 않은 모든 상황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주교들은 복음화에 온 힘을 쏟고, 이를 위하여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들을 준비시키고, 필요한 자원을 활용하여야 합니다.”37)

같은 기회에, 저의 존경하는 선임 교황께서는 또 이렇게 상기하셨습니다.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는 그리스도를 자신의 모든 것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입니다.’(필리 1,21) 하고 말하였습니다. 주교는 모든 행동으로 이를 증언하여야 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주교들은 모든 사람 앞에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자신의 사도직 임무를 수행하여야 합니다’(주교 교령 11항).”38)

주교의 봉사에 관하여, 저는 최근에 드렸던 말씀을 이 기회에 다시 드리고자 합니다. “주교들은 하느님 가족이며 서로를 위하여 존재하고 도움을 주는 자리인 교회를 세울 일차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이 사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여러분은 주교 축성과 함께 세 가지 구체적인 임무를 받았습니다. 가르치는 임무(munus docendi), 거룩하게 하는 임무(munus sanctificandi), 다스리는 임무(munus regendi)이며, 이 셋이 합쳐서 사목 임무(munus pascendi)를 이룹니다. 특히 다스리는 임무의 목적은 교회의 친교를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따르며 빵을 나누고 기도하며 친교를 나누는 공동체를 세우는 것입니다. 가르치고 거룩하게 하는 임무와 밀접하게 연관된 다스리는 임무는 주교에게 참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행위가 되며, 이는 목자의 사랑으로 표현됩니다.”39)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처럼 중국에서도 교회는 주교들이 다스립니다. 주교는 유효하게 서품된 다른 주교들이 수여하는 주교품으로, 거룩하게 하는 임무와 함께, 각자의 개별 교회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가르치고 다스릴 임무와 성품성사의 은총으로 하느님께서 주시는 권한을 받았습니다. 가르치고 다스리는 임무는 “그러나 그 본질상 오로지 주교단의 단장과 단원들과 이루는 교계적 친교 안에서만 행사될 수 있습니다.”40) 공의회는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교는 누구나 성사적 축성의 힘으로 또 주교단의 단장과 그 단원들과 이루는 교계적 친교로 주교단의 구성원이 됩니다.”41)

현재, 중국 가톨릭 교회의 모든 주교는 중국인입니다. 심각한 어려움들이 많지만, 중국 가톨릭 교회에는 성령의 특별한 은총으로 사도 계승을 유효하게 보존한 합법적 목자들이 있어서 계속 직무를 수행해 왔습니다. 우리는 고통이 없지 않음에도 가톨릭 전통에 부합하여, 말하자면 베드로의 후계자인 로마 주교와 이루는 친교 안에서, 가톨릭 교회의 예법을 준수하면서 유효하고 합법적으로 서품된 주교들에게 직접 주교품을 받은 주교들이 이렇게 계속 현존하고 있는 것에 주님께 감사하여야 합니다.

일부 주교들은 교회 생활에 대한 부당한 통제에 굴복하지 않고 베드로의 후계자와 가톨릭 교리에 온전히 충실하려는 열망에서 비밀리에 축성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밀스러운 상황은 교회 생활의 정상적인 특징이 아니며, 역사가 보여 주듯이, 목자들과 신자들이 이러한 방법에 의존해 온 것은 오로지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신앙을 온전하게 보존하고, 교회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되는 문제들에서 국가 기관의 간섭에 저항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교황청은 이러한 합법적인 목자들이 필요하다면 사회적 효력을 위해서도 정부 당국의 인정을 받고, 모든 신자가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 환경 안에서 신앙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특수한 상황의 압력 아래 놓인 다른 목자들은 교황의 위임 없이 주교품을 받는 데에 동의하였으나, 곧이어 베드로의 후계자와 다른 형제 주교들과 이루는 친교 안에 받아들여지기를 요청하였습니다. 교황은 그들의 성실한 마음과 복잡한 상황을 고려하고 이웃 주교들의 견해를 참작하여, 그들이 주교 재치권을 온전하고 합법적으로 수행하도록 교회의 보편 목자의 고유한 책임으로 허락하였습니다. 교황의 이러한 결정은 그들 축성의 특수 상황에 대한 이해와 완전한 친교를 재건하려는 깊은 사목적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경우에 사제와 신자들은 자신의 주교가 합법적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충분히 알지 못한 까닭에 여러 가지 심각한 양심의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더욱이 인정받은 주교들 가운데 일부는 그들의 합법성을 입증할 분명한 표지를 제시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해당 교구 공동체의 영적 선익을 위하여, 일단 그러한 인정을 받았으면 되도록 빨리 공개되어야 하고, 인정받은 주교들은 베드로의 후계자와 이루는 온전한 친교의 확실한 표지를 점점 더 제시하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일부 극소수 주교들은 교황의 위임 없이 서품을 받았고 필요한 법적 허가를 요청하지 않았거나 아직 받지 못하였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교리에 따라 이들은 합법적이지 않다고 여겨져야 하지만, 유효하게 서품된 주교들에게 성품을 받았고 가톨릭 주교 서품 예식이 존중된 것이 확실하다면 유효하게 서품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교황과 친교를 이루지는 않지만 성사 집전으로 비록 합법적이지는 않다 하여도 그들의 직무를 유효하게 수행합니다. 필요한 조건들이 성립되어 이러한 목자들도 베드로의 후계자와 모든 가톨릭 주교와 친교를 이룬다면 중국 교회가 얼마나 더 영적으로 풍요로워지겠습니까! 그러면 그들의 주교 직무가 합법화될 뿐만 아니라, 그들은 중국 교회가 로마 주교와 전 세계 다른 모든 개별 교회와 결합된 가톨릭 교회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사제와 신자들과도 더욱 풍요로운 친교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개별 국가에서 모든 합법적인 주교는 주교회의를 구성하며, 주교회의를 운영하는 정관은 교회법 규범에 따라 사도좌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한 주교회의는 한 국가 안 모든 주교의 형제적 친교를 표현하며, 각 교구장 주교가 자기 교구에서 지니는 통상적이고 직접적인 권한의 행사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그 국가의 전체 가톨릭 공동체에 중요한 교리적, 사목적 문제들을 다룹니다. 또한 모든 주교회의는 교회와 국가의 협력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라도, 그 지역의 국가 권위와 적절하고도 유익한 관계를 유지합니다. 그러나 온전히 교회의 관할인 신앙과 신앙에 따른 삶(신앙과 도덕, 성사 생활)의 문제에서는 주교회의가 어떤 국가 권위에도 얽매일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위에서 설명한 원칙에 비추어, 사도좌는 현재 중국 천주교 주교단을42) 주교회의로 승인할 수 없습니다.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았지만 교황과 친교를 이루고 있는 ‘비밀’ 주교들은 중국 천주교 주교단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 주교단은 아직 비합법적인 주교들을 포함하며, 가톨릭 교리에 어긋나는 요소들을 담고 있는 정관에 따라 운영됩니다.


