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재성지
남종삼 요한 성인과 부친 순교자 남상교 아우구스티노 유택지

순교자 남상교 아우구스티노 유택 (*사진출처: 원주교구 홈페이지)
묘재성지는 남종삼 요한 성인의 아버지(양부) 남상교 아우구스티노가 관직에서 물러나 신앙생활에 전념하기 위해 이사한 곳이다. 남종삼 요한의 학문과 사상, 그리고 천주교 입교까지 부친의 영향이 컸다. 남종삼 성인은 조선 후기 남인계 학자로 철종 때 승지를 지냈고, 고종 초에는 학덕을 인정받아 왕실에서 교육을 맡았다. 병인박해가 일어나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대한 대응책으로 남종삼 요한와 홍봉주 토마스 등은 프랑스 선교사들과 흥선대원군과의 면담을 주선하고자 했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의 마음이 바뀌면서 남종삼 요한은 묘재로 내려갈 것을 권유받고 낙향하였다. 이후 조정의 박해 소식에 놀라 변장하고 피신하다가 1866년 3월 1일 서울 근처의 고양 땅 잔버들이란 마을에서 체포되어 의금부로 압송되었다. 그는 모반 부도의 죄목으로 참수형을 선고 받고 1866년 3월 7일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홍봉주 토마스와 함께 순교하였다.
남종삼 요한이 순교한 뒤 남은 가족들도 모두 체포되었다. 대신들은 그 가족들을 뿔뿔이 흩어 유배 보낼 것을 주청했지만 고종은 이를 거부하고 처 이씨(이소사)와 두 딸, 막내아들을 창녕현에 같이 보내도록 조처하였다. 부친 남상교 아우구스티노는 남종삼의 큰아들 남명희와 함께 공주 감영으로 이송되었다. 할아버지와 손자를 한 감옥에 가두지 않는다는 국법에 따라 14세였던 남명희는 전주로 이송되어 15세가 되던 해에 전주 초록바위에서 순교하였다. 창녕현으로 유배된 이소사 역시 그곳에서 순교했다. 3대에 걸친 4명의 순교자가 탄생한 것이다.

- 유택 뒷산 십자가의 길 입구-
묘재의 교우촌 - 학산공소
1920년대부터 이 마을에 신자들이 들어와 교우촌을 이루었고, 1938년에 목조 건물의 공소를 신축하였다. 유택 앞에 있는 옛 공소 건물은 1955년 9월에 신축하였고, 현재 사용하고 있는 학산 공소는 1989년에 신축하였다. 1987년 순교자의 후손과 은인들의 도움으로 유택을 보수하였고, 뒷산에 14처를 조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