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산 관아와 감옥과 형장터
* 관련성지: 정산성지
복자 이도기 바오로의 신앙 증거지 및 순교지
그는 결코 배교할 수 없다고 말하며 머리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이렇게 외쳤다.
"성모 마리아님, 하례하나이다."

- 정산 관아터(현 충남 청양군 정산면 서정리 496-1 정산면사무소) -


정산 옥터( 현 정산면 서정리 55번지 정산중학교 옆 옥거리) 정산 장터(현 정산면 서정리 156번지 일대)
"정산 고을을 전부 주신다 해도 천주님을 배반하지 못하겠습니다."

이도기 바오로(1743-1798)
이도기 바오로는 충청도 청양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본디 글을 알지 못하였지만 하느님의 사랑과 천주교의 덕행만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54세가 되던 해인 1797년 정사박해가 일어났다. 그해 6월 8일 그는 정산 관아로 끌려가 문초와 형벌을 받았다. 정산 관아로 끌려간 바오로는 자주 관장 앞으로 끌려나가 문초와 형벌을 받아야만 하였다. 때때로 포졸들은 그를 장터로 끌고 나가 모욕을 주거나 매질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결코 굴복하지 않았으며, 배교를 강요하는 관장 앞에서 용감하게 천주교 교리를 설명하곤 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바오로는 자주 굶주렸고, 혹독한 추위로 고통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앉거나 눕거나 끊임없이 천주를 생각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라는 천사의 말을 전해 주는 목소리를 듣고는 기쁨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1797년이 지나고, 1798년 새해가 밝았다. 어느 날 정산 관장이 벼슬을 주겠다고 회유하자, 그는 "정산 고을을 전부 주신다 해도 천주님을 배반하지 못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마음이 약해질 것을 두려워하여 옥으로 찾아오는 아내와 교우들을 물리쳤다.
이 바오로는 여러 차례 극심한 고문의 형벌을 받아 실신하고 다리가 부러질 때까지 매를 맞고 버려진 채로 있었다. 이틀이 지난 저녁 무렵 정산 관장은 포졸들에게 그가 죽었는지 살펴보고 '죽지 않았으면 아주 죽여 버리고 오라'고 명령하였다. 포졸들은 이 명령에 따라 이 바오로의 몸을 잔인하게 짓이겨 버렸고, 그의 몸은 더 이상 사람의 꼴이 아니었다. 그때가 1798년 7월 24일로, 순교 당시 그의 나이 55세였다.

정산성지 (*사진 출처: 대전교구 홈페이지)
* 정산성지는 복자 이도기 바오로 순교 220주년을 기념하여 2018년에 조성되었다.