주교 임명

9. 여러분이 모두 알고 있듯이, 교황청과 중국 당국의 관계에서 가장 미묘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는 주교 임명입니다. 한편으로는, 정부 당국이 지역 가톨릭 공동체를 이끌고 보살피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사람들을 선택하는 데에 민감한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기능은 세계 다른 지역에서처럼 중국에서도 국가 영역에서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교황청은 교황의 주교 임명이 교회의 일치와 교계적 친교의 보장인 만큼, 교회 생활의 핵심에 관련된 주교 임명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교회법전』(Codex Iuris Canonici, 제1382조 참조)은 사도좌의 위임 없이 어떤 이를 주교로 축성하는 주교와 그에게서 축성을 받는 이에게 모두 큰 제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한 서품은 실제로 교회의 친교에 아픈 상처를 남기며 교회법 규정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것입니다.

교황이 어떤 주교의 서품을 위하여 사도좌의 위임을 내릴 때에는 자신의 최고의 영적 권한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권한과 개입은 엄격히 종교 영역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국가 내부의 사안에 부당하게 어떤 권리를 주장하거나 국가의 주권을 침해하는 정치적 권한의 문제가 아닙니다.

특정 종교 공동체를 위한 주교 임명은 국제 문서에서도 종교 자유에 대한 권리를 온전히 행사할 수 있는 본질적인 한 요소로 이해됩니다.43) 교황청은 주교 임명에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44) 그러므로 최근 중국 교회의 구체적인 전개 상황을 고려하여, 저는 주교 후보자 선발, 주교 임명 발표, 그리고 필요한 경우 사회적 효력과 관련하여 새 주교에 대한 국가 당국의 인정에 관한 몇 가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정부와 합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주교 후보자 선정에서 여러분이 겪으실 어려움을 알고 있지만, 주교직 후보자는 교회의 목자로서 무거운 짐을 질 수 있을 만큼 신자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신앙생활의 모범이 되는 훌륭한 사제들로서 일정 기간 사목을 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드립니다.45) 교구 안에서 주교좌에 오를 마땅한 후보자를 찾는 것이 불가능할 때에는 적합한 후보자를 찾을 수 있도록 이웃 교구 주교들의 협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제2부
사목 생활 지침


