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 성당
복자 윤지충 바오로, 권상연 야고보,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윤지헌 프란치스코 순교지

-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의 순교터임을 알리는 표지석 -
전주 남문 밖(현 전동 성당)
전동 성당터는 전주 남문에서 경기전과 동문을 거쳐 중노송동으로 나가는 길목에 있었다. 또한 사형 집행관인 영장이 우두머리인 중진영(현 남천교 앞에서 남문 교회와 강암기념관에 위치)과 인접한 곳이었다.
전동 성당이 자리하고 있는 전주는 한국 천주교회사적으로 출중한 순교자를 낳은 순교지 가운데 한 곳이다. 특히 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는 1791년 12월 8일 전주 남문 밖(현 전동 성당 자리)에서 관장의 배교 권유와 회유를 단호히 거부하고 당당히 천주교가 진리의 종교임을 밝히면서 처형되었다. 당시 영의정 채제공은 윤지충과 권상연을 사형에 처하고, 백성에게 겁을 주기 위해 그의 머리를 5일 동안 대중 앞에 효시하라는 명령을 내리도록 정조를 종용하였다. 정조 임금은 마침내 승낙하였고, 전교는 지체 없이 발송되었다. 그러나 정조는 이내 간청에 넘어간 것을 후회하고 긴급 명령을 내렸으며, 집행을 유예시키도록 특사를 보냈다. 하지만 이미 명령이 집행되었고,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요한은 1791년 12월 순교하였다. 이는 조선에서 천주교인에 대해 공식적으로 내린 첫 번째 처형이었다.
1801년의 신유박해 순교자들로는, 전라도에 처음 복음을 전파한 복자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그의 아우 관검, 윤지충의 막내 동생 복자 윤지헌 프란치스코가 이곳에서 능지처참형을 당하였고, 김유산 토마스와 이우집이 참수형을 당하였다. 조정은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의 목을 풍남문 누각에 매달아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갖도록 하였다.

- 윤지충과 권상연 두 순교 복자 기념 동상 -

- 처형된 복자 윤지충, 권상연, 유항검의 목을 매달아 두었던 풍남문 -

순교자들의 피가 서린 곳에 세워진 전동 성당-

- 전동 성당 내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유리화 -
전동 성당 역사
1889년 봄 전동성당의 초대 주임신부로 보두네 (프랑스 선교사) 신부가 부임하였고, 1891년 이곳의 집과 터를 매입하여 본격적인 본당의 터전을 마련하고, 전교를 시작하여 호남의 모태 본당이 되었다.
1908년 보두네 신부는 성전 건립을 시작하였는데, 성전의 설계는 프와넬 신부가 맡았다. 그로부터 7년 만인 1914년 우여곡절 끝에 외형 공사를 마무리하였고, 1915년 8월 종 축성식을 가졌따. 성전의 주춧돌은 전주성의 성벽 돌을 사용했는데, 일부 돌은 참수된 순교자들의 머리가 성벽에 매달렸을 때 피가 스며든 돌인 것으로 추정된다. 보두네 신부는 당시 신작로 개설 과정에서 성벽을 허물면서 버린 돌을 구입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