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성지

황새바위 성지

황새바위 성지

(* 황새바위순교성지 홈페이지)

 

복자 이국승 바오로와 하느님의 종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가 순교한

공주 참수 처형터

 

 

황새바위 순교성지 순교탑 

 

 

천주교 박해와 황새바위

공주에는 조선 건국 직후부터 관찰사가 관할하는 감영과 토포사(진영장)가 관할하는 진영이 설치되었다.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자 충청도 전역에서 많은 신자들이 체포되어 공주로 끌려왔으며, 수많은 문초와 형벌의 고문 속에서 배교를 강요당하였고 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였다. 신자들은 옥 안에서 교수형 또는 매질을 당하여 순교하거나 황새바위에서 참수형을 당하였는데,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된 내포의 사도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가 1801년 4월 9일 이곳에서 처음으로 참수형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어 같은 해 7월 이국승 바오로가 이곳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황새바위 순교성지 무덤 경당     

 

                황새바위 순교성지 무덤 경당 기념석 

 

이국승 바오로

이국승 바오로(1772-1801)

이국승 바오로는 충청도 음성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충주로 이주해 살았다. 장성한 뒤 충주 지역에 전해진 천주교 신앙에 대해 듣게 된 이국승은 경기도 양근의 권일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를 찾아가 교리를 배우고 곧바로 신앙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직 신앙이 깊지 않아 1795년 을묘박해가 일어난 뒤 체포되어 형벌을 받고 풀려나기도 했다. 그 후 이국승 바오로는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훈장 생활을 하며 전심으로 신앙을 실천하고 전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고 체포된 신자들에게서 그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포도청 포졸들에게 체포되었고, 1801년 7월 2일 사형 판결을 받은 뒤 충청도 공주로 이송되어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순교 당시 그의 나이는 29세였다.

 

* 하느님의 종 7위:
황새바위 순교성지에서는 하느님의 종 7위(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 최천여 베드로, 최종여 라자로, 고의진 요셉, 배문호 베드로, 김화숙 베드로, 고선양)을 비롯하여 공주에서 순교한 순교자들을 기리고 있다.

하느님의 종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가 참수형을 받은 형장의 위치는 지금의 황새바위성지에서 제민천 하류 일대로 추정된다. 1911년에 베네딕토회 아빠스 베버가 남긴 기록과 1801년 노상추(당시 홍주 영장)의 일기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공주 향옥에서] 다시 문밖으로 빠져나오는데, (...) 내를 따라 몇 백미터 더 내려가면 좁은 평지에 성긴 숲이 나타난다. 이곳이 형장이다. 순교자들의 피가 도적들의 피와 섞여 마른 모래를 적셨다. 냇물이 넘치면 피에 젖은 모래가 나무 밑까지 쓸려왔다. 목 잘린 시신들이 뒹글었다."

(노르베르트 베버, <고요한 아침의 나라>)

 

"사학 죄인 이존창을 [(음력} 2월] 28일 서울에서 압송해 와 금강 사장에서 참수하였으니, 도내의 모든 무리들로 하여금 이 사실을 알게 하라는 공문이 도착하였다."

(노상추, <일기>, 신유 3월 3일)

 

황새바위 언덕에서 내려다 본 제민천   

 

처형된 순교자들의 머리는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하여 나무 위에 오랫동안 매달아 놓았으며, 시신은 일반 죄수들과 섞인 채 지금보다 훨씬 넓은 황새바위 앞의 제민천에 버려져 금강을 순교자들의 붉은 피로 물들이곤 하였다.

 

 

황새바위 무덤 경당 내부 기념 석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