성사, 교구와 본당 통치

10. 커다란 사목적 열정에 이끌려 다른 이들의 임무나 책임을 언제나 존중하지는 못하는 목자, 신부, 평신도들이 추진하는 개별 계획들과 관련하여 최근 어려움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개별 주교들이 한편으로는 “주교단의 일원으로서 또 사도들의 정당한 후계자로서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명령에 따라 보편 교회를 위하여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각기 하느님의 백성 가운데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부분에 대하여 사목 통치를 하지만, 다른 교회들이나 보편 교회에 대하여는 그리하지 못한다.”46)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또한, 최근 몇 년 동안 다양한 교구 공동체들에서 나타나는 특정 문제들 앞에서, 저는 모든 성직자가 개별 교회나 봉헌 생활회에 입적되어야 하고 교구장 주교와 이루는 친교 안에서 고유한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는 교회법 규범을 상기하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성직자는 정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만 다른 교구에서 직무를 수행할 수 있지만, 그럴 경우에 언제나 두 교구장 주교, 곧 자신이 입적된 개별 교회의 교구장 주교와 자신이 봉사하도록 예정된 개별 교회의 교구장 주교에게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47)
여러 상황에서, 여러분은 성찬례 공동 거행의 문제에 맞닥뜨려 왔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는 성찬례 공동 거행의 조건으로 같은 신앙 고백 그리고 교황과 보편 교회와 나누는 교계적 친교가 전제되어야 함을 상기합니다. 따라서 교황과 친교를 이루고 있는 주교들과 신부들과 바치는 공동 거행은 합법적입니다. 다만, 그들이 국가 권위의 인정을 받았고, 또 국가의 지지를 받지만 교회 조직과 무관한 단체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여도, 앞서 말씀드렸듯이(7항 참조) 이러한 인정과 관계가 신앙과 교회 친교의 포기할 수 없는 원리들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교회를 향한 진정한 사랑이 가득한 평신도들 또한, 베드로의 후계자와 완전한 친교를 누리고 국가 권위의 인정을 받은 주교들과 신부들이 거행하는 성찬례에 주저하지 말고 참여하여야 합니다. 다른 성사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톨릭 주교 서품 예식을 존중하였다 하더라도 교황의 위임 없이 축성된 주교들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문제들은 언제나 가톨릭 교리 원칙에 비추어 해결하여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8항 참조) 그들의 주교품은 비합법적이지만 유효합니다. 또한 그들이 수여하는 사제 서품은 유효하며, 그러한 주교와 신부가 집전하는 성사들도 유효합니다. 따라서 신자들은 이 점에 유의하여 성찬례 거행과 다른 성사들을 위하여 되도록 교황과 친교를 이루고 있는 주교들과 신부들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큰 불편 때문에 이러한 조건이 충족될 수 없는 곳에서는 영적 선익을 위하여 신자들은 교황과 친교를 이루고 있지 않은 이들도 찾아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교구장 주교들이 고유의 사목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자 교회법으로 마련한 것을 여러분에게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모든 교구장 주교가 교구청, 사제 평의회, 참사회, 교구 사목 평의회와 교구 재무 평의회 등 가톨릭 교구 공동체에서 친교와 협력을 이루는 데에 꼭 필요한 도구들을 활용할 것을 권유합니다. 이러한 기구들은 친교를 표현하고 공동 책임을 나누는 데에 이바지하며 목자들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하여 목자들은 신부들과 봉헌된 이들과 평신도들의 형제적 협력을 활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본당 사목 평의회와 본당 재무 평의회 등 교회법으로 규정된 본당의 여러 평의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교구와 본당은 동산이든 부동산이든 교회의 현세 재화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러한 재화는 교구나 본당의 이름으로 국가 영역에 합법적으로 등록되어 있어야 하고 개인(곧 주교, 본당 신부 또는 신자 단체)의 이름으로 등록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한편, “주교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Nihil sine Episcopo)는 원칙으로 요약될 수 있는 전통적인 사목과 선교 지침의 효력은 온전히 남아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문제들을 분석해 보면, 그 실질적인 해결은 친교의 촉진에 근거하여야 한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이러한 친교를 촉진하는 힘과 자극은 그 원천이시고 아버지 사랑의 표상이신 그리스도에게서 나옵니다. 언제나 모든 것 위에 있는 사랑(1코린 13,1-12 참조)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현대인들에게 제시하는 교회 공동체를 건설하려는 사목 활동의 힘과 기준이 될 것입니다.


교회 관구

11. 최근 50년 동안 국가 행정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는 교회 관할 구역의 여러 경계들도 포함됩니다. 교구 경계는 국가의 행정 경계에 바탕을 두어 통폐합되거나 변경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는 교황청이 중국 주교들과, 그리고 기회가 닿고 유용하다면 정부 당국과 건설적이고 열린 대화를 통하여 교회 관구와 경계 문제를 전반적으로 다룰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합니다.


가톨릭 공동체들

12. 광대한 중국 지역에 널리 퍼져 있는 교구 공동체들과 본당 공동체들이 매우 활기찬 그리스도인의 삶과 신앙의 증언과 사목 계획들을 보여 주고 있음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과거든 현재든 온갖 어려움에도 주교와 신부, 봉헌된 이들과 평신도들은 자신들이 전 세계 모든 가톨릭 공동체와 이루는 신앙과 삶의 친교 안에서 보편 교회의 살아 있는 지체임을 계속해서 깊이 인식해 왔습니다. 그들은 가톨릭 신자가 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진심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앞서 말씀드린 대로(5.6항 참조) 참된 그리스도인 삶의 가시적 표지인 친교와 이해와 용서의 정신이 개별 공동체 안에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동체들의 관계에서도 효과적으로 드러나게 하려는 노력도 바로 이러한 가톨릭 정신에서 흘러나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박해 시대에 공동체들이 신앙을 생생히 지킬 수 있게 도와주셨듯이, 오늘날 모든 가톨릭 신자가 일치 안에서 성장하도록 도와주시리라 확신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2.4항 참조), 여러분 나라의 가톨릭 공동체의 구성원들, 특히 주교와 신부와 봉헌된 이들은 안타깝게도 아직 교회에 대한 그들의 소속과 교황과 이루는 교계적 친교의 일부 측면들을 가시적으로 충만하게 실천하거나 표현할 수 없습니다. 교황청과 또 여러 나라의 다른 가톨릭 공동체들과 자유로운 접촉이 통상적으로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교회가 과거에 견주어 큰 종교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심한 규제가 있어서 신앙의 핵심을 접하기 어렵고 어느 모로는 사목 활동에 제약이 되고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교황청이 한편으로는 중국 교회와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 당국과 정중하고 열린 대화를 나눔으로써, 앞서 말한 어려움들이 극복되고 가톨릭 공동체와 사회적 화합에 유익한 상호 이해에 다다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4항 참조).


