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성지

미리내 성지

미리내 성지

(*미리내 성지 홈페이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묘소 소재지

박해 시대의 교우촌

 

미리내 성지

행정 구역으로 미산리로 불리는 이곳 미리내는 순우리말로 '은하수'라는 뜻이다. 박해시대 교우들이 숨어 들어와 점점이 흩어져 살던 교우촌으로, 밤에 보면 교우들의 집에서 흘러나오는 호롱불빛들이 마치 밤하늘 별무리를 이룬 은하수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박해시대 교우촌이던 미리내는 병오박해로 순교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시신이 이곳으로 옮겨져 안장되면서 순교 사적지가 되었다. 1846년 9월 16일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한 김대건 신부의 시신은 순교한 지 40일 만에 교우들이 비밀리에 거두어 용산 우체국 뒤편의 와서(일명 왜고개)에 안장했다가 그해 10월 26일 서 야고보, 박 바오로, 한경선, 나창문, 신치관, 이 사도요한, 이민식 빈첸시오 등이 시부의 유해를 찾아내어 미리내로 옮겨왔고 10월 30일 안장했다.

이후 1853년 2월 조선교구 제4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가 선종하였고, "거룩한 순교자의 곁에 있고 싶다"는 주교의 유언에 따라 그해 4월  김대건 신부 묘소 옆자리에 안장했다. 한편, 1864년 5월 김대건 신부의 모친 고 우르슬라의 시신이 모셔졌다.

그후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 시성 작업이 추진되면서 시복 조사를 위해 1886년미리내에 있던 김대건 신부의 묘 봉분 중앙을 헤치고 홍대를 확인하였으며, 1901년 5월 21일 김대건 신부의 유해를 발굴하여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로 옮겼다. 현재 미리내 기념성당에는 김대건 성인의 유해 가운데 아래턱 뼈가 모셔져 있다. 

한편,  김대건 신부의 본래 무덤이 있던 자리에 1928년 시복을 기념하며 '복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기념 경당' 건립 봉헌식을 가졌고, 이후 '순교자의 모후 경당'으로 봉헌되었다. 1984년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103위 순교 복자들이 시성되었고, 이를 기념하고자 1991년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기념 성당'이 건립되었다. 이 시성 기념 성당 제대에 김대건 성인의 유해 일부(종아리뼈)가 안치되어 있다.

 

- 김대건 신부 기념 성당 -

 

 

- 103위 시성 기념 성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