사제들

13. 이제 저는 기꺼이 사목 직무의 길을 걸어온 신부들, 특히 최근에 서품받은 신부들에게 특별한 성찰과 권유를 전하고자 합니다. 현재 교회 상황과 사회 정치적 상황 때문에 사제 영성의 샘에서 빛과 힘을 이끌어 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진 것 같습니다. 사제 영성의 샘이란 하느님의 사랑, 그리스도를 무조건 따르는 삶, 복음 선포의 열정, 교회에 대한 충실함, 그리고 이웃에 대한 관대한 봉사입니다.48) 이와 관련하여, 저는 모든 이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는 사례로, 최근 힘든 몇 년 동안 교회와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기 삶을 바치면서까지 교회를 향한 확고한 사랑을 증언한 여러 주교와 신부의 빛나는 모범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신부 여러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마태 20,12)하며,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루카 9,62 참조) 여러분, 신자들이 간절히 신부를 기다리는 곳, 오랫동안 신부가 없어서 신부를 보내 달라고 끊임없이 기도하는 곳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가운데에는 힘든 시기와 상황에 대처하려고 교회적 관점에서 언제나 동참할 수는 없는 지위를 떠맡은 형제들도 있고, 무슨 일이 있어도 교회와 이루는 완전한 친교로 되돌아가기를 바라는 형제들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 존경하는 선임 교황께서 중국 교회에 되풀이하여 권유하신 그 깊은 화해의 정신으로,49) 이제 저는 베드로의 후계자와 친교를 이루는 주교들이 아버지다운 마음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평가하고 필요하다면 사도좌에 문의하여 그러한 바람에 올바로 응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바람직한 화해의 표징으로서, 보편 교회에서 거행하는 성목요일의 사제의 날이나 또는 더욱 알맞은 다른 기회에, 사제들이 한 공동체로서 신앙 고백을 새롭게 하는 것보다 더 뜻 깊은 행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완전한 친교의 증언으로서, 사제 여러분의 사목적 배려에 맡겨진 거룩한 하느님 백성의 성장에 도움이 되고,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에는 찬미가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저는 중국에서도 다른 곳의 교회처럼 성직자에 대한 알맞은 계속 교육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따라서 교회 공동체들의 책임자인 주교 여러분이 오늘날 중국 사회처럼 복잡한 사회에 대한 복음화 임무의 요구와 관련하여 날로 더 새로운 사목적 도전을 겪고 있는 젊은 성직자들을 각별히 생각해 주기를 당부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되새겨 주셨습니다. 사제의 계속 교육은 “성사를 통해 받은 선물과 사도직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언제나 어느 시대에서나 필요합니다. 계속 교육이 오늘날에 특히 시급하게 요청되는 것은 사제직을 수행하는 대상인 개인과 국민들의 사회적, 문화적 조건들이 급격하게 변화되고 있기 때문이며, 아울러 제이천년기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교회가 꼭 해야 할 절박한 임무인 ‘새로운 복음화’를 수행하기 위해서입니다.”50)


성소와 양성

14. 최근 50년 동안, 중국 교회는 사제 성소와 봉헌 생활 성소의 풍성한 꽃을 피워 왔습니다. 활력의 표징이며 희망의 이유인 이 점에 대하여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나아가, 수년 동안 많은 토착 수도회들이 생겨났습니다. 주교들과 신부들은 여자 수도자들이 교리 교육과 온갖 형태의 본당 생활에 꼭 필요한 기여를 하였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 수도회들이 지역 국가 권위와 협력하여 제공하는 가장 가난한 이들을 향한 배려는 예수님의 복음의 힘과 효력을 가장 확실히 증언해 주는 이웃에 대한 사랑과 봉사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번영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 책임자들은 더욱 신중하게 성소를 식별할 뿐만 아니라, 사제 생활과 수도 생활을 열망하는 이들을 더 세심히 교육하고 지도하여야 합니다.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이 불확실하지만, 중국 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한편으로는 성소 사목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학교나 수도회에서 인간적, 영적, 철학적, 신학적, 사목적 측면과 관련하여 더욱 견실한 양성이 이루어지도록 보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사제직 후보자들에게 하는 독신 생활에 대한 교육을 특별히 언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사제 후보자들은 하느님께 받은 소중한 선물로서, 또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을 향한 갈림 없는 사랑을 증언하고 교회의 머리이시며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동화되는 탁월한 종말론적 표징으로서 독신 생활을 존중하고 실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 이 선물은 탁월한 방식으로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사제가 교회에 봉사한다는 것을 표현하고”51) 오늘날 세상을 위한 예언적 가치를 지닙니다.

수도 성소와 관련하여, 중국 교회의 현 상황에서 다음과 같은 두 차원을 더욱 분명히 고려하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정결과 가난과 순종의 서원으로 그리스도께 자신을 오롯이 봉헌하는 은사를 증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날 중국의 사회 역사적 상황에서 복음을 선포하여야 하는 요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평신도와 가정

15. 중국 가톨릭 교회의 현대사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에, 평신도들은 개인이나 가정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영성 운동과 사도직 운동의 일원으로서 각자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지키며 복음에 대한 전적인 충실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평신도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날에도 여러분의 삶에서 복음을 구현하며, 민족의 선익과 국가 발전을 위하여 기꺼이 실제로 봉사함으로써 이를 증언하도록 부름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정직한 시민으로 살아가고 또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느님 말씀을 전파하는 일에서 능동적이고 책임감 있는 협력자로 활동함으로써 이 사명을 완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신앙을 용감히 증언해 온 여러분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교회의 희망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여러분은 여러분의 목자와 이루는 친교 안에서 교회 생활의 모든 영역에 더욱 자발적으로 참여하여야 합니다.

인류의 미래는 가정을 통하여 이어지므로, 평신도가 가정의 가치를 증진하고 가정의 요구를 수호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고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으로써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놀라운 뜻을 온전히 알 수 있는 평신도에게는 이 실질적이고 필수적인 과업을 맡아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가정은 실제로 “젊은이들이 인격적 사회적 성숙으로 성장하는 일상적인 장소입니다. 가정은 또한 생명을 세세대대로 전달하기 때문에 인류 자신의 유산의 보유자입니다. 가정은 아시아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주교 대의원 회의 교부들이 강조한 대로, 효도, 노인들과 병자들에 대한 사랑과 배려, 어린이들에 대한 사랑, 조화와 같은 가정적 가치들은 아시아의 모든 문화와 종교 전통들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52)

앞에 언급한 가치들이 중국의 문화적 상황의 일부를 이루지만 중국에도 여러 방식으로 가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세력들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중국 교회는 자신과 사회의 선익이 가정의 선익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53) 더욱 생생하고 시급한 사명감을 가지고 혼인과 가정의 완전한 활력을 보장하면서 혼인과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모든 사람에게 선포하여야 합니다.54)


어른 그리스도교 입문

16. 중국 가톨릭 교회의 최근 역사를 살펴보면 많은 어른들이 신앙에 귀의해 왔으며, 이는 부분적으로는 지역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증언 덕분입니다. 목자 여러분은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도록 준비하고 돕는 적절하고 진지한 예비 신자 교리 교육 기간에 그들의 그리스도교 입문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는 복음화가 순전히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삶의 체험, 존재 전체의 정화와 변화, 그리고 친교의 여정을 포함하여야 한다고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만 사고와 삶 사이에 올바른 관계가 수립됩니다.

되돌아보면, 안타깝게도 많은 어른들이 그리스도인 생활의 완전한 진리에 충분히 젖어 들지 못하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져다준 쇄신의 풍요로움을 알지 못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예비 신자 교리 교육 형태의 세례 후 재교육 기간을 통하여 견실하고 깊은 그리스도교 교육을 제공하는 일이 필요하고 시급해 보입니다.55)


선교 소명

17. 언제나 어디서나 선교사인 교회는 복음을 선포하고 증언하도록 부름 받고 있습니다. 중국 교회 또한 자신의 설립자이시고 스승이신 분의 선교 열정을 마음으로 느껴야 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2000년 대희년에 행복 선언 산에서 젊은 순례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실 때 당신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시며 다음과 같은 확신을 주셨습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8-20).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이천 년 동안 이 사명을 수행해 왔습니다. 제삼천년기가 동터 오는 지금 이 사명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젊은이 여러분이 세상에 가서 십계명과 참행복의 메시지를 선포하여야 할 차례입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분께서는 초세기의 사람들에게처럼 20세기의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십계명과 참행복은 진리와 선, 은총과 평화, 그리고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가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56)

이제 중국에 있는 주님의 제자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나라의 용기 있는 사도들이 될 차례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매우 기꺼이 응답하리라 확신합니다.

 

결 론


특별 권한과 사목 지침의 철회

18. 저는 먼저, 중국 교회 상황의 일부 긍정적인 발전을 고려하고, 두 번째로, 늘어난 기회와 더욱 쉬워진 커뮤니케이션을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여러 주교와 신부가 로마에 보낸 요구들을 고려하여, 참으로 힘든 시기에 특별한 사목적 요구에 대처할 목적으로 이전에 수여한 모든 특별 권한을 철회합니다.

이는 과거와 최근에 수여한 모든 사목 지침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그 당시 지침들에 영감을 준 교리 원칙들은 이제 여기에 담긴 지침들 안에 새로 적용되었습니다.


중국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

19. 사랑하는 목자와 모든 신자 여러분, 신자들의 도움이신 성모 기념일인 매년 5월 24일은 앞으로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이 기도 안에서 중국 교회와 일치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상하이의 서산 성모 성지에서는 신자들의 도움이신 성모님을 큰 신심으로 공경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날을 중국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로 지내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우리 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친교와 교황에 대한 충실함의 친교를 새롭게 하고, 여러분의 일치가 더욱 깊어지고 더욱 눈에 보이게 드러날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이날을 거행하기를 권고합니다.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고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신 사랑의 계명을 기억하십시오. 또한 성 바오로 사도의 다음과 같은 권유도 명심하십시오. “그러므로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청과 기도와 전구와 감사를 드리라고 권고합니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여, 우리가 아주 신심 깊고 품위 있게, 평온하고 조용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느님께서 좋아하시고 마음에 들어 하시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1티모 2,1-4).

이날,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 특히 중국 출신 가톨릭 신자들은 이따금 모든 것이 실패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과거와 현재에 예수님의 거룩한 이름 때문에 겪은 여러분의 고통과 예수님의 지상 대리자에 대한 여러분의 용감한 충성이 언젠가는 보상받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역사의 주님께 여러분이 인내를 가지고 증언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시기를 간청하며, 여러분을 위한 형제적 연대와 관심을 보여 줄 것입니다.


축 복

20. 이 서한을 마무리하며 저는 사랑하는 중국 교회의 목자와 신부, 봉헌된 이들과 평신도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그러니 즐거워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로 단련을 받고도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훨씬 값진 여러분의 믿음의 순수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밝혀져, 여러분이 찬양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1베드 1,6-7).

십자가 죽음의 순간에 희망의 침묵 속에서 부활의 아침을 인내로이 기다리신 교회의 어머니이시며 중국 교회의 모후이신 지극히 거룩하신 성모님께서 어머니의 관심으로 여러분과 함께하시고, 요셉 성인과 중국의 수많은 순교 성인들과 더불어 여러분 모두를 위하여 전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 또한 여러분을 위하여 계속 기도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유서 깊은 여러분 나라의 노인들과 병자들, 아이들과 젊은이들을 사랑으로 기억하며 진심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축복을 보냅니다.


로마 성 베드로 좌에서
교황 재위 제3년
2007년 5월 27일
성령 강림 대축일

교황 베네딕토 16세


<원문 Letter of the Holy Father Pope Benedict XVI to the Bishops, Priests, Consecrated Persons, and Lay Faithful of the Catholic Church in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2007.5.27.>

 

1. 베네딕토 16세, 2006년 12월 26일 삼종 기도: “저는 또한 때로는 엄청난 고난을 겪으면서도 타협에 넘어가지 않고 베드로 좌에 대한 충실성을 지키는 가톨릭 신자들을 생각할 때 특별한 영적 친밀감을 느낍니다. 온 교회는 그들이 보여 주는 모범을 존경하며, 그들의 환난이 지금은 비록 실패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승리의 샘이라는 것을 알고 견디어 낼 힘을 지닐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로세르바토레 로마노』(L'Osservatore Romano), 영어판, 2007.1.3., 12.
2.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10항.
3. 요한 바오로 2세, ‘마테오 리치: 중국과 서구의 대화를 위하여’ 국제회의 참석자들에게 보낸 메시지, 2001.10.24., 4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2001.10.31., 3.
4. 요한 바오로 2세,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 후속 교황 권고 「아시아 교회」(Ecclesia in Asia), 1999.11.6., 7항, 『사도좌 관보』(Acta Apostolicae Sedis: AAS), 92(2000), 456 참조.
5. 「아시아 교회」, 19.20항 참조.
6. 요한 바오로 2세,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FABC) 회원국에게 한 연설, 1995.1.15., 마닐라, 11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1995.1.25., 6 참조.
7.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교서 「새 천년기」(Novo Millennio Ineunte), 2001.1.6., 1항, AAS 93(2001), 266.
8. 베네딕토 16세, 수요일 일반 알현, 2006.8.23.,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2006.8.30., 3.
9. ‘마테오 리치: 중국과 서구의 대화를 위하여’ 국제회의 참석자들에게 보낸 메시지, 6항.
10. ‘마테오 리치: 중국과 서구의 대화를 위하여’ 국제회의 참석자들에게 보낸 메시지, 6항.
11. Fonti Ricciane, ed. Pasquale M. D'Elia, S.J., vol.2, Rome, 1949, no.617, p.152 참조.
12. ‘마테오 리치: 중국과 서구의 대화를 위하여’ 국제회의 참석자들에게 보낸 메시지, 4항.
13. 사목 헌장 76항.
14. 베네딕토 16세,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 2005.12.25., 28항, AAS 98(2006), 240; 참조: 사목 헌장 76항.
15.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26항 참조.
16. 교회 헌장 23항.
17. 교황청 신앙교리성, 친교로서 이해되는 교회의 일부 측면에 관하여 가톨릭 교회의 주교들에게 보내는 서한 ‘친교의 개념’(Communionis Notio), 1992.5.28., 11-14항, AAS 85(1993), 844-847 참조.
18. 교회 헌장 23항 참조.
19. ‘친교의  개념’, 13항.
20. 베네딕토 16세,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 후속 교황 권고 「사랑의 성사」(Sacramentum Caritatis), 2007.2.22., 6항 참조: “교회의 신앙은 본질적으로 성찬의 신앙이며, 특별히 성찬의 식탁에서 자라납니다. 믿음과 성사는 교회 생활에서 서로를 보완하는 두 측면입니다. 하느님 말씀의 선포로 일깨워진 믿음은 성사들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과 은총 가득한 만남을 통하여 자라나고 커 갑니다. ‘믿음은 예식 안에서 표현되고, 예식은 믿음을 강화하고 굳건하게 합니다.’ 이러한 연유로, 제대의 성사는 언제나 교회 생활의 핵심입니다. ‘성찬 덕분에 교회는 언제나 새롭게 탄생합니다.’ 하느님 백성의 성찬 신앙이 더욱 활기에 넘칠수록, 그들은 교회 생활에 더욱 깊이 동참하며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맡기신 사명에 굳건하게 투신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역사 자체가 이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모든 중요한 개혁은 주님께서 성찬을 통하여 당신 백성들 가운데 현존하신다는 믿음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과 어느 모로든 연결되어 왔습니다.”
21. 「새 천년기」, 42항; 참조: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12항: “하느님의 활동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몸소 ‘길 잃은 양’, 고통 받는 잃어버린 인간을 찾아 나서실 때 극적인 형태를 띠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와 잃어버린 은전을 찾는 여인, 방탕한 아들을 보고 달려 나가 안아 주는 아버지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실 때에, 이는 단순한 말씀이 아닙니다. 그 비유들은 그분의 존재와 활동 자체를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그분의 십자가 위 죽음은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거슬러, 인간을 들어 높이시고 구원해 주시고자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는 행위의 절정입니다. 그것은 가장 철저한 형태의 사랑입니다.”
22. 베네딕토 16세, 수요일 일반 알현, 2006.4.5.,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2006.4.12., 11.
23. 박해 시대에 고대 교회 생활의 경험이 모든 이를 깨우치는 원천이 되어야 하며, 이 문제에 관하여 로마 교회 자체가 제시하는 가르침도 마찬가지이다. 로마는 노바티아누스파와 도나투스파의 엄격한 입장을 거부하였고, 박해 동안 배교한 이들을 향한 용서와 화해의 너그러운 태도를 호소하였으며, 이들이 교회의 친교 안에 다시 받아들여지기를 바랐다.
24. 요한 바오로 2세, 중국 가톨릭 공동체에 보내는 메시지 ‘전야에’(Alla Vigilia), 1999.12.8., 6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1999. 12.15., 5.
25. 마태 4,8-10; 요한 6,15 참조.
26. 이사 42,1-4 참조.
27. 요한 18,37 참조.
28. 마태 26,51-53; 요한 18,36 참조.
29.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 「인간 존엄성」(Dignitatis Humanae), 11항.
30. 베네딕토 16세, 수요일 일반 알현, 2006.4.5.
31. 사목 헌장 28항.
32. 베네딕토 16세, 수요일 일반 알현, 2006.4.5.
33.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Catechismo della Chiesa Cattolica Compendio), 2005, 174항; 참조: 『가톨릭 교회 교리서』(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1997, 857.869항.
34. 요한 바오로 2세, 자의 교서 「주님의 사도들」(Apostolos Suos), 1998.5.21., 10항, AAS 90(1998), 648.
35. 교회법 제447조 참조.
36. 중국 천주교 애국회(CCPA) 정관, 2004, 제3조.
37. 요한 바오로 2세, 주교들의 대희년 강론, 2000.10.8., 5항, AAS 93(2001), 28; 참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주교들의 사목 임무에 관한 교령 「주님이신 그리스도」(Christus Dominus), 6항.
38. 주교들의 대희년 강론, 4항.
39. 베네딕토 16세, 새 주교들에게 한 연설, 2006.9.21., AAS 98(2006), 696.
40. 교회 헌장 21항; 참조: 교회법 제375조 2항.
41. 교회 헌장 22항; 참조: ‘사전 설명 주석’(Nota Explicativa Praevia) 2항.
42. 중국 천주교 주교단(CCBC).
43. 세계적 차원에서는 예를 들면, 1966년 12월 16일에 채택된 ‘시민, 정치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 제18조 1항(“모든 사람은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권리는 스스로 선택하는 종교나 신념을 가지거나 받아들일 자유와 단독으로 또는 다른 사람과 공동으로, 공적 또는 사적으로 예배, 의식, 행사 및 선교에 의하여 그의 종교나 신념을 표명하는 자유를 포함한다.”)과 이에 관하여 1993년 7월 30일 유엔 인권 위원회가 내린 해석으로서 가입국들에게 구속력을 지니는 ‘일반 논평 22’의 제4항(“종교나 신앙을 행하고 가르치는 것은 종교 단체들이 기본적 업무를 수행하는 데에 필수적인 행위들, 곧 종교 지도자, 신부, 교사를 선택할 자유, 신학교나 미션 스쿨을 건립할 자유, 그리고 종교 서적이나 출판물을 유통할 자유 등을 포함한다.”)을 참조할 것.
 또한, 지역 차원에서는, 예를 들면, 유럽 안보 협력 회의(CSCE)에 참여하는 국가 대표들의 비엔나 회의에서 나온 다음의 결의안을 참조할 것.: “개인의 종교나 신앙을 고백하고 실천할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 참여국들은 이러한 종교 공동체들이 …… 자신의 교계적 제도적 구조에 따라 스스로를 조직하며 …… 자신의 요건과 기준에 따라, 또한 자신과 국가 사이에 자유롭게 받아들여진 협의에 따라, 필요한 인력을 선발하고 임명하고 대체할 권한을 존중한다”(1989년 최종 문서, ‘유럽 안보에 관련된 문제들’, 제16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종교 자유 선언 4항도 참조.
44. 주교 교령 20항 참조.
45. 이와 관련해서는 교회법 관련 규범(제378조) 참조.
46. 교회 헌장 23항.
47. 교회법 제265-272조 참조.
48. 사제직에 대한 가르침과 사제 영성 그리고 사제 독신제의 은사에 관한 성찰은,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청에 한 연설, 2006.12.22.,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2007.1.3., 6 참조.
49. 요한 바오로 2세, 중국 첫 주교들의 로마 서품식 70주년과 중국 교계 설정 50주년을 맞이하여 중국 교회에 전한 메시지 ‘전례적 기억’(La Memoria Liturgica), 1996.12.3., 4항, AAS 89(1997), 256 참조.
50.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권고 「현대의 사제 양성」(Pastores Dabo Vobis), 1992.3.25., 70항, AAS 84(1992), 782.
51. 「현대의 사제 양성」, 29항.
52. 요한 바오로 2세, 아시아 주교 대의원 회의 후속 교황 권고 「아시아 교회」(Ecclesia in Asia), 1999.11.6., 46항, AAS 92(2000), 521; 참조: 베네딕토 16세, 제5차 국제 가정 대회, 스페인, 발렌시아, 2006.7.8., AAS 98(2006), 591-592: “가정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선익이고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기초이며, 부부의 전 생애에 걸친 큰 보화입니다. 가정은 자녀를 위한 유일무이한 선익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사랑의 결실, 부모가 서로에게 완전하고 기꺼이 자기를 내어 줌으로써 생겨나는 결실이어야 합니다. 가정 교회와 생명의 지성소로서 혼인을 바탕으로 세워진 가정에 대한 온전한 진리를 선포하는 일은 모든 이에게 맡겨진 위대한 책임입니다. ……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생명과 가정생활의 변함없는 지고한 원천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2-13). 바로 하느님의 사랑이 세례를 통하여 우리 위에 부어집니다. 따라서 가정은 이 같은 사랑을 체험하도록 부름 받습니다. 주님께서 인간적 사랑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생각하고 사랑하고 자비로울 수 있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53. 사목 헌장 47항 참조.
54.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권고 「가정 공동체」(Familiaris Consortio), 1981.11.22., 3항, AAS 74(1982), 84 참조.
55. 요한 바오로 2세,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 후속 교황 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Christifideles Laici), 1988.12.30., 61항, AAS 81(1989), 514: 제7차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 정기 총회(1987.10.1-30.)의 시노드 교부들은 그리스도인 교육에서 “예비 신자 교리 교육 형태의 세례 후 재교육을 통하여 어른 입교 예식의 일부 요소들을 다시 가르침으로써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목적은 세례 때에 받은 무한하고도 극히 풍요로운 은총과 책임을 깨닫고 살아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참조: 『가톨릭 교회 교리서』, 1230-1231항.
56. 요한 바오로 2세, 행복 선언 산에서 한 강론, 이스라엘, 2000.3.24., 5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2000.3.29., 9.

번호 | 문서명 | 교황 | 발표시기 | 전자북
33   중화 인민 공화국 가톨릭 교회의 주교와 신부 봉헌된 이들과 평신도들에게 보내는 교황 서한   베네딕토16세   2007-05-27  
32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의 성목요일 성유 축성 미사 강론   베네딕토16세   2007-04-05  
31   사랑의 성사 (Sacramentum Caritatis)   베네딕토16세   2007-02-22  
30   2007년 제44차 성소 주일 담화   베네딕토16세   2007-02-10  
29   2007년 제22차 청소년 주일 담화   베네딕토16세   2007-01-27  
28   2007년 제41차 홍보 주일 담화   베네딕토16세   2007-01-24  
27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캔터베리 대주교 로완 윌리엄스의 공동 선언   베네딕토16세   2006-12-23  
26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그리스 정교회 아테네 총대주교 크리스토둘로스의 공동 선언   베네딕토16세   2006-12-14  
25   2007년 제15차 세계 병자의 날 담화   베네딕토16세   2006-12-08  
24   2007년 제40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베네딕토16세   2006-12-08  
23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 1세의 공동 선언   베네딕토16세   2006-11-30  
22   2007년 사순 시기 담화   베네딕토16세   2006-11-21  
21   2007년 제93차 세계 이민의 날 담화   베네딕토16세   2006-10-18  
20   학계 대표들과의 만남에서 하신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특별 강연 - 신앙과 이성 그리고 대학, 기억과 반성   베네딕토16세   2006-09-12  
19   2006년 제80차 전교 주일 담화   베네딕토16세   2006-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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